황우석 사건을 보는 여러 시선들
- 사건을 둘러싼 인터넷 공방을 중심으로

편집부  

주) 김형준 선생님, 명덕외고 학생들(이하희, 이지현, 이희진, 신혜연, 이슬기, 최다영, 권혜림, 이정아, 유현우, 박성규, 진효장, 조재웅, 조현상, 엄태성), 정리 조슬기(본지 기자)

'배아줄기세포'라는,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아주 생소했던 단어가 이제는 신문에서 매일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복제줄기세포 논란은   인간배아복제의 가능성과 위험성   실험용 난자조달 과정의 정당성 여부   과학자와 비과학자의 역할   언론의 역할   인터넷 토론 문화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토론 쟁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글은 김형준 선생님(본지 편집주간)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을 정리한 것으로, 황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직전(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지기 전)인 12월 8일에 토론한 내용입니다. 학생들에게 미리 사건 주요 흐름을 알아오고, 인터넷 토론게시판의 댓글(리플) 중 하나를 골라 적어오는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토론 준비와 의미 공유

♣ 황우석 사건 일지
  
  5월 19일 - 황 교수, 『사이언스』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논문 발표 (6월 17일자 표지논문)
  6월 1일 - 익명의 제보자, 『PD수첩』에 "논문 허위 가능성, 난자 윤리에도 문제" 제보 전달
  10월20일 -『PD수첩』, 미국 피츠버그대에 있는, 황 교수팀 소속 김선종 연구원과 만나 '중대 증언' 확보
  10일 31일 -『PD수첩』, 황 교수와 2005년 논문 의혹을 공동 검증키로 합의
  11월7일 - 『PD수첩』, 강성근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부터 줄기세포 5개와 동일한 환자의 모근세포를 전달받고 취재 시작
  11월 12일 -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 돌연 황 교수와 결별 선언
  11월 17일 - 황 교수, 『PD수첩』팀의 검증결과에 "검증결과와 검증기관을 믿을 수 없다"며 부인
  11월 21일 -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 기자회견 자청해 보상금이 지급된 난자를 황교수에 제공했다고 시인
  11월 22일 - 『PD수첩』, '황우석 신화와 난자 매매 의혹' 방영.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음
  11월 24일 - 황우석 교수팀, 난자 사용 시인 대국민 사과 및 공직 사퇴 발표
  11월 28일 -『PD수첩』 광고 전면 중단
  11월 27일 -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에 '『PD수첩』 광고중단 요구, 도 넘쳤다'고 씀
  11월 28일 - 황교수팀, 『PD수첩』팀에 "2차 검증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
  12월 1일 -『PD수첩』, 황교수 관련 취재일지 공개. MBC 『뉴스데스크』 통해 5개의 줄기세포 중 2개가 환자 DNA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검사결과를 공개하며 줄기세포 재검증 공식 요구
  12월 2일 -『PD수첩』팀, 기자회견 열어 취재과정 설명
  12월 4일 - 안규리 교수와 미국에 동행했던『YTN』이 김선종 연구원과의 인터뷰 통해 『PD수첩』 취재진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 제기. MBC, 대국민 사과문과 『PD수첩』 방영 유보 발표
  12월 6일 - 『프레시안』,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줄기세포 사진 조작됐다" 의혹 제기, 『피디수첩』의 'DNA 지문분석 결과 조작 가능성' 단독입수해 보도
  12월 7일 - 황 교수, 서울대병원 입원
  12월 8일 - 서울대 생명과학 분야 소장파 교수 30여 명, 서울대 정운찬 총장에게 논문 진실성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촉구.
  12월 9일 - 『사이언스』, 황 교수와 섀튼 박사에게 논란이 되는 연구결과 재검토 요구, 피츠버그대도 줄기세포 논문에 대한 조사 착수
  12월 10일- 『프레시안』, 미국 김선종 연구원이 황교수의 지시로 줄기세포 사진 2장을 11장으로 불린 사실 등이 담긴 『PD수첩』 녹취록 단독보도
  12월 11일 -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결과 재검증 실시 결정
  12월 12일 - 새튼 교수, 『사이언스』논문에서 자기 이름 빼줄 것을 요구. 서울대, 조사위원회 구성 착수
  12월 12일 - 이언 월머트 박사 등 세계 줄기세포 연구자들, 『사이언스』통해 독립적인 검증 제안
  12월 15일 - 『프레시안』, 미즈메디 병원 연구팀의 논문과 황교수 논문 사진 일치 의혹 제기.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 "줄기세포 지금은 없다" 폭로 발언. 사이언스에 논문 철회 통보했다고 밝힘. 『PD수첩』, 오후 10시 '황우석 신화' 2탄 전격 방송

사건 일지를 살펴보며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토론 쟁점들을 뽑아 보았습니다. 이 사건 일지를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은 토론 쟁점을 순서대로 뽑아볼 수 있었습니다.

  배아복제의 낙관적·비관적 전망
  실험을 위한 난자매매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 취재과정의 비윤리적 행동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만약 이익과 진실이 충돌한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국익'이란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과학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과학기술 발전 과정에 비전문가들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과학기술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아야 할까?
  사건 전개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본 수업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토론 쟁점들 중 인터넷 토론시 사람들이 주로 보이는 반응을 살펴보고, 각각의 반응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생각 열기

·이제 토론을 시작해볼까? 먼저, 요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을 쭉 펼쳐보자.
- 난자매매가 문제가 되니까 여자들이 앞다투어 난자기증을 한다고 하는데, 왠지 IMF 시절 금모으기 운동 때가 생각나요.  
- 요즘 이순신 영웅시와 황우석 영웅시가 겹쳐 보여요.
- 거짓 의혹도 있는데, 믿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있어요.
- 각 신문마다 다루는 논조가 다른데,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양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보수와 진보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도 궁금해요.
- 『PD수첩·이 황우석 교수 사단을 취재하면서 보인 행동들은 윤리적으로 굉장히 잘못된 것이에요.

·그래. 역시 이 사건을 중심에 두고 다들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이 토론에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점은, 『PD수첩』의 취재행동(협박 등)은 윤리적으로 잘못됐지만, 『PD수첩』의 윤리성 문제가 황우석 연구의 윤리성 문제와 섞여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종류가 다른 문제를 한 밥그릇에 놓고 비벼버리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이야기지. 복잡한 사건일수록 실타래를 풀 듯 분류해서 생각하기가 필요해. 미리 이번 사건에 관한 인터넷 댓글 하나씩을 찾아오라고 과제를 내 주었지? 모두 돌아가며 자신이 찾아온 리플들을 말하고,  왜 수많은 댓글 가운데 하필 그것을 뽑아내었는지 이유, 자기 견해 등을 이야기하면서 실타래를 풀어나가기로 하자.

펼치기

1. 온정주의적, 감정적 접근의 위험성

선생님: 황우석 박사가 병석에 누워 있다는 게 최근 신문 1면 탑 기사였어. 과로, 스트레스, 수면장애로 입원했다며 면도하지 않은 얼굴 등을 카메라에 비춰주었지.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생 1: 그 정도의 사람이 일반병실에 들어간 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외부의 관심을 안 받으려 일반병실을 택했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후레쉬 팡팡 터지며 취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은 무언가 앞뒤가 안 맞잖아요.
학생 2: 그 모습을 봄으로 해서 국민들의 황우석에 대한 동정여론이 커지고, 황우석 비판세력에 대한 분노여론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 3: 그런데 수면장애면 진짜 잘못될 수도 있는데…. 인도적 차원에서 황우석 교수가 불쌍해요.

선생님: 『PD수첩』 PD들은 안 불쌍해? TV엔 안 나오지만 그 사람들도 잠 못 자고 있을텐데?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효과를 속지 않고 잘 봐야 해.
학생 4: 하지만 인터넷의 기사와 리플들을 읽다보니 저 자신도 점점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글이나 사진이 인상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어요.

◇ 학생이 찾아온 댓글
얼마 전 KBS에서 성황리에 끝난 이순신에서 무고한 상황이 연상되는 건 왤까? 이순신은 나라의 안위와 왜구로부터 고통 받는 민생의 고초를 해결하고자 열악한 조선 수군들과 무수한 전공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승리가 더할수록 시기와 경계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선조와 조선 조정은 마침내 그를 죄인으로 몰아넣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 울분을 금할 수가 없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엄한 규정을 적용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적인 주요 국책 사업은 그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비공개 원칙을 내세워 일관적인 정책추진이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 비공개원칙이라…. 그럼 원자력 발전소 방폐장도 중간 보도 없이 건설한 다음에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까?  
학생 4: 그럼 중간의 잘못을 시정할 수 없다는 얘기잖아요. 아무리 국가란 게 큰 조직이고 해도 모든 게 맞는 건 아니니까 이건 좀 위험한 생각이에요.

선생님: 그 앞의 이야기는 어때? 이순신과의 비교가 적절해?
학생 1: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면 『PD수첩』이 황박사의 업적을 시기·경계해서 일부러 사건을 파헤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진실은 진실대로 밝혀져야 해요.
학생 2: 인터넷을 보면 온통 감정적인 댓글 일색이에요. 사실과는 관계없이 '그 사람 눈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 같지 않다', '누가 잘되는 게 그렇게 배아프냐'는 식으로 접근하는 글들이 많은데,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좀더 객관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아야 할 것 같아요.

2. 선점논리의 위험성

선생님: 방금 이야기했듯이, 감정적 대응에서 벗어나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비단 이 사건 뿐만 아니라 모든 진실에 접근하는 우리의 태도겠지. 그런데, 황우석 박사 논쟁에서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학생 5: 난치병 환자 가족들이 고통받는 모습이요. 연구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난치병 걸린 사람들이 병을 고칠 수 있을텐데, 『PD수첩』이 그것을 방해한다고 여겼어요.

◇ 학생이 찾아온 댓글
"자기가족이 난치병에 걸려있더라도 최PD는 윤리가 더 중할 것이다."
"교통사고 나서 엠뷸런스 가는데 신호 지키자는 것과 다름없지요. 난치병 환자를 위해 연구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 보유한 황우석 교수가 멈춰서 있다는 게 문제다. 윤리를 그 시간에 따지고 있냐.""세계화 시대, 모두 전쟁 중인데 조금이라도 우리나라가 빨리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특허를 빼앗길 수 있다."

선생님: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와 딱 들어맞는 댓글들이네. 이 논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학생 6: 지금 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있다는 논리로 달려나가는 것은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 1: 긴급한 상황이니까 일단 빨리 하고 보자는 것은 뭔가 이상해요. 전제가 잘못된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항상 긴급상황 아닌가요?

선생님: 마지막 댓글에서 이 세계를 '전쟁중'이라고 규정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단 말이지. 좀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시킨 거야. 동물의 왕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피땀을 흘리는데 말야. 엠뷸런스 비유는 적절한 건가?
학생 2: 빨간불이란 형식적 요소로 제한을 하는 본래 목적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학생 3: 당장 빨간불 안 지나면 사람 죽는다는 급한 경우와 좀 다른 듯해요.
학생 5: 엠뷸런스의 빨간불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예방'하는 의미이지만 황우석 연구를 생명윤리라는 빨간불로 규제하는 것은 현재 당면한 비윤리를 제재하는 것이잖아요.

선생님: 줄기세포 연구는 현재 사람을 구하고 있는 엠뷸런스와 달리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뿐이야. 이때에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난자제공 연구원, 배아의 생명윤리)가 더 급박해지는 거지.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행해지는 것은 불치병 치료라는 명분이 한 근거인데, 줄기세포 연구하는 과학자들 스스로도 "이것은 초보 단계다" "아직 연구가 시작도 안된 거다." 라고 말해. 긴급성에서도 엠뷸런스와 합치가 안 되지. 앞으로의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어.

학생 1: 그래도 난치병 환자들 입장에선 실낱같은 희망이잖아요.
학생 3: 하지만 그런 희망에 덧붙여 보편적 이익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 급하다면 서로 빨리 가려고 난리가 날 테니까.

3. 애국 아니면 매국이라는 이분법

선생님: 방금 논쟁에서 난치병 치료에 대한 희망이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었지. 논문이 거짓이든 아니든 황교수를 믿는다는, 다소 종교에 가까운 말도 여기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 논쟁에서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든 것이 하나 더 있어. 무엇일까? 힌트를 좀 줄게. 『PD수첩』을 비롯해서, 황교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비난이 뭐였니?
학생 2: 매국노요!

◇ 학생이 찾아온 댓글
"예전에 황우석 교수님께 미국 연구소에서 1조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스카우트할려고 했지만, 국익을 위해서 떠나지 않으셨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차라리 미국 가셨으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으셨을 텐데…."
"정말 우리나라가 싫어진다. 우리나라는 왜 영웅을 죽이는 걸까?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같이 영웅 죽이기에 나서는 한심한 나라다. 평생을 연구에 몸바쳐 노벨상이 유력시되던 황교수님이 너무 불쌍하다. 결국은 매국노들에 의해서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달랑 사과 한마디라니. 앞으로 우리나라에 천재과학자가 나오긴 힘들 것 같다."

선생님: 그래. 왜 황교수를 의심하는 것이 '매국'이 될까?
학생 5: 그러니까,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이익, 국가적인 물질적 이익이 커지니까 그러한 국익을 위해 황우석 교수를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너네는 황우석 교수가 잘못되길 바라는 거냐? 그러므로 너희는 매국노다' 라는 논리예요.
학생 6: '우리'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확장된 이기주의 같아요. 이기주의에 기댄 맹목, 즉 비뚤어진 애국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선생님: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애국심은 겉으로 볼 땐 이타주의에 기반한 개념인 것 같지만 이 경우엔 이기주의와 결합된 거지.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그런데 이기심에 바탕한 애국주의, 또 있었는데?
학생 1: 이라크 파병! 전쟁은 반대하지만 우리가 파병하지 않음으로써 받게 될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였어요. 실제로 그렇게 파병을 할 수밖에 없었구요.
학생 2: 중국이나 일본과의 역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무조건 불같이 성내고 보는 것도 좀 왜곡된 애국심 같아요. 증거를 갖고 이야기하자거나, 다른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매국노 취급을 받았어요.
학생 4: 제가 찾아온 댓글 중에는 '애국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애국심을 가지란 말입니다.'라는 게 있어요. 어떤 것이 지혜로운 애국심인지 헷갈려요.
학생 5: 우리나라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밝혀내는 것이 매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것이 지혜로운 애국심이라고 생각해요.

3. 언론 취재과정의 정당성과 알 권리

선생님: 다른 댓글들도 한번 검토해보자. 『PD수첩』의 취재과정에 관한 댓글을 찾아온 사람은 없나?

◇ 학생이 찾아온 댓글
"『PD수첩』류의 프로들이 행한 이전의 기능들을 볼 때 이번 비윤리적 취재가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는 PD의 말을 보면 이번 사건은 미디어의 중립성을 잃고 답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자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

학생 1: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PD수첩』의 잘못 말이에요. 공갈, 협박은 분명 범죄인데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언론이 취재할 때 행하는 잘못을 엄하게 처벌해서 적극적인 취재를 할 수가 없어지면 더 큰 공익이 마이너스 될 수 있어. 그래서 언론사의 죄 경중을 경감시키는 경향이 있지. 실정법의 목적이 '공익'에 있기 때문이야. 절차를 어겼다고 반드시 잘못되었다 말할 수는 없어. 절차 중심주의를 조심할 필요가 있어. 의도, 결과 모든 것을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지.
학생 3: 공갈협박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죠?
선생님: 관행이지. 어떤 곳에 비리가 있어 보도해야 하는데 약하게 다가가면 취재를 못 받아낼 수 있잖아. 굉장히 미묘한 균형의 문제야. 그 사이사이에 또 다른 가치의 경합이 벌어지고.

학생 1: TV에서 토론하는 걸 보니까, 미국 '푸드 라이온' 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푸드 라이온이라는 회사가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를 표백제를 사용해 냄새를 제거한 후, 재포장하여 판매하는 걸 기자가 보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몰래카메라를 사용했어요. 법원은 결국 회사의 권리 침해보다 기자가 이로 인한 피해를 막은 공을 인정해서 무죄판결을 내렸대요.
학생 2: 솔직히, 의심가는 사람에게 마이크 들이대고 공손하게 대답해달라고 하면 제대로 대답하겠어요? 공갈협박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위반은 허용된다고 봐요. 그것이 선생님 말씀대로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학생 3: 그런데 어디까지가 공익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때그때 논란이 되고, 취재윤리를 어긴 언론인에 대한 처벌도 여기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아요. 이번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한 것은 그 의혹이 사실일 경우 우리가 얻을 '공익'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움을 산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원의 권리, 이번 경우엔 어떤 것이 더 중요해 보이니?
학생 7: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을 협박하고 있지도 않은 검찰 소환을 들먹거린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 3: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 우리가 얻을 이익은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PD수첩』은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용서받을 것이 아니라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용감한 일을 했으니까.
학생 2: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절차 과정에서 저지른 죄는 처벌받아야 해요. 안 그러면 진실을 취재한다는 명목으로 함부로 도청하고 감시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돼요.

마무리
: 우리는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아야 할까?

선생님: 영화 『라쇼몽』 봤니? 사무라이가 살해당하는데, 4명의 증인은 모두 사건을 다르게 구성하고 있지. 사건의 실체는 하나인데, 실체적 진실은 여러 가지야.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그 진실이 달라지지. 우리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 언론사마다 논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학생 1: 어조를 따져봐요.
학생 3: 주장을 객관적 사실과 동일시하면 안돼요. 미국에 있을 때 광고를 뉴스 형식으로 뉴스시간에 방영하는 것을 보았어요. 깨알 같은 글씨로 백악관 광고라는 자막이 떴고요.
학생 2: 논리 과정이 기사 속에 나타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그 의견이 합리적이냐 합리적이지 않느냐 판가름할 수 있죠. 주장 논리 전개가 타당하면 믿을 수 있어요.
학생 1: 황우석 교수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 밑에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이 있었는데, 옆에 신고가 접수된 의견이라는 마크가 붙어 있었어요. 결국 사진 보고 나서 드는 느낌은 논리 관계가 처음엔 있었겠지만 사진을 보면 감정에 치우치기가 쉽다는 거에요.

선생님: 긴 시간동안 토론을 진행해 봤는데, 내가 그냥 물어봐도 될 것을 왜 인터넷 상의 댓글을 찾아오라고 한 것 같니?
학생 1: 사람들이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이 반박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다 나와 있으니까.
학생 2: 우리가 배운 모든 형식논리학의 오류들이 다 모여 있어요! 인신공격, 권위에의 호소, 감정에의 호소, 이분법,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논점일탈 등등.

선생님: 그래. 요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모든 논리와 비논리 - 영웅주의, 집단주의, 마녀사냥 논리, 윤리적 가치, 돌아가는 걸 못 참는 극도의 효율주의 - 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인터넷이 등장해서 사회는 좀더 민주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인터넷은 때로 광기를 퍼트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 그 두 가지 가능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 반박하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합리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아야 할 거다. 그것이 보편으로 나아가는 길일 테니까.

참고자료

1. 국익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국익'이라는 말은 주술에 가깝다. 노동자들의 싸움이든 농민의 싸움이든 전쟁을 반대하는 싸움이든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당한 싸움들은 언제나 국익이라는 주술 앞에 힘을 잃는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하고 농민은 모두 배를 가르거나 몸을 불살라도 어쩔 수 없으며 청년들은 기꺼이 더러운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그 주술에 대적하는 무기는 이른바 '명분'이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농민을 죽이는 개방', '명분 없는 전쟁' 그러나 사랑이나 존경 같은 고상한 가치마저 돈으로 사고 팔리는 세상에서 명분으로 실리를 이기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오늘 한국에서 명분으로 실리를 이기려는 노력은 한국에도 명분을 좇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국익'이란 주술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주술 자체를 부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명분'이 옳지만 어딘가 국익에는 배치되는 데가 있다는 노예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놈의 국익은 대체 누구의 국익이지?'
국익이란 '나라의 이익'이란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나라에도 '나라의 (단일한)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층층한 여러 계급들로 이루어진다. 계급들의 이익은 몹시 다르거나 심지어 적대적이다. (이경해씨 추모집회에서 제 몸을 불사른 박동호 씨와 제 아비의 막대한 재산을 모조리 물려받는 이재용 씨는 서른넷 동갑내기 한국인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속여 이르는 말이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기들의 이익을 국익이라 주장한다.(그게 자기들만의 이익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다.) 노동자의 정당한 싸움도 농민들이 제 배를 가르고 제 몸을 불사르는 일도 죄 없는 청년들이 더러운 침략 전쟁에 총알받이로 가는 일도 단지 자기들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일이지만 국익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걸 거스르는 사람은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반역자라는 오명을 들씌운다.
주술을 깨트려야 한다. 진정한 국익은 한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뒤엉킨 것들을 바르게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싸움을 존중하는 게 국익이며 농민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게 국익이며 더러운 침략전쟁에 절대 전투병을 보내지 않는 게 바로 국익이라면 누군들 애국자가 되려 하지 않겠는가. (김규항, 『씨네21』200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