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내면이 세계와 만나는 자리
- 노작활동으로 돌아보는 1년 들살이
이연희 | 해오름 평생교육원 전임 강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입춘입니다. 예전에는 봄을 맞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 구석구석을 치우고 농기구를 손보고 새해 농사일을 준비했을 시기입니다. 가끔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인 글귀를 보곤 했는데 요즘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찬바람이 일고 눈발이 날리는 입춘이라도 땅을 덮은 마른 잎들을 살살 제쳐 보면 푸른 잎들이 조금씩 올라와 있습니다. 가을부터 떨어진 낙엽을 이불 삼아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꽃 피울 준비를 하는 풀들이 있습니다. 삭막하다고 하는 아파트 숲에도 봄은 소리 없이 찾아옵니다. 목련 꽃봉오리는 탐스럽고 보드라운 털에 감싸여 해님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립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서서 보이지 않지만 바쁘게 움직이며 봄을 기다립니다. 한 곳을 지키고 자신을 키워내는 일에 몰두해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굳건히 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내는 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해오름 살림학교도 올 한 해 나무 밑동의 뿌리들처럼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서로를 일으키는 힘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감각을 깨우는 노작활동
해오름 살림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다니며 사계절 내내 자연이 주는 황홀한 빛을 느끼고, 엄격한 질서를 만들어 놓지 않아도 서로 균형을 맞추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 왔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꽃을 피워내는 들꽃을 보며 작은 숨소리를 느끼고, 흙을 빚고 다듬어 소리통을 만들며 내 몸이 악기가 되는 것을 새롭게 배우고, 손모를 심고 밭일을 하면서 우리의 먹을거리들을 수확해보고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똑같은 길이로 기어가는 자벌레를 보며 자를 연상하고 나뭇잎의 마주보는 잎맥을 보며 대칭과 균형을 배우고, 봉숭아 꽃씨를 터트리며 하나의 꽃씨 안에 수십 개의 새 씨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며 꽃씨 한 알의 위대함을 배웠습니다. 여기저기 풀꽃 관찰을 다니며 계절마다 피는 꽃도 다르고 지역마다 피는 꽃과 나무들이 다르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처음엔 보는 꽃마다 다 꺾어대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꽃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되고,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옆 친구의 손을 자연스레 잡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바느질하기 어렵다고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하다가 바늘에 찔려 가면서도 한 땀 한 땀 천천히 공책과 필통을 만들고 나서 뿌듯해 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아주 더디지만 자연이 주는 그 어떤 감동보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무엇인가에 억눌려 있고 쫓기면서 두려워하고 겁을 냅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없이 완벽하게 조립된 세상에 놓여 마음 한 구석 의심의 여지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진도를 따라 가느라 헉헉댑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아이는 좀 더 기능 좋게 훈련시키고, 평범한 아이들은 존재감 없이 이리저리 주어진 학습진도표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배움의 기대는 시들해집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그대로 보라고 소리쳐도 알아듣지 못하고 꽂아 놓은 보릿자루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구분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들살이에 다녀가면 한 동안은 학교에 가기 싫고 들살이 학교에만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곤 몇 달이 지나면 학교에 더 열심히 잘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자기 삶에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들살이 학교에는 아이들의 물음이 살아있습니다. 선생님이든 친구든 언니든, 강아지 같은 동물에게도 묻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말합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습니다. '힘들지 않니? 내가 심고 있는 감자는 언제 꽃을 피울까? 해바라기 꽃이 태풍에 쓰러져 많이 아팠겠구나, 똘랭이가 없어서 콜리가 외로웠겠구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듣는 힘이 부족합니다. 혼자의 상상에 빠져 정작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리게 됩니다. 지나치게 두뇌활동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감각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사와 부모는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영혼은 관념이라는 감각 속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적인 노작활동 속에서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체화시키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일치된다고 했습니다. 즉 외적인 존재인 육체가 내적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 및 정신과 하나가 되어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생활 속에서 많은 지식을 경험해 왔습니다. 무엇인가를 해 보고 만져보고 느끼는 가운데 세계와의 교감을 얻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귀로 직접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듣게 되며 손으로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한 그림을 상상해 낼 수 있는 내적 세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기만의 진정한 지식들을 획득해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밭을 갈거나 옷을 만드는 노작활동 속에서 자신들의 내면에 존재한 관념의 세계와 외부세계와의 일치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은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보물창고가 될 것입니다.
삶 그 자체인 살림학교
세상을 좀 더 폭넓게 만날 길은 없을까? 좀더 재미있고 다양한 체험활동은 없을까?
늘 외형만 고민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내면을 찾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오래 지속된 만남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만나거나 길어도 1, 2년인 한정된 기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단편적인 경험만 하게 되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길게 1년을 두고 한 해를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아이나 교사에게 더 큰 성장이 이루어질텐데요. 그동안의 자연 활동 속에서 얻은 감동이 밑거름이 되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는 하루 동안에 자연을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구조를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많았습니다. 휴일에 가까운 산이라도 가려면 유행처럼 찾아든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공원에 가도 같은 상황인 데다가, 자연을 느끼고 배울 인적인 뜸한 곳을 찾으니 너무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다 지금의 횡성에 있는 (구)금평분교를 만났습니다. 시설은 허름했지만 은행나무와 잣나무에 둘러싸인 학교의 정취는 아늑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흥분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는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의 살림학교에서 해온 노작활동을 바탕으로 횡성에서의 1년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아이들은 너른 운동장에서 뛰고, 산에 오르고 나무에 오르고, 숨바꼭질을 하고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은 손과 발로 사물을 만나면서 영혼과 정신이 깨어납니다. 노작활동을 통해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만납니다.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이해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꿈을 실현할 터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마침 횡성 살림학교에 미술가 두 분이 계시기로 마음이 모아져 고마운 마음으로 살림학교의 꿈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1년의 자연의 흐름에 맡겨 살아가면 하나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땅에 발을 딛고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내 손으로 일구고 만져보는 일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억 년 전부터 나를 이 자리에 있게끔 해준 모든 생명체에 감사하고 그 생명체를 거두는 지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서있는 땅을 봅니다. 나를 일으켜 주고 살아가게 하는 이 터전에 아주 작은 보답으로 아이들과 땅에 인사를 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내 후손이 살아갈 땅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밭을 갈기로 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한 번 만나보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보고 배우는 일은 단지 호미자루를 만져보는 경험을 넘어 역사를 만나는 일입니다. 한 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농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와 괴리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모를 심고 피를 뽑고 벼를 수확하는 일은 1년 일입니다.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놓고 보면 짧은 기간일 수 있습니다. 1년의 자연활동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살리는 일일 것입니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자연 품에 안겨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풀들을 보고 계절마다 새롭게 옷을 입는 나무들을 보며 하늘의 이치와 땅의 섭리를 배울 것입니다.
1년을 계획하고 아이들을 모집했는데 얼마나 잘 될지 의문스럽기도 했던지 아이들이 많지 않아 부득이 한 달에 한 번 참여하는 아이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봄·여름 학기동안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배우고 선생님들의 혈기왕성한 노력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자 가을·겨울 학기에는 보다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여 활기찬 들살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들살이 1년의 노작활동 돌아보기
3월 1년 공부 계획하고 살림할 곳 꼼꼼히 살피기
학교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노작활동은 공책 만들기입니다. 무슨 수업이든 가장 처음 하는 일이 공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정하고 내가 배우고 실천한 것들을 담아두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토기를 빚듯 정성스럽게 1년 동안 심고 가꿀 작물을 기록할 공책을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들살이에 오는 아이들은 이제 바느질에 아주 익숙합니다. 처음 온 동생이나 친구들에게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공책을 다 만든 아이들은 배추밭을 덮었던 볏단을 다 거두었습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볏단을 묶고 볏단을 나릅니다. 쌀쌀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봄기운이 아이들을 만나 상큼합니다.
밭일을 하고 학교를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교실, 작업실, 강당, 식당, 화장실, 창고, 관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학교 옆쪽으로 밭이 있고 산이 보입니다. 밭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제일 큰 밭에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을 겁니다. 운동장 한 쪽으로는 해바라기 씨를 심고 옥수수도 심을 겁니다. 강당 앞쪽으로는 빨간 봉숭아를 심을 겁니다. 밭을 둘러보며 흙을 한 줌씩 담았습니다. 학교 지도를 그리고 눈으로 학교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다음날 더 꼼꼼히 내가 살 곳을 살피기로 합니다.
저녁을 먹고 흙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며 우리가 심을 씨앗이 어느 땅에 좋은지 살펴보았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더러운 흙을 관찰하라 하니 좀체 내키지 않지만 이 흙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운다니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습니다. 밭에 심을 씨앗도 관찰을 했습니다. 이름이 같은 봉숭아, 해바라기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생김새가 다릅니다. 희준이와 푸른이가 4학년이고 키도 고만고만한데 성격도 얼굴생김새도 다른 것처럼 모두 다릅니다.
들살이 기대가 큰 만큼 활동도 많고 배도 고파집니다. 김치부침개를 했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준비해서 합니다. 처음이라 부치기만 하고 간단한 작업만 했습니다. 물론 성에 차지 않은 뭔가 하다 만 활동입니다. 다음 번에는 꼭 전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4월 봄빛 가득한 생명 만나기
씨앗을 뿌릴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돌이 제법 많아 돌을 고르다 보니 바윗덩어리 같은 돌도 나오고 돌을 깔아놓은 듯 평평한 돌도 나옵니다. 흙을 파니 얼음이 박혀 있습니다. 강원도는 겨울이 긴 탓에 감자를 좀 늦게 심고 수확은 일찍 한다고 합니다.
'감자 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 해 저무는 달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밭 고래 달빛이 내려와서 입 맞추고 있네'
노래를 불렀습니다. 굳이 '감자는 이렇게 심는 거야'라는 말보다 온 몸에 파고드는 찡한 노래입니다. 어두운 느낌이 들어 가르쳐 주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들은 참 좋아했습니다. 씨가 될 눈을 자르고 재를 묻혀 심으며 잘 자라주기를 소망합니다. 두 명 세 명이 함께 감자를 심습니다. 한 사람은 흙을 파고 덮는 일을, 한 사람은 씨감자를 넣는 일을 합니다. 혼자서 한 이랑을 쩔쩔 매지만 둘 셋이 같이 하니 일의 능률이 훨씬 오릅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감자를 보며 흙 속에서 자랄 감자를 생각할 것입니다. 감자를 통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를 조금씩 깨우치게 됩니다.
땅 속 깊이 심으면 싹을 틔우기 힘들고 너무 얕게 심으면 새들이 다 쪼아 먹고……. 이만저만 고민이 아닙니다. 적당한 깊이로 옥수수와 봉숭아와 해바라기 홍화씨를 심었습니다. 한 손에 두 세 개씩 고사리 손으로 씨를 정성스레 심었습니다. 과연 다음달에 싹이 돋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합니다. 한동안 밭 주위를 떠나지 못합니다.
다음날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래로 길을 내고 성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힘차게 살아갈 자신의 집을 짓습니다. 형태는 꿈같은 성이지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의지의 표현입니다. 물조리로 물을 나르고 손으로 다듬고 길을 내고 들꽃을 꺾어 꽃길을 만듭니다. 실용적인 구실은 못하지만 여러 친구들의 의견을 모으며 하나의 창조물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성의 모습은 누구라도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4월엔 동네 분들을 모시고 '횡성 살림학교 여는 날'을 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는 의미였습니다. 진달래꽃 화전을 예쁘게 만들어 드렸습니다. 과거에는 일상적이었던 일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박물관의 모습으로 바뀐 일이 많습니다. 동네 잔치를 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꽹과리도 치고 마을잔치도 해야 하는데 우리도 엄두를 못 내고 아이들이 노래로 대신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로 하나가 되고 아름다운 노랫말처럼 예쁜 꿈을 갖는 아이들이 되겠습니다. 어른들께서 살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5월 고구마 심고 봄 들꽃 관찰하기
4월에 심은 밭을 둘러보니 조금씩 싹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잘 자라라고 속삭이며 인사한 말을 알아들었을까, 제법 싹이 많이 올라와 있자 아이들은 감탄을 합니다. 고구마 순을 심고 야콘과 고추 모종을 심고 쑥갓, 당근, 오이를 심었습니다. 고구마 순은 심기가 까다롭습니다. 물이 많이 잠겨도 안 되고 물이 너무 없어도 안됩니다. 정확한 답이 있어 그대로 하면 좋으련만 넣었다 뺐다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용기를 얻어 고구마 순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밭에 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마른 잣나무 가지들을 덮어주었습니다. 앞치마에 마른 잎을 가득 담아 밭고랑에 뿌렸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알아주듯 땅 속 뿌리들이 힘차게 뻗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저녁에는 묵은 감자를 갈아 가루를 내어 감자떡을 만들었습니다. 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주물거리고 속을 넣어 꾹 누르니 감자떡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6월 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
감자밭에 올라가니 감자꽃이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꽃으로 영양분을 쏟지 말고 더 튼실한 감자가 되라고 꽃을 땄습니다. 한아름 따서 묶으니 꽃다발이 되고 목걸이가 됩니다. 굵은 줄기로 뻗어 가는 감자와 고구마를 보더니 아이들이 모두 흡족해 합니다. 길쭉해진 오이도 보고 브로콜리 잎도 솎아주고, 키 큰 해바라기가 더 잘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래쪽의 잎을 따주었습니다. 밭일을 끝내고 색연필을 갈아 도화지에 가루를 손으로 문질러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름의 빛깔을 풍성하게 담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봄에 피어날 때부터 5월까지 자라온 모습을 채집해 온 풀을 한지에 붙여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3월에 땅에 납작 붙은 모양으로 겨울을 나던 꽃다지는 이제 줄기를 곧게 세우고 노란 꽃을 피우더니 씨방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 달 넘게 말린 풀이 잘 말라 정성을 들여 만든 결과는 훌륭했습니다. 정성을 드린 만큼 잎이 잘 말랐고, 나의 정신이 들어가니 마른 꽃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간식시간에는 색깔이 있는 수제비를 만들었습니다. 녹차 가루를 넣고 당근을 간 물을 넣고 반죽을 해서 삼색 수제비를 만들었습니다. 두툼하기도 하고 모양이 다양해서 꼭 아이들의 얼굴 같았습니다. 다음날 개울가에서 이끼로 집을 짓고 돌맹이로 징검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횡성에서의 생활이 아주 익숙해졌고 제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봄·여름 학기동안 종일 들떠 있던 아이들이 비로소 좀 무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놀 때는 수건돌리기를 하며 열광적으로 놀고, 일을 할 때는 어른 못지 않게 일을 척척 잘하게 되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가 자라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가끔씩 토마토를 따 먹는 재미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한여름 강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휩쓸고 간 태풍 때문에 학교의 감자밭도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래 지속된 비로 감자 알이 작고 수확도 적었습니다. 여름학교에 온 아이들과 함께 감자를 캐보니 알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환경오염으로 꼽히는 비닐을 안 씌웠더니 풀이 너무 많이 자라 감자에 영양분이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힘들여 작업을 했는데 아쉬움도 남지만 오히려 비바람의 여름을 이긴 것만으로도 대견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환경오염도 막고 수확을 많이 할 수 있을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해야겠습니다.
9월 가을맞이
해를 받고 자라는 나무들처럼 한여름 뙤약볕에서 잘 놀던 아이들이 여름을 지내고 쑥 커서 왔습니다. 1년을 염두에 두고 봄 학기부터 온 아이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왔고, 가을 학기에 새로 온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봄에 심은 채소들은 여름 들살이와 여름학교 때 거둬들여 양식이 되었습니다. 밭에는 고구마와 야콘, 늙은 오이가 있고 아이들이 심지는 않았지만 김장을 위해 미리 심은 배추와 무가 있었습니다. 여름내 풀도 많이 자라있고 열무도 푸른 잎을 펼쳐내고 있었습니다. 튼실한 김장 무를 위해 제법 굵게 오른 무만 남겨두고 모두 솎아냈습니다. 아이들이 '열무에는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열무를 솎으면 따끔따끔한데 잎 가장자리가 거칩니다. 장갑을 끼고 다 뽑아 와서 마당에 펼쳐놓고 둘러앉아 다듬었습니다. 손도 따갑지만 열무김치를 해주신다는 말에 신이 나서 다듬었습니다. 엄마가 시키면 돌아보지도 않을 일을 한 잎도 버리기 아까워하며 열심히 다듬고 주워 담습니다. 여러 가족이 모여 김장 준비를 하듯 평온해 보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도 그 평온함이 오래 간직되었을 것입니다. 저녁 간식시간에는 추석을 앞두고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솔잎을 다듬고 송편 소를 준비하고 쌀가루 반죽을 하고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똑같은 모양이 싫어서 크게도 만들고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었는데, 송편을 쪄서 먹어 보고 나면 왜 어른들이 그렇게 작고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지 알게 되겠지요. 흥미도 있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온 식구가 먹을 만큼의 양을 하려면 계산이 달라지니까요.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만큼이나 요리시간은 아이들에게 기대이상의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다음날 산에 힘껏 올랐습니다. 낮은 산이지만 좀체 산에 안 다녀본 아이들이라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진 길은 힘이 들었습니다. 숨이 차지만 산에 올라 숨을 고르고 리코더를 불렀습니다. 새들의 소리인 리코더 소리에 새들이 와서 주위를 돌며 화답을 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10월 가을걷이
1년 동안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작물들의 수확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감자를 캐보고 생각보다 많이 생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고구마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았습니다. 야콘과 고추도 몇 이랑 씩 있어서 그동안 밭일을 해 온 것을 바탕으로 학년별로 일의 구분을 두어 분업을 했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야콘 뿌리를 뽑아주면 동생들이 야콘을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고구마 밭의 비닐도 고학년이 다 걷어주면 동생들이 모둠별로 앉아 고구마를 캤습니다. 무턱대고 모든 일을 다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 정도에 따라 이해가 되고 소화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1년이 다 되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 앞에서 잘못하다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벌리는 일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누어서 일을 하게 되니 일도 효율적으로 잘되고 성과가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한 후 먹는 간식은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녁 간식시간에는 늙은 호박을 자르고 씨를 바른 후 호박죽과 호박전을 해 먹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칼을 쓰는 요령, 음식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을 차츰 익히는 것을 보니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마무리를 못하고 일을 시작만 하고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늘 끝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늘 시작만 하는 아이, 안정되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는 아이, 자기가 이끌어야 만족하는 아이, 관심은 있는데 나서지는 않고 묵묵히 하는 아이……. 노작활동을 하면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하나 배워갑니다.
11월 김장하기
농촌 생활에 조금은 익숙해진 탓인지 이제 어둠도 정겹고 추위도 견딜만합니다. 화장실도 혼자 다녀오고 많이 씩씩해졌습니다. 겨울양식으로 김장을 했습니다. 여름에 심은 무는 아주 튼실하게 자랐는데 배추는 늦게 심으면서 모종을 심지 않고 씨를 뿌리는 바람에 속이 꽉 차지 않은 헐렁한 배추가 되었습니다. 진짜 농부인 회장님께 배추를 부탁드려 맛있는 배추를 구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배추를 뽑아놓고 들살이 일정은 좀 기다려야하고 그 사이에 배추가 좀 시들해져서 아이들은 배추를 다듬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선생님들이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파도 다듬고 갓도 자르고 재료를 준비하는데 순식간에 일을 끝냅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웬만한 일쯤은 이제 얼마든지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다음날 절인 배추에 속을 넣는데 고학년 아이들은 1년 활동을 마무리 하듯 열심히 했습니다.
절반의 결실, 또 다시 1년을 준비하며
횡성 살림학교에서 아이들은 쉴새 없이 움직입니다. 밭일을 하면서 땅을 파고 갈아주면서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수확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경험하게 되고 식물채집을 하면서 뿌리, 잎, 꽃으로 이루어진 식물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아름다운 작업을 해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적 교육에 대한 보완으로서 몸의 활동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며 자기 안에 내면세계를 키워나가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노작활동을 통해 삶에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직관력과 창의력을 꽃피워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인류를 만들어준 생산적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인류의 유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고 노동의 가치도 차츰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들살이를 다니면서 꿈이 농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1년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며 아이들은 지금의 자기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고 미래에 대한 폭 넓은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 친구가 꼭 농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되려고 했던 마음은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가짜 농부이면서 아이들을 어설프게 가르쳐 미안함 마음이 듭니다. 동네 어른들께 여쭈어보고 책도 찾아보기도 했는데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24절기의 해의 움직임을 따라 1년을 살았습니다. 농사를 중심에 놓고 요리와 채집 등의 노작활동을 했습니다. 온 몸을 깨우기 위해 산을 힘껏 걸어다녔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들 속에서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더할 나위 없이 맛보았습니다.
분명히 주의를 주었는데도 호미를 거꾸로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놀라서 쫓아다니고, 목장갑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다녀 쫓아다니면서 야단을 치고, 새끼줄을 꼰 볏단을 아무데나 버리고 가서 주워 담으면서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한 달에 한 번, 1년을 다 왔어도 여섯 일곱 차례 동안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을 하고 한 번도 생활해 보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하는 아이들에게 불편한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쉽게 풀어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도 않고 그저 일할 거리들만 던져 놓은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됩니다. 제법 덩치가 큰 고구마는 땅을 계속 파도 오히려 땅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땅에서 뽑혀지지 않습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자란 고구마가 세상 밖으로 나오듯 아이들도 제 몸과 영혼을 키워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고구마를 억지로 호미로 급하게 파내려면 고구마에 상처만 더할 뿐입니다. 온전히 흙을 털고 나오도록 살살 흙을 털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함께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횡성의 살림학교에서 아이들과 1년을 보내며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웃고 울게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쳐준 영원한 스승인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 노작활동으로 돌아보는 1년 들살이
이연희 | 해오름 평생교육원 전임 강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입춘입니다. 예전에는 봄을 맞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 구석구석을 치우고 농기구를 손보고 새해 농사일을 준비했을 시기입니다. 가끔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인 글귀를 보곤 했는데 요즘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찬바람이 일고 눈발이 날리는 입춘이라도 땅을 덮은 마른 잎들을 살살 제쳐 보면 푸른 잎들이 조금씩 올라와 있습니다. 가을부터 떨어진 낙엽을 이불 삼아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꽃 피울 준비를 하는 풀들이 있습니다. 삭막하다고 하는 아파트 숲에도 봄은 소리 없이 찾아옵니다. 목련 꽃봉오리는 탐스럽고 보드라운 털에 감싸여 해님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립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서서 보이지 않지만 바쁘게 움직이며 봄을 기다립니다. 한 곳을 지키고 자신을 키워내는 일에 몰두해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굳건히 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내는 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해오름 살림학교도 올 한 해 나무 밑동의 뿌리들처럼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서로를 일으키는 힘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감각을 깨우는 노작활동
해오름 살림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다니며 사계절 내내 자연이 주는 황홀한 빛을 느끼고, 엄격한 질서를 만들어 놓지 않아도 서로 균형을 맞추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 왔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꽃을 피워내는 들꽃을 보며 작은 숨소리를 느끼고, 흙을 빚고 다듬어 소리통을 만들며 내 몸이 악기가 되는 것을 새롭게 배우고, 손모를 심고 밭일을 하면서 우리의 먹을거리들을 수확해보고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똑같은 길이로 기어가는 자벌레를 보며 자를 연상하고 나뭇잎의 마주보는 잎맥을 보며 대칭과 균형을 배우고, 봉숭아 꽃씨를 터트리며 하나의 꽃씨 안에 수십 개의 새 씨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며 꽃씨 한 알의 위대함을 배웠습니다. 여기저기 풀꽃 관찰을 다니며 계절마다 피는 꽃도 다르고 지역마다 피는 꽃과 나무들이 다르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처음엔 보는 꽃마다 다 꺾어대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꽃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되고,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옆 친구의 손을 자연스레 잡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바느질하기 어렵다고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하다가 바늘에 찔려 가면서도 한 땀 한 땀 천천히 공책과 필통을 만들고 나서 뿌듯해 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아주 더디지만 자연이 주는 그 어떤 감동보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무엇인가에 억눌려 있고 쫓기면서 두려워하고 겁을 냅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없이 완벽하게 조립된 세상에 놓여 마음 한 구석 의심의 여지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진도를 따라 가느라 헉헉댑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아이는 좀 더 기능 좋게 훈련시키고, 평범한 아이들은 존재감 없이 이리저리 주어진 학습진도표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배움의 기대는 시들해집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그대로 보라고 소리쳐도 알아듣지 못하고 꽂아 놓은 보릿자루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구분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들살이에 다녀가면 한 동안은 학교에 가기 싫고 들살이 학교에만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곤 몇 달이 지나면 학교에 더 열심히 잘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자기 삶에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들살이 학교에는 아이들의 물음이 살아있습니다. 선생님이든 친구든 언니든, 강아지 같은 동물에게도 묻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말합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습니다. '힘들지 않니? 내가 심고 있는 감자는 언제 꽃을 피울까? 해바라기 꽃이 태풍에 쓰러져 많이 아팠겠구나, 똘랭이가 없어서 콜리가 외로웠겠구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듣는 힘이 부족합니다. 혼자의 상상에 빠져 정작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리게 됩니다. 지나치게 두뇌활동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감각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사와 부모는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영혼은 관념이라는 감각 속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적인 노작활동 속에서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체화시키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일치된다고 했습니다. 즉 외적인 존재인 육체가 내적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 및 정신과 하나가 되어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생활 속에서 많은 지식을 경험해 왔습니다. 무엇인가를 해 보고 만져보고 느끼는 가운데 세계와의 교감을 얻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귀로 직접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듣게 되며 손으로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한 그림을 상상해 낼 수 있는 내적 세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기만의 진정한 지식들을 획득해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밭을 갈거나 옷을 만드는 노작활동 속에서 자신들의 내면에 존재한 관념의 세계와 외부세계와의 일치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은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보물창고가 될 것입니다.
삶 그 자체인 살림학교
세상을 좀 더 폭넓게 만날 길은 없을까? 좀더 재미있고 다양한 체험활동은 없을까?
늘 외형만 고민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내면을 찾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오래 지속된 만남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만나거나 길어도 1, 2년인 한정된 기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단편적인 경험만 하게 되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길게 1년을 두고 한 해를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아이나 교사에게 더 큰 성장이 이루어질텐데요. 그동안의 자연 활동 속에서 얻은 감동이 밑거름이 되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는 하루 동안에 자연을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구조를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많았습니다. 휴일에 가까운 산이라도 가려면 유행처럼 찾아든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공원에 가도 같은 상황인 데다가, 자연을 느끼고 배울 인적인 뜸한 곳을 찾으니 너무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다 지금의 횡성에 있는 (구)금평분교를 만났습니다. 시설은 허름했지만 은행나무와 잣나무에 둘러싸인 학교의 정취는 아늑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흥분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는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의 살림학교에서 해온 노작활동을 바탕으로 횡성에서의 1년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아이들은 너른 운동장에서 뛰고, 산에 오르고 나무에 오르고, 숨바꼭질을 하고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은 손과 발로 사물을 만나면서 영혼과 정신이 깨어납니다. 노작활동을 통해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만납니다.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이해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꿈을 실현할 터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마침 횡성 살림학교에 미술가 두 분이 계시기로 마음이 모아져 고마운 마음으로 살림학교의 꿈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1년의 자연의 흐름에 맡겨 살아가면 하나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땅에 발을 딛고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내 손으로 일구고 만져보는 일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억 년 전부터 나를 이 자리에 있게끔 해준 모든 생명체에 감사하고 그 생명체를 거두는 지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서있는 땅을 봅니다. 나를 일으켜 주고 살아가게 하는 이 터전에 아주 작은 보답으로 아이들과 땅에 인사를 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내 후손이 살아갈 땅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밭을 갈기로 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한 번 만나보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보고 배우는 일은 단지 호미자루를 만져보는 경험을 넘어 역사를 만나는 일입니다. 한 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농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와 괴리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모를 심고 피를 뽑고 벼를 수확하는 일은 1년 일입니다.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놓고 보면 짧은 기간일 수 있습니다. 1년의 자연활동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살리는 일일 것입니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자연 품에 안겨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풀들을 보고 계절마다 새롭게 옷을 입는 나무들을 보며 하늘의 이치와 땅의 섭리를 배울 것입니다.
1년을 계획하고 아이들을 모집했는데 얼마나 잘 될지 의문스럽기도 했던지 아이들이 많지 않아 부득이 한 달에 한 번 참여하는 아이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봄·여름 학기동안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배우고 선생님들의 혈기왕성한 노력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자 가을·겨울 학기에는 보다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여 활기찬 들살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들살이 1년의 노작활동 돌아보기
3월 1년 공부 계획하고 살림할 곳 꼼꼼히 살피기
학교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노작활동은 공책 만들기입니다. 무슨 수업이든 가장 처음 하는 일이 공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정하고 내가 배우고 실천한 것들을 담아두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토기를 빚듯 정성스럽게 1년 동안 심고 가꿀 작물을 기록할 공책을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들살이에 오는 아이들은 이제 바느질에 아주 익숙합니다. 처음 온 동생이나 친구들에게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공책을 다 만든 아이들은 배추밭을 덮었던 볏단을 다 거두었습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볏단을 묶고 볏단을 나릅니다. 쌀쌀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봄기운이 아이들을 만나 상큼합니다.
밭일을 하고 학교를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교실, 작업실, 강당, 식당, 화장실, 창고, 관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학교 옆쪽으로 밭이 있고 산이 보입니다. 밭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제일 큰 밭에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을 겁니다. 운동장 한 쪽으로는 해바라기 씨를 심고 옥수수도 심을 겁니다. 강당 앞쪽으로는 빨간 봉숭아를 심을 겁니다. 밭을 둘러보며 흙을 한 줌씩 담았습니다. 학교 지도를 그리고 눈으로 학교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다음날 더 꼼꼼히 내가 살 곳을 살피기로 합니다.
저녁을 먹고 흙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며 우리가 심을 씨앗이 어느 땅에 좋은지 살펴보았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더러운 흙을 관찰하라 하니 좀체 내키지 않지만 이 흙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운다니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습니다. 밭에 심을 씨앗도 관찰을 했습니다. 이름이 같은 봉숭아, 해바라기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생김새가 다릅니다. 희준이와 푸른이가 4학년이고 키도 고만고만한데 성격도 얼굴생김새도 다른 것처럼 모두 다릅니다.
들살이 기대가 큰 만큼 활동도 많고 배도 고파집니다. 김치부침개를 했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준비해서 합니다. 처음이라 부치기만 하고 간단한 작업만 했습니다. 물론 성에 차지 않은 뭔가 하다 만 활동입니다. 다음 번에는 꼭 전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4월 봄빛 가득한 생명 만나기
씨앗을 뿌릴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돌이 제법 많아 돌을 고르다 보니 바윗덩어리 같은 돌도 나오고 돌을 깔아놓은 듯 평평한 돌도 나옵니다. 흙을 파니 얼음이 박혀 있습니다. 강원도는 겨울이 긴 탓에 감자를 좀 늦게 심고 수확은 일찍 한다고 합니다.
'감자 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 해 저무는 달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밭 고래 달빛이 내려와서 입 맞추고 있네'
노래를 불렀습니다. 굳이 '감자는 이렇게 심는 거야'라는 말보다 온 몸에 파고드는 찡한 노래입니다. 어두운 느낌이 들어 가르쳐 주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들은 참 좋아했습니다. 씨가 될 눈을 자르고 재를 묻혀 심으며 잘 자라주기를 소망합니다. 두 명 세 명이 함께 감자를 심습니다. 한 사람은 흙을 파고 덮는 일을, 한 사람은 씨감자를 넣는 일을 합니다. 혼자서 한 이랑을 쩔쩔 매지만 둘 셋이 같이 하니 일의 능률이 훨씬 오릅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감자를 보며 흙 속에서 자랄 감자를 생각할 것입니다. 감자를 통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를 조금씩 깨우치게 됩니다.
땅 속 깊이 심으면 싹을 틔우기 힘들고 너무 얕게 심으면 새들이 다 쪼아 먹고……. 이만저만 고민이 아닙니다. 적당한 깊이로 옥수수와 봉숭아와 해바라기 홍화씨를 심었습니다. 한 손에 두 세 개씩 고사리 손으로 씨를 정성스레 심었습니다. 과연 다음달에 싹이 돋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합니다. 한동안 밭 주위를 떠나지 못합니다.
다음날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래로 길을 내고 성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힘차게 살아갈 자신의 집을 짓습니다. 형태는 꿈같은 성이지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의지의 표현입니다. 물조리로 물을 나르고 손으로 다듬고 길을 내고 들꽃을 꺾어 꽃길을 만듭니다. 실용적인 구실은 못하지만 여러 친구들의 의견을 모으며 하나의 창조물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성의 모습은 누구라도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4월엔 동네 분들을 모시고 '횡성 살림학교 여는 날'을 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는 의미였습니다. 진달래꽃 화전을 예쁘게 만들어 드렸습니다. 과거에는 일상적이었던 일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박물관의 모습으로 바뀐 일이 많습니다. 동네 잔치를 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꽹과리도 치고 마을잔치도 해야 하는데 우리도 엄두를 못 내고 아이들이 노래로 대신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로 하나가 되고 아름다운 노랫말처럼 예쁜 꿈을 갖는 아이들이 되겠습니다. 어른들께서 살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5월 고구마 심고 봄 들꽃 관찰하기
4월에 심은 밭을 둘러보니 조금씩 싹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잘 자라라고 속삭이며 인사한 말을 알아들었을까, 제법 싹이 많이 올라와 있자 아이들은 감탄을 합니다. 고구마 순을 심고 야콘과 고추 모종을 심고 쑥갓, 당근, 오이를 심었습니다. 고구마 순은 심기가 까다롭습니다. 물이 많이 잠겨도 안 되고 물이 너무 없어도 안됩니다. 정확한 답이 있어 그대로 하면 좋으련만 넣었다 뺐다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용기를 얻어 고구마 순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밭에 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마른 잣나무 가지들을 덮어주었습니다. 앞치마에 마른 잎을 가득 담아 밭고랑에 뿌렸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알아주듯 땅 속 뿌리들이 힘차게 뻗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저녁에는 묵은 감자를 갈아 가루를 내어 감자떡을 만들었습니다. 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주물거리고 속을 넣어 꾹 누르니 감자떡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6월 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
감자밭에 올라가니 감자꽃이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꽃으로 영양분을 쏟지 말고 더 튼실한 감자가 되라고 꽃을 땄습니다. 한아름 따서 묶으니 꽃다발이 되고 목걸이가 됩니다. 굵은 줄기로 뻗어 가는 감자와 고구마를 보더니 아이들이 모두 흡족해 합니다. 길쭉해진 오이도 보고 브로콜리 잎도 솎아주고, 키 큰 해바라기가 더 잘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래쪽의 잎을 따주었습니다. 밭일을 끝내고 색연필을 갈아 도화지에 가루를 손으로 문질러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름의 빛깔을 풍성하게 담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봄에 피어날 때부터 5월까지 자라온 모습을 채집해 온 풀을 한지에 붙여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3월에 땅에 납작 붙은 모양으로 겨울을 나던 꽃다지는 이제 줄기를 곧게 세우고 노란 꽃을 피우더니 씨방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 달 넘게 말린 풀이 잘 말라 정성을 들여 만든 결과는 훌륭했습니다. 정성을 드린 만큼 잎이 잘 말랐고, 나의 정신이 들어가니 마른 꽃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간식시간에는 색깔이 있는 수제비를 만들었습니다. 녹차 가루를 넣고 당근을 간 물을 넣고 반죽을 해서 삼색 수제비를 만들었습니다. 두툼하기도 하고 모양이 다양해서 꼭 아이들의 얼굴 같았습니다. 다음날 개울가에서 이끼로 집을 짓고 돌맹이로 징검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횡성에서의 생활이 아주 익숙해졌고 제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봄·여름 학기동안 종일 들떠 있던 아이들이 비로소 좀 무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놀 때는 수건돌리기를 하며 열광적으로 놀고, 일을 할 때는 어른 못지 않게 일을 척척 잘하게 되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가 자라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가끔씩 토마토를 따 먹는 재미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한여름 강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휩쓸고 간 태풍 때문에 학교의 감자밭도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래 지속된 비로 감자 알이 작고 수확도 적었습니다. 여름학교에 온 아이들과 함께 감자를 캐보니 알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환경오염으로 꼽히는 비닐을 안 씌웠더니 풀이 너무 많이 자라 감자에 영양분이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힘들여 작업을 했는데 아쉬움도 남지만 오히려 비바람의 여름을 이긴 것만으로도 대견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환경오염도 막고 수확을 많이 할 수 있을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해야겠습니다.
9월 가을맞이
해를 받고 자라는 나무들처럼 한여름 뙤약볕에서 잘 놀던 아이들이 여름을 지내고 쑥 커서 왔습니다. 1년을 염두에 두고 봄 학기부터 온 아이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왔고, 가을 학기에 새로 온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봄에 심은 채소들은 여름 들살이와 여름학교 때 거둬들여 양식이 되었습니다. 밭에는 고구마와 야콘, 늙은 오이가 있고 아이들이 심지는 않았지만 김장을 위해 미리 심은 배추와 무가 있었습니다. 여름내 풀도 많이 자라있고 열무도 푸른 잎을 펼쳐내고 있었습니다. 튼실한 김장 무를 위해 제법 굵게 오른 무만 남겨두고 모두 솎아냈습니다. 아이들이 '열무에는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열무를 솎으면 따끔따끔한데 잎 가장자리가 거칩니다. 장갑을 끼고 다 뽑아 와서 마당에 펼쳐놓고 둘러앉아 다듬었습니다. 손도 따갑지만 열무김치를 해주신다는 말에 신이 나서 다듬었습니다. 엄마가 시키면 돌아보지도 않을 일을 한 잎도 버리기 아까워하며 열심히 다듬고 주워 담습니다. 여러 가족이 모여 김장 준비를 하듯 평온해 보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도 그 평온함이 오래 간직되었을 것입니다. 저녁 간식시간에는 추석을 앞두고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솔잎을 다듬고 송편 소를 준비하고 쌀가루 반죽을 하고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똑같은 모양이 싫어서 크게도 만들고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었는데, 송편을 쪄서 먹어 보고 나면 왜 어른들이 그렇게 작고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지 알게 되겠지요. 흥미도 있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온 식구가 먹을 만큼의 양을 하려면 계산이 달라지니까요.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만큼이나 요리시간은 아이들에게 기대이상의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다음날 산에 힘껏 올랐습니다. 낮은 산이지만 좀체 산에 안 다녀본 아이들이라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진 길은 힘이 들었습니다. 숨이 차지만 산에 올라 숨을 고르고 리코더를 불렀습니다. 새들의 소리인 리코더 소리에 새들이 와서 주위를 돌며 화답을 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10월 가을걷이
1년 동안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작물들의 수확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감자를 캐보고 생각보다 많이 생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고구마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았습니다. 야콘과 고추도 몇 이랑 씩 있어서 그동안 밭일을 해 온 것을 바탕으로 학년별로 일의 구분을 두어 분업을 했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야콘 뿌리를 뽑아주면 동생들이 야콘을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고구마 밭의 비닐도 고학년이 다 걷어주면 동생들이 모둠별로 앉아 고구마를 캤습니다. 무턱대고 모든 일을 다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 정도에 따라 이해가 되고 소화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1년이 다 되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 앞에서 잘못하다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벌리는 일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누어서 일을 하게 되니 일도 효율적으로 잘되고 성과가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한 후 먹는 간식은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녁 간식시간에는 늙은 호박을 자르고 씨를 바른 후 호박죽과 호박전을 해 먹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칼을 쓰는 요령, 음식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을 차츰 익히는 것을 보니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마무리를 못하고 일을 시작만 하고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늘 끝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늘 시작만 하는 아이, 안정되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는 아이, 자기가 이끌어야 만족하는 아이, 관심은 있는데 나서지는 않고 묵묵히 하는 아이……. 노작활동을 하면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하나 배워갑니다.
11월 김장하기
농촌 생활에 조금은 익숙해진 탓인지 이제 어둠도 정겹고 추위도 견딜만합니다. 화장실도 혼자 다녀오고 많이 씩씩해졌습니다. 겨울양식으로 김장을 했습니다. 여름에 심은 무는 아주 튼실하게 자랐는데 배추는 늦게 심으면서 모종을 심지 않고 씨를 뿌리는 바람에 속이 꽉 차지 않은 헐렁한 배추가 되었습니다. 진짜 농부인 회장님께 배추를 부탁드려 맛있는 배추를 구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배추를 뽑아놓고 들살이 일정은 좀 기다려야하고 그 사이에 배추가 좀 시들해져서 아이들은 배추를 다듬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선생님들이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파도 다듬고 갓도 자르고 재료를 준비하는데 순식간에 일을 끝냅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웬만한 일쯤은 이제 얼마든지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다음날 절인 배추에 속을 넣는데 고학년 아이들은 1년 활동을 마무리 하듯 열심히 했습니다.
절반의 결실, 또 다시 1년을 준비하며
횡성 살림학교에서 아이들은 쉴새 없이 움직입니다. 밭일을 하면서 땅을 파고 갈아주면서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수확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경험하게 되고 식물채집을 하면서 뿌리, 잎, 꽃으로 이루어진 식물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아름다운 작업을 해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적 교육에 대한 보완으로서 몸의 활동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며 자기 안에 내면세계를 키워나가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노작활동을 통해 삶에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직관력과 창의력을 꽃피워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인류를 만들어준 생산적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인류의 유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고 노동의 가치도 차츰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들살이를 다니면서 꿈이 농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1년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며 아이들은 지금의 자기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고 미래에 대한 폭 넓은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 친구가 꼭 농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되려고 했던 마음은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가짜 농부이면서 아이들을 어설프게 가르쳐 미안함 마음이 듭니다. 동네 어른들께 여쭈어보고 책도 찾아보기도 했는데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24절기의 해의 움직임을 따라 1년을 살았습니다. 농사를 중심에 놓고 요리와 채집 등의 노작활동을 했습니다. 온 몸을 깨우기 위해 산을 힘껏 걸어다녔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들 속에서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더할 나위 없이 맛보았습니다.
분명히 주의를 주었는데도 호미를 거꾸로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놀라서 쫓아다니고, 목장갑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다녀 쫓아다니면서 야단을 치고, 새끼줄을 꼰 볏단을 아무데나 버리고 가서 주워 담으면서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한 달에 한 번, 1년을 다 왔어도 여섯 일곱 차례 동안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을 하고 한 번도 생활해 보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하는 아이들에게 불편한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쉽게 풀어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도 않고 그저 일할 거리들만 던져 놓은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됩니다. 제법 덩치가 큰 고구마는 땅을 계속 파도 오히려 땅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땅에서 뽑혀지지 않습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자란 고구마가 세상 밖으로 나오듯 아이들도 제 몸과 영혼을 키워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고구마를 억지로 호미로 급하게 파내려면 고구마에 상처만 더할 뿐입니다. 온전히 흙을 털고 나오도록 살살 흙을 털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함께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횡성의 살림학교에서 아이들과 1년을 보내며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웃고 울게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쳐준 영원한 스승인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