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자연 감성 놀이 수업을 돌아보며
- 1년 과정의 노작 활동
이주영 | 글쓰기 교사
자연 감성 놀이. 이름도 낯선, 다가가기도 힘들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누가 물으면 아직도 뚜렷한 대답을 못 하지요. 묻는 이를 보며 어떻게 대답하면 좀 더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입으로 연신 '음~' 하면서 말입니다.
자연 감성 놀이는 노는 게 먼저인 수업입니다. 그런데 그냥 '놀이'라고 하면 아이들을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놀기만 하는 글쓰기 수업에 어머니들이 너그럽게 보내주실까요?
다행히 제가 맡은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라서, 매 주 엉뚱한 수업을 하는 교사를, 그리고 아이들을 믿어주셨습니다. 이 수업은 나의 둘레, 내가 사는 곳, 아스팔트, 보도블록……그런 회색 빛 세상 가운데서도 비집고 피어나는 들풀 정도는 아는 체 해주자고, 잘 못 놀아서 몸이 굳은 친구들도 밖에서 신나게 놀아 보자고, 또 그룹 안에서 또래들과 부대끼면서 관계를 배우자고 하는 수업입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여러 생각 많이 들었습니다. 잘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교재를 이해하거나 암기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아이들은 정말로 선생님의 의도를 따라와 주고 있는 건지, 실질적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판단하기도 어려운 일이지요.
노작 활동을 시작하던 때
지난 1년 동안의 수업 중에서 노작으로 이뤄진 활동을 돌아봅니다. 여럿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높은 학년의 친구들을 만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수업이 우선 학업과 맞물리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하고, 하려는 친구가 적어 모둠 구성이 되지 않아서였지요. 아무래도 취학 전이나 낮은 학년 친구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부모님들의 동의를 얻기도 쉬웠습니다. 1달에 4번 정도를 만났는데, 그 중 두세 번은 산에 올랐고 나머지 한 시간은 온전히 노작 활동으로 채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작이란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만들기'나 '공작'이라고 하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이고, '노작'이라고 하면 만들면서 애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산에 오르면서도 손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목련 꽃잎 뜯어 풍선 불고 조팝나무 화관 만들고, 뽀리뱅이 꺾어 빨대처럼 물을 마시고, 여름에는 길게 자란 풀들의 머리를 땋아 줍니다. 열매를 담아 소꿉놀이를 하다가 정말 열심히 쏘다닙니다. 자주 오른 배봉산이 건강하지 못해 때죽나무가 무척 많습니다. 산에서 모기를 물리면 때죽나무 열매즙을 문질러 가며 놉니다. 가을에는 그나마 여름엔 잎이며 꽃으로 구별되던 나무가 모든 것을 떨어내고 나면 서서히 눈에 익히지 않은 나무들이 헷갈리기도 하지요. 그래도 수종이 많지 않아 아이들과 사계절 동안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이 때는 산에 올랐다 내려와 주워온 도토리 열매로 구슬치기를 하기도 해요. 낙엽 썰매를 타겠다고 은박 장판을 타고 내려오다 다 찢어지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야 아이들 눈에 새가 들어옵니다. 새들도 제 몸 가리기 힘들어 소리가 아닌 나뭇가지에서 앉고 나는 모습을 들킵니다.
모두 세 모둠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7세, 8세, 9세 친구들이었고 1학기 때 16명, 2학기 때 14명의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1학기 때 부직포로 이름표를 만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자기 이름을 새기고 1학년 친구들은 가방에 스스로 만든 이름표를 달고 다녔습니다. 공책을 만들면서 바느질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 아니란 걸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선보인 것에 감탄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똑같이, 아니면 더 잘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보면 생각만큼 잘 안 되고 힘이 들어 짜증을 내지만, 그래도 참고하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경쟁심과 끈기가 있어서 다 만들어 가는 친구를 보며 억지로라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모두 칭찬을 해 줍니다.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 축하인 것이죠. 하나하나 다 다르게, 특징과 그동안의 수고를 떠올려 그 에 맞는 칭찬을 해 줍니다. 노작은 칭찬을 받고, 또 그 동안의 과정을 격려하는 수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는 다 만들고 나서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든지 아이가 만든 것을 소홀하게 대하면 다시는 그와 같은 노작을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느낀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필통을 만들다
부직포로 이름표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3개월에 걸쳐 필통을 만들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날은 바느질 수업을 하지 않고 '빛칠'을 하거나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옛이야기를 듣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산에서 가져온 것들을 표현하는 시간에는 짬짬이 바느질 수업도 같이 했습니다. 필통을 만들 때에는, 네모난 천을 어머님이 공그르기 해서 시접처리를 해 주면 3등분 정도 된 천을 덮고 가장자리를 박습니다. 양쪽을 박는데 감침질을 했지요. 시접 처리된 곳을 또 덮어서 박다보니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부러지기도 합니다. 2회, 3회에 걸쳐서야 가장자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부분 완성이 되고 나면 완성된 것을 보여 주고 '벌써 이만큼이나 했다' 북돋아주며 다음 것을 알려 주지요. 아직도 멀었다는 친구, 오늘 당장 만들어 쓸 줄 알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함을 알고 실망해서 풀이 죽습니다. 그러면 2회 정도 뜸을 들였다가 다음 필통 만들 준비를 합니다. 참 신기한 게 아이들은 특히 낮은 학년일수록, 자기 것을 잘 찾습니다. 딱히 이름을 쓰지 않아도 실 색깔, 바느질 해 놓은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꼬질꼬질 때가 묻어서 흰색 실로 감침질한 곳이 제 색 드러난 경우가 드문 필통, 2겹으로 하다 보니 실 한 가닥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해 땀이 늘어진 것, 들쑥날쑥해서 연필을 잘 꽂지 않으면 삐져나올 것 같은 필통……. 아이들이 만든 필통을 바라보니 아이 하나하나의 얼굴도 덩달아 따라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곧은 선을 따라 홈질을 했습니다. 두꺼운 시접의 감침질보다는 쉽지요. 곧은 선은 연필 넣을 만큼, 자를 넣을 만큼 간격을 띄워 가면서 오르고 내리는 바느질을 했지요. 홈질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 파도 물결 같은 그림을 따라 손으로 그려보고, 땀의 간격을 조정하도록 천에 금을 그어 가면서 시작했지요. 욕심 많은 친구들은 연필 꽂는 개수가 많아 그만큼 더 곧은 선을 박아야 했지만, 오히려 꾀를 부리느라 듬성듬성 넓게 땀을 뜨고 연필 꽂는 개수가 적은 친구들보다 바늘에도 덜 찔렸고 덜 더뎠습니다. 다 만들고 나서 정성이 들어간 친구와 꾀를 부린 친구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 보이기도 하지요.
바느질을 하는 모든 시간 동안 7세 친구들은 중간에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바느질이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이어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피곤함을 느꼈나 봅니다. 이럴 땐 굳이 깨우지 않고 기분 좋은 날 조금 더 시켰지요. 그런 과정은 발표회 날 전시된 자신의 필통을 보면서 느끼는 흐뭇함으로 드러납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어려워 보이는 일, 힘들고 귀찮은 일을 무조건 밀어내고 피하기보다는 점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겠죠? 알게 모르게 오랜 시간 걸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경험은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고 분명히 아이 안에 남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손놀림에서 작품으로
그 바탕으로 2학기에는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노작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 고무판을 새겨 '장서인'을 만들었는데, 선생님의 손길이 수시로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해보려 했고 선생님의 생각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드러냈습니다. 또 '빛칠 하기'의 이해를 돕도록 치자 염색을 했어요. 하얀 손수건을 홀치기로 묶고 깨끗한 물에 부벼 빨고, 백반 물과 염료에 담가 다시 백반 물에 헹군 후 염료에 넣고……. 이 과정을 네 번, 다섯 번 반복했지요. 붓에 묻히려는 노란빛이 천에 옮겨진 것을 보고 모두 감탄했지요.
그리고 손뜨개질 해오던 굵은 실은 필통 만들고 묶을 끈으로도 쓰게 했습니다. 그것을 소목에 담가 빨간 색 실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요. 발표회 날, 노란 손수건이 벽과 벽 사이를 이은 끈에 널려 있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신기한 세상에라도 온 듯 했고, 어른들은 동화 속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염색이란 것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처음 느껴 보았습니다. 방 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기도 했고 수시로 들락거리는 수고를 줄이려고 큰 고무통에 정련 시키는 물을 담아놨는데, 장난치다 밀린 7살 친구가 뒤로 넘어져 바지가 다 젓기도 했고요. 염색을 하던 주간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노작이란 것을 처음 만나던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인형을 만들고, 염색을 하고, 나무를 조각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1학기 때는 고작 "나, 여기 있어요"라는 표현밖에 하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친구들 말을 채 못 듣고 가로채며 '내가 먼저야'하듯 재잘대더니 2학기에는 "나는 나예요"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들을 줄도 알게 되었고 일상적인 자기 이야기도 편하게 풀어냈고요. 유치원에서, 또 학교에서 공부방으로 바로 오기 때문에 유치원과 학교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야 조금 지난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정을 섞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은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니까요. 특히 아홉 살 친구들은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 이야기 보다는 선생님의 생활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예로, 제가 이 친구들 보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기에 제가 겪은 일에 대해서 "너희들도 그랬니?" 하며 묻거나, "나도 너희들 만할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할 때, 한 달 동안은 같은 얘기를 또 해달라고 합니다.
처음엔 그냥 수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수다에 섞이고 싶은데 안 껴줘서 된서리를 맞을 때가 있지요. 그래도 귀동냥해 들었던 얘기가 있던 날은 옆집 사람들 얘기, 흉본 건넛집 아줌마 얘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홉 살이 꼭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날개 떼고 땅에 발을 붙일 즈음,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으며 땅에 온전히 발붙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앨범이라도 펼쳐 놓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어머님께 부탁드렸지요.
인형 만들기가 앞서도 나왔는데 굳이 그 노작을 선택한 것은 이렇게 조금씩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들이 더 쉽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매개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부직포를 재료 삼아 손가락 인형을 만들었지요. 본을 뜨고 앞 얼굴, 뒤 얼굴을 나타내면 틈을 조금 남겨 감치고, 그 안에 솜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끼우는 부분은 몸통이 됩니다. 7세 친구들은 동물 캐릭터로 손가락 인형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수업은 의미가 없는 듯도 하여, 8세 친구들은 인형에 내 바람을 담아 보자 했더니 손가락 인형을 만들고 '아빠 술 먹지마' 같은 경고성 이야기를 담기도 했습니다. 9세 친구들은 자기만이 잘 그리는 만화나 영화 주인공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걸 표현했지요.
그리고 나무 주사위를 만들었습니다. 이 수업은 2회에 걸쳐 했는데 놀잇감 만들기도 아니고 주사위 이야기로 풀만한 것도 없어서, 지나고 나니 주사위를 활용하여 놀 놀이판을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업이었지요. 산에 올라 나무를 모래 종이에 갈았는데 주사위를 보며 신기해했지만 산에 오르면 어디 그게 눈에 들어오나요? 좀 갈다 바위 타고, 나무에 오르고, 간식 먹고 싶다 하고……. 사무실 겸 쓰는 수업 공간이라 '급식 운동 본부' 모임이 있는 날은 있어 저희가 자리를 비켜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방과 후 교실'같은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리고 목장갑 인형을 만들었어요. 양말 인형이 밀려나서 선택되었습니다. 장갑 인형이 더 손이 많이 가지만 아이들 선택이니……. 인형 만들기 전에 인형에 흥미를 돋우느라 극을 하나 올렸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도 되고 또 다른 인물도 되지요. 엄마도 되고, 친구도 되고, 동생도 되고…주고받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그냥 제 손이 무안해지기도 하지요. 목장갑 인형은 중지에 머리 부분이 2지, 4지에 양손을 끼워 표현합니다. 인형과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거의 반강제적인 수업 시간이 지나 완성된 목장갑 인형. 돼지와 토끼 중 한 친구만 돼지를 택했고 토끼는 13마리나 탄생되었지요. 통통한 토끼, 얼굴이 작은 토끼, 눈이 몰려 있는 토끼. 모두 다른 토끼가 13마리, 돼지가 한 마리. 이 과정은 석 달 정도 걸렸는데 인형 만드는 시간으로 온전히 보낸 게 3회 정도 됩니다. 만들고 놀고 싶은데 아직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아 서툴러서 애먹기도 했어요. 집으로 가져와 땀이 엉성해 너덜너덜한 부분은 제가 손을 봤습니다. 다 만들고 나서 아이들에게 생활 얘기를 들려 주었어요. 재미있어 해서 아이들에게도 인형으로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하듯 표현해 보라고 하니 서로 미룹니다. 남자 친구들의 인형은 로봇도 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여자 친구들은 상황 설정을 잘 하고요. 어린 7세 친구들은, 특히 여자아이들은 아기 목소리를 내며 엄마를 찾기도 하고 친구를 부르기도 합니다.
인형을 만들면서 광목천을 잘라 밤물 염색도 했습니다. 산에 올라 밤송이 껍질을 주워 들솥에 삶아 분위기 있는 가을색을 만들었습니다. 밤물 염색한 천을 반을 접어 재봉질 했습니다. 그건 다른 어머니께 부탁 드렸지요. 염색 과정에만 아이들이 참여하고 그냥 염색한 네모난 천을 잘 말려 놓았습니다. 그러던 천이 봉지처럼 된 것을 보고 놀라는 아이들에게 염색한 것을 어머니께 부탁드려 이렇게 손가방이 만들어졌다고 했지요. 그런데 바느질 과정은 참여 안 해서 그런지 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 미안했어요. 어려워도 같이 할 것을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끈을 달고 가방에 땀을 놓고, 부직포로 별을 달기도 하여 자기 것이 되도록 했습니다. 가방에 끈도 달았지요. 귀한 가방이 탄생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만들었던 인형을 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밤물 염색 전 수업이 추석 즈음이어서 다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꿀을 퍼먹느라 손가락이며 혀로 꿀 그릇을 핥던 녀석들 얼굴이 떠오르네요. 2학기 땐 원래 도토리묵을 만들어 보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다식을 만들었어요. 다식 틀에, 빻은 검은깨와 흰 깨, 콩가루를 넣어 만들었어요. 애들 입맛에 맞는 다식은 제일 비싼 검은 깨였습니다.
아이들은 요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절기에 맞춰 무얼 만들어 먹는 것도 참 좋은 수업 같습니다. 장 같은 걸 담고, 아이들과 같이 농사도 지어 보고 싶습니다. 욕심을 내보는 거지요.
1년의 결실, 노작 발표회
1년의 노작 수업을 진행한 후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1학기 때 보다 손이 안 간 발표회장에 아이들이 들어서며 "에이~ 저번보다 예쁘지 않네."가 첫 반응이었습니다. 자기들이 한 것, 언니 오빠 동생이 한 것을 보며 이 말 저 말이 많습니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 "내가 한 거야."라며 엄마 손을 이끕니다. 뭘 가르치는 곳인지, 우리 애가 뭘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오셔서 "정말 네가 한 거야? 너무 잘 했다." 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1년을 돌아보는 자리가 이루어집니다. 그동안의 작품을 전시했고, 간단히 모둠별로 준비한 노래와 몸짓, 짧은 인형극이 있었습니다. 준비한 것을 보여 드리고 나니,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저와 우리 아이의 잠버릇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고 해서 여러 어머님 앞에서 보여 드렸지요. 아이들은 그런 이야길 더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동안의 소중한 이야기가 저마다 있습니다. 인형을 다 만들고 집에 가져갔다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어요. 쓰레기통에 버려진 인형을 우리가 인형 만드는 걸 봐 오신 분이 찾아 주셨습니다. 낯익은 천이 있어 꺼내 보다가 우리 아이 중 누군가 잃어버린 거구나 생각하시고 제게 가져다주었지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도 있는 흔한 인형이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소중한 인형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수업의 가치는 발표회 때 드러나지 않나 싶습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또 달라지겠지만,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가 이렇게 1주일이라도 한 번씩 만나 커 갔으면 하고 바라십니다. 이런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같은 거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그대로 오랜 친구가 되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방학 때 함께 놀러 가면서 마음으로도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년의 수업 과정 중 노작이란 큰 틀은 부담도 되지만 자유로웠습니다. 할 것은 많은데 저의 부족한 경험이 한계이기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또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많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이렇게 아이를 만나는 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가고 있는 건지 누군가 봐주고 동의도 하고 반감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격려해주고 비판도 해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참 간절했던 1년이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함께 할 분과 같이 가려 합니다. 공부하며 같이 배우는 그런 분 말입니다. 노작수업을 하려는 선생님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노작은 결과를 한 눈에 보려는 조급한 마음으로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또 끊임없는 칭찬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 진행하고 혼자 깨우치느라 많이 버거웠던 것 같아요. 많은 선생님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노작 은 특히 더욱, 함께 의논하고 피드백을 줄 좋은 동료가 필요한 수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1년 과정의 노작 활동
이주영 | 글쓰기 교사
자연 감성 놀이. 이름도 낯선, 다가가기도 힘들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누가 물으면 아직도 뚜렷한 대답을 못 하지요. 묻는 이를 보며 어떻게 대답하면 좀 더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입으로 연신 '음~' 하면서 말입니다.
자연 감성 놀이는 노는 게 먼저인 수업입니다. 그런데 그냥 '놀이'라고 하면 아이들을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놀기만 하는 글쓰기 수업에 어머니들이 너그럽게 보내주실까요?
다행히 제가 맡은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라서, 매 주 엉뚱한 수업을 하는 교사를, 그리고 아이들을 믿어주셨습니다. 이 수업은 나의 둘레, 내가 사는 곳, 아스팔트, 보도블록……그런 회색 빛 세상 가운데서도 비집고 피어나는 들풀 정도는 아는 체 해주자고, 잘 못 놀아서 몸이 굳은 친구들도 밖에서 신나게 놀아 보자고, 또 그룹 안에서 또래들과 부대끼면서 관계를 배우자고 하는 수업입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여러 생각 많이 들었습니다. 잘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교재를 이해하거나 암기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아이들은 정말로 선생님의 의도를 따라와 주고 있는 건지, 실질적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판단하기도 어려운 일이지요.
노작 활동을 시작하던 때
지난 1년 동안의 수업 중에서 노작으로 이뤄진 활동을 돌아봅니다. 여럿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높은 학년의 친구들을 만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수업이 우선 학업과 맞물리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하고, 하려는 친구가 적어 모둠 구성이 되지 않아서였지요. 아무래도 취학 전이나 낮은 학년 친구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부모님들의 동의를 얻기도 쉬웠습니다. 1달에 4번 정도를 만났는데, 그 중 두세 번은 산에 올랐고 나머지 한 시간은 온전히 노작 활동으로 채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작이란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만들기'나 '공작'이라고 하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이고, '노작'이라고 하면 만들면서 애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산에 오르면서도 손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목련 꽃잎 뜯어 풍선 불고 조팝나무 화관 만들고, 뽀리뱅이 꺾어 빨대처럼 물을 마시고, 여름에는 길게 자란 풀들의 머리를 땋아 줍니다. 열매를 담아 소꿉놀이를 하다가 정말 열심히 쏘다닙니다. 자주 오른 배봉산이 건강하지 못해 때죽나무가 무척 많습니다. 산에서 모기를 물리면 때죽나무 열매즙을 문질러 가며 놉니다. 가을에는 그나마 여름엔 잎이며 꽃으로 구별되던 나무가 모든 것을 떨어내고 나면 서서히 눈에 익히지 않은 나무들이 헷갈리기도 하지요. 그래도 수종이 많지 않아 아이들과 사계절 동안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이 때는 산에 올랐다 내려와 주워온 도토리 열매로 구슬치기를 하기도 해요. 낙엽 썰매를 타겠다고 은박 장판을 타고 내려오다 다 찢어지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야 아이들 눈에 새가 들어옵니다. 새들도 제 몸 가리기 힘들어 소리가 아닌 나뭇가지에서 앉고 나는 모습을 들킵니다.
모두 세 모둠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7세, 8세, 9세 친구들이었고 1학기 때 16명, 2학기 때 14명의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1학기 때 부직포로 이름표를 만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자기 이름을 새기고 1학년 친구들은 가방에 스스로 만든 이름표를 달고 다녔습니다. 공책을 만들면서 바느질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 아니란 걸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선보인 것에 감탄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똑같이, 아니면 더 잘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보면 생각만큼 잘 안 되고 힘이 들어 짜증을 내지만, 그래도 참고하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경쟁심과 끈기가 있어서 다 만들어 가는 친구를 보며 억지로라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모두 칭찬을 해 줍니다.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 축하인 것이죠. 하나하나 다 다르게, 특징과 그동안의 수고를 떠올려 그 에 맞는 칭찬을 해 줍니다. 노작은 칭찬을 받고, 또 그 동안의 과정을 격려하는 수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는 다 만들고 나서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든지 아이가 만든 것을 소홀하게 대하면 다시는 그와 같은 노작을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느낀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필통을 만들다
부직포로 이름표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3개월에 걸쳐 필통을 만들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날은 바느질 수업을 하지 않고 '빛칠'을 하거나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옛이야기를 듣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산에서 가져온 것들을 표현하는 시간에는 짬짬이 바느질 수업도 같이 했습니다. 필통을 만들 때에는, 네모난 천을 어머님이 공그르기 해서 시접처리를 해 주면 3등분 정도 된 천을 덮고 가장자리를 박습니다. 양쪽을 박는데 감침질을 했지요. 시접 처리된 곳을 또 덮어서 박다보니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부러지기도 합니다. 2회, 3회에 걸쳐서야 가장자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부분 완성이 되고 나면 완성된 것을 보여 주고 '벌써 이만큼이나 했다' 북돋아주며 다음 것을 알려 주지요. 아직도 멀었다는 친구, 오늘 당장 만들어 쓸 줄 알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함을 알고 실망해서 풀이 죽습니다. 그러면 2회 정도 뜸을 들였다가 다음 필통 만들 준비를 합니다. 참 신기한 게 아이들은 특히 낮은 학년일수록, 자기 것을 잘 찾습니다. 딱히 이름을 쓰지 않아도 실 색깔, 바느질 해 놓은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꼬질꼬질 때가 묻어서 흰색 실로 감침질한 곳이 제 색 드러난 경우가 드문 필통, 2겹으로 하다 보니 실 한 가닥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해 땀이 늘어진 것, 들쑥날쑥해서 연필을 잘 꽂지 않으면 삐져나올 것 같은 필통……. 아이들이 만든 필통을 바라보니 아이 하나하나의 얼굴도 덩달아 따라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곧은 선을 따라 홈질을 했습니다. 두꺼운 시접의 감침질보다는 쉽지요. 곧은 선은 연필 넣을 만큼, 자를 넣을 만큼 간격을 띄워 가면서 오르고 내리는 바느질을 했지요. 홈질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 파도 물결 같은 그림을 따라 손으로 그려보고, 땀의 간격을 조정하도록 천에 금을 그어 가면서 시작했지요. 욕심 많은 친구들은 연필 꽂는 개수가 많아 그만큼 더 곧은 선을 박아야 했지만, 오히려 꾀를 부리느라 듬성듬성 넓게 땀을 뜨고 연필 꽂는 개수가 적은 친구들보다 바늘에도 덜 찔렸고 덜 더뎠습니다. 다 만들고 나서 정성이 들어간 친구와 꾀를 부린 친구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 보이기도 하지요.
바느질을 하는 모든 시간 동안 7세 친구들은 중간에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바느질이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이어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피곤함을 느꼈나 봅니다. 이럴 땐 굳이 깨우지 않고 기분 좋은 날 조금 더 시켰지요. 그런 과정은 발표회 날 전시된 자신의 필통을 보면서 느끼는 흐뭇함으로 드러납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어려워 보이는 일, 힘들고 귀찮은 일을 무조건 밀어내고 피하기보다는 점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겠죠? 알게 모르게 오랜 시간 걸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경험은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고 분명히 아이 안에 남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손놀림에서 작품으로
그 바탕으로 2학기에는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노작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 고무판을 새겨 '장서인'을 만들었는데, 선생님의 손길이 수시로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해보려 했고 선생님의 생각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드러냈습니다. 또 '빛칠 하기'의 이해를 돕도록 치자 염색을 했어요. 하얀 손수건을 홀치기로 묶고 깨끗한 물에 부벼 빨고, 백반 물과 염료에 담가 다시 백반 물에 헹군 후 염료에 넣고……. 이 과정을 네 번, 다섯 번 반복했지요. 붓에 묻히려는 노란빛이 천에 옮겨진 것을 보고 모두 감탄했지요.
그리고 손뜨개질 해오던 굵은 실은 필통 만들고 묶을 끈으로도 쓰게 했습니다. 그것을 소목에 담가 빨간 색 실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요. 발표회 날, 노란 손수건이 벽과 벽 사이를 이은 끈에 널려 있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신기한 세상에라도 온 듯 했고, 어른들은 동화 속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염색이란 것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처음 느껴 보았습니다. 방 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기도 했고 수시로 들락거리는 수고를 줄이려고 큰 고무통에 정련 시키는 물을 담아놨는데, 장난치다 밀린 7살 친구가 뒤로 넘어져 바지가 다 젓기도 했고요. 염색을 하던 주간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노작이란 것을 처음 만나던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인형을 만들고, 염색을 하고, 나무를 조각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1학기 때는 고작 "나, 여기 있어요"라는 표현밖에 하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친구들 말을 채 못 듣고 가로채며 '내가 먼저야'하듯 재잘대더니 2학기에는 "나는 나예요"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들을 줄도 알게 되었고 일상적인 자기 이야기도 편하게 풀어냈고요. 유치원에서, 또 학교에서 공부방으로 바로 오기 때문에 유치원과 학교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야 조금 지난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정을 섞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은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니까요. 특히 아홉 살 친구들은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 이야기 보다는 선생님의 생활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예로, 제가 이 친구들 보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기에 제가 겪은 일에 대해서 "너희들도 그랬니?" 하며 묻거나, "나도 너희들 만할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할 때, 한 달 동안은 같은 얘기를 또 해달라고 합니다.
처음엔 그냥 수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수다에 섞이고 싶은데 안 껴줘서 된서리를 맞을 때가 있지요. 그래도 귀동냥해 들었던 얘기가 있던 날은 옆집 사람들 얘기, 흉본 건넛집 아줌마 얘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홉 살이 꼭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날개 떼고 땅에 발을 붙일 즈음,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으며 땅에 온전히 발붙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앨범이라도 펼쳐 놓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어머님께 부탁드렸지요.
인형 만들기가 앞서도 나왔는데 굳이 그 노작을 선택한 것은 이렇게 조금씩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들이 더 쉽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매개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부직포를 재료 삼아 손가락 인형을 만들었지요. 본을 뜨고 앞 얼굴, 뒤 얼굴을 나타내면 틈을 조금 남겨 감치고, 그 안에 솜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끼우는 부분은 몸통이 됩니다. 7세 친구들은 동물 캐릭터로 손가락 인형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수업은 의미가 없는 듯도 하여, 8세 친구들은 인형에 내 바람을 담아 보자 했더니 손가락 인형을 만들고 '아빠 술 먹지마' 같은 경고성 이야기를 담기도 했습니다. 9세 친구들은 자기만이 잘 그리는 만화나 영화 주인공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걸 표현했지요.
그리고 나무 주사위를 만들었습니다. 이 수업은 2회에 걸쳐 했는데 놀잇감 만들기도 아니고 주사위 이야기로 풀만한 것도 없어서, 지나고 나니 주사위를 활용하여 놀 놀이판을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업이었지요. 산에 올라 나무를 모래 종이에 갈았는데 주사위를 보며 신기해했지만 산에 오르면 어디 그게 눈에 들어오나요? 좀 갈다 바위 타고, 나무에 오르고, 간식 먹고 싶다 하고……. 사무실 겸 쓰는 수업 공간이라 '급식 운동 본부' 모임이 있는 날은 있어 저희가 자리를 비켜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방과 후 교실'같은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리고 목장갑 인형을 만들었어요. 양말 인형이 밀려나서 선택되었습니다. 장갑 인형이 더 손이 많이 가지만 아이들 선택이니……. 인형 만들기 전에 인형에 흥미를 돋우느라 극을 하나 올렸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도 되고 또 다른 인물도 되지요. 엄마도 되고, 친구도 되고, 동생도 되고…주고받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그냥 제 손이 무안해지기도 하지요. 목장갑 인형은 중지에 머리 부분이 2지, 4지에 양손을 끼워 표현합니다. 인형과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거의 반강제적인 수업 시간이 지나 완성된 목장갑 인형. 돼지와 토끼 중 한 친구만 돼지를 택했고 토끼는 13마리나 탄생되었지요. 통통한 토끼, 얼굴이 작은 토끼, 눈이 몰려 있는 토끼. 모두 다른 토끼가 13마리, 돼지가 한 마리. 이 과정은 석 달 정도 걸렸는데 인형 만드는 시간으로 온전히 보낸 게 3회 정도 됩니다. 만들고 놀고 싶은데 아직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아 서툴러서 애먹기도 했어요. 집으로 가져와 땀이 엉성해 너덜너덜한 부분은 제가 손을 봤습니다. 다 만들고 나서 아이들에게 생활 얘기를 들려 주었어요. 재미있어 해서 아이들에게도 인형으로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하듯 표현해 보라고 하니 서로 미룹니다. 남자 친구들의 인형은 로봇도 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여자 친구들은 상황 설정을 잘 하고요. 어린 7세 친구들은, 특히 여자아이들은 아기 목소리를 내며 엄마를 찾기도 하고 친구를 부르기도 합니다.
인형을 만들면서 광목천을 잘라 밤물 염색도 했습니다. 산에 올라 밤송이 껍질을 주워 들솥에 삶아 분위기 있는 가을색을 만들었습니다. 밤물 염색한 천을 반을 접어 재봉질 했습니다. 그건 다른 어머니께 부탁 드렸지요. 염색 과정에만 아이들이 참여하고 그냥 염색한 네모난 천을 잘 말려 놓았습니다. 그러던 천이 봉지처럼 된 것을 보고 놀라는 아이들에게 염색한 것을 어머니께 부탁드려 이렇게 손가방이 만들어졌다고 했지요. 그런데 바느질 과정은 참여 안 해서 그런지 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 미안했어요. 어려워도 같이 할 것을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끈을 달고 가방에 땀을 놓고, 부직포로 별을 달기도 하여 자기 것이 되도록 했습니다. 가방에 끈도 달았지요. 귀한 가방이 탄생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만들었던 인형을 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밤물 염색 전 수업이 추석 즈음이어서 다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꿀을 퍼먹느라 손가락이며 혀로 꿀 그릇을 핥던 녀석들 얼굴이 떠오르네요. 2학기 땐 원래 도토리묵을 만들어 보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다식을 만들었어요. 다식 틀에, 빻은 검은깨와 흰 깨, 콩가루를 넣어 만들었어요. 애들 입맛에 맞는 다식은 제일 비싼 검은 깨였습니다.
아이들은 요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절기에 맞춰 무얼 만들어 먹는 것도 참 좋은 수업 같습니다. 장 같은 걸 담고, 아이들과 같이 농사도 지어 보고 싶습니다. 욕심을 내보는 거지요.
1년의 결실, 노작 발표회
1년의 노작 수업을 진행한 후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1학기 때 보다 손이 안 간 발표회장에 아이들이 들어서며 "에이~ 저번보다 예쁘지 않네."가 첫 반응이었습니다. 자기들이 한 것, 언니 오빠 동생이 한 것을 보며 이 말 저 말이 많습니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 "내가 한 거야."라며 엄마 손을 이끕니다. 뭘 가르치는 곳인지, 우리 애가 뭘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오셔서 "정말 네가 한 거야? 너무 잘 했다." 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1년을 돌아보는 자리가 이루어집니다. 그동안의 작품을 전시했고, 간단히 모둠별로 준비한 노래와 몸짓, 짧은 인형극이 있었습니다. 준비한 것을 보여 드리고 나니,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저와 우리 아이의 잠버릇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고 해서 여러 어머님 앞에서 보여 드렸지요. 아이들은 그런 이야길 더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동안의 소중한 이야기가 저마다 있습니다. 인형을 다 만들고 집에 가져갔다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어요. 쓰레기통에 버려진 인형을 우리가 인형 만드는 걸 봐 오신 분이 찾아 주셨습니다. 낯익은 천이 있어 꺼내 보다가 우리 아이 중 누군가 잃어버린 거구나 생각하시고 제게 가져다주었지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도 있는 흔한 인형이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소중한 인형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수업의 가치는 발표회 때 드러나지 않나 싶습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또 달라지겠지만,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가 이렇게 1주일이라도 한 번씩 만나 커 갔으면 하고 바라십니다. 이런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같은 거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그대로 오랜 친구가 되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방학 때 함께 놀러 가면서 마음으로도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년의 수업 과정 중 노작이란 큰 틀은 부담도 되지만 자유로웠습니다. 할 것은 많은데 저의 부족한 경험이 한계이기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또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많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이렇게 아이를 만나는 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가고 있는 건지 누군가 봐주고 동의도 하고 반감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격려해주고 비판도 해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참 간절했던 1년이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함께 할 분과 같이 가려 합니다. 공부하며 같이 배우는 그런 분 말입니다. 노작수업을 하려는 선생님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노작은 결과를 한 눈에 보려는 조급한 마음으로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또 끊임없는 칭찬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 진행하고 혼자 깨우치느라 많이 버거웠던 것 같아요. 많은 선생님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노작 은 특히 더욱, 함께 의논하고 피드백을 줄 좋은 동료가 필요한 수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