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08년 정시

1. 출제의도

지난 4년간 서울대학교 정시 논술문제의 경향은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했다. 제시문 내용 점점 더 실용적이 되고, 여러 개의 짧은 글들로 쪼개지는 흐름을 보였다. 깊이 있는 독해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거 문제 유형과 달리, 질문 또한 자료 편집 능력과 상황 타개를 위한 의사결정능력을 측정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학교 측이 밝힌 것처럼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더 쉬운 지문 가령, 교과서 등을 인용한 데에도 있겠지만, ‘학구적 인간형’ 보다는 ‘정책적 인간형’을 더 요구하는 사회의 시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문항1>에서 제시문들이 하고 있는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지문들이 논증의 근거자료라기보다는 단순한 참고자료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대학교로서는 획기적인 일로 보인다. 게다가 문제를 풀기 위해 정작 분석해야할 대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두 장의 족보이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고전적 사상가의 글을 재독해하고 그 지적 전통을 잇는 것을 중요시 했던 과거의 학문 방향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학생들은 그 자체로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마치 어느 날 발견된) 무생물 같은 자료에 해석을 가함으로써 생명(의미)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점은 얼핏 쉬워 보이는 문제의 겉보기와는 달리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더 어려운 측면일 수도 있다. 유교 사회에서 가부장주의 극복 같은 동시대의 문제의식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종합하는 발견자의 태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주어진 자료는 벙어리 자료로 그칠 뿐, 질문이 의도하는 의미로 재구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항2>는 하나의 가치 기준을 주고 이를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는 응용능력을 묻는다.  <문항1>이 ‘사실 자료’로부터 원칙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을 묻는 귀납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면 <문항2>는 주어진 개념 원칙을 복잡한 사실 현상에 가져가서 치밀하게 유권 해석하는 연역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연역적 구성은 헌법으로부터 법률이 나오고 법률로부터 다시 정책이 나오는 사회 정치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제도의 위계는 <문항2>의 구성방식과 맞닿아 있다. 학생들은 다수결에 관한 일반적 원칙이 다양한 상황과의 마찰, 마모를 거쳐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야 하고 마지막에는 도시 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문항3>은 서울대학교에선 고려대나 이화여대 같은 유형의 수리 논술이 나오지 않는다는 통념을 깬 문제이다. 주제 자체는 그 다지 신선하지 않다. 소득과 행복지수의 관계라든가, 산술평균의 허구성 문제는 다른 대학에서도 많이 다루어져왔다. 요점은 학생들이 생소한 수학 문장을 마주쳤을 때 인문사회학적인 질문과 그 수식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사회에 나가면 인문계 출신자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자주 부딪칠 것 같다. 뭔가를 계산하거나 공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결해야할 사회과학 상황을 해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수학자들이 만든) 공식을 찾아내어 그 용도를 이해하고 알맞게 가져다 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 [문항1]
  1) 제시문 분석
(가) 제시문은 우리나라의 전통윤리가 가부장 중심임을 설명한다. 핵심단어가 ‘부계혈통’,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남녀를 차별하는 남성 위주의 사회’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 제시문은 동성동본금혼규정이 불합리한 이유를 헌법정신을 기준삼아 열거한다. 그 근거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와 평등 이념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혼인의 제한을 남계혈족에 한정하는 것은 남녀 차별이다. (다) 제시문은 청소년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차별 없는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하도록 권유하는 글이다. 그 밖에 두 장의 족보 <도표1>과 <도표2>가 제시되어 있다. 하나는 부계와 모계 조상의 이름을 모두 표기한 가상의 족보이며 나머지는 부계 중심의  전통적인 족보이다.

2) 논제 1 해제
논제1은 <도표1>과 <도표2>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서술하라는 것이다. 논제 1의 하위 두 문항은 그 “차이의 의미”를 다시 둘로 나누어서 보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첫째 문항은 두 족보에 등장하는 구성원의 수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둘째 문항은 족보 작성의 목적에서 드러나는 차이의 의미를 밝히라는 것이다.
먼저 구성원 수의 관점에서 두 도표를 비교해 보자. <도표1>에 등장하는 인물이 31명에 이른다면 <도표2>는 겨우 5명으로 두 도표의 인원수는 무려 26명이나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제시문 (가)의 핵심단어를 생각한다면 앞의 족보는 모계혈통과 부계혈통을 동등하게 기록하고 있고 뒤의 족보는 오직 부계혈통만을 기록했기 때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모계와 부계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룬다면 나를 낳아주신 부모는 두 명이고 조부모는 이의 제곱, 증조부모는 이의 세제곱, 고조부모는 이의 네제곱이 된다. 나를 포함하여 이 수 모두를 등비급수를 이용해 더 한다면 = 31명이 나온다. 그러나 <도표2>의 족보처럼 아버지 계열만 나의 조상으로 규정한다면 14세에서 18세에 이르는 족보에서 등장인물은 바로 그 ‘세의 회수’인 5명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다면 숫자의 차이가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① 차이 ‘26명’은 한 사람을 낳고 기른 조상의 숫자의 차이를 가리킨다. 도표2의 굵은 글자에 따르면 외가 쪽 조상은 조상 그룹에서  배제되어 있다. 반면 도표 1의 족보는 도표 2의 족보에서 배제된 어머니 쪽 조상들을 기록함으로서 도표 1에서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② 족보는 가족의 기억이다. 기억에서 모계혈통이 제거됨으로서 후손들은 모계 혈통의 조상을 잊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후손들은 어머니 쪽 조상들을 자신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조상을 추모하거나 존경하는 문화 또한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손을 기르는데 기울였을 어머니 쪽 조상들의 기여도와 혈통 같은 진실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 족보의 특징을 ‘작성 목적’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사실 도표 1은 사람 이름 이외의 다른 정보는 없는 반면, 도표 2에는 족보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들이 적혀있다.  
① 도표 2는 여성을 남성의 가계 안으로 흡수시켜 표기한다.  부계와 모계가 동등한 위상으로 표기되어 있는 도표 1과 다른 점이다.
② 도표 2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정보로서 생몰연도(태어나고 죽은 해), 묘 위치 등이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부계 혈통과 달리, 모계 혈통은 일부 구성원만 표기되어 있다. 결국 모계 혈통에 대해서는 일부만 조상으로 모실 수 있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③ 부계 혈통에 대해서는 관직까지 알 수 있지만, 모계 혈통은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얼마나 힘 있는 집안의 자손인지 알려면 부계 혈통만 확인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도표 2의 족보가 작성된 목적은 이렇게 세 가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대표성,  부계 조상을 모시기 위한 제사의 정보, 그리고 남성의 관직으로 표기된 그 가문의 위세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도표 1 족보의 목적은 한 개인이 탄생하기까지 관련된 모든 조상을 아버지 계열과 어머니 계열의 구별 없이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목적의 차이가 주는 의미는 이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표2에는 가부장주의를 정당화하고 부계 혈통을 진정한 가문의 계승으로 보는 남성주의의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공평무사한 기록을 목적으로 한 도표1과 비교할 때 도표 2에 깔린 가치관은 비합리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논제 2 해제

제시문 (나)는 동성동본끼리의 결혼 금지가 잘못된 근거를 권리의 측면 즉, 헌법의 자유 평등 이념과 남녀평등 이념에서 찾고 있다. 논제 2는 이러한 근거 이외에도 혈통계승의 측면에서 두 표를 비교하여 동성동본금혼 규정이 불합리함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은 헌법에서 이미 남녀 차별 요소(남계혈족에만 한정되었다는 의미)를 언급했는데 두 도표에서 무얼 추가로 찾아야 하는지 당황해 할 수 있다. 물론 두 도표를 비교하면 도표1에 ‘남녀 차별’이 깔려 있음을 우리는 당연히 해석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인 것이고 ‘해석’이전에 헌법이 지적하지 않은 ‘사실’의 요소가 추가로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
동성동본끼리 결혼을 금지하는 이유를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그것은 생물학적인 근친혼의 문제에 도달할 것이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남녀가 아이를 낳으면 그 자손들은 생물학적으로 퇴화하고 기형아가 생길 수도 있다. 동성동본 결혼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바로 이러한 생물학적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실질적 이유에 기원한다. 따라서 건강하고 새로운 자손이 생기려면 혈통이 먼 남녀, 서로 유사하지 않은 유전자를 보유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동성동본은 부계의 ‘성’과 부계의 ‘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의 혈통은 부계와 모계 모두로부터 계승되는 것인데, 이렇게 부계 혈통만을 기준으로 동성동본 결혼 금지를 하게 되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예컨대 동성동본인 두 남녀는 어머니 쪽 혈통으로 볼 때는 거의 인척 관계가 없을 수 있는 반면, 동성동본이 아닌 두 남녀는 어머니 쪽 혈통으로 볼 때는 매우 가까운 인척 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동성동본 금혼의 취지가 건강한 자손을 보기 위한 생물학적, 도덕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 자녀의 성과 본이 지어지는 한, 그러한 금혼 규정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되고 만다.
혈통계승의 측면에서 동성동본 금혼을 비판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정신으로 비판하는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논점이다. 남자의 우월함을 보장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근친혼을 막을 수 없다는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그것은 비과학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러한 비합리성을 눈감고 용인하게 한 상황은 역시 남성주의와 가부장적인 관습이지만 말이다.

4) 논제 3 해제
  
논제 1과 2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문 (다)를 읽고 바람직한 성(姓) 표시 방법을 서술하라는 논제이다. 여기서 학생들은 성 표시에 관한 정책을 모의 입안하되, 남녀평등과 조화를 강조하는 헌법정신, 도표 1이 보여주는 혈통 계승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 그리고 전통윤리를 민주적으로 재창조해야할 신세대의 의무 등을 감안해야 한다.
혈통의 계승이 아버지와 어머니 쪽 반반에서 기원함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맨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모두 이름에 넣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씨이고 어머니가 김씨면 자식의 성은 ‘이김’ 혹은 ‘김이’라고 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부부의 합의라든가, 주어진 여건에 따라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 가운데 한 가지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성을 표시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를 거듭하다 보면 후손들의 성이 뒤죽박죽되지 않을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그 해결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① 부모의 성 모두를 표기한 ‘이김씨’와 ‘최박씨’가 결혼을 하면 이들 자녀의 성은 어떻게 표시해야할까? 성을 네 글자 이상으로 표현하면 부르기가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 경우 또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부모의 성 가운데 하나씩을 선택하여 자녀에게 두 가지가 조합된 성을 붙여주는 방안과 (만약 성을 한글자로 표기하기를 원한다면) 네 개의 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성을 표시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② 이때 형제들 사이의 성은 같게 하여 가족의 유대감을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③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 세대의 성 사이에 공통부분이 전혀 없을 수도 있고 이는 특히 기성세대로부터 저항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도표1이 말하는 혈통 계승의 측면을 참조한다면 손자, 손녀의 혈통은 네 명의 조부모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만약 손자의 성이 어머니의 아버지(외할아버지) 성과 아버지의 어머니(할머니) 성을 조합하여 만들어졌을 경우, ‘친할아버지’의 성을 이어 받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친할아버지의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가부장사회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자.
  


3. [문항2]

  1) 제시문 분석
제시문은 크게 (가), (나), (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가)에는 의사결정의 원칙이 (나), (다)에는 이 원칙을 적용하여 해결하여야 할 사례들이 열거 되어 있다. 여기서는 (가) 제시문만 분석하고 나머지는 아래의 논제 분석에서 하기로 하자.
(가)는 또 다시 (ㄱ), (ㄴ), (ㄷ)의 하위 문항으로 나뉜다. (ㄱ)은 다수결 원칙을 교과서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문구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곱씹어 보아야 하는 지문이다. (ㄱ)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뽑을 수 있다.

① 다수결의 전제로서 토론과 설득 과정이 있어야 한다. 대화를 통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다수에 의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②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결의 원리로 결정하기로 합의했을 때에만 성립한다. 이 말은 동어반복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수의 의사를 전체의 의사로 간주하기로 합의하지 않는다면 소수의 의사를 가진 자들은 결정된 사항을 (전체가 아니라) 다수자의 의사로 여전히 간주할 것이다. 절차가 합의되지 않았을 때 다수결의 절차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③ 소수자의 의견이 올바름에도 수적 소수라는 이유로 배척받을 수가 있다. 비록 지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있은 후에도 배척된 소수의 의사를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④ 다수결로 결정된 내용이 정의롭고 보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 말은 아무리 절차에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이 사익을 대변한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 결정은 무효라고 해석할 수 있다.

(ㄴ)은 백제에서 재상을 뽑는 방식과 신라에서 나랏일을 협의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백제에서는 바위 위에 후보자 서너명의 이름을 넣고 봉한 상자를 놓아두면 얼마 후에 이름 위에 표시가 되어 있고 이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에 담긴 행간의 뜻은 무엇일까? 이것은 초자연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투표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었다는 얘기이다. 신라의 만장일치제도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견해에 도달할 때까지 토론과 설득이 있었음을 전하는 대목이다. 다수결에 의한 의사 결정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의견이 쉽사리 합치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도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의 취지는 대화와 토론이 신라에서 매우 중요한 절차였다는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대화와 다수결의 원칙은 일찍이 한반도 고대국가들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ㄷ)은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사례가 조선시대 왕의 명령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한다. 비록 다수자의 의견에 의한 ‘결정’은 아니지만, 왕은 중대한 사안을 결정을 하기에 앞서 대중의 여론을 ‘수렴’했다.


2) 논제 1 해제
위에서 열거한 (가)의 원칙을 (나)의 네 가지 사례에 적용하여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설명하라는 논제이다.
(나)의 사례 (1)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네 명의 상황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냉면을 주문하고 싶었으나, 나머지 세 사람의 요구에 따라 모두 비빔밥으로 주문한다. 얼핏 보아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된듯 하면서도 뭔가 불합리해 보인다. 앞에서 의사결정의 대상은 공동체 전체에 대하여 정의롭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ㄱ)의 ④)고 했다. 그런데 보편성이란 모두에게 적용되는 성질인 반면 먹고 싶은 음식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특수성의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 문제는 공동체를 해치거나 이롭게 하는 정의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볼 수 없다.
사례 (2)는 정의롭지 못한 내용으로 다수결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다수자들이 다른 사람의 딸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례 (3)에선 고양이의 목에 방울 다는 문제를 높고 두 마을이 회의하는 상황을 다룬다. 토론이 있었고 의견이 나뉘었으며 다수결의 결정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소수자에 해당하는 乙마을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의사결정의 절차에 반대하였다는 사실이다. (ㄱ)의 ②에 적었듯이 절차에 관한 합의가 없다면 그 절차에 따른 결정은 아무런 효과도 의미도 없다.
사례 (4)는 현실 정치에서 자주 보는 이른바 ‘날치기’ 국회통과를 예로 들었다. 국회는 다수결이라는 절차 형식에 합의한 집단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없었다. 반면에 (ㄱ)의 ①과, 신라의 만장일치, 조선의 ‘구언교’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두 번째로 아무리 다수결 원칙에 대한 합의가 전제된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 절차를 이행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 본회의 개의 일시를 다수 정당은 소수 정당 의원들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이는 표결에 이른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았음을 뜻한다.
네 가지 사례는 두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1)과 (2)가 ‘의제’에 문제 있는 사례라면 (3)과 (4)는 ‘절차’에 문제가 있는 사례이다. 개인적이거나 정의롭지 못한 의제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다. 토론이 전제되지 않고, 절차가 합의되지 않으며,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은 다수결 또한 절차상의 결함을 갖는다.
사례 별 해결 방안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음식의 주문 같은 취향의 문제는 개인의 독립적 결정에 맡겨야 한다. (2)  ‘그리스 최고의 보물’은 재화나 예술품, 혹은 정신적 덕목을 상징하는 동물 등 인명 이외의 것들 가운데서 선택하는 것이 정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3) 두 고양이 마을 사이에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방식을 모색해야한다. 제비뽑기를 한다거나, 자원자와 그 가족에게 커다란 보상을 주는 방법 등을 생각할 수 있다. (4) 다수당과 소수당은 충분히 논쟁의 시간을 거치고, 필요에 따라 공청회 등의 방식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래도 타협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본회의 개의 일시를 모든 국회의원에게 알리고 법안 의결에 임해야 한다. 또한 소수당은 의사당을 점거하는 등의 물리적 방해 없이 절차에 협조하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수당은 소수당의 관점 가운데 긍정적인 요소를 최대한 반영한 법안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가의 ③)


3) 논제2의 해제

  논제 2는 님비시설의 수용을 둘러싼 시의회의 다수결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지역에 그 시설을 수용키로 한 A시 의회의 결정이 공동체 전체의 정의에 부합하고 보편타당한 것인지를 논술해야하고, 다음으로 의회의 결정에 반대한 소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동체의 범위가 국가인지 A시인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이 문제는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국가 전체를 ‘공동체’로 삼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국가 공동체의 환경정화를 위해서는 폐가전제품 종합시설이 필수시설이기 때문에 60%의 찬성의견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40%의 반대 의견은 지역이기주의로 규정된다. 물론 반대자들이 삼고 있는 주장의 근거가 지역의 환경문제이고 그 지역 또한 국가의 일부이기는 하다. 그러나 보편타당성은, 전체의 일부분에게 해당하는 상황이 다른 부분에서 발생할 때에도 여전히 타당해야 성립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시가 자기 지역의 환경을 위해 시설의 수용을 거부한다면 그 시들이 배출한 폐가전제품은 어디에서도 처리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모든 시는 ‘골고루’ 환경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다수자가 수용의 근거로 삼은 지역 경제 활성화는, A시가 아닌 다른 시가 주장한다 해도 국가전체에 해가 될 것이 없는 논리이다.
다음으로 A시를 전체 공동체로 삼는다면 소수의 반대자들을 지역이기주의라고 내몰 수는 없다. 소수자들은 지역의 환경과 삶의 질을 우려하고 있고 이는 당연히 지역의 입장에서는 정의롭고 보편타당한 논리하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자 또한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정적 지원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A시의 보편적 이익에 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정의와 보편성’이 서로의 우위를 다투는 상황인데, 구체적인 변수를 놓고 지역의 환경과 경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지역의 상황에 따라 ‘지역 경제 활성화’는 지역 주민 가운데 특정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이 지역주민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공공시설이나 기반시설에 쓰이지 않고 일부 업종 종사자나 개발업자들을 위해 쓰인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는 허울 좋은 구호가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자의 입장이 정의롭고 보편타당하다. 반대로 환경도 좋지만 지역 주민이 전반적으로 빈곤에 찌들고 기초적인 편의시설 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지역경제 활성화가 지역 모두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정에 반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환경과 삶의 질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폐가전제품 종합시설은 각종 오염물질을 유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태계는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염물질에 대한 재처리 시설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오염될 지도 모를 환경을 복구할 예방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용과 정책’ 두 가지 모두가 마련되어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재원의 일부는 처리시설과 복구 예비비 등으로 할당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의 자치단체가 지속적으로 환경오염을 측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환경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4. [문항 3]
  
1) 제시문 분석 = 논제 1 해제
논제 1은 제시문에 대한 독해를 올바르게 하는가를 물어보는 문제이다. 행복도가 소득의 크기에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제시문 (가)를 (나)와(다)의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다)의 국민만족도지수 8168달러가 의미하는 바를 밝히라고 되어 있다.

(가) 제시문은 ‘물질적 풍요’와 국민이 직접 체험하는 ‘행복도’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사회현상을 설명한다.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소득은 조금만 증가해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만, 기본적 생계가 해결된 상황에서 만족감은 소득보다는 정신적 심미적 요소에 좌우된다.

(나) 제시문의 ‘효용’ 개념은  (가) 제시문이 말한 ‘행복도’, ‘정신적 만족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이어 받고 있다. 하지만 (가)가 효용과 소득의 증가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두 변수 사이의 구별에 주력하는 반면, (나)는 효용과 소득의 증가에는 통념과는 다르긴 하지만 일정한 함수관계가 있음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사항은 효용은 소득이 아니라 소득의 증가와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얼마를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금 번 것보다 얼마를 더 벌었다, 덜 벌었다는 것이 그의 효용(정신적 만족감)에 영향을 미친다.
베르누이가 주장한 “부에서 어떤 작은 증가로 생기는 효용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재화의 양에 반비례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가 10만원을 방금 전 보다 더 벌었다고 하자. 그런데 방금 전에 나는 이미 100만원을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고 1000만원을 소유하고 있을 수 있다. 내가 100만원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10만원을 더 벌 때(110만원을 소유하게 된 상황)의 만족감과 1000만원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10만원을 더 벌 때 (1010만원을 소유하게 된 상황)의 만족감을 비교해보자. 앞의 경우에 비하여 뒤의 경우에 만족감이 미미할 것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100만원을 가진 사람에게 10만원의 증가는 10%나 되지만 1000만원을 가진 사람에게 10만원의 증가는 1% 밖에 안 된다.  베르누이에 따르면 원래 가진 재산이 10배라면 동일한 소득증가로 인한 만족감은 배라는 이야기이고 이렇게 ‘반비례’라는 말이 성립한다. 달리 말해 가진 재화가 작을수록 조금만 소득이 증가해도 효용이 큰 반면, 가진 재화가 큰 상황에서 그 정도의 효용을 얻으려면 큰 소득의 증가 상황이 있어야 한다.
이를 그래프 위에 옮긴다고 상상해보자. 수평축에는 일정하게 증가하는 소득의 눈금이 있고 수직축에는 일정하게 증가하는 효용의 눈금이 있다. 소득이 낮은 수평축의 왼쪽 부분에서 그래프는 급격히 빠르게 증가한다.  소득이 높은 수평축의 오른쪽 부분으로 갈수록 그래프의 증가는 둔화할 것이다. 제시문이 말하듯이 이런 특성을 잘 반영한 함수가 로그함수이다. 금전적 가치를 로 효용을 로 놓았을 때 둘 사이에는 로그함수가 성립할 것이라고 모델링할 수 있다.

(가)가 효용과 소득 사이의 구별을, (나)가 개인적 효용과 개인적 소득 사이의 관계를 논의했다면 제시문 (다)는 집단의 대푯값을 논의한다. 지금까지는 각 개인의 소득들을 모두 더하여(GDP) 산술평균으로 1인당 국민소득(GNI)을 구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변량을 개인 소득이 아니라 개인 효용으로 취하였으며 이로부터 산술평균을 구하고 있다. 첫 번째 식은 국민 개인의 소득에 로그함수를 취하여 개인의 효용을 구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식은 이들 로그값들을 모두 더하고 이를 다시 국민의 수로 나누어 ‘평균만족도’를 구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식은 방금 구한 평균 만족도를 로그의 역함수인 지수함수를 이용하여 다시 화폐단위로 환산하고 이를 국민만족도지수로 정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세 번째 식에서 나온 국민만족도 지수를 첫 번째 식에서 나온 개인의 소득들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두식을 논리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두 번째 식을 이용하여 국민만족도 지수와 개인소득들 사이의 관계식을 구하면 아래와 같은 기하평균식이 나온다.

    

(다) 제시문의 두 그래프는 개인 소득 분포와 개인 만족도 분포를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개인 소득 분포는 대칭적이지 않고 좌측으로 찌그러진 종모양이지만 개인 만족도 분포는 거의 대칭적인 종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로그함수의 특성 때문에 소득이 낮은 계층이 효용에 기여하는 바가 소득이 높은 계층에 효용에 기여하는 것 보다 큰 것으로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국민만족도 지수(8168달러)가 소득의 평균(10451달러)보다 적은 값으로 제시된 것은 왜일까? 그것은 기하평균이 산술평균 보다 대체로 작은 값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아주 이상적인 경우, 즉 국민의 소득이 모두 동일할 경우 기하평균과 산술평균은 일치할 것이고 이때 국민만족도지수와 소득의 평균도 같은 값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논제1의 요구에 맞추어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간추려 보자.
① 행복도가 소득의 크기에 정비례하지 않는 이유는 제시문 (나)에 따르면 같은 양의 부가 증가하더라도 이미 소유한 재화의 양이 적은 사람이 재화의 양이 많은 사람보다 더 큰 만족도를 느끼기 때문이다. 베르누이는 소유한 재화의 양에 반비례하여 효용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효용은 소득에 관한 로그함수의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② 행복도를 개인에서 국가로 확장할 경우에는 국민의 평균적 만족도를 생각할 수 있다. 이때 각 개인의 행복이 그 개인의 소득에 대한 로그값이라면 국민의 평균 만족도는 그 로그값들의 산술평균이 된다. 이를 다시 화폐단위로 환산하면 각 개인의 소득을 기하평균으로 구한 ‘국민만족지수’를 구하게 된다.
③ 국민만족도지수 8168달러가 평균 국민소득 10451달러와 비교하여 작은 값을 가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국민만족도지수는 1인당 국민소득과는 달리, 국민들의 만족도 측면에서 측정한 개념이다. 따라서 국민만족도지수가 작게 나타나는 것은 동일한 1인당 국민소득을 갖는 다른 이상적인 국가에 비하여 국민들이 체감하는 만족도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으로도 설명하면 산술평균인 국민소득과 기하평균인 국민만족도지수는 모든 개인의 소득이 동일할 때만 서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국민만족도지수가 평균 국민소득 보다 작은 이유는 개인 사이의 소득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 논제2 분석
1인당 국민소득이 동일하나 서로 소득 분포가 다른 A, B, C 세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과 국민만족도지수의 차이를 설명하라는 문제이다. 덧붙여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서술하라고 했다.
사실상 이 문제는 세 개의 그래프를 분산 (혹은 표준편차)의 크고 작음에 따라 구별하라는 문제이다. 분산이 작을수록 즉, 개인들의 소득이 밀집할수록 기하평균은 점점 증가하며 산술평균에 접근한다. 반대로 분산이 커질수록 기하평균인 국민만족도지수는 1인당 국민소득 보다 감소할 것이다.
분산이 작은 순서대로 말하면 C국, A국, B국의 순이다. C국은 5000을 중심으로 좌우 1500, 총 3000의 분포를 보인다. A국은 3000 근방에 밀집하여 있으나 0에서 20000의 범위에 걸쳐서 넓게 분포한다. 반면 B국은 모든 소득액에 걸쳐 고르게 도수가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만족지수는 C국, A국, B국의 순서로 감소할 것이며 같은 순서대로 1인당 국민소득과의 격차가 커진다. 그 이유는 수학적으로는 산술평균의 원리 때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개인 소득간의 격차가 이 순서대로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3. 논제3 분석

‘모든 국민의 행복 추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A, B, C 각 국가가 수립할 수 있는 정책을 질문하고 있다. C국은 세 나라 가운데 중산층이 가장 두텁고 분배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경제 성장의 동기가 부족하여 자칫 정체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국민의 경제 활동 의욕을 자극할 만한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 A국의 문제는 소득의 분포가 매우 넓고  상류층의 소득이 지나치게 큰 데 비해 국민의 대다수가 중간값 이하로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빈부격차가 큰 사회이므로 A국에는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 B국은 국민만족도지수가 가장 작은 나라로서 소득의 분포를 중간값 5000을 중심으로 밀집시킬 필요가 있다. 이 나라는 A국처럼 사회양극화 현상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C국처럼 중산층이 주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중산층을 양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개인 소득의 격차를 줄여가는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