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1950년대 한국문학
전쟁이라는 한계 상황의 극복 방식
- 오상원의 「유예」를 중심으로
정정희 | 논술교사 jmaria2@naver.com
대상: 중학교 3학년 이상
함께읽은책: 오상원의 「유예」
보조 텍스트: 『벽』 (사르트르 / 문학과지성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학습목표 : 전쟁이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인물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갖는 의미를 평가해 본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는 단일 정부수립이 시급한 당면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념과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분단되었고, 분단의 고통은 민중에게 전가되었다. 일방적인 통치 행위에 의해 역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묻혀갔고 생각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테러가 대낮에도 자행되었다. 38선에서는 크고 작은 교전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남북한 양측은 언제든지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의사가 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전쟁은 일어났고 남북한 민족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왜 싸우는지, 왜 고향을 떠나 떠돌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인민군을 만나면 그들이 가르치는 노래를 불렀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야 했다. 국군이 다시 올라오면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혐의로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기도 했다. 때로는 한 마을 안에서도 서로 편이 갈려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을 죽이고 죽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유예」에서는 죽음에 직면한 병사가 자신의 최후를 상상하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간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번 수업에서는 전쟁 중에 겪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앞에서 인물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할 때 무엇이 작용하는지 살펴보려고 하였다. 「유예」에서는 삶과 죽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순간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사르트르의 <벽>을 끌어와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죽음이라는 또는 전쟁이라고 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폭력 앞에선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획득하는지 살펴보았다.
생각열기
*너희들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니?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까? 또 ‘죽을 것이다.’ ‘죽을 것 같다.’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 해보자.
- 고속도로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곁을 스쳐가는 고속버스를 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저런 상황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주 작은 변수만 생겨도 대형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것 때문에 공포를 느껴요.
- 공포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요? 저는 놀이공원에서 자이로 드롭(공중 70m상공에서 시속 94Km로 강하하는 놀이기구)이나 혜성 특급(어두운 터널로 설정된 공간을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 진행되는 놀이 기구), 바이킹을 처음 탔을 때 그런 공포를 느꼈지요. 공중에서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비상스위치가 있다면 누를 텐데. 비상 스위치가 없다면 이것은 놀이공원 측의 무성의 때문이야. 중얼중얼 … 그러면서 다시는 타나봐라 하지요. 그리고는 또 타요.
-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결코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또 타게 되고, 그런 공포를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를 빼면 우리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구나.
- 시험공부가 끝도 없이 밀려 있을 때 가끔 악몽을 꿔요. 그럴 때도 죽을 것 같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요.
- 환경이 오염되어 인류에게 재앙이 온 거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두렵긴 하지요. 지구가 물에 잠기면 어떻게 하나. 나만 조심한다고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을 수 있나. 그런 것들이 두렵죠.
-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서 본건데요. 끊임없이 죽이고 죽는 거요. 상대방을 죽일 때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해 봤는데요. 오로지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병아리를 기른 적이 있어요. 며칠 되지 않아서 죽었는데 어느 날 아침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몸 자체가 뻣뻣하고 눈꺼풀이 닫혀 있었어요. 움직이고 끊임없이 삐약삐약 대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아주 썰렁하던걸요. 그 뒤로는 무엇인가 살아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이 내키지 않아요.
-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 폭격이 있었을 때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집은 무너져 쓸모없는 콘크리트 조각으로 쌓여 있고 남아있는 곳은 총탄자국이 있고요. 그 앞에서 망연자실 서 있던 사람들 얼굴이 기억나요. 군인은 군인이라서 죽는 거라 하더라도 길 가던 사람들이나 집안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면 참 인간이란 존재가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이유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에 빠지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말이에요.
- 레바논에도 폭격이 있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루무치에서 총격으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의 폭력과 고통이 따르는 건지 상상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돼요. 우리는 아주 작은 상처만 있어도, 모기만 물어도 약을 바르고 난리를 떨죠. 자기 몸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무관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아프리카에서는 납치한 소년들에게 총을 들게 하고 싸움터로 내보낸다고 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운 나이에 이미 사람들을 죽이게 돼요.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지 걱정스러워요.
*우리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겪은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분들은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쭤 보고, 들은 대로 이야기해 보자.
- 우리 할아버지는 이북 사람이라서 친척이 하나도 없어요. 고생 많이 하셨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지요. “그때는 이런 것이 어디 있냐, 그저 밥 먹기도 바빴지.” 하시고요.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했다는 기사만 나오면 라면이랑 통조림을 박스째 사 오시곤 해요.
-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열다섯 살 때 어린 남동생을 등에 업고 여동생 둘과 피난길에 올랐다고 해요. 외증조부께서는 강원도 시골 작은 마을의 한의원이셨는데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끌려가 총살당하셨다지요. 그 부역이라는 것이 인민군이 들어와서 밥을 해달라고 해서 밥을 해 주었고, 마을에 모이라고 해서 모였고 노래를 가르쳐서 배운 게 다라는군요. 그런데 그것이 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 평생 말씀 못하셨다고 해요.
- 노근리 진상규명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저희 어머니 고향 마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해요. 피난민 행렬에 인민군이 섞여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인지 피난민에게 폭격기가 총을 쏘았다는 이야기요. 저희 어머니 자랄 때 밭에서 사람 뼈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으셨대요. 그리고 밤이면 폭격당한 고갯길에 도깨비불이 수없이 떠돈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그 근처에 가기를 꺼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요즘도 성묘하러 갈 때 그 고개를 지나면 그 때 그 말씀을 아직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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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르트르의 『벽』
다음은 사르트르의 『벽』 내용이다. 이 글에서 이비에타나 후안, 톰, 벨기에 의사가 갖는 태도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하여도 이야기해 보자.
저녁 여덟 시경이 되자. 소령 하나가 두 병사와 함께 들어와 톰 스타인보크와 후안 미르발, 파블로 이비에타에게 내일 아침 총살당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밤새 돌봐 줄 벨기에 의사가 들어온다.
후안 미르발은 셋 중에 가장 어리다. 아나키스트인 형 호세가 한 일 때문에 잡혀왔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희생당하고 싶지 않다고 항변한다. 벨기에 의사에게 총알을 맞고 죽을 때 느끼는 고통이 오래 지속되는지 묻기도 한다. 그러다가 위로하려는 듯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의사의 손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기도 한다. 지키고 있던 병사가 3시 30분(새벽)이라고 시간을 말해 주자 죽고 싶지 않다며 온 지하실 안을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운다. 아침. 처형 시간이 되어 병사들이 데리러 왔을 때 그는 일어나지도 못한다. 병사들이 잡아 일으켰지만 다시 쓰러져 버린다. 병사들이 그를 양쪽에서 쳐들고 나갈 때 눈을 크게 뜬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리고 곧 총소리가 들렸다.
벨기에 의사는 고통스런 상황에 놓인 세 사람을 ‘밤새 도와줘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서 하룻밤을 이들과 지내게 된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몇 시간이라도 부담이 덜 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비에타는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한다. 의사는 후안의 맥박을 쟀다. 그리고 이비에타에게 춥지 않냐고 말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리학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관찰하는 듯이 보인다. 두려움에 떠는 후안에게 총살형 직후 곧 ‘끝난다.’는 말을 통해 후안을 안심시키려고 한다. 가족에게 유언이나 유물을 전해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사형 예정자들은 밤새 자신들에게 닥쳐올 끝에 대하여 두려움에 떨고 의사는 가끔 무엇을 적기도 하고 위로하려는 듯한 몸짓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상태에 놓여있다.
톰 스타인보크. 국제여단에서 활동한 것이 밝혀져 잡혀왔다. 저들이 탄약을 아끼기 위해 길 위에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그 위로 트럭을 지나가게 했다는 말을 떠벌린다. 추위로 몸이 떨리자 체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도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자신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총에 맞을 때 느낄 고통을 악몽처럼 미리 느끼고, 자신의 시체를 상상해 본다. 무엇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과 죽으면 그냥 없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 또한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신은 더 이상 세상을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데 세상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무섭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몸은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자신이 오줌을 바지에 쌌는지도 모르고 있다.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파블로 이비에타. 라몬 그라스를 숨겨주었다는 혐의로 잡혀와 재판 없는 심문만 거쳐 병원 지하실에 후안과 톰과 함께 갇혀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그들과 함께 처형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사가 담배를 권하자 냉정하게 거절하고 춥지 않느냐고 물어도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다. 톰과 후안을 보면서 자신은 이 순간 강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강한 채로 남아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톰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경멸한다.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난다. 자신을 이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인가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나 묻는다. 행복과 여자와 자유,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스페인의 해방과 무정부주의 운동.
그런데 이제 내 삶은 이미 끝났으므로 아무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을… 하는 후회.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는 후안을 보며 의연하게 죽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톰과 후안이 끌려 나간 뒤 총소리가 날 때마다 몸서리친다. 다시 심문. 라몬 그라스가 숨은 곳을 묻는다. 장교가 나를 위협하는 행동을 해도 겁먹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죽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투옥시키기 위해 쫓아다니는 그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들이 생각해보라면서 15분을 준다. 그러나 그리스를 넘겨주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거나 더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우정이나 의리, 삶에 대한 욕심 같은 것은 이미 날이 밝기 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그리스를 넘겨주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감시하는 병사들을 조롱한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행동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 벨기에인 의사는 직무상 이들을 하룻밤 동안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와 있어요. 전시에 내일이면 사형당할 사람들을 돌봐주라고 의사를 보내는 측의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 인도적 측면이었겠지요. 그는 이비에타에게 말을 걸거나 후안을 위로하려는 행위를 하는데요, 하지만 세 사람은 벨기에인 의사가 자신들과는 다른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적대감마저 내보였어요.
- 후안은 어린 소년인 것 같아요. 정확하게 나이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20대가 되기 전인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하여 몹시 당황하고 두려워해요. 톰이나 이비에타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알고 했을 거란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후안만큼 당황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후안은 아나키스트인 형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맞은 것이지요. 그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것이 자기의 몫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용납할 수 없어서 가장 크게 좌절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벗어날 수는 없어요.
- 톰은 국제여단에서 활동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그들이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처형한 끔찍한 방법을 주절주절 떠벌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체조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말하지요.
- 내일 아침에 있을 처형이 두려워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괜히 그러는 몸짓이기도 해요. 총살당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그 순간에 ‘벽 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어서 안간힘을 쓸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총알이 머리와 목에 와 박힐 때의 통증을 미리 겪기도 하지요. 그리고 자신의 시체를 봐요. 자기가 그렇게 총을 맞고 쓰러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거지요.
- 그렇게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될 것이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해요.
- 그가 아비에타랑 다른 점이 그 부분인 것 같아요. 이비에타 역시 두려워해요. 그래서 추운데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지경인데도 자신의 몸을 자각하지 못하죠. 후안처럼 무섭다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고 톰처럼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그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요. 의연하고 싶다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자신도 죽고 싶지 않아서 날뛰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웃기도 합니다. 불멸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어떤 것을 위해 산 날들도 있었는데 그 결과가 오늘인 것이지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의리도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영원히 산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드디어 평온해지게 됩니다. 밤새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면서 마침내 평온을 얻게 돼요. 이제 풀려난다 해도 그는 이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2. 이제 「유예」를 살펴보자.
현재: 본대에서 낙오된 채 부하를 모두 잃고 인민군에게 잡혀 총살당하게 된 그의 심리적 갈등
과거: 북으로 계속 진격하였으나 적의 배후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몇 차례 전투 끝에 6명만 남음. (잡히기 이전의 상황)
과거: 대원을 모두 잃고 혼자 헤매다가 마을에서 인민군들에 의해 처형되는 병사를 보며 그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라 생각한 그는 적을 향해 난사했으나 적의 응사로 부상당함.
과거: 적의 회유.
현재: 죽음 직전의 마지막 의식.
* 작품 속에서 그 인물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보자.
인물 | 생각이나 행동의 특징 |
소대장(나) |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싸우다가 죽는 것 그것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위한다는 것, 무엇을 얻기 위한다는 것. 인간이 태어난 본연의 그대로 싸우다 죽는 것. 그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본대와 연락이 끊긴 후 점점 줄어드는 소대원들과 힘겹게 움직이고 있다. 눈과 기아와 추위 속에서 싸움이 계속되었다. 부하들이 죽어갈 때마다 그들의 손을 꼭 쥐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선임하사를 잃고 눈 속을 헤치며 남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불안과 절망이 엄습했다. 이 방향이 정확한 것인가? 나의 지금의 위치는? 상의할 아무도 없다. 나는 이대로 영원히 눈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마을을 발견한다. 거기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포로를 처형하려는 무리를 발견하다. 무리의 대장 : 동무는 우리 인민의 처사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가? 묶인 자의 대답 : 생명체와 도구는 다른 것이오. 나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 개의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 한없이 기쁠 뿐이오. 주저 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나가고 있었다. … 그가 마치 자기인 것만 같았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하다 … 며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고 총을 쏘다가 체포된다. 그리고 한 시간의 유예.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투룬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선임하사 | 2차대전시 일본군에 소집되어 남양전투에 종군. 북지(北支)로 이동하여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포로 생활 2개월 후 팔로군 국부군으로 표류하다가 고국에 돌아와 다시 군인이 됨. 전투가 자기 생활 속에서 제일 신이 나는 순간이라는 그. “사람은 서로 죽이게 마련이오.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니까. 나는 전투가 제일 재미있고. 나는 그 순간 역사가 조각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사람이란 별게 아니라 곧 싸우는 것을 의미하고, 싸우다가 쓰러지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부상당하자 자기의 위치를 정하고 비애도 고독도 어느 하나도 없다. 그는 의식을 잃은 듯이 몸이 점점 비스듬히 허물어지다가 털썩 쓰러졌다. 입가에 미소가 가벼이 흐른다. |
심문하는 북한군 | 출신 계급을 탓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할 여유를 주겠다. 나는 동무와 같은 인물을 아끼고 싶다. 어느 때라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있다. “동무처럼 불쌍한 청년은 또 이 세상에 없을 거요. 유감이오.” |
* 소대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나? (토의)
학생 1: 현실에 순응하여 살길을 모색하는 길이 있었을 거야.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들 중에는 섬기는 주군을 여러 번 바꾼 사람도 있어. 중세 서양의 기사들도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는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때로는 또 다른 영주에게 가기도 하잖아? 자기 능력을 인정해 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펼칠 기회를 얻는 거야. 어느 쪽에 서는 것이 옳은가 하는 기준은 없지 않나? 살아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학생 2: 자신의 신념을 바꾼 사람들의 경우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향이나 가치가 상황에 따라 변한다면 그것은 총체적인 성찰을 통해 얻은 신념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학생 1: 죽음이라는 상황이 결정적일 수도 있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어쨌거나 살아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 있어야 가치를 실현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어?
학생 2: 하지만 이비에타의 경우를 좀 봐.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발생했지. 자신이 상황을 바꾸기엔 너무나 커다란 힘이 작용해. 그것에 맞서는 방법엔 아까 말한 것처럼 순응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일단 살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말이야. 하지만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비에타가 동지이자 친구인 그리스를 밀고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면 그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그것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될 거야.
학생 3: 그래서 이비에타는 밤새 고민한 후에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다시 심문하려는 장교와 그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농담을 걸면서 빈정대는걸까?
학생 2: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 순응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비에타는 맞서는 방향을 선택했어. 그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어. 개인의 의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세우려고 했던 것 같아.
학생 1: 그러고 보면 「유예」의 인물 역시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아. 나는 전쟁의 비정함 속에서 그가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말이야. 그가 우리의 가족이거나 형제였다면 어떻게는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거야.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관련하여 그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 보는 활동이 이어졌다. 「유예」의 소대장은 낙오된 뒤로 부대원을 모두 잃고 피로와 기아, 추위와 고독 속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견뎌왔다. 그 시간동안 그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가 동질감을 느껴 구하려고 했던 포로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 이전에는 자신이 도구로 쓰였다”는 말을 한다. 싸울 때는 몰랐는데, 포로가 되었을 때에서야 살아있는 생명을 의식했다는 말이다. 생명체인 인간으로 살고, 인간으로 죽겠다는 것이 작가가 표현하려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자신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