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향해 팔을 활짝 벌려라

- 작은 새의 노래

 

이가윤 | 본지 편집장 kayun75@hanmail.net

 

대상: 중학생

함께 읽은 책: 『작은 새의 노래』 (데보라 와일스 / 동산사)

학습목표:

1.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며, 그들이 싸우고 서로 보듬어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2.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주인공의 마지막 깨달음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서, 내 삶의 자세를 담은 묘비명을 써 본다.

 

 

갑자기 삶이 막막하게 여겨질 때 선생님들은 무얼 하시나요? 다들 그런 시간을 견디는 노하우들을 갖고 계시겠지요. 천성이 밝은 편인 저는 우울이 찾아오는 빈도가 적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삶이 건조한 사막처럼 느껴질 때면 집에 돌아와 조용히 이불을 뒤집어쓰곤 합니다. 좀더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피라미드를 쌓는다던가 건물을 올린다던가 하는 아주 긴장감 없고 지루한 오락을 몇 시간이고 하곤 하죠. 이렇게 얘기하니 좀 우습지만, 제가 고통을 대하는 방법은 제 둘레에 일종의 벽을 둘러치고 무감각하게 ‘버티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떤다거나 큰 소리로 한번 울고 털어버린다거나 하는 방법이 제겐 좀 맞지 않아요. 말하자면, 이 책에 나오는 ‘평안’이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은 새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 평안이와 ‘피치’는 서로 결이 다른 슬픔을 갖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접하면서, 혼자 벽장 속에 틀어박히는 평안이와 큰 소리로 울고 몸부림치는 피치의 태도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많은 사건을 겪은 후 화해하게 되지요.

이 책의 배경은 장례식장입니다. 평안이네 대가족은 장례식장을 겸한 집에서 살고 있어 항상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고,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일상을 아이의 시선에서 유쾌하고 잔잔하게 그려갑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꽤 묵직한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지만, 그래서 평안의 대사인 ‘살아 있어서 기뻐요!’라는 말이 더 실감나고, 마음에 많이 남는 책입니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삶과, 삶의 기쁨에 말하고 있는 책.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마음열기

 

1. ‘죽음’이란 단어를 접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해 보자.

 

- 흰색, 흰 국화, 천사, 천국, 평화

- 장례식, 영정사진, 슬픔

☞ 좀 어두운 단어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좀 의외입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한 적이 별로 없다는 아이들에게 죽음은 무섭고 기괴한 이미지가 아니라 평화로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2. ‘죽음’에 관한 나의 평소 생각을 말해 보자.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 기승전결에 비유하자면 마치 소설의 결말 같은 것. 누구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죽음이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하고 갑자기 끝나버린 소설처럼, 갑작스런 죽음은 안타깝고 당혹스럽다.

- 환생을 믿는 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꼭 ‘천국’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슬프지만, TV에서 전해 듣는 죽음은 잘 실감이 안 난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없어 느껴지는 바가 별로 없다. 감정이 메마른 건가?

 

3. ‘不老不死’는 예부터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지만, 이를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쁠까?

 

- 혼자만 영원히 산다면, 인생 자체가 이별의 연속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잃어야만 하다니,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 그래도 영원히 산다면, ‘끝’이라는 것이 없으니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도 해볼 수 있을 거다. 어느 분야에서 대가가 될 수도 있을 거다.

- 오래 살다 보면 볼 꼴 못 볼 꼴 다 본다(!) 너무 오래 살고 싶진 않다.

☞ 뭔가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말하는 아이들. 이런 저런 이야기로 꼬리를 물다가 ‘인생 전체가 고통이라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영원한 고통일 것’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또 나 말고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산다면,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이 단계별로 계속될 것이란 생각에 치를 떨었습니다. “400살까지 공부하고, 800살까지 일하고, 그 다음엔 연금이 없어서 가난에 시달릴지도 몰라!” 사춘기를 한참 전에 지난 아이들과 이제 서른 중반을 넘어선 저는, 불로불사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갖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나 봅니다. 결국,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펼치기

 

△ 작은 새의 노래 내용 확인

 

1. 에디스토 할아버지와 플로렌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평안이네 가족들이 취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말해 보자.

 

- ‘잠깐 슬퍼하고, 각자 제 할 일을 했다’고 되어 있어요. 슬퍼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도리니까요.

-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장례식장이니까, 죽음에 익숙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열 살짜리(우리 나이로 열두살) 평안이까지도 침착하게 죽음을 대해요.

-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오래 사셨으니까. 아흔 살이 넘은 플로렌틴 할머니는 잠자러 가기 전에 항상 작별인사를 할 정도였잖아요. 예상했던 죽음이라 다들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왜 안 슬프겠어요? 단지 막 울고불고 하지 않을 뿐이죠.

 

2. 플로렌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평안은 단짝인 디키를 만난다. 그런데 디키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 그 이유가 뭘까?

 

- 디키는 죽음이랑 가깝게 지내는 평안이가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 이해되지 않는다고 차갑게 대하나?

- 디키는 어려서 엄마를 잃잖아요. 디키는 죽음이 무섭고 슬픈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평안이가 불편했겠죠. 심지어 평안이는 장례식에 관한 글까지 쓰잖아요. 평안이보다는, 그냥 유쾌한 다른 친구들하고 놀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말려들어서 화가 났죠.

☞ 아까보다 훨씬 공감가는 대답이네. 그럼 평안이같은 아이가 같은 반에 있다면, 따돌림당할 수도 있을까?

- 우리나라에선, 아마 왕따 감이죠.

- 이상한 냄새도 난댔으니까.

- ‘네 뒤에 귀신 붙었다’고 놀릴걸요!

☞ 이거 너무한데!!!

 

3. 사촌동생 피치를 만나지 않기 위해 평안이는 일부러 시신 공개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평안이가 피치를 싫어하고, 또 피하는 이유는 뭘까? (피치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서술된 부분을 찾아보자.)

 

에디스토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피치는 펀치 그릇을 엉망으로 해 놓고, 점심 먹은 것을 고비 화분에 게워낸 뒤 디키의 구두에 토사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진달래꽃 무더기 위로 퍽 쓰러졌다. 피치는 꽃 속에 엎어져 울었고, 사람들은 나더러 피치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다들 쏟아진 펀치와 토사물을 치우느라 바빴으니까. (95쪽)

 

드디어 내가 플로렌틴 할머니를 보려고 관 앞쪽으로 갔다. 그랬더니, 피치 슈가스라는 이름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작은 보따리 하나가 훌쩍거리며 할머니 위에 엎어져 있는 모습만 보였다. 완두콩 색 헐렁한 옷을 입은 그 애는 얼굴을 플로렌틴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목에 파묻고 있었다. 피치는 할머니의 시신에 엎어져, 아빠가 그렇게 오래 걸려 단장해 놓은 머리와 화장을 망가뜨리고, 할머니의 옥수수 꽃무늬 파란 드레스를 구겨 놓고, 죽을 힘을 다해 할머니를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흐느끼고 있었다.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102쪽)

 

- 피치가 한번 뜨면 장례식이고 뭐고 난장판이 돼요.

- 평안이는 엄숙하고 다정해야 할 소중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을 피치가 망쳐 놓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른들은 평안이가 피치를 데리고 놀아주는 게 평안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평안이가 어른스럽더라도, 피치의 응석을 받아주는 건 쉽지 않겠죠.

 

4. 플로렌틴 할머니의 장례식날, 평안과 디키, 피치는 함께 있게 된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아이들은 어른들과 떨어져 따로 가게 된다. 그리고 큰 사고가 일어난다. 이때의 상황을 자세히 써 보자.

 

물에 갇히기 전

싸울 때의 심리상태

평안과 피치가 물에 갇혀

죽을 뻔 했을 때의 심리상태

 

대사

행동

대사

행동

및 심리상태

평안

“꺼져 디키, 네 친구들에게나 가!”

꾹 참고 피치를 돌보려 하는데, 친구 디키가 사사건건 피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망돌이를 놔!”

그토록 자신이 사랑하던 개 망돌이를 직접 놓아 보내고, 대신 그렇게 미워하던 사촌 피치를 구한다. 망돌이를 놓은 것에 대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피치

“으아아아아아!”

디키가 자꾸 무서운 말을 하면서 자극하자,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져 숲으로 달려간다.

“이리와 망돌아!”

“망돌이를 잡았어!”

불어난 물에 휩쓸린다. 자신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죽음과 맞닥뜨렸는데도, 용감하게 망돌이를 붙들고 있는다.

디키

“가! 무덤으로 가! 사람들을 파묻는 곳으로!”

“가! 사람들이 죽은 사람 위에 흙은 뿌리고, 벌레가 꼬이게 내버려두는 데로!”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른다. 아빠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해 장례식에 참석하고, 싫어하는 피치를 돌보게 된 것에 분노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후의 대사와 행동으로 봤을 때, 자신이 한 일을 몹시 후회하고 있을 듯.

 

 

△ 이야기하기

 

1. 다음 대사를 읽어보자. 힘들 때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 있다. 자신은 어떤 행동을 주로 하며, 자신은 피치에 더 가까운지 평안이와 더 가까운지 이야기해 보자.

‘네가 예민한 건 좀 결이 달라, 평안아. 넌 벽장 속에 앉아 있지. 속으로 예민하니까. 하지만 피치는 울어. 그 애는 밖으로 예민한 거야. 그뿐이야. 삶이 너무 막막하다고 느낄 때, 우린 저마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뭔가를 하는 거야. 그래서 오빠는 잔디를 깎는 거고.’ (엄마의 대사)

 

- 힘들면 그냥 멍때리고 있어요. 아무 생각도 안하려고 노력하면서요.

- 저는 평안이랑 가까워요. 혼자서 조용히 견디려고 노력해요. 근데 가끔 너무 힘들면 확 울어버릴 때도 있구요.

- 저는 피치 쪽이에요. 집에서 막내라서, 다 받아주니까 아무래도 막 투정부리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렇구나.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거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피치와 평안이도 그걸 알아가기 시작했어.

 

2. 피치와 평안은 힘든 일을 겪은 후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피치와 평안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찾아보고, 이야기해 보자.

 

<피치>

 

“난, 내가 모르는 것 때문에 무서웠어.”

피치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리고 난 죽음이 뭔지 몰랐어. 그래서 난 죽음이 무서웠어.”

피치가 코를 팽 풀었다.

“근데, 이젠 알아. 그래서 이젠 안 무서워.”

골디 고모가 바닥에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난 피치를 외계인 바라보듯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캐롤라이나 굴뚝새 한 마리가 목련 사이에서 지저귀더니, 갑자기 하늘이 환해졌다.

“이 몸은 지금, 나의 껍데기일 뿐이야.”

피치가 차분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은 속에 있는 것을 건드릴 수 없어.”

피치는 골디 고모를 쳐다보았다.

“플로렌틴 할머니는 여기 없어. 어딘가 다른 데 있어. 데이스토 할아버지도 스냅핑거 공원묘지에 없어. 다른 데 계시지. 그리고 거긴 좋은 데야.” (229쪽)

 

- 피치의 변화가 놀라워요. 한번 죽음 가까이에 직접 가 보고, 자기보다 더 상처받은 누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평안>

 

- 평안이는 좀 어려운데. 원래부터 평안이는 죽음에 순응하는 아이였잖아요.

- 그래도, 그동안은 나이 많은 어른들의 ‘준비된’ 죽음만 접했었는데, 비록 개지만 자기와 함께 자라오고 누구보다 사랑했던 망돌이의 죽음을 견디기 힘들어 열병을 앓잖아요.

- 자기를 지키려다가 죽음을 맞았고, 또 자신은 그런 망돌이를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놓아 버린 셈이니까, 망돌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을 그렇게 몰아 간 친구 디키에 대한 원망도.

- 하지만 결국 망돌이의 장례식에서 평안이는 그동안의 어른스런 태도를 놓아버리고, “전 제 개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살아 있어서 기뻐요!”라고 말을 해요. 왠지 그동안의 평안이가 너무 애어른 같이 자신을 죽이고 죽음이라는 것에 익숙한 ‘척’ 했다면, 끝에선 오히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 듯해요.

 

3. 287쪽을 함께 읽어보자. 그리고 평안의 대사인 “제가 살아 있어서 기뻐요!”라는 말의 의미를 이야기해 보자.

 

“전, 제 개가 보고 싶어요.”

목이 콱 막히며 눈물로 코가 시큰해졌다. 다른 말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망돌이가 집에 왔으면 좋겠어요.”

“아멘.”

피치가 말했다.

“아멘.”

호머 힌드먼과 피비 톨버트가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소리를 합창했다.

그 순간, 가느다란 희망같이 새로운 생각이 스치며, 문득 신기한 깨달음으로 온 마음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난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망돌이도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살아 있어서 기뻐요.”

“아멘.”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살아 있어서!”

메리가 재잘거렸다.

“맞아!”

모두 말했다.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287쪽)

 

- 비록 망돌이가 죽고 자신과 피치만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고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기쁨을 느낀 게 아닐까요? 아무리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도 자신이 죽는 거랑은 별개의 문제니까.

☞ 이 소설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여기까지는 중학생 아이들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듯합니다. 물론 위 학생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란 것을 가장 강렬하게 접한 후에 새삼 삶에 관한 열망이 샘솟았다는 것, 그리고 당연한 듯 존재하는 주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상 묘비명 활동에 집중하느라 이 부분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3번을 글쓰기 주제로 잡아 글을 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마음에 담고, 이제 ‘한 번뿐인 귀한 삶,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마무리 활동에 들어갑니다.

 

마무리

 

1. 다음은 『작은 새의 노래』 등장인물들의 묘비명과 유명한 사람들의 묘비명이다. 읽어보고, 마음에 와 닿는 묘비명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하느님의 손가락이 그에게 닿으니, 그가 잠들었도다. - 에디스토 할아버지의 묘비명

예수께서 그녀의 집에 전화하셨도다. - 플로렌틴 할머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천상병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버나드 쇼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의 꽃 - 릴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이게 하는 법을 터득한 자 이곳에 잠들다 - 카네기

야구 역사에 한 줄기 빛을, 자신의 삶에 한 움큼 어둠을 남기고 떠난 외로운 영혼, 여기에 잠들다 - 타이 코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마르크스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했을 뿐, 그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페스탈로찌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 카프카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 에밀리 디킨슨

우리는 묘비명이 아닌 음악으로 위대한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기억한다 - 모차르트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 작가 정도상이 쓴 노무현의 묘비명 (실제 묘비명은 ‘대통령 노무현으로 되어 있음)

 

2. 나의 묘비명 생각해 보기

 

☞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다. 자신이 언젠가 하늘로 돌아간다면, 이 땅에 무슨 말로 마지막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 생각하여 써 보자. 그리고 그 이유도.

 

학생글

 

누구보다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네.

홍지운(중학교 3학년)

어릴 적 난 유난히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나는 일찍이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겁도 많고 낯도 많이 가려 어린이집을 바꾸면 한참을 적응하지 못했다 고도한다. 명절에 만나는 친척어른들 조차 가까이 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내성적인 성격에 친척 어른들의 걱정도 샀다 고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모님들께서는 내가 모자라는 아이가 아닐까 생각도 하셨단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안 될 만큼 활발하고 지나치게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겁 많은 울보 꼬마를 바꿔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엄마를 따라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가양동의 임대 아파트단지의 독거노인들에게 무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일이였는데. 나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 된 일이였다. 겨우 내방만한 작은 방에서 늙고 병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혼자 살고 계셨다. 점심 한 끼만 제공되는 무료 도시락이 그분들의 하루 식사 전부였고, 쓸쓸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어린 아이를 반겨주시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행복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해서 잔병치레 없이 튼튼했다. 그 때부터 키가 큰 편이여서 주변의 부러움과 관심을 받았다. 외동딸이라 심심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 행동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점점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울며 엄마를 찾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리라는 결심도 하였다.

이런 내 깨달음을 꼭 잘 표현해준 성가가 하나 있다. 바로 ‘누구보다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네.’였다. 우연히 알게 된 노래인데 성당에서 장례식을 할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구슬픈 가락과는 달리 죽은 이의 평화와 안식을 빌어주는 희망적인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또 고인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노래하는 가사가 내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또 단지 주님의 사랑뿐 아니라, 내가 죽었을 때 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죽어서까지도 슬퍼하지 않는 낙천주의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그 어떤 말보다도 이 노래 가사 한 줄이 내 앞으로의 삶과 죽음까지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묘비명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난 꼭 ‘누구보다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네.’라고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