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신화 이야기, 네 번째
우리나라 신화에는 우리가 있다
이선희 해오름평생교육원 전임강사 sunanna@naver.com
한 나라의 신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와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태초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창세신화가 되고, 사람이 태어난 방식이 창조신화가 됩니다. 중국 신화에서는 태초에 이 세상이 알처럼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집트 신화에서는 태초에 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신화의 머리라 할 창세 신화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명존중 사상과 공명정대한 세계관과 진화론적 인간관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함경도 함흥 지방에서 내려오는 <창세가>와 제주도에서 내려오는 <천지왕본풀이> 등 무속 신화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습니다.
1. 세상의 이치 알기
하늘과 땅이 생길 때에
미륵님이 탄생하니,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하늘은 가마솥의 뚜껑처럼 돋우고,
땅은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웠네.
그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었으니
달 하나 떼어서 북두칠성, 남두칠성 만들고
해 하나 떼어서 큰 별들을 만든 후,
잔별들은 백성의 직성으로 삼고
큰 별들은 임금별과 대신별로 삼았네.
미륵님이 옷이 없어, 옷을 만드는데 옷감이 없어,
이 산 저 산 너머로 뻗어가는
칡을 파서, 껍질을 벗겨 내고 서로 꼬아 잇고 익혀,
하늘 아래에 베틀 놓고
구름 속에 잉아대 걸고
들고 짤깍, 놓고 짤깍 짜서
칡장삼을 만드니
전필이 길이요, 반 필이 소매더라.
다섯 자는 섶이요, 세 자는 깃이더라.
머리 고깔을 짓는데,
한 자 세 치를 잘라 지으니
눈 근처에도 안 내려오고,
두 자 세 치를 잘라 지으니
귀 근처에도 안 내려와,
석 자 세 치를 잘라 지으니
턱 근처에 내려왔네.
미륵님 탄생했던
미륵님 시절에는 생식을 하니
불 안 때고 생낟알을 먹었네.
미륵님은 섬들이로 먹고
말들이로 먹다가 말씀하기를,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나 이렇게 탄생하였으니, 물의 근본, 불의 근본,
나밖에 없으니, 내어야 하겠다.”
메뚜기를 잡아서
형틀에 올려놓고
무릎을 때리며 묻기를,
“여봐라, 메뚜기야, 물의 근본, 불의 근본 아느냐?”
메뚜기가 대답하기를,
“밤이면 이슬 받아먹고
낮이면 햇빛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아나.
나보다 한 번 더 먼저 본
개구리를 불러 물어 보시오.”
개구리를 잡아다가
무릎을 때리며 묻기를,
“물의 근본, 불의 근본 아느냐?”
개구리가 대답하기를,
“밤이면 이슬 받아먹고
낮이면 햇빛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아나.
나보다 두 번 세 번 더 먼저 본
생쥐를 잡아다 물어 보시오.”
생쥐를 잡아다가
무릎을 때리며 묻기를,
“물의 근본, 불의 근본 아느냐?”
생쥐가 말하기를, “내게 무슨 상을 주시겠습니까?”
미륵님이 말씀하기를, “너는 온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라.”
그제서야 생쥐가 대답하기를,
“금정산 들어가서 한 손에 차돌 들고,
다른 손에 시우쇠 들고
탁탁 치니 불이 났습니다.
소하산 들어가니
샘물이 솔솔 나와 물의 근본 됐습니다.“
미륵님이 말씀하기를, “물과 불의 근본 알았으니
사람에 대해 말해보자.”
옛날 옛날에
미륵님이 한 손에 은쟁반 들고
다른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져
금쟁반에 다섯이요,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금벌레는 사내 되고
은벌레는 계집 되었는데,
은벌레, 금벌레 장성하여
부부되니
세상 사람들이 태어났네. (이후 생략)
- 손진태, 『한국의 창세신화』, <조선신가유편>에서 발췌
태초에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님이 탄생했는데,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자, 하늘을 가마솥의 뚜껑처럼 위로 돋우고, 땅은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었으니 달을 하나 떼어서 북두칠성과 남두칠성을 만들고, 해를 하나 떼어서 큰 별들을 만든 후 잔별들은 백성의 직성으로 삼고, 큰 별들은 임금별과 대신별로 삼았다고도 합니다.
우리 신화에서는 하늘과 땅이 생길 때 신이 같이 생겨납니다. 기독교 창세 신화에서는 이미 신이 먼저 존재하고 있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천지가 생길 때 신이 같이 태어나니 어째 이 신이 좀 어수룩합니다. (그 신은 미륵님인데, 굳이 불교에서의 미륵님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애국가에서 부르는 하느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뒤에 나오는 석가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어떤 신적인 존재이기보다 뒤에 나오는 어떤 문명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마치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해치우는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우주를 마치 작은 초가집을 아주 크게 확대해 놓은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가마솥 뚜껑 같은 하늘과 네 기둥이 있는 네모난 땅덩이. 그 위에 달과 해에서 떼어낸 별들. 밤하늘의 별들이 달부스러기, 해부스러기라니 참 신기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천지를 고정시킨 미륵님의 다음 할 일은 옷을 만들어 입는 일입니다. 미륵님이 하늘 아래 베틀을 걸어놓고 구름 속에서 옷을 만들고, 전필이 한 길이였다고 하니 얼마나 큰 옷을 입었을지 얼른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일 먼저 옷을 만들어 입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의식주라 하여 옷에 대한 문화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제주도 설문대할망 설화에서는 엄청난 거인인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옮기다가 해어진 치마 구멍으로 떨어진 흙들이 오름을 만들고 마지막에 치마폭에 남은 흙을 부으니 한라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할망에게 옷을 지어주겠으니 뭍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달라고 하는데 할망 옷 한 벌 만드는데 명주 100동이 필요한데 그만 한 동이 모자라 다리 놓는 일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귀한 신분인 사람들은 명주 같은 비단이나 가죽옷을 입고 따스하게 겨울을 났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오기 전까지 베나 마로 옷을 해 입고 추위를 이겨야 했을 터이니 옷이 신분을 말해주기 이전에 생존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옷은 염치와 예의를 아는 지표이기도 하고 문명의 발달을 이야기해주기도 합니다.
그다음엔 식(食)의 이야기입니다. 미륵님 시절에는 불 안 때고 생낟알을 먹었다고 하여 생식(生食)와 화식(火食)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이야기할 때 불의 사용을 이야기하는데, 여긴 아직도 불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이 이야기의 시원을 얼마나 오래 두고 있는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륵님은 물과 불의 근원을 알고자 하는데 물은 생명을 잉태한 자연의 상징이고, 불은 문명을 발달시킬 문화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아주 쉽게 본다면 밥을 지어먹으려면 쌀에 물을 붓고 불을 때야 하는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먼저 메뚜기에게, 다음은 개구리에게, 그다음은 생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보통 신은 전지전능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물과 불의 근원을 고작 미물들에게 거꾸로 물어보다니 신의 위신이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크거나 작거나 다 그 자체로서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야기는 머리에서 나오지 않고 가슴에서 나옵니다. 논리로 신화를 읽으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읽으면 숨은 진실이 보입니다. 어쨌거나 우리 조상들은 작은 미물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하게 여겨, 십이간지의 으뜸인 쥐에게 그 공로를 돌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다음 인간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4대문명이 시작된 지역의 창세 신화를 보면 사람이 진흙으로 빚어졌거나 아니면 돌멩이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지역의 인간 창조가 보다 근원적인 데 비해, 문명이 유입된 우리나라의 인간 창조를 보면 특이하게 벌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또 신인 미륵님이 하늘에 빌어 인간을 창조합니다. 신 위에 또 신이 있는 형상입니다. 벌레라고 하면 하찮은 존재로 보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금쟁반 은쟁반은 각기 해와 달을 상징하고, 금벌레와 은벌레는 해의 정기와 달의 정기를 받았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사람이 해와 달의 정기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벌레가 장성하여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일시에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된 존재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며, 다른 이야기에선 보통 남녀 한 쌍을 만들어 그들이 민족의 조상이 되는데, 우리 이야기에선 똑같은 다섯 쌍의 부부가 결합니다. 우리 민족에겐 북방유입설과 남방유입설이 있는데 아마 여기저기 떠돌다가 한반도에서 자리를 잡게 된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요? 중국의 여와 여신은 처음엔 사람을 손으로 빚다가 지쳐서 새끼줄을 흙탕물에 담가서 뿌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신분의 차별이 나타났다고 하니, 태초부터 계급의 차이가 있는 중국 이야기와 비교해볼만 합니다.
벌레가 장성하였다는 것은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듯 존재가 탈바꿈되었다는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인간이 흙이나 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명을 가진 존재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그만큼 고차원적인 존재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세가>는 2006년 배남 1월호에서도 소개한 바가 있는데 우리나라 신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라 다시 언급합니다.)
2. 인간 세상 차지하기
미륵님 세월에는 / 섬 두리 말 두리 잡숫고 / 인간 세월이 태평하고 / 그랬는데 /
석가님이 나와 서서 / 이 세월을 앗아 뺏자고 마련하와 / 미륵님 말씀이 /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네 세월은 못 된다. / 석가님 말씀이 / 미륵님 세월은 다 갔다 /
인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 미륵님의 말씀이 너 내 세월 앗겠거든 / 너와 나와 내기 시행하자.
미륵이 살던 시대는 평화로운 시대였다고 전해지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석가에 의해 이 평화는 깨어지고 맙니다. 석가가 미륵에게 자신의 시대가 왔으니 물러나라고 강요하자, 미륵은 석가에게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물러나자고 제안합니다.
병에 매단 줄을 동해 바다에 드리워 누구 줄이 안 끊어지나, 누가 여름에 강물을 얼어붙게 할 수 있는가 내기를 하였는데 석가가 지자 이번엔 석가가 무릎에 꽃피우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미륵이 깊이 잠든 동안 석가는 미륵의 꽃을 자기 무릎에 꽂고 자신이 이겼으니 물러나라고 합니다.
이 꽃피우기 내기는 『천지왕본풀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천지왕본풀이』를 보면 우리 조상들은 세상을 하늘 세상과 땅 세상, 이승과 저승 이렇게 네 가지 세계로 인식했습니다. 하늘은 천지왕이 다스리지만 이승을 누가 다스릴까 하는 문제로 소별왕과 대별왕이 내기를 하게 됩니다. 꽃피우기 내기를 하기 전에 소별왕 대별왕은 수수께끼 내기를 먼저 합니다.
“아우야, 어떤 나무는 사시사철 잎이 지지 않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지느냐?”
“형님, 속이 꽉 찬 나무는 사시사철 잎이 지지 않고 속이 빈 나무는 입이 집니다.”
“틀렸다. 청대, 갈대는 마디마디 속이 비었어도 잎이 지지 않느니라.”
“아우야, 높은 곳에 난 풀과 낮은 곳에 난 풀은 어느 쪽이 더 잘 자라느냐?”
“형님, 봄철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높은 곳에는 있는 흙은 씻겨 내려가 그 풀이 자 라지 않고, 낮은 곳에는 흙이 쌓여 풀이 잘 자랍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의 머리털은 높은 데 있어도 길고, 발등의 털은 낮은 데 있어도 짧지 않느냐?”
- 제주도 신화, <천지왕본풀이> 중
북유럽 신화의 신들이 무기를 들고 선과 악을 가르며 싸울 때 우리 신들은 이 세상을 누가 차지할까 말로 내기를 합니다. 그것도 도무지 싱겁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소별왕의 말이 틀린 바는 아니나 자연의 원리를 사람의 원리에 적용시켜서 더 깊게 생각할 줄 아는 대별왕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형을 상대할 재간이 없자, 소별왕은 수수께끼는 그만 두고 꽃가꾸기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같은 꽃씨를 같은 날 심어서 더 잘 키우는 쪽이 이승을 다스리고 못 키우는 쪽이 저승을 다스리기로 했는데 형의 꽃이 더 잘 자라니 또 궁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그동안 꽃 가꾸느라 힘들었으니 잠자기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누가 깊이 잠드나 겨뤄보기. 이것은 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함정이었습니다. 석가가 미륵이 잠든 사이에 꽃을 채가 듯, 소별왕은 대별왕의 꽃을 바꿔치기 했습니다. 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신화에는 다른 나라 신화에 없는 서천꽃밭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꽃밭. 서천꽃밭에는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갖가지 꽃이 피어 있습니다.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 숨살이꽃, 혼살이꽃 같은 환생꽃이 있는가 하면 웃음꽃, 싸움꽃, 수리멸망악심꽃 같은 선악의 꽃도 있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결정짓는 갖가지 색깔 꽃도 있습니다.
꽃을 잘 피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건 곧 세상을 다스리기 이전에 자신을 다스려야 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 곧 자기 자신을 꽃 피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신 할미 이야기에서도 동해 용왕 따님이 심은 꽃은 땅속으로 뿌리만 사만 오천육백일흔여덟 줄기로 뻗다가 꽃 하나만 피더니 곧 검게 시들어 버렸는데, 명긴국 따님이 심은 꽃은 뿌리도 하나고, 줄기도 하난데 사만 오천육백일흔여덟 가지에 꽃을 피웠다고 하여 이승에서의 삼신할미의 역할이 주어지니 사람은 자기 꽃을 잘 피워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꽃을 잘 피우고도 대별왕은 속임수에 졌고, 소별왕은 그렇게 얍삽하게 이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 났을까요?
3.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
“신성한 시합을 이렇게 짓밟다니…….
소별왕아, 이승 사람들 중에는 싸움 좋아하는 사람, 잘 속이는 사람,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 까닭 없이 남을 해코지하는 사람이 많으니 부디 법을 맑게 하여 반듯하게 다스리 도록 하여라.”
소별왕은 위계를 엄격히 세우고 선악을 분별하여 죄를 지은 자를 무서운 형벌로 다스렸 다. 세상에는 점차 법도가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을 피해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끊이지 않았다.
대별왕은 인간의 영혼이 머물 곳을 극락과 지옥으로 분별하여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게 하였다. 이승에서 선량하게 살면서도 고초를 겪은 영혼들은 극락에서 안식과 평화 를 누리게 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 부귀를 누린 자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르게 하였다. 한 번 지옥에 든 영혼도 죗값을 치르면 극락에 갈 수 있는 법도 마련했다.
- 제주도 신화, <천지왕본풀이> 중
『천지왕본풀이』는 다양한 이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야기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생명에 대한 이해와 꽃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이승을 다스렸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악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되지 않는 소별왕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 차지한 이승에 악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겁니다.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어떤 곳일까요? 단순히 죽음 이후가 두려운, 무서운 곳이 아니라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는 곳, 그리고 한 번 지옥은 영원한 지옥이 아니라 죗값을 치르면 다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사후 세계보다 훨씬 관대하고 포용력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승과 저승이 늘 삶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신화에서 아담과 에와(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이 세상에 악이 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신화에서는 선과 악의 문제는 인간 이전에 신들의 세상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 뿐인데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여 선한 사람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우리 신화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화를 함께 이야기한 후 어느 선생님이 제게 전자편지를 주셨습니다. 신화 이야기를 시큰둥하게 들었는데 아이들에게 신화를 조금씩 천천히 매일매일 들려주라고 한 저의 이야기가 생각나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저녁마다 그림책 한 권과 신화 한 부분씩을 이야기해주셨답니다. 아이와『헨리의 자유상자』를 읽고 났는데 아이가 “대별왕이 다스렸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하더랍니다. 생각지도 않던 데서 예전에 들려주었던 신화를 떠올리는 것이 신기했다고 이야기하시더군요.
신화의 이야기는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 근본을 파고드는 심오한 이야기며 아울러 진실을 이야기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음식에 어떤 영양 성분이 있는지 다 몰라도 맛있게 먹으면 내 몸속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신화의 본질을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신화를 즐거워하고 기꺼이 나눈다면 신화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되고, 신화 속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화 공부에 읽으실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 현암사)
『살아있는 우리 신화』 (신동흔 / 한겨레신문사)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