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들살이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여름캠프

이연희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선생님, 진작에 이렇게 멋있는 공책 좀 주지 그랬어요? 내년이면 중학생이라 못 오잖아요." 2학년 때부터 3년을 내리 살림학교 들공부에 참여하다가 6학년이 되어 다시 여름학교를 찾은 윤미가 저를 보고 투정 어린 말을 합니다. 이번에 나누어준 빳빳한 종합장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키도 저를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윤미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듯이, 살림학교도 나이를 먹으며 많이 큰 거란다."
대답을 하고 둘러보니 몇 명의 낯익은 아이들이 키가 쑥 커서 왔더군요.
참 세월도 빠릅니다. 자기는 언제 커서 모둠장이 되냐고 하더니 벌써 6학년이 되었습니다. 저 아이들이 저토록 클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고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그냥 지난 한 때의 추억을 되새겨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한 아이를 한 교사가 맡아 그 아이의 성장과정에 진지하게 함께 했다면 감회가 더욱 새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8년 담임제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합니다. 삼진수련원 들공부 때 모둣골 아저씨의 어깨 위에서 춤을 추던 꼬마 아이가 저렇게 커서 내게 다가오다니, 반갑기도 하고 교사로서 많은 것을 주지 못한 마음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급급했는데, 매너리즘에 빠져 정작 아이들 크는 걸 느끼지 못한 건 아닌가 반성이 많이 된 여름학교였습니다.
늘 수업거리를 찾아 홈에 들르거나 새로운 수업을 듣는 교사들처럼 자유롭게 노는 즐거움을 맛본 아이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살림학교입니다. 교사들이 새로운 내용으로 재충전하듯이 아이들도 그동안 쌓아둔 피로를 말끔히 풀려는 듯 몸을 던져 신나게 놉니다. 제 이런저런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이들은 한여름의 더위를 시원스럽게 날려 버립니다.

연 내용: 나를 살리는 들살이
연 날: 1차 - 2003년 7월 28일∼30일 학생 57명 교사 16명
       2차 -2003년 7월 30일∼8월 1일 학생 58명 교사 15명
연 곳: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청일주말농원
모둠교사: 이현주, 임경란, 이정혜, 황혜선, 이기옥, 박진화, 전영경, 정은지, 이선희, 강은주, 김미숙 선생님
진행교사: 박형만, 이연희, 김경주, 최현석, 김현우, 임정아. 이도엽, 장서현, 김정희 선생님

1. 주제 잡기 - 나를 살리는 들살이

한 학기동안 새롭게 구성한 정회원, 준회원으로 분리된 들공부로 인해 교사들의 기운이 다 빠져 여름학교 준비가 다소 늦어졌습니다. 게다가 지난 몇 해 동안 다니던 안흥의 삼진수련원을 못 쓰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임대한 금평분교를 정식으로 인수받지 못하는 가운데 장소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준비는 더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주제를 정한다는 게 이렇게 막연한 거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이번 학기 정회원 들공부 주제가 '곤충관찰'이었기 때문에 들공부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곤충과 가깝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친구되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준회원들에게도, 맑은 공기 속에서 식물과 곤충도 관찰하고 여유있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캠프 주제를 '나를 살리는 들살이'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갇혀진 공간에서 살다가 탁 트인 시골의 시원한 공기와 맑은 물만으로도 아이들은 즐겁고 신이 납니다. 오히려 놀 거리를 찾아서 노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지만, 처음 온 아이들은 스스로 노는 법을 잊은지 오래이기에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해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 찾아 노는 법을 깨달아, 아이들의 유년 시절이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으로 채워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2. 나무 이름표 만들기

처음 온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하는 마음열기 프로그램을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꾸며 보았습니다. 들공부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종이에 코팅한 이름표를 나눠주는데, 이번엔 자기 이름표를 스스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노작 활동을 겸한 것이라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을 이미 예상했지만, 예상시간보다도 훨씬 넘게 걸려 완성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미리 만들어 온 이름표를 보여 주었습니다. 동그란 나무에다 예쁘게 장식한 이름표였는데, 아이들에게 직접 나무를 자르게 하기엔 좀 위험부담이 있어 미리 나무를 잘라 준비해 왔습니다. 나무에 자기 이름을 쓰고 '해오름' 글자를 적게 했습니다. 모두가 다 다른 자기 이름표, 애정을 갖고 잘 챙기더군요. 나무에 나이테가 있어 나무의 역사를 알려주듯이 아이들 가슴에 오래 남을 추억을 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계획한 활동이었는데, 아이들이 땀을 흘려가며 사포로 밀고 그림을 정성껏 그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3. 곤충과 친구 되기

지난 겨울학교 장소였던 청일농원에 다시 찾아가보니, 아이들이 겨우내 놀던 얼음판은 그새 자갈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되어 있고, 농약을 치지 않은 탓에 그 일대는 곤충의 천국이었습니다. 양배추 밭에는 배추흰나비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도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제비나비와 산제비나비도 흔하게 볼 수 있었지요. 곤충을 관찰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캠프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보니, 답사 때는 많이 보였던 배추흰나비가 모두 알을 낳아 번데기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열흘 후 정도면 그 장관을 다시 맛볼텐데…. 사전에 그것까지 계산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잔뜩 기대만 하게 했다가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수시로 곤충을 쫓아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개울물 바로 옆에서는 물놀이 하느라 곤충은 뒷전인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굳이 불러모아 곤충을 보게 할까 생각도 했지만, 자기가 관심이 끌리는 곳에서 놀게 하자고 그냥 두었습니다. 하지만 세밀화 그리는 시간만큼은 곤충 하나를 앞에 놓고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곤충들의 몸짓을 보고 좀더 그들을 알아가려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게아재비, 이름 모르는 많은 나방, 제비나비, 무당벌레, 여치, 메뚜기 등도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4. 농사체험

금평분교를 임대한 후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러 갔었습니다. 몇몇 선생님들과 가족도 함께 하셨지요. 그때 아이들과 여름학교에 캘 감자도 심고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도 심었는데 자주 가 보지 못해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농사체험을 해도 깨끗한 밭에서 감자만 덜렁 캐 왔는데 이번에는 풀도 뽑아야 하고 감자도 캐야 하고…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 무릎 위로 올라온 풀에 아이들은 자지러지고 맙니다. 울고 불고 자기는 감자 안 캔다고 난리입니다. 한 애가 우니 여기저기서 벌레가 있다고 소리 지르고 아수라장입니다. 사전에 얘기를 했는데도 새삼 놀랄 정도로 벌레가 많았습니다.
1차 때는 좋은 흙을 아이들에게 밟아 보게 할 욕심으로 신발도 벗겨 들여보냈습니다. 비싼 퇴비를 사서 농약 한 번 안치고 거름한 흙이었지요. 그런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 쪽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악! 소리를 지르고 뛰어갑니다. 뱀이 나타난 것입니다. 애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담담한 척 아이들을 달래서 마저 감자를 캐고 내려왔습니다. 학교 옆에 사시는 아주머니께서 전에 밭에 풀 뽑으러 왔을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우리 동네에는 밭에 가끔 뱀이 보여. 조심해…."
개미집을 잘못 건드려 개미가 온통 발을 뒤덮어 놀라 소스라치고, 풀에 베이기도 하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농사 체험을 마쳤습니다. 큰 바구니 세 대에 가득 감자를 싫어 트럭을 타고 달리니, 아이들은 언제 뱀을 봤냐는 듯이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난리입니다. 농원으로 돌아와 아이들은 자기들이 캔 감자를 먹었습니다. 밤에는 구워먹고 낮에는 쪄먹고… 식당에 반찬까지 감자전. 온통 감자에 묻혀 사는 것 같은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2차 때는 계획을 바꾸어 4학년 이상 고학년들이 미리 가서 풀을 정리한 후, 저학년은 다듬어진 밭에서 감자를 캐기로 했습니다. 물론 신발도 신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또 뱀이 나타났습니다. 정확히 말해 어디서 온 게 아니라 검은 비닐 밑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젠 돌을 미리 치고 곡괭이로 살살 건드려 뱀이 도망갈 틈을 준 뒤 비닐을 걷었습니다.
아이들과 집에 오면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지요.

오늘은 뱀이 나와요.
감자 캐는 날이에요.
오늘은 뱀이 나와요.
감자 캐는 날이에요.  

5. 황토염색

몇 해 전에도 황토염색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더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박 3일에 걸쳐 일정을 배치했습니다.

① 정련하기
황토 염색은 면 제품에 하는 게 염색이 잘 됩니다. 다른 옷감인 경우 밟고 치대면서 해지는 수도 있고, 특히 황토는 몸에 직접 닿아 몸으로부터 나오는 불순물을 정화시켜주는 작용이 있어 주로 속옷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면 소재로 염색하는 것입니다. 새로 산 제품이든 입던 옷이든 화학성분이 남아 있는데 그런 성분을 빼야만 염색이 잘 됩니다. 맑은 물에 한 번 삶아내는 정련작업을 아이들과 같이 하기에는 번거로워 집에서 미리 작업을 하고 오게 하였습니다.

② 콩즙 먹이기
하루 전에 미리 불린 콩을 믹서기에 갈아 즙을 내어 옷감에 스며들게 하는 작업입니다. 미리 회장님 댁에서 맷돌을 빌려와 아이들과 함께 맷돌에 콩을 갈아 보았습니다. 누렇게 갈려 나오는 콩물을 보고 아이들은 콩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맷돌을 갈면서 재미있는 말을 배웠습니다. 바로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이지요.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합니다. 아주 기가 막힌 상황을 두고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어처구니 없는 맷돌을 돌리라니, '어처구니가 없군'이라는데서 이 말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말에는 새겨보면 재미있는 말이 많습니다. 특히 '어처구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다 갈아진 콩즙을 주머니에 넣어 꽉 짠 후 정련한 옷을 넣어 하룻동안 재웁니다. 콩즙은 유착제 역할을 합니다. 섬유 사이에 들어온 황토를 꼭 붙들어 맨다고 합니다.

③ 흙물 내리기(염액 만들기)
황토를 물에 걸러 찌꺼기를 버리고 진액을 뽑아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맑은 물에 몇 번 헹군후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하루 동안 가라앉힙니다.

④ 밟기
황토염색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는 염액에 옷감을 넣어 치대고 헹구기를 7∼8회 정도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또 힘있게 밟게 하기 위해 위에 뜬 물을 버리고 큰 통에 있는 염액에 옷을 넣고 밟았습니다. 곱게 가라앉은 황토를 온 몸에 바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옷에 황토가 척척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며 꾹꾹 밟아댔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예 프로그램을 황토염색으로 집중해서 치대고 밟고 하는 온 과정을 그야말로 정석대로 해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곤충관찰 때와 마찬가지로 개울 옆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옷과 몸에 묻은 흙을 씻으러 물에 들어가 아예 나오지를 않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금방 지치는 것 같았습니다. 흙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말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좀 밟더니 멀리서 쳐다보기만 합니다. 힘들여 하는 것을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물을 유혹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는 있지만 힘들게 밟아야 하는 작업보다는 물에서 노는 게 더 좋을 테니까요. 좀 더 장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⑤ 말리기
전에는 물에 한 번 헹구어 말렸는데 이번에는 밟은 옷을 그대로 꼭 짜서 널었습니다.

⑥ 물에 헹구어 말리기
바짝 말린 옷을 개울에서 헹구어 널었습니다. 고운 흙빛이 옷을 감아놓은 듯 합니다. 건강한 농민의 그을린 얼굴을 연상케 하는 건강한 빛을 만나니 힘이 느껴집니다. 흙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6. 물놀이

이번 여름학교의 중심은 물놀이인 것 같습니다. 1차 때는 첫날 하루종일 비가 와서 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비가 오는 것과 상관없이 물에서 첨벙거리며 논 아이들도 있었지만요. 둘째 날 날도 맑아지고 황토염색을 하고 바로 물 속으로 다 뛰어들었는데, 웬 물이 그렇게 찬지 어른들은 조금 있다 물 한번 먹고 도망나와 버렸습니다. 나보다 더 큰 녀석들이 막 물 속에 밀어 넣는데 어찌나 무섭던지요.
모둠 선생님들은 다 도망가고 보조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상대를 해주었습니다. 이젠 체력이 달려 도저히 아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 덜덜 떨면서 바가지로 물을 쏟아 붓고 빠뜨리고 물싸움을 하고….
"선생님, 최고예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더군요.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옷을 갈아입고도 저녁 프로그램 시간이 남았는데 그 사이에 아이들은 또 보조 선생님들과 축구를 했습니다. 모둠 대항도 아니고 나이에 제한을 둔 것도 아니고 1학년부터 보조 선생님까지, 여자 남자가 섞여 벌이는 축구 한 판. 한 쪽에선 응원하고 한 쪽에선 심판을 맡고 한 쪽에선 해설을 하고. 이미 잘 짜여진 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참 잘 논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시간이 생겼지? 황토염색을 빨리 끝내서 그런가? 2차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2차 때는 본격적인 무더위인양 30도를 넘고 땡볕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다 보니, 염색하고 난 후 내내 물에서 아이들이 나오지 않더군요. 예전에는 물놀이를 하기 위해 트럭을 타고 20분에서 30분 걸려 이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바로 옆에 개울이 있어 이동시간이 줄어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작은 송사리가 사는 맑은 물에서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를 하며 몸에 찌든 나쁜 마음과 생각들을 다 쓸어 내리듯 시원하게 놀았습니다.  

7. 전체가 어우러지는 놀이

1차 때는 처음 온 아이들이 많아 모두가 어색한 탓에 모둠 이름을 외우는 놀이를 했습니다. 해질녘, 달맞이, 여름아이, 달오름, 여름이, 다솜이, 해오른….
이름을 외우기가 어려워 시작한 놀이에 열이 올라 열중하다 보니 모둠원을 한데 묶는 최상의 놀이가 되었습니다. 모둠 이름을 어찌나 재미있게 짓는지, 여름학교를 몇 해 계속 다니다 보니 아이들 수준이 높아졌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바람이 들어있는 모둠 이름이 많이 나왔습니다. 서로 돕는 아이들 야야야, 곤충사랑, 개똥벌레, 푸른햇빛, 호랑나비, 즐거운 등등. 자기 모둠 이름을 소리높여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 전체놀이는 줄다리기, 꼬리잡기, 줄넘기로 이어집니다. 아이들 모두 정말 몸을 바쳐 신나게 놉니다. 오히려 선생님들이 지쳐서 아이들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멍하고, 뙤약볕 아래서 조금만 돌아다녀도 기운이 쏙 빠집니다. 삼진수련원의 시원한 잣나무 그늘이 자꾸 아쉬워집니다.
1차 때는 첫째 날 비가 오더니, 둘째 날엔 많이 못 놀게 해 미안하다는 자연의 선물인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아이들에게 평생에 남을 추억을 안겨 주었습니다. 은하수가 펼쳐지고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겨울자리인 오리온까지 손에 잡힐 듯 반짝입니다.
예전엔 가끔 서울에도 이런 하늘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태어나 별다운 별이라고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한여름 밤의 별의 무대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족했습니다. 모두가 시인이 되어 봅니다. 2차 때는 반대로, 한낮엔 맑았지만 밤에는 날이 흐려 별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야외 무대에서 슬라이드를 멋지게 볼 수 있었지요.

8. 마무리

해를 거듭하며 확실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여유 있게 잘 놀다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교사인 우리들은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한 발 뒤에 물러서서 보게 합니다. 늘어진 모습들을 보고 그냥 어찌하지 못하고 저도 뭉개고 앉아 버립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참으로 잘 놉니다. 딱지 따먹기, 또랑물, 문제아, 여름이… 많은 노래를 부르며 배웁니다.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지 모르는지 그저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미안한 마음. 마무리 인사를 하며 다음 겨울학교에 꼭 오겠다고 하고 모둠교사와 친구들과도 약속을 거는 모습을 보니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벌써 제가 참여한 여름학교만도 다섯 번째입니다. 여름학교를 시작한 지는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해마다 부쩍 커서 오는 아이들에게 내년엔 또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제는 솔직히 좀 두려워집니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과 무엇을 나누고 있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사가 즐거워야 아이들이 즐겁다'가 살림학교의 신조(?)였는데 즐겁기보다는 이런저런 무거운 마음이 밑에 깔려서인지 아이들과 좀더 가깝게 가지 못해서 여름학교 내내 조금 우울했습니다.
지금 프로그램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따뜻한 눈빛이 없는 여타의 이벤트 사업체의 캠프만도 못한 계절학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섭니다. 포장만 '스스로 살리고 서로를 살리는 학교'가 아닌가? 지금껏 겁 없이 뛰어다니다 이젠 스스로 내공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진정한 교사인가? 계속되는 물음엔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5일 내내 트럭을 몰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준 박형만 선생님께 아이들은 '트럭 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며 또 태워달라고 조릅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는 언니 오빠들에게 아이들은 메일 주소를 적어 달라고 쫓아다닙니다. 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 다음을 기약하는 거겠지요.
5일씩이나 아이들과 함께 하신 전영경, 박진화, 이기옥 선생님과 모든 참여하신 선생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름학교를 위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이글

박민경(원미초 3학년)
해오름에 다녀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해오름에 참 잘 간 것 같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느낀 것은 전체 놀이이다. 비록 우리 팀이 졌지만 재미있었다. 줄다리기를 할 때 손이 많이 아팠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뒤로 엎어지면서 끌으니까 손이 덜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몇 조 선생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선생님이신 것 같다.
물놀이도 재미있었다. 어떤 남자 선생님 때문에 물을 많이 먹었지만 말이다. 귀하고 코에 물이 많이 들어갔다. 그곳이 내 허리까지 오는 곳이라 팔을 땅에 짚어도 귀, 코에 물이 들어갔다. 왜냐하면 누워 있는 상태라고 그랬고, 다리를 땅에 짚기가 힘들어 팔로 땅을 짚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난 그 남자 선생님이 무서워졌다. 으∼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다.
재미가 없었던 건 밤이나 아침 때 산책을 가서 벌레를 잡는 것이었다. 벌레가 너무 무서워서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은이랑 혜주랑 같이 다녔다. 그리고 아침에 혜주랑 정은이랑 선생님이랑 산책을 갔는데 개미를 보았다. 그런데 거미가 너무 컸다. 그래서 그런지 거미가 너무 무서웠지만,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통 안에 잡힌 벌레들은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통에 있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벌레도 별로 무섭지 않다. 벌레를 보고 소리지른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해오름은 우리를 키워주는 곳 같다.
겨울 캠프 때도 다시 오고 싶다.

이선희(부천북초 3학년)
나는 처음으로 해오름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설레이고 좋았지만, 가족들을 2박 3일 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싫기도 했다.
캠프 첫날 나는 아빠 차를 타고 부천역에 내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가서, 다시 강원도 횡성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먼 거리지만 빨리 도착한 것 같았다.
도착해서 보니 1차 캠프에 참여한 친구들이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모둠끼리 만났는데 나는 2 모둠이 되었고, 또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선희 선생님 반이 되었다.
우리 모둠은 미림, 용원, 원규, 승현, 지윤, 진욱, 한솔, 이렇게 8명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친구들과 나는 함께 2박 3일을 지내게 되었는데 모르는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조금 낯설고 어색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나무를 갈아 이름표를 만들었는데 내가 사포에 긁혀서 손가락에서 피가 좀 났다. 그리고 모두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자기 모둠 소개도 했다. 우리 모둠 이름은 '즐거운 모둠'이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모둠 소개를 하려고 하니 떨려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각자 자기 모둠 소개를 하고 나서 냇가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옷을 콩즙을 먹여 계속 대야에 담그어 두었다. 누에 세밀화도 그리고 슬라이드 영상도 보았다. 잠을 잘 시간이 되어 언니와 친구들 틈에서 자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둘째 날이 되어 우리는 감자를 캐러 갔다. 트럭을 타고 가는데 풀냄새도 나고, 또 깨끗한 공기를 마시니까 기분이 더 상쾌하고 참 시원했다. 감자 캐는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감자를 캐다 보니 뱀도 있고 땅 속에서 벌레도 나왔다. 하지만 내가 캔 감자를 보니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땀도 많이 나고 더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돌아와서 콩즙을 먹인 옷감을 햇볕에 말리고 흙물 내리기를 했다. 황토에 옷 넣고 밟아도 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들여지지 않아서 어려웠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물들이기를 무사히 끝내고 옷을 햇볕에 말렸다.
전체 놀이를 마치고 우리들은 다같이 돗자리에 누워서 별을 관찰했다. 나는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별들이 하늘에 박혀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별이 움직이는 것을보고 '그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별자리를 보고 방으로 들어와 지윤이와 정은이 옆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잠을 설치면서 잤다.
2박 3일간의 여름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감기 걸려 캠프에 와서 더 아프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공기 좋은 곳이라 그런지 감기가 거의 다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도시는 공기도 안 좋고 시끄러운 소음도 많은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모두 안녕!

이승욱(원미초 5학년)
서울에서 강원도 횡성까지 긴 시간이 걸려 청일 주말농장에 도착했다. 그때는 아직 1차 애들이 있었고, 황토 염색한 옷도 보았다. 나도 빨리 황토염색을 해보고 싶어졌다.
첫째날은 2시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이름은 '모둠별 마음열기'였다. 난 맨 처음으로 찬용이와 관형이, 재진이를 사귀었는데 그애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음은 산과 계곡에 사는 생물들을 관찰했고, 식물도 관찰해 보았다.
저녁을 먹은 후엔 옷에 콩즙을 먹여 하루 재우기 활동을 했다. 콩즙먹일 옷은 하얀색인데 그것을 가져가기 전에 맑은 물에 삶아야 더 황토 염색이 잘 된다고 한다. 곤충 세밀화도 그렸는데 난 누에를 그렸다. 누에가 그럭저럭 잘 그려져서 그림 옆에 '생각보다 귀여운데∼'라고 써 넣었다. 슬라이드도 상영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다 보니 하루가 홀딱 지나갔다.
둘째날엔 아침을 먹은 후 콩즙 먹인 옷감 햇빛에 말리기, 흙물 내리기를 했다. 그리고 농사체험도 했다. 농사체험은 힘들지만 우리가 캔 감자를 먹을 생각을 하니 힘이 났다. 그런 다음 황토에 옷 넣고 밟기를 했다. 잠깐 동안 물놀이를 한 후 염색한 옷감을 헹구어 말렸다.
모닥불 놀이는 참 재미있었다. 노래도 부르고 사물놀이도 하고 말이다.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밥도 맛있고 모든 것이 정겹다. 하아∼이제 다시 도시로 돌아가니 왠지 안타깝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여름캠프는 끝났다. 동생들아, 안녕. 샘('샘'은 경상도 사투리로 선생님이란 뜻이다)! 여태까지 많은 걸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지윤(원미초 2학년)
저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주말농원에 다녀왔습니다. 2박 3일 동안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보고 싶을까봐 가족 사진을 가져가니 마음이 놓여서 울지 않고 의젓하게 잘 참았습니다. '나를 살리는 들살이'라는 제목으로 첫째날에는 황토 염색 첫 번째 활동을 했는데, 엄마께서 준비해주신 흰색 티셔츠에 콩즙을 먹여 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려고 샤알레를 가지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깜깜한 밤이어서 곤충과 식물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선생님과 함께 산책하러 나갔는데, 어젯밤보다 곤충과 식물이 잘 보였습니다. 내가 본 곤충들은 나비, 잠자리, 벌, 애벌레 등이었고 웅덩이엔 소금쟁이, 개구리, 짝짓기하는 벌레들도 있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황토 염색 두 번째, 콩즙 먹인 것을 햇볕에 말리기와 흙물 내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감자를 캐러 밭으로 나갔습니다. 부드러운 흙을 파 보니 주렁주렁 열린 감자가 불쑥 나왔습니다. 나는 노란 감자만 있는지 알았는데 자주 감자가 있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자주 감자가 맛있게 보였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황토 염색 세 번째, 황토에 옷을 넣고 신나게 노래하면서 밟았습니다. 밟은 다음 햇볕에 말리기를 하였습니다. 햇볕에 말리는 동안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내가 캐 온 감자와 옥수수를 먹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계곡에서 송사리 같은 귀여운 고기들도 잡았습니다.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흘러서 맑은 물고기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물고기들과 같이 맑은 물에서 수영하고 나니 내 몸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여름 별자리 관찰을 했지만 나는 별자리 모양도 이름도 몰라서 관찰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별자리에 관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깜깜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총총 떠 있는 것이 예뻤습니다.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부천보다 많은 별을 본 것 같습니다.
셋째 날엔 황토 염색 네 번째, 황토 물에 넣고 밟아 말린 티셔츠를 맑은 물에 헹구어 말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맑은 물에 헹구어 말리니 황토물이 나왔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뒤 황토 염색한 티셔츠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계곡에 있는 맑은 물이 한강까지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글

정은지(살림학교 교사)
2차 때 함께 했던 1모둠의 서로 돕는 아이들 친구들아, 잘 들어갔지?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전화보다는 빠른 글이 더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살림학교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니 벌써 많은 친구들이 좋은 추억들을 남기고 갔더구나. 너희들이 여름학교를 끝내고 적어준 글과 그림을 보며 선생님도 또 다시 여름학교의 즐거운 추억에 잠긴단다.
1학년 우진이, 호정이. 함께 하며 더 즐거웠니? 둘이서 이곳저곳 같이 다니고, 물 속에서 끝까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놀더구나. 양치질하라는 어떤 샘의 말씀에 "저, 이빨 없어요."하는 말에 샘들을 정말 기절할 만큼 즐겁게 해 준 우진이. 1학년이지만 집에 가고 싶다며 한번도 찡얼거리지 않고 너무 놀아 피곤할까봐 저녁을 먹고 재우니 쌕쌕 잘 자다가, 캠프화이어 할때 깨우니 또 나와 열심히 논 너희들은 정말 착하고 예쁜 친구들이었어.
2학년 혜주. 열심히 참여하며 게임할 때 자기가 모둠장이라며 일어나 게임을 리드하던 적극성이 인상적이었어. 언니들과 열심히 놀며, 선생님이 열심히 생활한 혜주의 모습을 1학년 때부터 지켜보아 정말 많이 컸다고 쓴 편지에 "정말 저 많이 컸어요. 선생님 사랑해요."라며 답장을 주어 선생님의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었지?
3학년 민경, 정은. 어쩜 그렇게 이쁘게 이야기들을 잘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척척 찾아서 잘하는지. 처음이라며 잘 지도해주셔서 고맙다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기뻤다는 민경아! 선생님도 너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신났었다고. 게임을 할 때 모둠 구호를 신나게 외치고 노래도 신나게 물놀이도 열심히, 뭐든 적극적으로 하는 널 보며 선생님도 즐거웠단다. 2박3일의 생활이 너무 즐거워 겨울학교에서 또 만나자는 정은아! 선생님은 너의 편지의 글처럼 널 잊지 못할 거야. 또 잊지 않고 기억할거야. 여름학교에서처럼 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지?
4학년 민준, 정원. 캠프는 처음이라더니 민준이는 처음이 아닌 것 같았어. 욱성이 형이랑 다른 친구들과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황토염색할 때 옷이 더러워질까봐 걱정했지? 그래도 선생님이 얼굴에 황토를 바르니 처음엔 화내다 금방 재미를 느끼고 조금씩 빠져들더구나. 호미질도 낯설고 어색하지만 자꾸 해보면 재미도 있고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니? 정말 열심히 재미있게 논 계절학교였지?
전에 언젠가(2학년쯤으로 선생님은 기억하는데) 선생님과 함께 했던 정원아! 그때부터 쭉 선생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했지? 선생님이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주었다고 한 너의 편지는 지금도 읽으며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단다. 선생님의 부족함이 그래도 너희들에게는 많은 사랑으로 다가간 것 같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말없이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해 주고 언니와 함께 자고 싶다던 말에 편한대로 하라고 했는데, 언니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곧 포기하고 선생님 옆에서 새근새근 잘도 자더구나. 열심히 활동하는 정원이를 많이 칭찬해. 먼 곳에서 와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었지?
5학년 욱성. 지금껏 보아온 욱성이의 모습 중에 이번 여름학교에서의 욱성이는 선생님들이 왜 해오름 캠프가 한번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이야기들을 하는지 몸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해. 열심히 동생들과 놀고 챙겨줄 줄 알고, 항상 보아오던 얌전하고 내성적인 모습이 아니라  정말 터프하고 몸바쳐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깜짝 놀랐어. 사실 모둠끼리 게임할 때도 욱성이가 안 일어날거라 생각했는데 제일 큰 형으로서 동생들을 대표해 정말 열심히 우리 팀을 이기게 해 주었고, 염색할 때도 처음엔 망설이다 열심히 함께 해 주어서 정말 좋았어. 선생님한테 보내 준 욱성이 사인 잘 간직할게.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거라 믿어.
서로 돕는 아이들 친구들아. 서로 함께이기에 '나'보다는 서로를 도우며 2박 3일 동안 정말 즐겁고 신나게 놀자는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어 고맙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너희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힘을 주는 여름학교였으리라 선생님은 생각해. 너희들을 선생님도 사랑해. 아주 많이.

황혜선(살림학교 교사)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숨막힐 정도로 아스팔트에서 뿜어대는 열기.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싶었지만 예정된 음악회 관람 계획이 있었기에 억지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예술의 전당으로 돌리고 바이올린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미친듯이 잠을 청했단다.
깨어보니 8시. 그래도 잠이 안 깨 뒤척이며 9시까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눈 앞에는 시원한 청일농원 계곡 물줄기와 예쁜 바위, 돌, 송사리들이 아른아른거리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달오름 친구들의 얼굴도 어른거리고 말이지.
달오름 친구들, 어떻게 하루를 보냈니?
너희도 나처럼 멋진 여름 해오름의 시간들을 떠올리는 건 아니니? 여럿이 어울려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큰소리도 치고 야단도 쳤지만 너희들 개개인은 다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들이라는 것 잘 알고 있어.
우리 모둠의 경로당, 아니 장수 만세 어르신네, 동훈이와 형욱이!
청일농원에 여장을 풀자마자 날렵한 몸놀림으로 신기한 애벌레, 여치, 콩벌레, 방아깨비 등등을 잡으며 뛰어다니는 너희 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어디 있나 찾아보면 계곡 물가에서 물장구 치는 모습, 또 어딨나 찾아보면 곤충을 잡으러 다니고 어쩌면 너희들은 정해진 틀을 싫어하는 아이들처럼 너무도 행복하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 나도 즐거웠단다.
또 얌전한 듯 얌전하지 않은 안 브라더스!
어린 나이인데도 전혀 찡그리지 않고 해맑게 웃음지으며 생활하는 의젓한 재완이, 가끔씩 수줍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지만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말썽부리지 않고 너무도 의연하게 생활한 재완이, 많이 칭찬해주고 싶구나. 또 물놀이를 품위있게 하려고 살살 도망다니던 재현, 네 옷 적셔놓았더니 그때부터 열심히 어찌나 잘 놀던지. 황토염색할 때도 옷 버릴까봐 몸 사리더니 나중에는 재미있었지? 그래, 놀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던져서 노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이것 저것 따지면서 놀면 흥이 나겠니?
한데 똘똘 뭉쳐다니며 팀웍을 자랑하던 삼총사, 수진, 상원, 다희.
겨울학교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킬 거지? 너희는 어느 자리를 가더라도 멋지게 생활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 서로 지킬 것을 지켜 줄 줄 알고 피해가 되는 행동을 안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평소에 너희들이 바른 생활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단다. 열심히 밟은 황토옷을 잘 입고 다니며 해오름의 시간들을 기억해주렴.
끝으로 귀여운 승연!
어찌나 아는 것도 많은지. 재주도 많고 예의도 바르고 센스도 빠르고 몸도 날래고 서비스 만점!!! 명주꼬리하다가 과격한 힘싸움에 찢어진 옷 어떻게 됐니? 떨어진 단추는 찾았니? 가는 손목으로 내 허리를 꼭 붙잡으려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런데 온 힘을 다해 꼬리를 잡은 이 추억은 오래 남을 만큼 소중할 거야. 네가 쓴 시처럼 밝고 순수하고 맑게 잘 자라라.
달오름 친구들, 너희들이 바른 생각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사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자연 속에서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지은 것 오래오래 간직하길 바래. 우리 모두 몸과 마음 살찌워서 겨울에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