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 만들기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들공부

이연희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늘 뿌연 안개 속을 지나온 기억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파란 하늘 아래서 서해대교를 지나왔습니다. 돌아올 때는 피곤해서 잠을 자거나 비디오를 보기 때문에 가는 길 내내 바다를 보게 해야지 했는데, 그만 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바람에 행담도(휴게소)까지 가 버렸습니다.
'빌딩 숲'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도시는 빌딩 천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사각형의 도시를 지나 시원스런 파란 바다를 보는 것은 몸의 독소를 빼내듯 상큼합니다.
자연은 참으로 많은 것을 줍니다. 가슴 한켠에 쌓아둔 원망과 질책을 털어버리게 하고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처럼 빛나고 밝게 살아보라고 얘기하는 듯 합니다. 앞으로 간다고 갔는데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조차 모르게 바쁘게 몰아온 듯한 지난 살림학교의 모습에 허탈함이 그득했는데,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늘상 참되고 선함을 얘기하면서도 돌아보면 추악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으로 내가 아이들을 만나도 되는 건가? 고민만 잔뜩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 밑에서 또 한번 자기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거듭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모두 창을 보라고 했습니다. '와아' 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단 1분도 지켜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여전히 달립니다.
해오름 들공부에 처음 온 아이가 놀라는 듯 저를 쳐다보고 묻습니다.
"선생님, 여기 처음 오셨어요?"
모두 커튼을 치고 밖을 보라고 했던 저의 모습이 그 아이에게는 오지에서 와서 바다를 처음 보거나 배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촌스럽게 보였나 봅니다. 자기는 많이 봐서 안 봐도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많이 봤지만 볼 때마다 다르던데?"  
광활한 바다가 얘기하는 소리를 차분하게 들을 수 있다면 이미 아이들이 아니겠지요. 자기 옆에 앉은 친구와 재미있게 놀면서 가는 게 좋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게 더 신이 납니다. 아무리 주변 경치가 좋아도 아이들의 눈에는 당장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희뿌연 하늘을 볼 때 아이들에게 떠올려지는 서해의 하늘이기를 바랍니다. 또 오랜만에 드물게 드높은 파란 하늘을 보면 서해의 하늘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늘이나 바다나 산을 대하면 차분해집니다. 친구와 인사를 나누듯 말없이 건네는 자연의 인사를 받고 다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자연이 말이 없으니 나도 말이 없고 그러면서 차분해집니다. 하지만 소음과 속도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차분함이 따분함과 일치하더군요. 느긋함과는 전혀 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해 온 현실의 반영이겠지요.

자신을 한 번 들여다보고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를 배우는 살림학교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 들공부에서는 토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찰흙으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형상을 만들었던 과정과는 좀 차이가 있었습니다. 말없이 인사하는 흙에게 같이 인사하며 흙과 시간을 보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흙이 내 손에 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몇 년 전 박형필 선생님과 토우를 만들 때와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했는데, 그새 세대가 바뀐 듯 3학년 아이들 대부분은 눈감는 것을 아주 힘들어했습니다.
왜 눈을 못 감지? 한참 세상에 관심이 많을 때라 그런가?
아이들 중에는 눈을 감으면 무섭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잠깐인데도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실눈을 뜨고 있거나 아예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고 눈을 뜨고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명상 시간을 괜히 넣었나?' 시간에 쫓겨 차분히 진행도 못하면서 괜한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아이들과 충분한 얘기를 나누었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고장난 마이크 탓에 차안에서 충분히 설명을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흙'하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유치원 때는 흙장난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학교에서는 찰흙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내가 밟고 사는 흙이 아니라 포장에 쌓여 문구점에서 파는 흙으로 밖에 느껴지진 않을까요. 휴일에 뒷산이라도 가야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시의 삶이 아이들에겐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합니다. 나와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든든한 생각보다는 지저분해서 바로 치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흙입니다. 늘상 주변에 있으면서도 별로 느낌이 없는 흙이 아이들에게 흙피리나 황토염색으로 만나지며 새롭게 살아납니다.

1. 흙으로 만들어진 것을 찾아봐요.

요즘엔 거의 시멘트로 집을 짓지요. 그런데 예전에는 대부분 흙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흙으로 집도 짓고 항아리도 만들고 또 여러분이 학교에서 쓰는 찰흙도 만들고… 또 뭐가 있을까요?
전에 만들어 본 적이 있는 흙피리도 흙으로 만들고 황토염색을 했던 황토도 바로 흙이지요. 오늘 우리가 만들 토우도 흙으로 만드는 거예요. 흙은 우리와 아주 가깝게 있기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공기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만나는 흙은 우리가 보통 산이나 길에서 밟는 흙이 아니에요. 땅 속 깊은 곳에서 흙을 퍼 올려 약간 가공을 해서 '옹기토'라는 것을 만들었대요.
찰떡을 먹어봤지요. 찰떡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쫀득쫀득해졌을까요? 찐쌀을 떡메로 많이 쳐서 그렇게 된 거예요. 요즘엔 기계로 다 하지요. 토우를 만들 흙도 공기가 빠지게 많이 쳐줘야 고운 입자가 되겠지요. 계속 쳐주면 흙이 찰떡처럼 부드럽고 쫀득쫀득해져요. 바로 이렇게 흙의 끈적끈적한 정도를 '점도'라고 해요. 토우는 점도가 높은 흙이 좋아요.
자, 이제 우리 앞에 있는 흙을 보세요. 참 고운 흙이지요.

2. 흙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요.

흙덩이를 자기 앞에 놓고 눈을 감아 봅시다.
흙은 우리에게 곡식도 주고 채소도 주고 많은 먹을거리를 줍니다. 산길을 걸어가면 푹신한 땅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땅속 미생물들이 흙을 먹고 뱉어내고 지렁이, 개미들은 부지런히 땅을 골라줍니다. 흙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눈을 감은 채로 공을 만들어 보세요. 이제 손이 눈이 될 거예요.
예쁘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놔두세요. 처음 생각한 대로 잘 만들어질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눈을 감고 손의 감각으로만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예쁘게 만들 욕심에 흙을 책상에 굴리는가 하면 눈을 뜨고 찌그러진 곳을 다듬는데 열중입니다.

3. 공을 건네며 인사해요.

눈을 뜨고 했건 감고 했건 아이들이 제 자리에 놔 두고 간 공은 한 손에 꼭 쥐어 질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왔는데 점심을 먹고 선생님께서 흙을 자르는 동안 아이들과 공을 건네며 인사를 했습니다. 1, 2, 3학년 각기 따로 모둠이고  4, 5학년이 한 모둠이었는데 모둠원끼리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부르고 난 뒤 옆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공을 건네줍니다. 한 바퀴 다 돌면 인사가 끝납니다. 왼손에서 오른 손으로 한 손으로 받고 다시 건네주는 아주 단순한 과정인데도 아이들은 너무 어려워합니다. 옆 친구 이름을 몰라 부르지 않고 건네주고 내 손에 오기 전에 빼앗듯이 받아가기도 하고 손을 뒤집기도 하고….  몇 번 설명을 해야 알아듣습니다.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처음 본 친구에게 내 마음을 흙에 실어 반가움을 전하는 인사는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 덕에 옆 친구의 이름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4. 토우를 만들어요.

잠시 눈을 감고 어떤 모양을 만들지 생각해보세요. 토우는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거예요. 내가 가장 기쁠 때나 슬플 때를 떠올려 보세요.
먼저 똑바로 선 자세의 우리의 몸을 보고 길다란 직사각형을 만듭니다. 거기서 머리부분을 동그랗게 만들고 목을 만듭니다. 그 다음 몸통을 기준으로 양팔을 만듭니다.
(박형필 선생님은 매번 선생님의 몸을 보게 하시고 그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습니다.)
토우의 특징은 흙을 뜯어서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한 덩이에서 팔 다리를 내오는 거예요. 몸통에서 팔을 먼저 뽑아내고 다음에는 손으로 조심조심 밀어내면서 몸통을 만들고 다리를 가릅니다. 생각보다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정신을 집중해서 흙에게 여러분의 기쁠 때와 슬플 때를 얘기해 주면서 그렇게 되어보자고 얘기해 보세요.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졌으면 이제 앉아있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토우의 허리 부분을 약간 구부려 보세요. 꺾어진 부분은 손끝으로 다독거려 공기 구멍이 없도록 매끄럽게 만져 주세요. 원하는 모습이 만들어졌지요. (서 있는 모습은 심봉이라는 것을 넣어서 해야 하는데 작업이 좀 복잡해요)
생각하는 사람,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 춤추는 소녀, 인사하는 사람,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 다양한 형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가마에서 한 번 구워내면 멋진 토우가 만들어집니다.
토우 만드는 시간은 되도록 30∼40분 안에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손에는 열이 있어 만지면서 조금씩 흙이 마르기 때문에, 너무 오래 주물거리면 굽다가 터지기가 쉽다고 합니다. 집중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하라고 하니 뭔가 숙제를 다 끝낸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노는 것처럼 후딱 해치워 버리고 신나게 놉니다.
다 만들어 놓고 일찍부터 나가 노는 아이들도 있고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꼼꼼히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분신들을 만들어 놓고 밖에서 축구도 하고 밭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며 노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노작활동은 아동들에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의 관계를 인식하도록 해주며 자신의 내부에 존재해 있는 육체, 영혼, 정신이라는 세 요소를 하나로 통합시켜 줌으로써 전인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깨어 있는 부분이 바로 손과 발이며 이를 통하여 외적세계의 사물과 상호 작용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인간에게 자연이라는 외부세계는 이해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살아있는 경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그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인간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얻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살림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노작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치집, 솟대, 장승, 장서인, 도깨비 인형, 토끼 인형, 고깔, 꽹과리채 등을 만들고 옥수수도 따고 감자나 고구마도 캐고 밭에 거름도 주고 풀도 뽑는 등 농사일도 좀 거들어 보았습니다.
뭔가를 만든다는 게 단순히 손만 움직여서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몰입하면서 자신의 혼을 불어넣으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갑니다. 누군가 곁에서 뭐라 해도 푹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광채가 나는 것도 같습니다. 아직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한 아이들은 주위를 배회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과 여건이 맞으면 거의 자신도 뿌듯해 할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잘하고 못하고 정해진 잣대만 들이대지 않는다면 모두가 예술가가 됩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흙에서 나오는 벌레들이 징그럽고 무섭기도 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흙 속에서 보물처럼 나오는 감자가 신기하고 흙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머리로 뭔가를 주입하려는 것보다 아이들은 몸을 통해서 전해지는 감각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합니다. 몸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슈타이너에 대한 이해가 짧지만 노작활동에 관해서는 공감이 많이 갑니다.  
마냥 들떠 있는 아이들에게 왜 우리가 서산까지 와서 이런 활동을 하려고 했는지 설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 또한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강요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1, 2학년이라 하더라도 되도록 선생님을 따라 스스로 해 보고 자신을 믿는 연습을 시켜 볼 욕심으로 거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그대로 따라 하며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진 토우일지라도 자신이 만들지 않은 것은 아이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하다가 생각한대로 되지 않으니까 울어버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의 혼자의 힘으로 완성을 했습니다.
토우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고 따라하면서 자기 몸도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형상을 만들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껴봅니다. 뚝딱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결과보다는 내가 그 과정에 충분히 몰입하면서 느끼는 감동이 더 오래 갔으면 합니다. 단순한 과정일 것 같은 토우 만들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훗날에 느껴지겠지요.
들공부에 참여하신 어린이와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글

박기수 (2학년)

오늘 해오름 살림학교를 갔다. 오늘은 가서 흙을 만져보았다.
그 다음에 축구를 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다 먹으면은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된다. 선생님께서 부르시면 들어가서 토우를 만든다.
내 토우의 이름은 "고민을 하다가 앉아서 술을 마시는 토우"이다. 토우가 완성되면 집에 가져가서 가지고 놀거다.
다음에는 선생님께서 또 와서 솟대를 만든다고 하셨다.
참 재미있었다.

박기호 (4학년)

우린 서산에 다녀왔다. 토우를 만들러…. 서산에 가서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사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토우 만드는 법도 알았고 그 유래도 알게되었다.
날 도와주신 박형필 선생님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11월 9일 솟대를 만들러 가서도 내가 모르는 유익한 정보를 알아와야겠다.
다시 한 번 날 도와주신 박형필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김래현 (1학년)

언니와 함께 해오름 들공부를 떠났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니 서산이라는 곳에 닿았다. 우리는 앞치마를 두르고 찰흙을 만졌는데, 참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처음에는 구를 만들었다. 구를 만들 때 눈을 감고 만들었다. 그런데 눈을 너무 오래 감고 있어서 구가 잘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눈을 감는 척하다가 살며시 눈을 떠보니 울퉁불퉁한 데가 많아서 손으로 꼭꼭 눌러 주었다. 그런 다음 다시 눈을 감고 만들었더니 눈을 뜨고 만든 것보다 더 예쁘게 만들어졌다.
구를 만들고 나서 토우를 만들었다. 나는 처음에 토우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사람을 만드는 거라 해서 쉽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들어 보니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사람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고 맨 위에 동그랗게 머리통을 만든다. 양쪽에 팔을 만들고 다리도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었는데, 자꾸 쓰러져서 긴 치마를 입은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토우를 만들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으앙" 하며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넘어져서 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자기 생각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속상해 우는 거라고 했다. 사실 나도 울기 대장인데 그 아이는 나보다 더 눈물이 많은가 보다.
우리가 갔던 곳에는 2살 반 된 강아지 헤라와 엄마개인 콜리가 살고 있었다. 콜리는 몸집도 크고 무서워서 헤라와 놀고 싶었다. 2학년인 지영이 언니와 함께 헤라의 목에 걸린 줄을 잡아 당겼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아지 풀로 코를 간지럽히니 한 발자국씩 우리 쪽으로 나왔다. 또다시 어떤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개밥으로 꼬셨다. 초록색 완두콩을 따고 싶었는데 자꾸 검정 콩만 따게 되어 조금 실망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영이 언니와 끝말 잇기 놀이를 했다. 캥거루, 루비, 비옷 이렇게 잘 가다가 내가 산기슭이라고 하자 언니는 슭기산이라고 말해버려 깔깔대고 웃었다. 다음에는 솟대를 만든다고 한다. 11월이 기다려진다.

김정연 (3학년)

해오름 들공부를 가는 날이다. ‘여름아이’라는 패말을 목에 걸고 별을 찾았던 여름 캠프 후에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무엇을 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 오늘은 ‘토우’를 만들 것이라고 하였다.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찹쌀떡처럼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옹기토라는 흙으로 만들면 제일 잘된다고 하셨다.
먼저 눈을 감고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점점 답답해져서 실눈을 뜨고 굴렸다. 떴다 감았다를 되풀이하며 만든 동그라미는 아직도 울퉁불퉁한데다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 다음 길쭉한 기둥을 만들고 동글동글 머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몸에서 빼 팔을 만들었다. 나는 치마 입은 여인을 만들었다. 동글동글한 머리, 길다란 치마, 인사하려고 흔드는 손, 정말 내가 보아도 너무 잘 만들었다. 언젠가 중국 문화를 배우며 토용이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다. 멋진 말을 만들려고 했는데. 차츰 다리가 짧아지며 몸도 뚱뚱하게 변해 하마 비슷한 이상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힘들게 만든 다리 한 개마저 부러져 무척 속상한 적이 있었다.
같이 온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만들었다.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 엎드려 있는 모습, 하늘을 보고 팔 다리를 쫙 벌려 누워 있는 모습, 마치 찰흙 왕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토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몸 따로 팔 따로 다리 따로 뜯어서 붙이는 게 아니라, 원래 몸통에서 빼내어 만드는 것이다. 예쁘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두면 처음 생각한 대로 잘 만들어진다고 했다. 또 너무 오랫동안 흙을 만지작거려도 안된다. 우리 손에 열이 있어 조금씩 흙이 말라간다고 하셨다
이 토우는 옛날에 장난감이나 무덤에 넣을 때 쓰였다 한다. 이제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지기만 하면 가지고 놀 수도 있고, 내 책상 위에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 내 마음이 담긴 토우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다. 흙 냄새와 가을 바람이 어우러진 멋진 하루였다.

안재현(호수초 3학년)

아침 일찍 해오름 살림학교에서 한솔 관광버스를 타고 서산에 갔다. 거기에 가자마자 놀았다. 그리고 찰흙과 얘기를 나누었다. 찰흙은 참 부드러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니 손이 눈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놀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또 놀고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난 그때 "도대체 오늘은 공부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또 찰흙이랑 얘기를 할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지점토를 갖고 사람 모양을 만들었다. 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다. 어렸을 때 어디 가서 엄마랑 "생각하는 사람" 조각을 본 적이 있어서다. 다 만들고 말리는 것만 남았는데 우리는 또 놀았다. 알로에 뒤에 숨어서 숨바꼭질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선생님이 모이라고 해서 우리는 선생님 말을 들었다. 그랬더니 다음달에 또 와서 뭘 만들고 그리고 오늘 만든 것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안재완(호수초 1학년)

아침 8시에 해오름에서 도자기를 만들러 서산에 갔다. 근데 난 배낭을 멘 사람을 만들었다. 이 토우가 잘 만들어지면 참 영광이다. 내가 토우를 만들다 허리를 뿌러뜨려서 선생님이 잘 못하면 말리다가 터진다고 했다. 과연 내 토우는 터질까? 어디가 터질까? 아니면 그냥 잘 나올까? 궁금하다.

참고자료

1. 토우

흙으로 만든 인물상.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의 형상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생활용구 ·집 등을 본떠 만든 것을 총괄해서 일컫기도 한다. 고대에 토우가 만들어졌던 목적은 장난감으로서의 것도 있겠지만, 주로 주술적인 우상(偶像)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후에는 또 무덤 안에 바쳐진 죽은 자의 껴묻거리[副葬品]로도 만들어졌다.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토우에는 특히 여성상이 많다. 이러한 여성상은 얼굴이나 세부 표현은 극히 간략하고 여성의 특징인 유방과 엉덩이, 허리 등을 과장한 나체상이 많은데, 이는 여성의 생식 능력과 토지의 생산력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여성의 생산성을 신성시하던 지모신숭배(地母神崇拜)의 주술적 행위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에게해역 등에서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이러한 토우가 등장하였다. 중국에서도 양사오문화[仰韶文化] 이래 토우가 등장하여, 은대에는 무덤 안의 껴묻기용으로 토용(土俑)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조몬[繩文]시대 중기 이후 토우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 토우는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는 고의로 신체의 어느 부분을 잘라서 질병이나, 상해(傷害) ·재해를 여기에 전가시키려 한 주술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분(古墳)시대에 들어오면 하니와[埴輪]라는 독특한 유물이 나타나는데, 이는 토제로 갖가지 인물이나 동물 ·기물(器物) 등을 만들어 거대한 봉토분(封土墳)의 주변에 둘러놓은 것으로, 토우의 하나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국은 신라의 토우가 대표적이며, 고려시대에는 그 예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오면 백자로 무덤에 인물 ·동물 ·생활용기 등을 만들어 명기(明器)라 하여 껴묻기한 것이 있다. 한국에서 토우라 하면 대개 신라의 그것을 가리킨다. 신라의 토우는 좁은 의미로는 독립된 상으로 표현된 인물상이나, 동물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토우의 제작 목적의 가장 중요한 것이 주술적 신앙표현이라든지, 무덤의 껴묻기용품에 있다고 할 때 토우의 범위는 좀더 넓어진다. 즉 지금까지 이형토기(異形土器)라 부른 상형토기(象形土器)라든지, 토기의 장식에 쓰인 장식용의 작은 토우들이 그것인데, 그 출토 상태나 사용 목적을 볼 때 위의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토우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독립된 인물상이나, 동물상으로서의 신라토우는 그 의미는 중국의 도용(陶俑)과 같은 것으로, 말탄 무사를 나타낸 기마상,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인물상 등을 비롯하여 독특한 몸짓으로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10~20 cm의 작은 토우들이 알려져 있다. 특히 남자나 여자상 가운데에는 성기를 과장해서 표현한 경우가 눈에 띄는데, 이는 고대인들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2. 신라의 토우

천년왕국 신라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 놓았다. 후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제압하고 그들의 역동문화(力動文化)와 화려문화(華麗文化)를 고스란히 넘겨 받으며 문명국 신라의 시대를 꽃피운다.
반면에 전기 신라는 힘차고 대륙적 기상이 넘치는 고구려, 해양문화의 꽃을 피운 나무와 기와의 나라 백제와 달리 상대적으로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소박하면서도 투박하다. 그리고 작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라토우(新羅土偶)'다. 이는 신라인들이 점토로 빚은 흙조각품이다.
그런데 신라토우는 '신라에서 5∼6세기 무렵'에만 성행했고 물론 고구려나 백제에는 없다.
원래 주로는 사후의 세계를 믿었던 신라인들이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품으로 만든 것인데 풍요로움과 다산(多産)을 기원하기 위해서 등 여러 이유로 만들어졌다.
신라토우의 크기는 작다. 보통 5㎝정도의 크기다.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여인」처럼 3.2㎝짜리 이거나 커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신라인은 흙으로 온갖 모습을 빚어냈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남녀상」은 남자 8.4㎝ 여자 8.6㎝의 크기인데 신라의 현악기 중 하나로 추정되는 악기를 타는 남자와 이에 맞춰 가슴에 손을 모아 노래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남자의 표정은 즐거움에 겨운 밝고 건강한 모습이라서 '신라인의 미소'의 전형으로 손꼽히며 전체적으로 풍기는 해학과 풍류도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있는 여인」과 같은 작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으며 호랑이·원숭이 등 동물과 전투용품·생활용구 등도 포괄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라토우는 그 대표격의 하나이며 초창기 도자기 예술형태의 성격을 띠었던 신라토우가 성행하던 이 시기는 신라말과 고려초에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도자기 예술의 창조적 개척기로 손꼽을 수 있다. 그래서 훗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한국도자기의 장구한 역사를 일구어 간 것이다.
그렇다고 서툴다거나 단순해서 예술미가 없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신라토우는 과감하고도 철저한 생략과 강렬한 단순함을 통해 주제를 강하게 표현했고, 치장하지 않은 채 잘 갖추어진 조형미를 자랑한다.  간단하게 표현되거나 아예 추상화된 얼굴표정에서 가벼운 자기표현을 절제한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절제미와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중시했다. 또한 여기에다 질박한 신라인의 마음가짐과 여유를 그려냈고 더러는 익살과 해학도 엿보인다.
신라토우는 신라인이 몇 줌 안되는 진흙으로 단순함·절제미만 갖추고도 신라예술의 한 장르를 만들어 우리 후손에게 남겨준 삶과 미학이자 예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