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올 한 해 동안 있었던 기뻤던 일, 힘들었던 일 따위를 떠올려 봅니다.
올해는 자잘한 기쁨도 많았지만 크게 힘든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제 막내 동생이 가정이 흔들릴 정도로 하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저야 옆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만 참 조마조마했습니다. 다시 일어설 기운마저 없어지면 어쩌나 싶었지요. 다행히 이제 털고  새롭게 할 일을 찾아 나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남편도 두어달 전 자신의 행위나 의도와는 달리 어떤 회오리의 한 가운데 서게 되어 무척 힘들었습니다. 눈에 핏발이 서서 번득이며 화를 내며 살았습니다. 힘을 빼라고, 그냥 시간을 두고 잠잠이 있으면 밝혀질 거라고 말하는 나에게도 화를 냈습니다. 지금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마음속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또 하나, 미국에서 공부하던 딸이 돌아왔습니다. 제 학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아빠를 생각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이 어찌 좋기만 하겠습니까. 하루에도 열두번 일어나는 갈등이 아이의 얼굴에 다 드러납니다. 서로 시린 속을 다 짐작하는지라 그저 사소한 기쁨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예쁜 옷 하나 사서 둘이 같이 입어보기도 하고 손뜨게로 스웨터를 짜 주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함께 커플링을 해서 끝 손가락에 꼈습니다.
휴...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는데 나의 이 사소한 일들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주절주절 하고 있는 걸까요. 세계적인 거짓과 폭로가 난무하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참 무기력해 보이고 보잘것없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그 엄청난 사건보다 날마다 일어나서 밥먹고 일하고 살아가는 일이 당연히 더 중요합니다.
언젠가부터 잠자리에 들면서 입으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하루동안 했던 일을 하나씩 되뇌이며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강의시간에 늦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기분이 좋아 보여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김치를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00랑 만났는데 참 좋은 사람이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루를 살아 낸 일이 기특하고 기쁘고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한 해를 보내며 힘든 일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그보다 기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이쪽 저쪽 노모 두 분 모두 건강하게 계서서, 멀리 있는 아들이 늘 씩씩한 목소리를 들려줘서, 늦은 저녁 피곤한 몸으로 들어왔더니 딸이 환한 얼굴로 저녁상을 차려줘서, 화만 내던 남편이 어느날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그리고 내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놔 줘서, 내게 공부하는 아이의 엄마가 고맙다는 편지를 줘서, 아이들이 나를 친구처럼 좋아해 줘서.... 이렇게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바람은 언제나 붑니다. 크게 회오리가 되어 흔들어댈 때도 있지만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바람이 멈추면, 어쩌면 삶도 멈추는 게 아닐까요?  올해 불었던 바람은 다소 거칠어 우리를 강팍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새롭게 불어올 바람은 우리를 감싸 줄 지도 모르지요. 더 거칠어져도 잘 견디며 살 겁니다. 산 봉우리가 높으면 골짜기도 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