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6.10.11 23:57:45 (*.149.10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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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달이 유난히 밝고 크게 빛나더이다.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온 집안에 사람들이 북적대던 낮이 저물고 온 동네를 신나게 몰려다니던 아이들도 다 제 집으로 돌아가고 난 초저녁 무렵이었지요. 아버지가 계신 사랑에는 늦도록 바깥어른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머니는 여전히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지만 우리는 대청마루에서 할머니랑 달을 보았습니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 천지간에 부러울 것 없는 마음으로 달을 보았지요. 할머니는 누워 딩구는 우리들의 배를 쓸어주시며 무어라 중얼중얼 하셨습니다. 우리가 뭐하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달님한테 비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뭘 비냐고 물으면 우리 똥강아지들 잘 크게 해 달라고 빈다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보고는 방에 들어가서 자라 하시면 할머니는 놔둬라 하시며 달빛이 좋으니 실컷 보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마루에서 딩굴다 눈을 떠 보면 어느새 훤히 새 날이 밝았고 우리들은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엇에게나 빌었습니다. 사랑채 옆에 우물이 있었는데 새벽이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우물가를 깨끗이 씻어낸 후 비셨습니다. 좍좍 물소리가 몇 번 나고 이어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립니다. 우리들의 생일마다 부엌에 조그만 상을 차려놓고 비셨습니다.
달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할머니는 달님에게 빌었습니다. 이른 아침 대문을 활짝 열면서도 중얼중얼 빌고 디딜방아에 곡식을 찧으면서도 비셨습니다. 할머니의 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무엇을 비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이 똥강아지들 잘 되라고 빈다 하셨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아니 이제 늙어가면서 할머니 생각을 합니다. 세상 만물에게 자손의 안녕을, 간절한 마음으로 자손들이 어긋나지 않게, 힘들지 않게 살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빌고 또 빌던 던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둥그렇게 빛나는 보름달을 보며 삼십년도 더 전에 떠나신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서. 우리 할머니가 말이 씨가 되도록 빌고 빌어서 내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나 하면서 말이지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내가 부끄럽고 아이들이 다 크는 동안에도 무엇이 생각대로 안 되면 화만 북북 냈지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 일이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이 부끄러워 성경을 찾아 봅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었어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할머니는 성경을 몰랐어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대로 될 지어다 하고 믿으셨나 봅니다. 하하하.
사람의 정성과 하늘의 뜻이 합하면 다 이루어지겠지요. 부디 누구이든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는 옳은 말이 훌륭한 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