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7.07.02 21:24:09 (*.151.3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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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와서 처음 네 식구가 다 집에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두 나름대로 바빴지요. 오늘은 교회도 빼 먹고 늦잠을 잤습니다. 비도 오고, 어두운 하늘만큼 주위도 고요하고.... 늘어지게 잤습니다. 우리 구름이가 몇 번인가 아래 위층을 왔다 갔다 하더니 저도 할 수 없이 더 자야 할 것 같은지 내 옆에 와서 툭 치며 눕더라고요. 그래서 일어났지요.
커텐을 걷으니 비가 와요. 큰 유리창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선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어제 남편이 장을 잔뜩 봐왔으니 오늘은 제가 휴업을 해도 될 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있으니 남편이 일어나 아이들을 깨웁니다. 문도 열고, 강아지들 밥도 주고, 집 안에 있는 화분들을 죄다 밖으로 내 놓고...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차암 신기합니다. 혼자 즐기던 고요함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쬐금 남은 커피를 훌쩍 마십니다.
오늘은 남편이 야심차게 준비한 요리를 먹는 날입니다. 간단하게 아점으로 라면을 끓여주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계량컵으로 물을 재서 끓이는 라면, 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성이 더 맛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면을 먹고 오후에 할 요리 준비를 합니다. 닭날개, 닭다리... 뭐 이런 것들을 일일이 기름을 발라내고 가위집을 낸 다음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뺍니다. 그리고 함께 넣을 채소를 준비하지요. 온갖 종류의 버섯들과 양파, 감자, 브로컬리... 다 준비되면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에 버터를 잔뜩 넣고 닭을 익힙니다. 중간 중간 뚜껑을 열고 뒤적이며 골고루 익힙니다.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쭈구리고 앉아 열심히 요리를 하는 남편의 모습은 매우 진지합니다. 닭이 거의 다 익으면 이제 채소들을 넣어 한 번 더 익힙니다. 물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바짝 익히면 됩니다. 고기와 채소가 다 꼬들고들 할 정도가 되면 먹습니다. 김치를 곁들이면 더욱 맛나지요. 오늘은 포도주도 한 잔 씩 했어요.
배가 부르니 잠이 오지요. 딸아이는 소파에서, 아들은 제 방에서, 남편은 바닥에서 모두 대자로 뻗어 잡니다. 가늘게 들리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리듬을 탑니다. 자식들을 배불리게 먹인 가장의 뿌듯함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듯 합니다. 닭고기를 보너스로 먹은 강아지들도 옆에서 늘어져 잡니다. 집은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듭니다. 나는 아까 마신 포도주 한 잔 탓에 알딸딸해져서 문밖을 나섰습니다.
우산을 쓰고 동네를 반 바퀴정도 돌았습니다. 고즈넉합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서 우산에서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내 발 소리만 납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 쉬고....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 오십에 혼자 빗속을 걷는 게 철없이 좋았습니다. 걸으면서 며칠 전에 만난 한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이는 참으로 가진 게 많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늘 바람처럼 허허로워 보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시를 쓰지만 다른 사람보다 감성이 넘치도록 많아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하다 합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위로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세계의 고민이니까요. 하긴... 위로를 받아 풀릴 일도 아니지요. 그저 걷다보니 문득 그이 생각이 나고 마음을 좀 더 비우면 좋을텐데...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없습니다.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꼭 결정적인 것을 빠뜨리시는 하나님께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나는 저게 갖고 싶고 되고 싶은데 하나님은 왜 이걸 주시나 하면서 말이지요. 오십이면 하늘의 이치를 안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 무기력해졌는지 아무튼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건.... 운명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살게 태어나 사는 거지요.
전에 함석헌의 책에서 '자유'란 말을 새롭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저 있는 것, 스스로 있는 것... 늘 무엇엔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조바심때문이었는지 자유란 말을 큰 뜻으로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훌륭한 분이 말 그대로를 풀어놓은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그렇지, 그렇구나 하면서. 이름없는 풀도, 어여쁜 장미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저 제 밥만 먹고 사는 인생도... 모두 있는 대로 생긴대로 살아가는 거지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내 깜냥은 이거지요. 어떤 거대한 담론을 봐도 내 식대로 이해해 버리고 마는 거지요. 혼자 우물 안에 앉아 이게 하늘이려니 하면서 말입니다. 시인 친구가 시 공부를 함께 하자고 할 때 잠시 마음이 설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곧 고개를 흔들었지요. 내게 그런 재능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마음이 움직인 건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왔는데도 봄꽃이 이쁘다고 고집스레 심었더니 이내 풀로 변해 버리고 맙디다. 꽃도, 내 마음도 내 욕심에 치여 빛을 잃어버린 거지요.
걸으면서 한 생각들은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뭔가 쓰고 싶어져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식구들이 좀비처럼 하나 둘 씩 일어납니다. 또 좀 성가시게 굴겠지만 그들이 없으면 내가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배는 고프지 않을테니 뭐... 수박이나 썰어서 주면 오늘은 조용히 지나갈 테고.... 나는 이미 휴일을 충분히 즐겼으므로 다 좋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죽고 없으면 아들과 딸은 어느날 문득, 비오는 휴일에 엄마가 정성껏 다듬은 새 집에서 아버지가 해 주던 닭고기를 떠올리며 행복했던 날로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되지요. 뭐....
커텐을 걷으니 비가 와요. 큰 유리창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선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어제 남편이 장을 잔뜩 봐왔으니 오늘은 제가 휴업을 해도 될 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있으니 남편이 일어나 아이들을 깨웁니다. 문도 열고, 강아지들 밥도 주고, 집 안에 있는 화분들을 죄다 밖으로 내 놓고...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차암 신기합니다. 혼자 즐기던 고요함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쬐금 남은 커피를 훌쩍 마십니다.
오늘은 남편이 야심차게 준비한 요리를 먹는 날입니다. 간단하게 아점으로 라면을 끓여주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계량컵으로 물을 재서 끓이는 라면, 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성이 더 맛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면을 먹고 오후에 할 요리 준비를 합니다. 닭날개, 닭다리... 뭐 이런 것들을 일일이 기름을 발라내고 가위집을 낸 다음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뺍니다. 그리고 함께 넣을 채소를 준비하지요. 온갖 종류의 버섯들과 양파, 감자, 브로컬리... 다 준비되면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에 버터를 잔뜩 넣고 닭을 익힙니다. 중간 중간 뚜껑을 열고 뒤적이며 골고루 익힙니다.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쭈구리고 앉아 열심히 요리를 하는 남편의 모습은 매우 진지합니다. 닭이 거의 다 익으면 이제 채소들을 넣어 한 번 더 익힙니다. 물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바짝 익히면 됩니다. 고기와 채소가 다 꼬들고들 할 정도가 되면 먹습니다. 김치를 곁들이면 더욱 맛나지요. 오늘은 포도주도 한 잔 씩 했어요.
배가 부르니 잠이 오지요. 딸아이는 소파에서, 아들은 제 방에서, 남편은 바닥에서 모두 대자로 뻗어 잡니다. 가늘게 들리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리듬을 탑니다. 자식들을 배불리게 먹인 가장의 뿌듯함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듯 합니다. 닭고기를 보너스로 먹은 강아지들도 옆에서 늘어져 잡니다. 집은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듭니다. 나는 아까 마신 포도주 한 잔 탓에 알딸딸해져서 문밖을 나섰습니다.
우산을 쓰고 동네를 반 바퀴정도 돌았습니다. 고즈넉합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서 우산에서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내 발 소리만 납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 쉬고....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 오십에 혼자 빗속을 걷는 게 철없이 좋았습니다. 걸으면서 며칠 전에 만난 한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이는 참으로 가진 게 많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늘 바람처럼 허허로워 보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시를 쓰지만 다른 사람보다 감성이 넘치도록 많아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하다 합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위로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세계의 고민이니까요. 하긴... 위로를 받아 풀릴 일도 아니지요. 그저 걷다보니 문득 그이 생각이 나고 마음을 좀 더 비우면 좋을텐데...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없습니다.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꼭 결정적인 것을 빠뜨리시는 하나님께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나는 저게 갖고 싶고 되고 싶은데 하나님은 왜 이걸 주시나 하면서 말이지요. 오십이면 하늘의 이치를 안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 무기력해졌는지 아무튼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건.... 운명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살게 태어나 사는 거지요.
전에 함석헌의 책에서 '자유'란 말을 새롭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저 있는 것, 스스로 있는 것... 늘 무엇엔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조바심때문이었는지 자유란 말을 큰 뜻으로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훌륭한 분이 말 그대로를 풀어놓은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그렇지, 그렇구나 하면서. 이름없는 풀도, 어여쁜 장미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저 제 밥만 먹고 사는 인생도... 모두 있는 대로 생긴대로 살아가는 거지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내 깜냥은 이거지요. 어떤 거대한 담론을 봐도 내 식대로 이해해 버리고 마는 거지요. 혼자 우물 안에 앉아 이게 하늘이려니 하면서 말입니다. 시인 친구가 시 공부를 함께 하자고 할 때 잠시 마음이 설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곧 고개를 흔들었지요. 내게 그런 재능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마음이 움직인 건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왔는데도 봄꽃이 이쁘다고 고집스레 심었더니 이내 풀로 변해 버리고 맙디다. 꽃도, 내 마음도 내 욕심에 치여 빛을 잃어버린 거지요.
걸으면서 한 생각들은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뭔가 쓰고 싶어져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식구들이 좀비처럼 하나 둘 씩 일어납니다. 또 좀 성가시게 굴겠지만 그들이 없으면 내가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배는 고프지 않을테니 뭐... 수박이나 썰어서 주면 오늘은 조용히 지나갈 테고.... 나는 이미 휴일을 충분히 즐겼으므로 다 좋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죽고 없으면 아들과 딸은 어느날 문득, 비오는 휴일에 엄마가 정성껏 다듬은 새 집에서 아버지가 해 주던 닭고기를 떠올리며 행복했던 날로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되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