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7.12.10 18:01:16 (*.151.38.103)
1229
1994년에 첫 수업을 했다. 큰 뜻이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동화책 읽어주다가 도서 연구회를 알게 되었고, 여러 좋은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일기 봐 주다가 글쓰기를 제대로 하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교육방법을 배우기도 했고 '나부터 글을 써야지' 하면서 꼬박 꼬박 일기를 써 보기도 했다.
말귀 잘 알아듣는 큰 아이는 엄마가 무얼 가르쳐 주면 금방 잘 따라해서 참 재미가 났다. 조금 느린 작은 놈은 다소 헤매기도 했지만 가끔 그녀석의 글을 읽으면서 '글재주가 있는게 아닌가' 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책읽고 글쓴다고 하니 동네에서 아이들을 맡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글쓰기 선생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중간에는 돈이 목적이 되기도 했다. 시원찮은 크리스찬이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 경제적으로 큰 일이 생겼다. 그 때는 심하게 말해 아이들 머리 하나하나가 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지금처럼 정보가 홍수로 쏟아지지 않을 때 였으니 무엇이 옳은지도 모른채 그저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참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공부도 많이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었고 나는 그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읽고 쓰고 또 가르쳤다.
그러다 해오름에서 지도자 강의를 맡게 되었다. 2000년부터 였나? 아마 그럴 것이다. 수많은 선생님들과 석 달 정도씩 만나고 헤어졌다. 나는 그저 내가 아이들과 하는 공부내용을 보여 줄 수 밖에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여러 선생님들이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타성에 젖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강의에 쓰려고 아이들과 이렇게 저렇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힘든 때도 많았다. 그만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들이 돈으로 보이지 않게 된 후로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한 까닭은 아이들 모습 때문이다. 잘 했던 아이들도 물론 좋았지만 몹시 애를 먹이던 아이들이 더 생각난다. 읽기 힘든 책을 어렵게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스스로 뿌듯해 하던 아이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책상 밑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리에 앉게 되고 무언가 생각하고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햇수로 십 사년. 긴 시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 아이가 대학 4학년이 되었다. 나의 첫 제자가 되어 주었던 아이들이 큰 아이 친구들이다. 중학교때 까지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인데 이제 다 커서 "어머니 잘 계시냐?"고 우리 아이에게 묻는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아이들과의 교감, 선생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는 그들에게 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들은 나를 둔감하게 놔 두지 않게 하고 일상에 묻히지 않게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나는 훨씬 더 밝고 유쾌한 사람이 되었다.
삼십대 중반을 인생의 대 변혁기라고 했던 슈타이너의 말처럼 나는 그때 내 인생을 변화시킬 한 점을 찍고 쉬지 않고 걸어 왔다. 이제 다시 한 점을 찍는다. 펼쳤던 것을 거두고 다시 느리고 조용한 삶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고 내게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무엇을 보든, 무엇을 하든 나는 따뜻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살 것이다.
일전에 서현씨가 왔을 때 마지막 수업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어땠냐고 물었다. 당장은 아주 편하다. 무엇을 분주히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니 좋다. 아쉬움이야 천천히 오겠지. 그러나 오래전에 만난 사람들을 기억나는 대로 떠올리며 아쉬움과 함께 고마워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