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설 연휴가 되는 군요. 구부려 일하느라 등에 마비가 올 정도로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또한 슬프지만 아득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시간이란 그런 거지요. 명절 차림에 힘이 드실 여러 선생님들,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지난달에 다녀온 여행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딸과 단 둘이 떠났는데 힘든 일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니 참 좋습니다. 열 한 도시를 35일 동안 다녔는데 그중 한 열흘은 비행기나 기차에서 보냈으니 그저 도시마다 점만 찍고 왔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난생 처음 이렇게 오래 집을 떠나 돌아다녔던 터라 감회가 남다릅니다. 다니면서 메모했던 것을 정리하다가 글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촌스런 자랑같아 쑥스럽지만 하고 싶으니 해야지요. ^^

여행기 1 - 오래된 권위, 런던

'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라는 책 제목처럼 나도 지금 딸과 함께 유럽 대륙을 걷고 있다. 다만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이 어린 딸을 데리고 다녔지만 나는 우리 딸이 나를 데리고 다닌다. 떠나오기 전날 남편이 딸에게
"엄마 잘 챙겨야 해!"
그러니 딸은
"엄마, 거기서 혹시 나랑 헤어지게 되면 그 자리에 꼼짝말고 서 있어야 돼."
둘이서 나를 두고 어린 아이 챙기듯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며 나는 "킁!"하며 비웃었다. '내가비록 어수룩해 보여도 나이 쉰이나 된 아줌마야, 이거 왜 이래!' 이러면서.  
그러나 바보가 되는 상황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되었다.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 상황에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꿀꺽 삼키고 딸이 이끄는 대로 호텔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런던의 지하철은 좁고 지저분하고 불편한데 값은 비쌌다. 큰 가방을 끌고 종로 3가 환승터널보다 훨씬 더 긴 터널을 지나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럽과 여행에 대한 환상은 하나씩 깨지고 있었다.
늦은 밤, 런던 빅토리아역 뒷골목 조그만 호텔을 찾느라 거의 한 시간이나 헤매며 지도를 보고 사람들에게 묻고 길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는 동안 점점 소심해진 나는 입을 다물고 그저 가방을 끌고 따라다닐 뿐이었다. 인적이 드문 안개 자욱한 밤, 드문드문 보이는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가끔 나타나는 사람은 오히려 무서웠다.
"엄마, 나 저기 가서 물어보고 올 테니 꼼짝말고 여기 있어!" 하면서 뛰어다니는 딸을 보며
'저게 어느새 저렇게 커서 내 보호자가 됐구나" 뿌듯하기도 하고 맥없이 늙고 있는 내가 안됐기도 했다.  
설악산 특급호텔 값을 내고 예약했던 런던 호텔은  3층까지 가방을 끌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그저 이름만 호텔이었다. 런던의 비싼 물가를 실감하면서 짐을 풀고 나니 당장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징징대는 나를 위해 딸이 프런트에 가더니 뜨거운 물을 두 컵 가져왔다. 자동판매기에서 뽑아온 거란다. 가져간 인스턴트 된장국 포장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거푸 두 컵을 다 마셨다. 속이 시원해져서 제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딸은 국물이 먹고 싶을 때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줬다. 알았다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여행기간 내내 국물타령을 해대는 나 때문에 딸이 힘들었을 것이다. 자판기에서 뽑아오기도 하고 커피폿을 빌려오기도 하고, 스프를 사오기도 하면서.
스무살 딸과 쉰살 엄마의 여행 포인트는 아주 달랐다. 온종일 쇼핑거리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는 젊은 딸과 그저 한가롭고 낯선 곳을 눈으로 즐기고 싶은 나는 조금씩 달그락 거리며 부딪혔다. 딸은 가게 안의 물건에 감탄을 하고 나는 밖에서 가게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을 했다. 눈치 백단쯤 되는 우리 딸은 절충안을 내 놓았다. 가는 곳마다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나열한 다음 일정에 맞춰 조정해서 다녔다.
오래된 것이 가지는 권위, 런던은 어디를 가나 오래된 겉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한결같이 그런 것들로 인한 위엄을 드러내었다. 오래되었다고 다 멋진 것은 아니겠으나 그곳 사람들은 그 오래됨을 존중하기 위해 불편함은 모두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다리고 참는 듯 했다. 그래서 생긴 권위는 아름다웠다.
어느 거리에서나 오래된 석조 건물이 주는 중후한 아름다움은 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편리하도록 고쳐 낡은 건물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 많았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그 속에 새로움을 담아 잘 누리고 있는 그들을 보며 온고이지신,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다.
놀이기구처럼 생긴 '런던 아이'를 타고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 본 야경은 참으로 멋졌다. 시커먼 템즈강 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말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런던아이를 타고 프러포즈를 하고 싶은 젊은 한 쌍을 위해 나머지 승객들이 추운 날씨에도 박수를 치며 기꺼이 다음 칸을 기다려주는 여유와 넉넉함이 참 놀라웠다.
세익스피어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멋진 풍경이 있었다. 서더크 성당이던가? 아름다웠다. 작고 소박한 성당이 있고 그 앞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앉고 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처 먹자골목에서 사온 음식들을 먹으면서. 슬쩍 보니 대개 샌드위치 따위인 듯 했는데 추운 날, 밖에서 그런 썰렁한 음식을 먹고 싶은지 이해가 잘 안됐지만 보기에는 좋았다.
세익스피어의 나라답게 충분히 그를 팔고 있었다. 극장을 지어 구경하게 하고 코벤트가든 골목에서는 그의 연극을 끊임없이 공연하고 있었다. 딸은 세 시간의 입석도 마다하지 않고 이언 맥그리거가 출연하는 오셀로를 보겠다며 표를 샀다. 나도 자리가 있다면 보고 싶었으나 말도 못 알아듣는 처지에 입석이란 말에 아예 포기하고 호텔에 남았다. 먼 나라, 낯선 곳에서 딸아이 혼자 내 보내는 일도, 숙소에 혼자 남아있는 일도 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밤중에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딸을 보며 '너는 참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싶었다.
영화 '노팅힐'에서 휴그랜트가 걸어가면서 사계절이 바뀌던 그 거리에도 갔다. 우리 인사동 같았다. 국적불명의 악세서리와 머플러와 엔틱이라 이름붙은 물건들이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브로우치, 귀걸이 따위를 고르는 딸을 따라다니며 나는 그 거리 너머 보이는 알록달록 예쁜 집들과 깨끗한 거리, 그리고 어디서나 연주를 해대는 거리의 악사들을 봤다. 그 자연스러움이 보기좋았다.
딸은 외할머니가 좋아할 거라며 장미꽃 모양의 브로우치를 샀다. 나를 건너뛰어 앞,뒤 두 여인은 그런 장식을 참 좋아한다. 딸은 재미없는 엄마 대신 외할머니께 메니큐어며 립스틱을 자주 선물한다. 팔순인 외할머니가 분홍빛 메니큐어를 바르고 있는 게 귀엽다나 어쩐다나. 나는 두 사람이 다 경이롭다.
렘브란트와 고흐와 르느와르를 만나러 간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 이름이야 뭐든 그 기운은 참으로 멋졌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분수가 조명을 받으며 내뿜고 있고 여기저기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더니 노래를 했다. 우리는 그 광경이 멋져 오래도록 서서 바라봤다.
갤러리에서 수많은 그림을 봤다.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유화들, 그 크기와 기름진 느낌은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먹빛 한 가지로 그려낸 우리의 옛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이 더 돋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렘브란트를 지나 고흐와 르느와르를 보면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놓였다는 것은 동물적이기도 했던 그 이전의 수많은 인물화가 주는 위압감을 벗어난 탓일 수도 있다. 아무튼 고흐의 해바라기를 가까이서 보면서 기뻤고 르느와르의 어여쁜 소녀를 보면서 마음이 맑아졌다. 그 감흥으로 엽서 몇 장도 샀다. 집에 돌아가면 어느 구석으로 들어갈 것들이겠지만.
겨울이라 그렇겠지만 4시만 되면 해가 지는 곳, 하루 종일 밝게 빛나는 해를 볼 수 없는 곳, 낮인데도 때를 알 수 없는 이 척박한 회색빛 도시 곳곳에 풍요로운 문화의 숨결이 있었다. 우리가 문화라고 말하는 것, 오래전부터 켜켜이 쌓이고 배어들어 도무지 베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숨겨져 있지 않고 눈에 보이게 드러나 있었다. 제나라 말로 관광객을 부르는 나라, 오래된 권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나라, 그 자부심으로 말할 수 없이 거만하지만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너그러울 수 있는 나라. 속상하지만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