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8.02.10 02:29:03 (*.151.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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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 - 브뤼셀, 그 음울한 기운.
크리스마스 아침,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회색빛 하늘과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 바람이 불고 때 없이 비둘기들이 활개를 치며 날아다닌다. 마치 갈매기처럼.
문밖을 나서면 불길하고 음흠한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지만 창문 안에서는 몹시 고즈넉하다. 낯선 도시, 평생에 다시 올까 하는 곳에서 뜨거운 커피로 마른 목을 적시며 창밖을 본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찾아갈 일이 없는 이 쓸쓸함이 오히려 한가로움으로 다가온다. 맞은 편 건물은 불이 켜져 있지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 그것이 더 쓸쓸하다. 브뤼셀 사람들은 예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 흔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좀처럼 볼 수 없다. 캐럴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조용하고 우울해 보인다.
어제 오후,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뭐랄까......몹시 눅눅한 기분이었다. 어두컴컴한 역사, 런던보다 훨씬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들의 인상,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 그리고 지독한 안개. 호텔이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타려다가 역에 웅숭그리고 있다가 큰 가방을 하나씩 끌고 나타난 작은 동양여자 둘을 보고 자꾸 손을 내밀며 무언가를 요구하는 인상 험한 사람들을 보고 너무 놀라 그냥 택시를 탔다.
하긴, 유로스타에서부터 기분이 나빴다. 런던에서 브뤼셀까지 우리 돈으로 편도 30만원 가까이 하는 엄청난 차비를 내고 탄 기차가 몹시 비좁고 불편했다. 빼곡히 채워진 자리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이 비행기 이코노미석 같았다. 도버해협을 수중으로 통과하는 비용이라고 생각되지만 마치 처음 KTX를 탔을 때 든 기분, 빠른 것은 좋으나 왠지 속았다는 기분과 비슷했다.
호텔에 짐을 두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가 서둘러 돌아온 까닭은 너무 무서워서였다. 북역 근처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오후 4시가 지나 해는 벌써 사라지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안개 속에는 sex shop, errotic bar라고 써진 간판과 노골적인 네온사인 천지였다. 자꾸만 여기저기서 "헤이", "곰방와", "곤니찌와"하는 소리가 들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딸과 나는 해가 지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자며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손을 꼭 잡고 초스피드로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부터였나? 따로 제 방이 생긴 이후 가끔씩 엄마 방을 찾긴 했지만 이렇게 온종일 함께 붙어 있는 건 참 오랜만이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별로 없겠지. 남편 혼자 두고 딸과 단 둘이 여행 떠난다니 양쪽 어머니가 모두 못마땅해 하셨지만 평생 둘만이 나눌 특별한 이야기가 생길 듯 하여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뤼셀은 크지 않은 도시지만 외국인에게는 몹시 불친절한 곳인 듯하다.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제각각 쓰고 있다더니 길 표지판에도 영어는 없었다. 지도를 들고 그랜드 플레이스- 그랑쁠라스를 찾아 나섰다가 엉뚱한 곳으로 갔다. 시의 변두리 같았는데 곳곳에 버려진 듯한 작은 성당들이 있고 거리는 신산스러울 정도로 낡고 한적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고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바삐 걸어 다녔다. 거리의 표지판도 별로 없고 있어도 잘 알아볼 수 없어 하염없이 걷다가 도서관처럼 보이는 공공건물에 들어가서야 물어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되돌아 와서 그랑쁠라스를 찾아갔다. 이미 해가 중천에 걸릴 시간, 아! 그래서 아름다웠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뾰족뾰족한 높은 탑들이 햇빛을 받아 고색창연한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사방을 빙 둘러 싸고 있었다. 딸은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나는 그저 한 자리에 서서 내 몸을 돌려 사방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이 있구나', '어둡고 답답한 거리를 지나 이렇게 맑고 섬세하고 웅장한 곳이 있었구나', '이게 자랑이겠구나' 하면서.
그러나 다리도 쉴 겸해서 들어간 카페에서 또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종업원이 힐끔 쳐다보고는 다른 자리로 먼저 가더니 종내 오지를 않았다. 내가 손을 들어 부르려고 하니 딸이 올 때까지 기다리잔다.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청소하는 여인이 엄청나게 빠른 프랑스말로 뭐라뭐라 하면서 접시를 가리켰다. 사용료를 내라는 말 같았다. 0.25유로라고 쓰인 팻말를 보고 동전을 꺼내니 2유로짜리밖에 없었다. 그 여인은 또 뭐라뭐라 하면서 거스름 동전을 줬다. 볼일을 다 보고 자리에 와서 자세히 보니 몇 개는 유로동전이 아니었다. 약삭빠른 여인네 같으니라고 그새 나의 무지함을 알아채고 잔꾀를 부렸던 거다.
카페를 나오려고 계산을 하려니 카드를 안 받는단다. 술도 안 먹고-대낮인데도 옆 자리는 칵테일인지 한 잔씩 하고 있었다- 비싼 것도 안 시키고 달랑 커피 두 잔 마신 가난해 보이는 동양 여자 둘, 얕보고 있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그 자세가 어찌나 무례한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유로스타에서도 그랬다. 딸과 나의 좌석 번호가 떨어져 있어 번호대로 혼자 얌전히 앉았는데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건너편자리에 아이 둘과 비좁게 앉아있던 여인이 슬그머니 내 옆자리로 와서 앉길래 뭐, 비싼 차비에 어찌 세 사람 좌석을 다 사겠나 싶어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중간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탔다. 웬 남자가 우리 옆에 오더니 대뜸 나보고 일어나란다. 프랑스 말로! 내가 놀란 토끼마냥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내 자리라고 말하자 머리맡에 붙어있는 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 자리란다. 그 태도가 '너는 번호도 볼 줄 모르는 바보지?' 라는 것처럼 가히 위압적이었다. 가만 보니 옆자리인 것 같아 번호를 다시 확인하라고 했더니 한참을 보더니 "쏘리" 했다. 그때까지 옆자리 여인은 가만히 앉아 눈만 굴리고 있더니 그제서야 슬그머니 일어나 아이들에게로 가서 앉았다. '이것들이, 내가 동양여자라고 무시한 거지'싶어 화가 무럭 무럭 나서 세모눈으로 째려보았지만 어쩌겠는가. 말 짧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도 없고 앞만 쳐다 보고 있는 뻔뻔쟁이들을 한 대 칠 수도 없고.
이것이 내 눈에 비친 벨기에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행 안내 책에는 벨기에인들이 세계시민이라며 몹시 친절하다 하더니 내 눈에는 약삭빠른 기회자의 모습들이었다. 우리도 약소국으로 온갖 침략에 시달렸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은 역사를 가졌지 않은가. 점령자들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아왔을 슬픈 모습의 유산이라면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왕궁을 찾아 또 한 시간 가량 걸었다. 넓은 길을 앞에 두고 길게 서 있는 왕궁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어떤 정신적인 유산도 계승되지 않는 듯 그저 쇠락한 작은 나라 왕조의 유물이기만 한 죽어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맞은 편에 있는 공원이 더 좋았다. 황량한 겨울의 모습이긴 하지만 넓은 거리와 맞닿아 죽 이어져 있는 나무와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그 한적한 길을 짧은 햇살을 받으며 걸었다. 내 마음으로라면 오래도록 공원의 한 쪽에 앉아 왕궁을 바라보며 쓸쓸함을 즐기고 싶었다.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본 브뤼셀은 여러 얼굴이었다. 그랑쁠라스와 왕궁, 그리고 역앞에 있던 성당, 2층 투어버스를 타고 보았던 오래되고 우아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막 새로 지어 시멘트냄새가 날 듯한 첨단의 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마치 버려진 도시같은 곳도 있었다. 도처에 스프레이로 낙서된 지저분한 벽과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낡은 성당들, 그리고 휑뎅그렁 짓다만 듯한 지하철역, 정말 지하로 데려갈 것 같이 낡고 우중충한 지하철, 우리가 묵었던 북역 근처의 알 수 없는 분위기,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 그래서 벨기에는, 아니 브뤼셀은 많은 국제 기구가 있고 높은 새 건물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나에게는 우울하고 슬픈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회색빛 하늘과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 바람이 불고 때 없이 비둘기들이 활개를 치며 날아다닌다. 마치 갈매기처럼.
문밖을 나서면 불길하고 음흠한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지만 창문 안에서는 몹시 고즈넉하다. 낯선 도시, 평생에 다시 올까 하는 곳에서 뜨거운 커피로 마른 목을 적시며 창밖을 본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찾아갈 일이 없는 이 쓸쓸함이 오히려 한가로움으로 다가온다. 맞은 편 건물은 불이 켜져 있지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 그것이 더 쓸쓸하다. 브뤼셀 사람들은 예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 흔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좀처럼 볼 수 없다. 캐럴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조용하고 우울해 보인다.
어제 오후,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뭐랄까......몹시 눅눅한 기분이었다. 어두컴컴한 역사, 런던보다 훨씬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들의 인상,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 그리고 지독한 안개. 호텔이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타려다가 역에 웅숭그리고 있다가 큰 가방을 하나씩 끌고 나타난 작은 동양여자 둘을 보고 자꾸 손을 내밀며 무언가를 요구하는 인상 험한 사람들을 보고 너무 놀라 그냥 택시를 탔다.
하긴, 유로스타에서부터 기분이 나빴다. 런던에서 브뤼셀까지 우리 돈으로 편도 30만원 가까이 하는 엄청난 차비를 내고 탄 기차가 몹시 비좁고 불편했다. 빼곡히 채워진 자리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이 비행기 이코노미석 같았다. 도버해협을 수중으로 통과하는 비용이라고 생각되지만 마치 처음 KTX를 탔을 때 든 기분, 빠른 것은 좋으나 왠지 속았다는 기분과 비슷했다.
호텔에 짐을 두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가 서둘러 돌아온 까닭은 너무 무서워서였다. 북역 근처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오후 4시가 지나 해는 벌써 사라지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안개 속에는 sex shop, errotic bar라고 써진 간판과 노골적인 네온사인 천지였다. 자꾸만 여기저기서 "헤이", "곰방와", "곤니찌와"하는 소리가 들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딸과 나는 해가 지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자며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손을 꼭 잡고 초스피드로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부터였나? 따로 제 방이 생긴 이후 가끔씩 엄마 방을 찾긴 했지만 이렇게 온종일 함께 붙어 있는 건 참 오랜만이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별로 없겠지. 남편 혼자 두고 딸과 단 둘이 여행 떠난다니 양쪽 어머니가 모두 못마땅해 하셨지만 평생 둘만이 나눌 특별한 이야기가 생길 듯 하여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뤼셀은 크지 않은 도시지만 외국인에게는 몹시 불친절한 곳인 듯하다.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제각각 쓰고 있다더니 길 표지판에도 영어는 없었다. 지도를 들고 그랜드 플레이스- 그랑쁠라스를 찾아 나섰다가 엉뚱한 곳으로 갔다. 시의 변두리 같았는데 곳곳에 버려진 듯한 작은 성당들이 있고 거리는 신산스러울 정도로 낡고 한적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고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바삐 걸어 다녔다. 거리의 표지판도 별로 없고 있어도 잘 알아볼 수 없어 하염없이 걷다가 도서관처럼 보이는 공공건물에 들어가서야 물어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되돌아 와서 그랑쁠라스를 찾아갔다. 이미 해가 중천에 걸릴 시간, 아! 그래서 아름다웠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뾰족뾰족한 높은 탑들이 햇빛을 받아 고색창연한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들이 사방을 빙 둘러 싸고 있었다. 딸은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나는 그저 한 자리에 서서 내 몸을 돌려 사방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이 있구나', '어둡고 답답한 거리를 지나 이렇게 맑고 섬세하고 웅장한 곳이 있었구나', '이게 자랑이겠구나' 하면서.
그러나 다리도 쉴 겸해서 들어간 카페에서 또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종업원이 힐끔 쳐다보고는 다른 자리로 먼저 가더니 종내 오지를 않았다. 내가 손을 들어 부르려고 하니 딸이 올 때까지 기다리잔다.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청소하는 여인이 엄청나게 빠른 프랑스말로 뭐라뭐라 하면서 접시를 가리켰다. 사용료를 내라는 말 같았다. 0.25유로라고 쓰인 팻말를 보고 동전을 꺼내니 2유로짜리밖에 없었다. 그 여인은 또 뭐라뭐라 하면서 거스름 동전을 줬다. 볼일을 다 보고 자리에 와서 자세히 보니 몇 개는 유로동전이 아니었다. 약삭빠른 여인네 같으니라고 그새 나의 무지함을 알아채고 잔꾀를 부렸던 거다.
카페를 나오려고 계산을 하려니 카드를 안 받는단다. 술도 안 먹고-대낮인데도 옆 자리는 칵테일인지 한 잔씩 하고 있었다- 비싼 것도 안 시키고 달랑 커피 두 잔 마신 가난해 보이는 동양 여자 둘, 얕보고 있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그 자세가 어찌나 무례한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유로스타에서도 그랬다. 딸과 나의 좌석 번호가 떨어져 있어 번호대로 혼자 얌전히 앉았는데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건너편자리에 아이 둘과 비좁게 앉아있던 여인이 슬그머니 내 옆자리로 와서 앉길래 뭐, 비싼 차비에 어찌 세 사람 좌석을 다 사겠나 싶어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중간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탔다. 웬 남자가 우리 옆에 오더니 대뜸 나보고 일어나란다. 프랑스 말로! 내가 놀란 토끼마냥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내 자리라고 말하자 머리맡에 붙어있는 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 자리란다. 그 태도가 '너는 번호도 볼 줄 모르는 바보지?' 라는 것처럼 가히 위압적이었다. 가만 보니 옆자리인 것 같아 번호를 다시 확인하라고 했더니 한참을 보더니 "쏘리" 했다. 그때까지 옆자리 여인은 가만히 앉아 눈만 굴리고 있더니 그제서야 슬그머니 일어나 아이들에게로 가서 앉았다. '이것들이, 내가 동양여자라고 무시한 거지'싶어 화가 무럭 무럭 나서 세모눈으로 째려보았지만 어쩌겠는가. 말 짧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도 없고 앞만 쳐다 보고 있는 뻔뻔쟁이들을 한 대 칠 수도 없고.
이것이 내 눈에 비친 벨기에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행 안내 책에는 벨기에인들이 세계시민이라며 몹시 친절하다 하더니 내 눈에는 약삭빠른 기회자의 모습들이었다. 우리도 약소국으로 온갖 침략에 시달렸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은 역사를 가졌지 않은가. 점령자들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아왔을 슬픈 모습의 유산이라면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왕궁을 찾아 또 한 시간 가량 걸었다. 넓은 길을 앞에 두고 길게 서 있는 왕궁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어떤 정신적인 유산도 계승되지 않는 듯 그저 쇠락한 작은 나라 왕조의 유물이기만 한 죽어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맞은 편에 있는 공원이 더 좋았다. 황량한 겨울의 모습이긴 하지만 넓은 거리와 맞닿아 죽 이어져 있는 나무와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그 한적한 길을 짧은 햇살을 받으며 걸었다. 내 마음으로라면 오래도록 공원의 한 쪽에 앉아 왕궁을 바라보며 쓸쓸함을 즐기고 싶었다.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본 브뤼셀은 여러 얼굴이었다. 그랑쁠라스와 왕궁, 그리고 역앞에 있던 성당, 2층 투어버스를 타고 보았던 오래되고 우아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막 새로 지어 시멘트냄새가 날 듯한 첨단의 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마치 버려진 도시같은 곳도 있었다. 도처에 스프레이로 낙서된 지저분한 벽과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낡은 성당들, 그리고 휑뎅그렁 짓다만 듯한 지하철역, 정말 지하로 데려갈 것 같이 낡고 우중충한 지하철, 우리가 묵었던 북역 근처의 알 수 없는 분위기,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 그래서 벨기에는, 아니 브뤼셀은 많은 국제 기구가 있고 높은 새 건물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나에게는 우울하고 슬픈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