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8.02.15 00:39:16 (*.151.38.122)
1904
여행기 5 - 두 개의 도시, 부더와 페스트.
체코 프라하에서 오전 11시 30분에 떠난 기차는 슬로바키아를 거쳐 저녁 7시에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국경을 지날 때마다 그 나라 역무원이 검표를 했는데 슬로바키아 역무원은 우리가 자기나라를 지나는 표가 없다며 돈을 80유로나 더 내고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고 했다. 표를 부다페스트까지 끊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아무리 말해도 막무가내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40유로를 자기에게 바로 내면 그냥 가게 해 주겠단다. 딸이 표가 없어도 헝가리 들어가는데 문제가 없냐고 다짐을 받고 40유로를 줬는데 헝가리에 도착할 때까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이게 사기를 당한 건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역을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깜깜한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딸이 호텔에 전화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어디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가방을 끌고 눈길을 걸었다. 갈림길이 나와 가로등 밑에 서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왠 남자 둘이 다가와서 도와줄까냐고 물었다. 그 순간, 왜 그리 무서운지 입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굳이 까닭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차림새가 몹시 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긴머리에 뭔가 번쩍거리는 장신구도 걸친, 마약이라도 한 듯한 모습이라 지레 겁을 먹었을 것이다. 딸이 지도를 보이며 찾는 곳을 말하자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했다. 잘 찾아가라며 돌아서서 갔는데도 나는 뒷꼭지가 쭈뼛거려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참 미안하다.
호텔은 좀 특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방과 거실이 있고 방이 세 개 있어 마치 아파트같았는데 방마다 손님들이 있었다. 제각기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 되었고 거실과 주방은 공동으로 쓸 수 있어 좋았다. 주방은 물론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지만 한글이 안되니 나로서는 그림의 떡, 대신 세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열심히 빨았다. 안내하는 청년도 멋졌다. 인물도 잘 생겼고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해 그렇지 영어도 잘 하고 참 상냥했다. 머리가 길었다. 부다페스트 남자들은 긴머리를 좋아하는가 싶었다.
부다페스트는 이름처럼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다지역은 유적이 많고 페스트 지역은 상점이 많다고 했다. 먼저 쇼핑거리인 바치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나오니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었다. 길을 찾느라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또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부다페스트 남자들은 친절했다.
런던에서 보았던 옷가게가 브뤼셀에도 있었고 뮌헨, 프라하에서도 봤는데 부다페스트에도 있었다. 딸은 신고식이라도 하듯 또 그곳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나도 신기해서 함께 다녔는데 이제 볼 것도 없고 해서 문 앞에 서 있다가 딸이 나오면 같이 걸었다. 걷다가 날씨도 춥고 쉬기도 할 겸 들어간 카페에서 쵸컬릿과 커피를 마셨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이리저리 걷다가 모퉁이를 돌자 다리가 하나 보였다. 아! 절경이었다. 높은 언덕사이에 올림픽대교마냥 줄로 당겨진 모양의 다리였는데 희끗희끗 눈섞인 풍경이 몹시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부다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잇는 여러 다리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름이 엘리자벳인가 그랬다.
그 언덕은 겔레르트 언덕이라 하는데 헝가리에 선교를 하다가 순교한 겔레르트 신부를 기념하는 곳이라 했다. 언덕 꼭대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마치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듯한 실루엣이 무척 비장해 보였다. 걷다보니 세체니 다리까지 갔다. 도나우강은 폭이 넓지 않아 건너편 부다왕궁이 다 보였다. 부다지역은 다음날 갈 계획이라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걷다보니 광장도 있고 성당도, 국회의사당도 있었다.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걷다보니 다 보게 되고 또 걷다보니 처음 출발한 곳으로 와 있었다. 서울에 비하면 참 작은 도시인 듯 했다.
날씨가 몹시 추웠다. 브뤼셀, 뮌헨, 프라하, 그리고 부다페스트까지 대륙 깊숙이 들어올 수록 추운 것 같았다. 나는 내복과 패딩 바지, 털 외투로 중무장을 했지만 폼생폼사 딸은 얇게 입고서는 춥다고 짜증을 내었다. 미웠지만 어쩌겠는가. 저녁거리를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헝가리 돈의 환율이 제일 낮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식료품값이 쌌다. 1000포린트, 우리돈으로 6000원 정도로 바나나 큰 거 하나, 오렌지 8개, 바게트 빵 하나 그리고 물까지 살 수 있었다.
이 호텔은 주방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신 아침을 주지 않았다. 뭘 해먹기도 어설퍼 아침은 호텔 건너편에 있는 버거킹에서 먹었다. 햄버거! 거의 먹을 일이 없었던 이 음식이 참 요긴하고 고마웠다. 표준화된 맛이니 크게 걱정할 것도 없고 값도 싸고 그런대로 배도 부르니 얼마나 고마운가. 저녁은 가져간 인스턴트 음식들을 끓이고 데우고 해서 먹었다. 밥과 된장국, 그리고 볶은 김치. 냄새를 풍겨도 아무 일이 없는 곳이라 마음 놓고 먹었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표사는데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다. 창구는 한 두 군데 뿐인데 역무원의 일하는 모습은 몹시 비능률적이었다. 컴퓨터 한 대 없이 모든 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표를 살 때는 엄청나게 줄이 길어 사람을 지치게 하더니 정작 지하철 타는 데 서 있으면 어디선가 검표원이 다가와 표를 샀는지 아닌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인력을 표 파는데 배치하고 출입구를 깐깐하게 만들어야지 원, 참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직 까마득한 시스템이었다.
둘째 날 부다 왕궁을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렸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그 역 앞에서 왕궁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눈발이 흩날리는 언덕빼기 정류장에는 수도 없이 많은 버스가 서고 떠나고 했는데 아무리 지도를 봐도 어느 정류장의 무슨 버스가 왕궁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류장은 물론 서 있는 버스들은 몹시 낡고 지저분했다. 너무나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풍경에 딸은 이미 질린 얼굴을 하고 어디가서 무얼 물어볼 생각도 않는 듯했다.
결국 부다왕궁은 못 갔다. 나야 몹시 아쉬웠지만 딸아이가 애써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해서 다시 세체니 다리 건너 페스트지역으로 돌아왔다. 그곳 카페, 따뜻한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멀리 보이는 부다왕궁을 바라보았다. 이게 우리의 한계, 달랑 둘만이 떠나온 여행의 한계였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무리해서 왕궁을 본다 한들 그게 또 뭐 그리 큰 성과겠는가. 스스로 위안을 하며 딸과 사이좋게 달콤한 쵸컬릿과 커피를 마셨다.
비엔나로 갈 기차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헝가리 돈을 다 쓸 요량으로 보이는 가게마다 들러 물건을 샀다. 의기소침해 있는 딸에게 예쁜 귀걸이도 사 주고 화장품 가게에 들러 반짝이 립글로스도 샀다. 인형가게에서 작은 동물인형도 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퍼마켓에 들러 먹을 것도 샀다. 진열대를 둘러보는데 아주 조그만 책들이 눈에 띄었다. 가로 세로 3센티미터 정도였는데 펼쳐보니 페이지마다 그림과 글이 있었다.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모양이 앙증맞았다. 아마 금언, 격언 따위인 듯 했다. 600포린트, 우리 돈으로 약 3500원, 결코 싸지는 않았지만 동전까지 다 털어 두 개를 샀다.
부다와 페스트, 둘로 나뉘어져 있는 도시에 와서 절반만 보고 간다. 아쉽다. 그러나 아쉬운 게 어디 이것 뿐이랴.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먹은 마음처럼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 보고 안 보고가 아니라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행복해지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내 인생에 예기치 않게 덤으로 주어진 이 시간을 딸과 더불어 사이좋게 나누어 쓰기...... 그래서 이만하면 족하다. 안녕, 부다페스트.
여행기 6- 비엔나, 비엔나 커피
2008년 1월 4일,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유로레일 1등칸은 쾌적했고 창으로 스쳐 지나는 유럽의 들판은 아름다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 가득한 나무들과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은 크리스마스 카드 같기도 하고 나니아 나라에 나오는 눈나라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모두 지붕이 뾰족한 삼각형이었다. 높고 낮은 삼각지붕들이 모여 또 동화속 풍경이 되었다. 예뻤다. 나중에 집을 하나 짓게 된다면 저렇게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채만 달랑 뾰족하게 있으면 좀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떠랴. 소박하게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게, 초등학교때 그린 집처럼 삼각형 지붕에 사각형 집채, 창문 하나, 문 하나. 그렇게 지어서 살면 좋겠다.
집이 그립다. 어느새 집 떠나온 지 보름이 넘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가방을 꾸려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슬슬 지루해 지기 시작한다. 여행일정을 너무 길게 잡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혼자 남은 남편이 날마다 전해오는 소식도 심심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구름이와 아씨도 우울해 보인단다. 그렇겠지. 말도 못하는 것들인데 식구들이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다 지친 거겠지. 미안타.
호텔은 역에서 다소 멀었으나 친절한 택시 기사는 호텔 앞까지 깔끔하게 데려다 주었다. 짐을 풀고 동네 구경을 나섰는데 날씨가 몹시 추웠다. 바람이 불어 더 춥게 느껴지는 듯 했지만 저녁도 먹고 은행을 찾아 돈도 보충하고 지하철 역이 어디있나 확인하고 수퍼에도 들러 필요한 것들을 샀다. 거리는 깨끗했고 걸어서 돌아다녀도 마음이 편했다. 브뤼셀에서 느낀 그 두려움은 결코 날씨 탓이 아니었다.
비엔나는 동그라미처럼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관광명소가 빙 둘러져 있고 그 안에는 쇼핑거리가 자리잡고 있어서 오른쪽, 왼쪽으로 돌면서 보기로 했다. 교통 수단은 지하철과 트램과 버스가 각각 있었는데 버스는 별로 탈 일이 없고 숙소에서 시내로 나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링을 따라 돌아다닐 때는 레일을 따라 도는 전차, 트램을 탔다.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슈테판 성당과 카를 교회를 찾아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쇼핑거리인 케른트너 거리를 직선으로 걸어가면서 온갖 가게들을 방문했다. 옷가게, 가방가게, 구둣가게, 기념품가게, 그리고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들...... 그 화려한 거리를 걷노라면 자신의 주머니사정과 관계없이 호기롭게 지름신을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지구상의 절반인 여성,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곳에 있으면 이해할 필요없이 사고 싶어진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넓은 거리에는 역시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펼쳐놓기도 하고 직접 작품이 되기도 해서 충분한 눈요기를 시켜줬다. 유럽 여행 내내 싼 값으로 맛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던 맥카페가 비엔나에도 있었다. 비와 안개와 눈발이 스멀스멀 온 몸을 스며드는 눅눅한 날씨에 비엔나 맥카페에서 달콤한 케익 한조각과 함께 마시는 비엔나커피는 원조답게 말할 수 없이 향기롭고 맛났다.
길 위에 샹들리에가 멋지게 빛나는 케른트너 거리, 그 쇼핑거리가 끝나는 즈음에 슈테판 성당이 있었다. 마치 포르멘 문양처럼 보이는 모자이크 지붕과 수많은 조각들이 벽돌로 지었다는데도 검은 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겹겹으로 싸인 둥근 천장이 몹시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또 스프를 주문했다. 토마토 스프가 나왔는데 케첩에 물을 탄 듯 뜨겁지도 않고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국물뿐이었다. 스프가 8유로, 날아갈 것 같은 밥알에 새우 몇 조각이 들어있는 해물리조토가 13유로, 물 한 병이 4유로. 우리 돈으로 4만원 정도가 나왔다. 이런 날강도들 같으니라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고 어쩔 도리도 없고 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비엔나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는 밤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라 아침에 호텔에서 짐을 꾸려 나왔다. 비엔나 역 라커에 가방을 넣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밤 8시 30분 출발, 그때까지 거리를 헤매야 했는데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여행 떠날 때의 생각으로는 비엔나에서는 오페라도 하나 보려 했는데 잘 모르는 것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들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귀찮아져서 포기했다.
하루 종일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1일권을 사서 순환도로 안쪽을 지나는 트램을 탔다. 내리기도 귀찮고 해서 마냥 앉아서 지나치는 창으로 유명하다는 건물들을 다 보았다. 그 다음에는 반대편을 지나는 트램을 타고 또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한참 구경하고 걷다가 또 트램을 탔다. 마리아테레지아 동상도 보고 특이하게 생긴 우체국 건물도 보고 왕궁도 보고 시청사도 보았다. 눈덮인 고딕양식의 건물들은 어디를 봐도 아름다웠다.
비엔나는 잘 정돈되고 깔끔한 도시였다. 돈이 많았더라면, 또 에너지가 더 활발했더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지만 우리는 여행이 한 고비를 넘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별로 애를 쓰고 싶지 않아 다소 밋밋하게 지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밥도 천천히 먹고, 카페에 앉아 읽은 책을 또 읽고..... 집없이 떠도는 유랑자처럼 갈 데가 없다는게 몹시 힘들었다.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밤기차를 타러 비엔나 역에 가니 온통 한국말 천지였다. 우리와 같은 여정으로 베네치아 가는 한국 사람이 무지 많았다. 침대차라고 해서 기차에 올랐더니 세상에, 사람을 구겨넣는 짐짝이었다. 한 칸에 여섯 사람을 3층으로 태우는 기차였는데 우리칸에는 다섯명이 탔다. 자리에 앉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눕기 싫어도 누워야 했다.
나는 맨 아래층, 딸은 이층, 그 위에 왠 미국 청년 하나, 내 앞 자리는 한국 청년, 그 위는 또 미국 청년, 이렇게 다섯 명이 숨소리도 다 들리는 공간에 차곡차곡 누워 아침이 올 때까지 잤다. 그 한국청년은 반가와서 몇 마디 나누고 싶었으나 그런 내가 귀찮은 듯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고 인사도 없이 기차에서 내리더니 나중에 베네치아 산모로코 성당에서, 또 로마 바티칸 시국에서 스쳐지나갔다.
체코 프라하에서 오전 11시 30분에 떠난 기차는 슬로바키아를 거쳐 저녁 7시에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국경을 지날 때마다 그 나라 역무원이 검표를 했는데 슬로바키아 역무원은 우리가 자기나라를 지나는 표가 없다며 돈을 80유로나 더 내고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고 했다. 표를 부다페스트까지 끊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아무리 말해도 막무가내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40유로를 자기에게 바로 내면 그냥 가게 해 주겠단다. 딸이 표가 없어도 헝가리 들어가는데 문제가 없냐고 다짐을 받고 40유로를 줬는데 헝가리에 도착할 때까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이게 사기를 당한 건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역을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깜깜한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딸이 호텔에 전화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어디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가방을 끌고 눈길을 걸었다. 갈림길이 나와 가로등 밑에 서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왠 남자 둘이 다가와서 도와줄까냐고 물었다. 그 순간, 왜 그리 무서운지 입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굳이 까닭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차림새가 몹시 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긴머리에 뭔가 번쩍거리는 장신구도 걸친, 마약이라도 한 듯한 모습이라 지레 겁을 먹었을 것이다. 딸이 지도를 보이며 찾는 곳을 말하자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했다. 잘 찾아가라며 돌아서서 갔는데도 나는 뒷꼭지가 쭈뼛거려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참 미안하다.
호텔은 좀 특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방과 거실이 있고 방이 세 개 있어 마치 아파트같았는데 방마다 손님들이 있었다. 제각기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 되었고 거실과 주방은 공동으로 쓸 수 있어 좋았다. 주방은 물론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지만 한글이 안되니 나로서는 그림의 떡, 대신 세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열심히 빨았다. 안내하는 청년도 멋졌다. 인물도 잘 생겼고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해 그렇지 영어도 잘 하고 참 상냥했다. 머리가 길었다. 부다페스트 남자들은 긴머리를 좋아하는가 싶었다.
부다페스트는 이름처럼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다지역은 유적이 많고 페스트 지역은 상점이 많다고 했다. 먼저 쇼핑거리인 바치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나오니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었다. 길을 찾느라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또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부다페스트 남자들은 친절했다.
런던에서 보았던 옷가게가 브뤼셀에도 있었고 뮌헨, 프라하에서도 봤는데 부다페스트에도 있었다. 딸은 신고식이라도 하듯 또 그곳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나도 신기해서 함께 다녔는데 이제 볼 것도 없고 해서 문 앞에 서 있다가 딸이 나오면 같이 걸었다. 걷다가 날씨도 춥고 쉬기도 할 겸 들어간 카페에서 쵸컬릿과 커피를 마셨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이리저리 걷다가 모퉁이를 돌자 다리가 하나 보였다. 아! 절경이었다. 높은 언덕사이에 올림픽대교마냥 줄로 당겨진 모양의 다리였는데 희끗희끗 눈섞인 풍경이 몹시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부다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잇는 여러 다리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름이 엘리자벳인가 그랬다.
그 언덕은 겔레르트 언덕이라 하는데 헝가리에 선교를 하다가 순교한 겔레르트 신부를 기념하는 곳이라 했다. 언덕 꼭대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마치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듯한 실루엣이 무척 비장해 보였다. 걷다보니 세체니 다리까지 갔다. 도나우강은 폭이 넓지 않아 건너편 부다왕궁이 다 보였다. 부다지역은 다음날 갈 계획이라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걷다보니 광장도 있고 성당도, 국회의사당도 있었다.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걷다보니 다 보게 되고 또 걷다보니 처음 출발한 곳으로 와 있었다. 서울에 비하면 참 작은 도시인 듯 했다.
날씨가 몹시 추웠다. 브뤼셀, 뮌헨, 프라하, 그리고 부다페스트까지 대륙 깊숙이 들어올 수록 추운 것 같았다. 나는 내복과 패딩 바지, 털 외투로 중무장을 했지만 폼생폼사 딸은 얇게 입고서는 춥다고 짜증을 내었다. 미웠지만 어쩌겠는가. 저녁거리를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헝가리 돈의 환율이 제일 낮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식료품값이 쌌다. 1000포린트, 우리돈으로 6000원 정도로 바나나 큰 거 하나, 오렌지 8개, 바게트 빵 하나 그리고 물까지 살 수 있었다.
이 호텔은 주방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신 아침을 주지 않았다. 뭘 해먹기도 어설퍼 아침은 호텔 건너편에 있는 버거킹에서 먹었다. 햄버거! 거의 먹을 일이 없었던 이 음식이 참 요긴하고 고마웠다. 표준화된 맛이니 크게 걱정할 것도 없고 값도 싸고 그런대로 배도 부르니 얼마나 고마운가. 저녁은 가져간 인스턴트 음식들을 끓이고 데우고 해서 먹었다. 밥과 된장국, 그리고 볶은 김치. 냄새를 풍겨도 아무 일이 없는 곳이라 마음 놓고 먹었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표사는데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다. 창구는 한 두 군데 뿐인데 역무원의 일하는 모습은 몹시 비능률적이었다. 컴퓨터 한 대 없이 모든 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표를 살 때는 엄청나게 줄이 길어 사람을 지치게 하더니 정작 지하철 타는 데 서 있으면 어디선가 검표원이 다가와 표를 샀는지 아닌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인력을 표 파는데 배치하고 출입구를 깐깐하게 만들어야지 원, 참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직 까마득한 시스템이었다.
둘째 날 부다 왕궁을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렸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그 역 앞에서 왕궁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눈발이 흩날리는 언덕빼기 정류장에는 수도 없이 많은 버스가 서고 떠나고 했는데 아무리 지도를 봐도 어느 정류장의 무슨 버스가 왕궁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류장은 물론 서 있는 버스들은 몹시 낡고 지저분했다. 너무나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풍경에 딸은 이미 질린 얼굴을 하고 어디가서 무얼 물어볼 생각도 않는 듯했다.
결국 부다왕궁은 못 갔다. 나야 몹시 아쉬웠지만 딸아이가 애써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해서 다시 세체니 다리 건너 페스트지역으로 돌아왔다. 그곳 카페, 따뜻한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멀리 보이는 부다왕궁을 바라보았다. 이게 우리의 한계, 달랑 둘만이 떠나온 여행의 한계였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무리해서 왕궁을 본다 한들 그게 또 뭐 그리 큰 성과겠는가. 스스로 위안을 하며 딸과 사이좋게 달콤한 쵸컬릿과 커피를 마셨다.
비엔나로 갈 기차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헝가리 돈을 다 쓸 요량으로 보이는 가게마다 들러 물건을 샀다. 의기소침해 있는 딸에게 예쁜 귀걸이도 사 주고 화장품 가게에 들러 반짝이 립글로스도 샀다. 인형가게에서 작은 동물인형도 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퍼마켓에 들러 먹을 것도 샀다. 진열대를 둘러보는데 아주 조그만 책들이 눈에 띄었다. 가로 세로 3센티미터 정도였는데 펼쳐보니 페이지마다 그림과 글이 있었다.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모양이 앙증맞았다. 아마 금언, 격언 따위인 듯 했다. 600포린트, 우리 돈으로 약 3500원, 결코 싸지는 않았지만 동전까지 다 털어 두 개를 샀다.
부다와 페스트, 둘로 나뉘어져 있는 도시에 와서 절반만 보고 간다. 아쉽다. 그러나 아쉬운 게 어디 이것 뿐이랴.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먹은 마음처럼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 보고 안 보고가 아니라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행복해지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내 인생에 예기치 않게 덤으로 주어진 이 시간을 딸과 더불어 사이좋게 나누어 쓰기...... 그래서 이만하면 족하다. 안녕, 부다페스트.
여행기 6- 비엔나, 비엔나 커피
2008년 1월 4일,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유로레일 1등칸은 쾌적했고 창으로 스쳐 지나는 유럽의 들판은 아름다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 가득한 나무들과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은 크리스마스 카드 같기도 하고 나니아 나라에 나오는 눈나라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모두 지붕이 뾰족한 삼각형이었다. 높고 낮은 삼각지붕들이 모여 또 동화속 풍경이 되었다. 예뻤다. 나중에 집을 하나 짓게 된다면 저렇게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채만 달랑 뾰족하게 있으면 좀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떠랴. 소박하게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게, 초등학교때 그린 집처럼 삼각형 지붕에 사각형 집채, 창문 하나, 문 하나. 그렇게 지어서 살면 좋겠다.
집이 그립다. 어느새 집 떠나온 지 보름이 넘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가방을 꾸려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슬슬 지루해 지기 시작한다. 여행일정을 너무 길게 잡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혼자 남은 남편이 날마다 전해오는 소식도 심심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구름이와 아씨도 우울해 보인단다. 그렇겠지. 말도 못하는 것들인데 식구들이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다 지친 거겠지. 미안타.
호텔은 역에서 다소 멀었으나 친절한 택시 기사는 호텔 앞까지 깔끔하게 데려다 주었다. 짐을 풀고 동네 구경을 나섰는데 날씨가 몹시 추웠다. 바람이 불어 더 춥게 느껴지는 듯 했지만 저녁도 먹고 은행을 찾아 돈도 보충하고 지하철 역이 어디있나 확인하고 수퍼에도 들러 필요한 것들을 샀다. 거리는 깨끗했고 걸어서 돌아다녀도 마음이 편했다. 브뤼셀에서 느낀 그 두려움은 결코 날씨 탓이 아니었다.
비엔나는 동그라미처럼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관광명소가 빙 둘러져 있고 그 안에는 쇼핑거리가 자리잡고 있어서 오른쪽, 왼쪽으로 돌면서 보기로 했다. 교통 수단은 지하철과 트램과 버스가 각각 있었는데 버스는 별로 탈 일이 없고 숙소에서 시내로 나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링을 따라 돌아다닐 때는 레일을 따라 도는 전차, 트램을 탔다.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슈테판 성당과 카를 교회를 찾아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쇼핑거리인 케른트너 거리를 직선으로 걸어가면서 온갖 가게들을 방문했다. 옷가게, 가방가게, 구둣가게, 기념품가게, 그리고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들...... 그 화려한 거리를 걷노라면 자신의 주머니사정과 관계없이 호기롭게 지름신을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지구상의 절반인 여성,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곳에 있으면 이해할 필요없이 사고 싶어진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넓은 거리에는 역시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펼쳐놓기도 하고 직접 작품이 되기도 해서 충분한 눈요기를 시켜줬다. 유럽 여행 내내 싼 값으로 맛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던 맥카페가 비엔나에도 있었다. 비와 안개와 눈발이 스멀스멀 온 몸을 스며드는 눅눅한 날씨에 비엔나 맥카페에서 달콤한 케익 한조각과 함께 마시는 비엔나커피는 원조답게 말할 수 없이 향기롭고 맛났다.
길 위에 샹들리에가 멋지게 빛나는 케른트너 거리, 그 쇼핑거리가 끝나는 즈음에 슈테판 성당이 있었다. 마치 포르멘 문양처럼 보이는 모자이크 지붕과 수많은 조각들이 벽돌로 지었다는데도 검은 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겹겹으로 싸인 둥근 천장이 몹시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또 스프를 주문했다. 토마토 스프가 나왔는데 케첩에 물을 탄 듯 뜨겁지도 않고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국물뿐이었다. 스프가 8유로, 날아갈 것 같은 밥알에 새우 몇 조각이 들어있는 해물리조토가 13유로, 물 한 병이 4유로. 우리 돈으로 4만원 정도가 나왔다. 이런 날강도들 같으니라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고 어쩔 도리도 없고 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비엔나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는 밤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라 아침에 호텔에서 짐을 꾸려 나왔다. 비엔나 역 라커에 가방을 넣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밤 8시 30분 출발, 그때까지 거리를 헤매야 했는데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여행 떠날 때의 생각으로는 비엔나에서는 오페라도 하나 보려 했는데 잘 모르는 것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들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귀찮아져서 포기했다.
하루 종일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1일권을 사서 순환도로 안쪽을 지나는 트램을 탔다. 내리기도 귀찮고 해서 마냥 앉아서 지나치는 창으로 유명하다는 건물들을 다 보았다. 그 다음에는 반대편을 지나는 트램을 타고 또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한참 구경하고 걷다가 또 트램을 탔다. 마리아테레지아 동상도 보고 특이하게 생긴 우체국 건물도 보고 왕궁도 보고 시청사도 보았다. 눈덮인 고딕양식의 건물들은 어디를 봐도 아름다웠다.
비엔나는 잘 정돈되고 깔끔한 도시였다. 돈이 많았더라면, 또 에너지가 더 활발했더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지만 우리는 여행이 한 고비를 넘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별로 애를 쓰고 싶지 않아 다소 밋밋하게 지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밥도 천천히 먹고, 카페에 앉아 읽은 책을 또 읽고..... 집없이 떠도는 유랑자처럼 갈 데가 없다는게 몹시 힘들었다.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밤기차를 타러 비엔나 역에 가니 온통 한국말 천지였다. 우리와 같은 여정으로 베네치아 가는 한국 사람이 무지 많았다. 침대차라고 해서 기차에 올랐더니 세상에, 사람을 구겨넣는 짐짝이었다. 한 칸에 여섯 사람을 3층으로 태우는 기차였는데 우리칸에는 다섯명이 탔다. 자리에 앉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눕기 싫어도 누워야 했다.
나는 맨 아래층, 딸은 이층, 그 위에 왠 미국 청년 하나, 내 앞 자리는 한국 청년, 그 위는 또 미국 청년, 이렇게 다섯 명이 숨소리도 다 들리는 공간에 차곡차곡 누워 아침이 올 때까지 잤다. 그 한국청년은 반가와서 몇 마디 나누고 싶었으나 그런 내가 귀찮은 듯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고 인사도 없이 기차에서 내리더니 나중에 베네치아 산모로코 성당에서, 또 로마 바티칸 시국에서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