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2008.02.22 06:51:19 (*.151.3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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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9- 포로 로마노, 잊을 수 없는 감동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적 맞다! 길거리 곳곳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어김없이 웅장하고 섬세한 조각상들이 서 있다. 우리가 여행 떠나기 전에 로마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더라면 다른 도시에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오래 있도록 일정을 짰을 것이다. 바티칸과 포로 로마노를 다시 가 보고 싶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테르미니역은 이전의 다른 역에 비해 아주 크고 현대적이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테르미니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짐을 풀자 마자 사흘 동안 넓은 로마를 어떻게 잘 볼 수 있을지 딸과 함께 지도를 펼쳐 놓고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해 봤다. 물론 딸은 쇼핑거리가 있는 번화가를 제일 먼저 짚었고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과 포로 로마노만 보면 된다고 했다. 짐을 두고 나와서 우선 시내 중심부를 돌아보기로 했다.
영화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부터 찾아 갔다. 으레 이름난 것이 이름값을 못하려니 했는데 트레비 분수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 그런 조각과 분수가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 그 다음 스페인 광장,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누던 그 광장에도 가고 그보다 더 멋진 포폴리 광장에도 가 보았다.
그 길에는 이탈리아 명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넋이 나간 듯 진열장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젊은이 셋이 보였다. 대학생이라 짐작되는 두 명의 여자가 진열장 앞에 멈춰서서 "어머, 예쁘다!"를 연발하자 함께 있던 역시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에이, 짜증나!"하며 그중 한 여자를 막 끌고 가려했다. 오십대 엄마와 이십대 딸의 여행포인트만 다른게 아니라 같은 또래라도 남자와 여자의 초점도 다르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둘째 날은 바티칸 시국에 갔다. 로마는 곳곳이 유적이라 지하철이 두 노선밖에 없어 어디를 가든 찾기가 쉬웠다. 바티칸은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지하철을 나오자 마자 그냥 사람들을 따라 가면 되었다. 우중충한 하늘과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 광장을 들어서는 순간, 그 광대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가 않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규모에 놀랐다.
긴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바라본 성 피에트로 대성당은 긴 회랑이 반원모양으로 광장을 빙 둘러져 있고 회랑의 기둥 하나 하나마다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조각상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일생을 기도와 간구로 그리스도를 흠모했던 베드로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화려한 곳이라 생각되었다.
성당 한 쪽에 미사를 보는 의자가 조촐하게 놓여 있었다. 그래,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무릎 꿇고 손 모으는 공간, 그저 몸 하나 부피 만큼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싶었다. 우리나라 교회들도 어떤 곳은 너무 거대하고 화려해서 오히려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색한 곳이 많은데 여기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당을 나와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보기 위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비가 많이 와서 5유로를 주고 우산을 하나 샀다. 이 우산은 그 후 밀라노까지 참 요긴하게 썼다. 그러니까 이탈리아는 다니는 내내 비가 왔던 거다. 봄비처럼, 가을비 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긴 회랑과 여러 개의 방들을 거치고 거쳐 한 곳으로 향했다. 길고 긴 줄을 따라 들어간 막다른 방,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미켈란젤로 일생의 업적이라는 천정화가 있는 곳 - 하늘과 땅의 분리, 아담의 창조,....... 그리스도의 심판에 이르기 까지- 복제 그림으로 하도 많이 봐서 원본을 보아도 크게 감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로마에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비오는 거리를 걸어 다녔더니 '어그'라 부르는 딸의 신발은 이미 물에 젖어 철벅거렸고 청바지도 다 젖어 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박물관 앞의 레스토랑도 만원이었지만 그냥 밀고 들어가서 아무데나 앉았다. 셀프식당 같았는데 전형적인 이탈리아 사람처럼 진하게 생긴 조그만 청년이 다가와 친절하게 우리가 원하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이탈리아에는 거지도 원빈처럼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정도는 아니고 길가다 언뜻 언뜻 알파치노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스틴 호프만 비슷한 사람은 제법 보였다. 작고 다부진 체격에 검은 머리, 짙은 눈썹......
다음날 찾은 포로 로마노는 이번 여행을 다 바꾸어도 될 만큼 훌륭했다. FORO -공공 광장의 뜻이란다. 콜로세오역을 나서자 마자 거대한 경기장 모습이 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짙은 회색의 거대한 원형 석조물을 보는 순간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스파르타카스'나 '막시무스'같은 검투사들이 떠올랐다. 칼로 자른 듯 예리하게 잘라져 비스듬히 서 있는 한 쪽 벽 앞에서 드디어 영화로만 봐왔던 고대 로마를 마주 대했다.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은 길었다.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노예들이 갇혀 있던 지하도 보고 싶었으나 줄 서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 모녀인지라 쉽게 단념하고 바깥만 한 바퀴 빙 돌고 '성스러운 길'이라 이름지어진 길을 걸어 로마의 자취들을 따라갔다.
누구의 집이었을까? 거기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그리고 죽어갔겠지. 여전히 우산 깃발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 사이에서는 중국말도 들리고 일본말, 우리말도 들렸지만 이번에는 그 속에 섞여 설명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의 설레임으로 가득차 누구네 모퉁이 돌이었을 돌조각에도 앉아보고 누구네 침실 기둥이었을 기둥에도 기대 서 보았다. 고개를 꺾어 기대고 있던 기둥을 돌아보니 목이 없는 조각이 나를 바라보는 듯 앉아 있다. 부루터스가 케사르를 죽였다는 건물 앞에도 서 보고 언덕에 올라 포로 로마노를 굽어 보기도 했다.
따뜻한 기후 덕에 1월인데도 땅에는 작은 풀들이 연초록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 부서진 회색의 도시에도 투명한 하늘빛과 거기서 비롯된 빛나는 햇살로 땅에는 여전히 풀들이 자란다.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딸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햇살아래 앉아 그저 흘러가는 세월을 느낀다.
포로 로마노에서 시내로 나오니 또 비가 왔다. 잠시 쉬려고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딸이 주문하는 동안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빈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모녀로 보이는 두 여인이 다가와 손을 벌렸다.
마침 지갑을 딸에게 준 터라 돈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와서 내 얼굴을 스치듯 손을 흔들어 댔다. 그들의 손을 밀치며 돈이 없다고 다시 말하자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순간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가 소녀의 팔을 잡아채서 보니 벌써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휴대폰을 뺏아 자리에 와 앉으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저 자주 일어나는 일인냥 흘끔 흘끔 나를 쳐다볼 뿐, 별 일 아니라는 듯 열심히 먹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 어느새 그걸 집었단 말인가.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지 싶었다.
테르미니역에서 밀라노행 기차표를 사고 돌아오다 생각하니 딸이 가고 싶다는 진실의 입을 깜빡 잊었다. 아쉬웠지만 다시 갈 엄두는 나지 않아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다닌 아홉 도시 중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로마가 제 일 순위이다. 나는 낮의 감동에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제 막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혼자 이렇게 좋은 곳을 오게 돼서 미안하다고, 기회가 또 있다면 꼭 당신과 같이 오고 싶다고.
여행기 10 -밀라노는‧ ‧ ‧
로마에서 밀라노까지는 다섯 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봄이었다. 들판 끝에는 뿌연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둘러쳐 일렁였다. 앞서 지나왔던 도시들보다 훨씬 더 짙은 초록 들판에 드문 드문 흰 점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양떼였다. 메리노 양모가 생각났다.
밀라노 센트럴역은 겉모습은 꽤 웅장해 보이는데 안은 몹시 칙칙하고 초라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역 광장 바로 옆이었는데 깔끔하고 쾌적했다. 짐을 풀고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돈도 찾고 과일과 물도 사고 파리로 가는 야간 기차표도 알아 보았다. 밤 11시 30분 출발이란다. 가만 생각하니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면 밤 열한시까지 어디를 헤매고 다녀야 하나 막막해졌다. 베네치아행 밤기차의 불편함도 생각나고 해서 딸에게 밀라노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아침 기차로 파리에 가자고 했다. 딸이 호텔 프런트에 갔다 오더니 방값이 너무 비싸 그냥 왔다고 했다. 우리가 낸 방값은 두어 달 전에 미리 예약한 거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냥 계획대로 가기로 했다.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라고 들었다. 그래서 아주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쇼핑거리를 찾아 지하철을 나온 순간 펼쳐진 거리는 부다페스트보다 또는 피렌체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그런 거리였다. 딸도 몹시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비까지 내려 거리는 더 칙칙하고 어수선했다. 딸이 책에서 봐두었던 엔틱숖을 찾아 골목길을 누볐다. 서울 뒷골목과 마찬가지로 건물 양 옆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사람들은 차 사이를 조심스럽게 돌아 다녔다.
어두컴컴한 골목길 한 켠에 예쁜 쇼윈도가 있고 안에는 제법 품위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가 나왔다. 딸이 찾던 곳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니 값만 비싸지 쓸만 한 게 하나도 없었다. 누가 썼던 건지도 모를 옷가지며 가방, 신발 따위가 왜 그렇게 비싼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품이라 그렇단다. 막상 딸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듯해서 한참 구경만 하다가 나왔다.
몬테나폴레오네 거리, 밀라노의 중심인 그곳은 길고 긴 아치아래 회랑을 따라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회랑 건너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고딕양식의 두오모가 우뚝 서 있었다. 우산을 쓰고 두오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정면의 모습도 몹시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사방의 벽에 붙어 있는 조각 입상은 얼핏 보아도 모두 다른 모습이었는데 삼천 개가 넘는다고 했다. 모두 하늘을 보며 서 있는데 유독 거꾸로 서 있는 한 입상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었다.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조각이라도 힘들어 보였다.
돌아다니며 비를 맞아 춥기도 하고 해서 들어간 맥도널드에는 한국인이 꽤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도 표가 나는 듯 했다. 우선 어디서나 절대로 기가 죽지 않는다. 대학생인 듯한 여자 아이 둘이 카운터에서 몹시 큰 목소리로 무언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서로 자유롭지 못한 영어를 쓰는 탓에 생긴 문제겠지만 인종적 편견에 가득 찬 유럽 인간들을 막무가내로 이겨먹고 있었다.
쳐다보지 말라고 딸이 눈치를 줘서 고개를 돌렸더니 왠 아줌마가 왕뚜껑 짬뽕 컵라면을 하나 들고 카운터 쪽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드디어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뜨거운 물을 좀 달라는 듯 했다. 그게 되겠는가? 맥도널드에 와서 햄버거는 먹지 않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다니! 이건 한국 아줌마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이다. 퇴짜를 맞고도 씩씩하게 한쪽으로 사라지는 아줌마를 보며 사실은 나도 그 왕뚜껑 짬뽕 컵라면의 뜨거운 국물이 몹시 먹고 싶었다.
집 떠나온지 4주째로 접어 들면서 향수병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았다. 저녁마다 잠자리에 누워 집을 떠올렸다. 내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들이 떠오르고 -뭐 그리 살뜰하게 쓸고 닦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 그러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득해졌다. 그리움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딸은 집에 가자마자 김치찌개를 해 먹자고 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더니 우리가 집에 도착하는 날에 맞춰 돼지고기를 사다 놓으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슴도치 아빠는 또 뭐가 먹고 싶냐고 묻고 딸은 코맹맹이 소리로 먹고 싶은 것을 줄줄이 나열한다.
다음날, 최대한 호텔에서 뒹굴다가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맡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우산을 써도 걸어다니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림 보러 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갔다. 그 거리는 회랑으로 되어 있으니 거기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마다 몇 시간씩 걸어다녀서 그런지이제 다리도 몸통과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뭘할까 망설이다 두오모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를 찾아 표를 샀는데 아뿔싸! 안내원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태우더니 곧장 꼭대기까지 데려다 주고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7유로, 우리돈으로 만원씩 내고 표를 샀는데 그게 꼭대기로 가는 표였는지, 아니면 내부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비내리는 성당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잊지 못할 풍경이 되었지만 그 때는 비가 와서 그림 보러 가는 것을 포기했는데 성당 꼭대기에서 제대로 비를 맞았으니 제 꼬리 제가 문 것 처럼 황당했다. 일본 여자 아이 둘도 꼭대기에 있었는데 '스가이, 스가이'를 연발로 외쳤다. 그래, 멋지기는 멋졌다. 수 천년의 때가 낀 돌탑들이 아득한 지경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그 틈새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석상들이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걸음을 내 딛을 때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려오는 길은 겨우 한 사람이 움직일 만한 계단이었다. 호텔 라디에터에 말려서 신은 딸의 신발은 완전히 젖어 버렸고 나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광장 주변의 음식점은 값이 비쌌지만 할 수 없이 들어가 밥을 먹으며 쉬다가 운동화를 사서 바꿔 신었다.
저녁 7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고 바로 옆 인터넷가게로 갔다. 1시간에 5유로씩 내고 컴퓨터를 했다. 한글을 쓸 수는 없지만 읽을 수는 있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넘어 기차역으로 가니 역 안의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냥 한데서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어깨에 두르고 가로등 불빛에 책을 읽다가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별 짓을 다 했다.
그리고는 기대에 못 미친 밀라노를 미워하면서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리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지 이야기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적 맞다! 길거리 곳곳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어김없이 웅장하고 섬세한 조각상들이 서 있다. 우리가 여행 떠나기 전에 로마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더라면 다른 도시에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오래 있도록 일정을 짰을 것이다. 바티칸과 포로 로마노를 다시 가 보고 싶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테르미니역은 이전의 다른 역에 비해 아주 크고 현대적이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테르미니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짐을 풀자 마자 사흘 동안 넓은 로마를 어떻게 잘 볼 수 있을지 딸과 함께 지도를 펼쳐 놓고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해 봤다. 물론 딸은 쇼핑거리가 있는 번화가를 제일 먼저 짚었고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과 포로 로마노만 보면 된다고 했다. 짐을 두고 나와서 우선 시내 중심부를 돌아보기로 했다.
영화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부터 찾아 갔다. 으레 이름난 것이 이름값을 못하려니 했는데 트레비 분수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 그런 조각과 분수가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 그 다음 스페인 광장,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누던 그 광장에도 가고 그보다 더 멋진 포폴리 광장에도 가 보았다.
그 길에는 이탈리아 명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넋이 나간 듯 진열장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젊은이 셋이 보였다. 대학생이라 짐작되는 두 명의 여자가 진열장 앞에 멈춰서서 "어머, 예쁘다!"를 연발하자 함께 있던 역시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에이, 짜증나!"하며 그중 한 여자를 막 끌고 가려했다. 오십대 엄마와 이십대 딸의 여행포인트만 다른게 아니라 같은 또래라도 남자와 여자의 초점도 다르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둘째 날은 바티칸 시국에 갔다. 로마는 곳곳이 유적이라 지하철이 두 노선밖에 없어 어디를 가든 찾기가 쉬웠다. 바티칸은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지하철을 나오자 마자 그냥 사람들을 따라 가면 되었다. 우중충한 하늘과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 광장을 들어서는 순간, 그 광대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가 않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규모에 놀랐다.
긴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바라본 성 피에트로 대성당은 긴 회랑이 반원모양으로 광장을 빙 둘러져 있고 회랑의 기둥 하나 하나마다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조각상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일생을 기도와 간구로 그리스도를 흠모했던 베드로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화려한 곳이라 생각되었다.
성당 한 쪽에 미사를 보는 의자가 조촐하게 놓여 있었다. 그래,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무릎 꿇고 손 모으는 공간, 그저 몸 하나 부피 만큼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싶었다. 우리나라 교회들도 어떤 곳은 너무 거대하고 화려해서 오히려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색한 곳이 많은데 여기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당을 나와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보기 위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비가 많이 와서 5유로를 주고 우산을 하나 샀다. 이 우산은 그 후 밀라노까지 참 요긴하게 썼다. 그러니까 이탈리아는 다니는 내내 비가 왔던 거다. 봄비처럼, 가을비 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긴 회랑과 여러 개의 방들을 거치고 거쳐 한 곳으로 향했다. 길고 긴 줄을 따라 들어간 막다른 방,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미켈란젤로 일생의 업적이라는 천정화가 있는 곳 - 하늘과 땅의 분리, 아담의 창조,....... 그리스도의 심판에 이르기 까지- 복제 그림으로 하도 많이 봐서 원본을 보아도 크게 감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로마에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비오는 거리를 걸어 다녔더니 '어그'라 부르는 딸의 신발은 이미 물에 젖어 철벅거렸고 청바지도 다 젖어 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박물관 앞의 레스토랑도 만원이었지만 그냥 밀고 들어가서 아무데나 앉았다. 셀프식당 같았는데 전형적인 이탈리아 사람처럼 진하게 생긴 조그만 청년이 다가와 친절하게 우리가 원하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이탈리아에는 거지도 원빈처럼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정도는 아니고 길가다 언뜻 언뜻 알파치노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스틴 호프만 비슷한 사람은 제법 보였다. 작고 다부진 체격에 검은 머리, 짙은 눈썹......
다음날 찾은 포로 로마노는 이번 여행을 다 바꾸어도 될 만큼 훌륭했다. FORO -공공 광장의 뜻이란다. 콜로세오역을 나서자 마자 거대한 경기장 모습이 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짙은 회색의 거대한 원형 석조물을 보는 순간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스파르타카스'나 '막시무스'같은 검투사들이 떠올랐다. 칼로 자른 듯 예리하게 잘라져 비스듬히 서 있는 한 쪽 벽 앞에서 드디어 영화로만 봐왔던 고대 로마를 마주 대했다.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은 길었다.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노예들이 갇혀 있던 지하도 보고 싶었으나 줄 서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 모녀인지라 쉽게 단념하고 바깥만 한 바퀴 빙 돌고 '성스러운 길'이라 이름지어진 길을 걸어 로마의 자취들을 따라갔다.
누구의 집이었을까? 거기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그리고 죽어갔겠지. 여전히 우산 깃발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 사이에서는 중국말도 들리고 일본말, 우리말도 들렸지만 이번에는 그 속에 섞여 설명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의 설레임으로 가득차 누구네 모퉁이 돌이었을 돌조각에도 앉아보고 누구네 침실 기둥이었을 기둥에도 기대 서 보았다. 고개를 꺾어 기대고 있던 기둥을 돌아보니 목이 없는 조각이 나를 바라보는 듯 앉아 있다. 부루터스가 케사르를 죽였다는 건물 앞에도 서 보고 언덕에 올라 포로 로마노를 굽어 보기도 했다.
따뜻한 기후 덕에 1월인데도 땅에는 작은 풀들이 연초록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 부서진 회색의 도시에도 투명한 하늘빛과 거기서 비롯된 빛나는 햇살로 땅에는 여전히 풀들이 자란다.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딸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햇살아래 앉아 그저 흘러가는 세월을 느낀다.
포로 로마노에서 시내로 나오니 또 비가 왔다. 잠시 쉬려고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딸이 주문하는 동안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빈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모녀로 보이는 두 여인이 다가와 손을 벌렸다.
마침 지갑을 딸에게 준 터라 돈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와서 내 얼굴을 스치듯 손을 흔들어 댔다. 그들의 손을 밀치며 돈이 없다고 다시 말하자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순간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가 소녀의 팔을 잡아채서 보니 벌써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휴대폰을 뺏아 자리에 와 앉으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저 자주 일어나는 일인냥 흘끔 흘끔 나를 쳐다볼 뿐, 별 일 아니라는 듯 열심히 먹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 어느새 그걸 집었단 말인가.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지 싶었다.
테르미니역에서 밀라노행 기차표를 사고 돌아오다 생각하니 딸이 가고 싶다는 진실의 입을 깜빡 잊었다. 아쉬웠지만 다시 갈 엄두는 나지 않아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다닌 아홉 도시 중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로마가 제 일 순위이다. 나는 낮의 감동에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제 막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혼자 이렇게 좋은 곳을 오게 돼서 미안하다고, 기회가 또 있다면 꼭 당신과 같이 오고 싶다고.
여행기 10 -밀라노는‧ ‧ ‧
로마에서 밀라노까지는 다섯 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봄이었다. 들판 끝에는 뿌연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둘러쳐 일렁였다. 앞서 지나왔던 도시들보다 훨씬 더 짙은 초록 들판에 드문 드문 흰 점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양떼였다. 메리노 양모가 생각났다.
밀라노 센트럴역은 겉모습은 꽤 웅장해 보이는데 안은 몹시 칙칙하고 초라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역 광장 바로 옆이었는데 깔끔하고 쾌적했다. 짐을 풀고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돈도 찾고 과일과 물도 사고 파리로 가는 야간 기차표도 알아 보았다. 밤 11시 30분 출발이란다. 가만 생각하니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면 밤 열한시까지 어디를 헤매고 다녀야 하나 막막해졌다. 베네치아행 밤기차의 불편함도 생각나고 해서 딸에게 밀라노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아침 기차로 파리에 가자고 했다. 딸이 호텔 프런트에 갔다 오더니 방값이 너무 비싸 그냥 왔다고 했다. 우리가 낸 방값은 두어 달 전에 미리 예약한 거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냥 계획대로 가기로 했다.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라고 들었다. 그래서 아주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쇼핑거리를 찾아 지하철을 나온 순간 펼쳐진 거리는 부다페스트보다 또는 피렌체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그런 거리였다. 딸도 몹시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비까지 내려 거리는 더 칙칙하고 어수선했다. 딸이 책에서 봐두었던 엔틱숖을 찾아 골목길을 누볐다. 서울 뒷골목과 마찬가지로 건물 양 옆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사람들은 차 사이를 조심스럽게 돌아 다녔다.
어두컴컴한 골목길 한 켠에 예쁜 쇼윈도가 있고 안에는 제법 품위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가 나왔다. 딸이 찾던 곳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니 값만 비싸지 쓸만 한 게 하나도 없었다. 누가 썼던 건지도 모를 옷가지며 가방, 신발 따위가 왜 그렇게 비싼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품이라 그렇단다. 막상 딸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듯해서 한참 구경만 하다가 나왔다.
몬테나폴레오네 거리, 밀라노의 중심인 그곳은 길고 긴 아치아래 회랑을 따라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회랑 건너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고딕양식의 두오모가 우뚝 서 있었다. 우산을 쓰고 두오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정면의 모습도 몹시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사방의 벽에 붙어 있는 조각 입상은 얼핏 보아도 모두 다른 모습이었는데 삼천 개가 넘는다고 했다. 모두 하늘을 보며 서 있는데 유독 거꾸로 서 있는 한 입상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었다.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조각이라도 힘들어 보였다.
돌아다니며 비를 맞아 춥기도 하고 해서 들어간 맥도널드에는 한국인이 꽤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도 표가 나는 듯 했다. 우선 어디서나 절대로 기가 죽지 않는다. 대학생인 듯한 여자 아이 둘이 카운터에서 몹시 큰 목소리로 무언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서로 자유롭지 못한 영어를 쓰는 탓에 생긴 문제겠지만 인종적 편견에 가득 찬 유럽 인간들을 막무가내로 이겨먹고 있었다.
쳐다보지 말라고 딸이 눈치를 줘서 고개를 돌렸더니 왠 아줌마가 왕뚜껑 짬뽕 컵라면을 하나 들고 카운터 쪽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드디어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뜨거운 물을 좀 달라는 듯 했다. 그게 되겠는가? 맥도널드에 와서 햄버거는 먹지 않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다니! 이건 한국 아줌마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이다. 퇴짜를 맞고도 씩씩하게 한쪽으로 사라지는 아줌마를 보며 사실은 나도 그 왕뚜껑 짬뽕 컵라면의 뜨거운 국물이 몹시 먹고 싶었다.
집 떠나온지 4주째로 접어 들면서 향수병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았다. 저녁마다 잠자리에 누워 집을 떠올렸다. 내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들이 떠오르고 -뭐 그리 살뜰하게 쓸고 닦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 그러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득해졌다. 그리움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딸은 집에 가자마자 김치찌개를 해 먹자고 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더니 우리가 집에 도착하는 날에 맞춰 돼지고기를 사다 놓으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슴도치 아빠는 또 뭐가 먹고 싶냐고 묻고 딸은 코맹맹이 소리로 먹고 싶은 것을 줄줄이 나열한다.
다음날, 최대한 호텔에서 뒹굴다가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맡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우산을 써도 걸어다니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림 보러 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갔다. 그 거리는 회랑으로 되어 있으니 거기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마다 몇 시간씩 걸어다녀서 그런지이제 다리도 몸통과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뭘할까 망설이다 두오모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를 찾아 표를 샀는데 아뿔싸! 안내원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태우더니 곧장 꼭대기까지 데려다 주고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7유로, 우리돈으로 만원씩 내고 표를 샀는데 그게 꼭대기로 가는 표였는지, 아니면 내부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비내리는 성당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잊지 못할 풍경이 되었지만 그 때는 비가 와서 그림 보러 가는 것을 포기했는데 성당 꼭대기에서 제대로 비를 맞았으니 제 꼬리 제가 문 것 처럼 황당했다. 일본 여자 아이 둘도 꼭대기에 있었는데 '스가이, 스가이'를 연발로 외쳤다. 그래, 멋지기는 멋졌다. 수 천년의 때가 낀 돌탑들이 아득한 지경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그 틈새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석상들이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걸음을 내 딛을 때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려오는 길은 겨우 한 사람이 움직일 만한 계단이었다. 호텔 라디에터에 말려서 신은 딸의 신발은 완전히 젖어 버렸고 나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광장 주변의 음식점은 값이 비쌌지만 할 수 없이 들어가 밥을 먹으며 쉬다가 운동화를 사서 바꿔 신었다.
저녁 7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고 바로 옆 인터넷가게로 갔다. 1시간에 5유로씩 내고 컴퓨터를 했다. 한글을 쓸 수는 없지만 읽을 수는 있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넘어 기차역으로 가니 역 안의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냥 한데서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어깨에 두르고 가로등 불빛에 책을 읽다가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별 짓을 다 했다.
그리고는 기대에 못 미친 밀라노를 미워하면서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리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지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