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오던 날>
-황숙희

콩이 온다. 콩이 온다
무서운 콩이 온다.
엄마의 손에, 까만 봉지에 쌓여
무서운 콩이 온다.

엄마가 쳐다보신다.
눈에 힘들 주시며 까만 봉지를
꽉 움켜쥐시고,
마치 작은 얼룩말을 향해
자세를 웅크리며 눈을 빛내던
그 사자처럼
나를 쳐다보신다. 오랫동안...

뭘까? 두부일까? 두유일까?
두렵다.
드디어 엄마가 말씀을 하신다.
"우리 오늘부터 콩나물 키워서 먹자"
살았다. 오늘부터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저 콩에 물을
줄 것이다.

<둥글 납작 타원형 콩>
-이경숙

빤딱 빤딱
노란색 윤기 있는 껍질
우리집 장판 같다
열심히 닦아도 늘 그대로
얼룩이나 묻지 말지
그곳만 살짝 떼어다
네 껍질과 바꿔볼까?
너 껍질 벗고 나올때
그것 나좀 빌려 주렴

둥글 납작 타원형
중간에는 씨눈이 굳게 닫혀 있고
사이사이 주름이 예쁘게도 잡혀있다
나 어릴적 요술 주머니
우리 할머니 지갑 같다
굳게 닫힌 할머니 지갑
나한테는 약하다
할머니 머리 위에 나뭇짐 이어주면
백원이 쏘오옥
운좋으면 천원이 쏘오옥

<콩>

검은 콩. 완두콩. 강낭콩.
이렇게나 맛있는 콩들
왜 이렇게
아이들은 콩을
싫어할까

영양이 풍부한 콩
밥 속에 넣어 먹으면
밤 맛이 난다
그래서
콩밥은
더 맛있다

동그란 콩
굴리며 잘도 굴러간다
마당 이곳 저곳
구멍 뚫린 곳에
숨어 버리면
찾을 수가 없다

-요술콩-
조그마한 콩
물 속에
담가 놓으며
커다란 콩으로
변신하는
요술콩

<콩 싫어하는 동생>
-오아름

나 이제부터 콩 싫어할거야

니가
콩 싫어하니
콩떡은 안 사왔다
오늘은 콩밥인데 어떻게 하지
막내가 콩 안 먹는데
콩국수는 무슨

엄마 나 콩 싫어하지 않고
팥 싫어해요

때마다
얘기하다
이제 지쳐서
그냥 이제부터
콩 싫어한대요

엄마는 그래서
막내가 처음부터
콩 싫어하는 줄 알아요

<콩 콩 콩>
-오아름

너는 콩 콩 콩
동생도 콩 콩 콩

너는 후라이팬 위에서
콩 콩
울 동생은 종이 위에
콩 콩

콩 콩 콩
콩 콩 콩

너는 콩이라서 콩 콩
동생은 사람인데 콩 콩
다섯 살 우리 동생은
자기 이름에 '동'자를
거꾸로 써서
콩 콩

<콩>
-황향선

매끈한 몸매 물맛보고
불어 터진 몸
무쇠 솥 속 춤추더니
젖어 무거운 몸

목화 꽃 속에 빠져
밟히는 아픔 껴안고
모두가 한 몸 덩이
나무 숨결 맛보더니

처마 밑에
짚 풀 새 옷 입고
해 바라기
날마다 야위고
바람 따라 비님도 쉬어가고

별 바라기 땅기운 받더니
더부살이 누룩 신
燒身 供養
無住相布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