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어린이 인권교육 4차시 프로그램
마음속 묵혀 둔 말에 날개 달기
이선주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부천여성회 인권교육 담당 che6880@hanmail.net
자기 삶 속에 숨겨둔 말에서 시작하기
인권교육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 도면 잘 됐다고 느낄 때는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우리 5,6교시까지 계속 말하면 안 돼요?”하고 왁자지껄 생기가 돌 때다.
어린이들과 인권교육을 하면서 알아가는 것인데, 어린이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다. 그저 “네가 잘 못 했어” “아니야” “그만해” “공부해” 하는 말에 눌려 제때에 할 말을 쏟아 내지 못했을 뿐이다. ‘폭력’이 뭘까, ‘차별’이 뭘까, 내가 느끼는 아픔의 원인이 뭘까를 돌이켜 보는 것. 심지어는 지금 당장 교실 안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 꺼내 놓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아가는 것을 즐거워한다.
“너무 말을 많이 하니까 속이 시원하고 재밌었다.”
“일단은 여러모로 내가 차별을 받은 것을 털어놓을 수 있어 후련했던 거 같다.”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마음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자기 마음을 써 붙여서 속이 시원하고 좋았고 즐거웠다.”
“나의 기분을 나타낼 수 있어서 기뻤다.”
인권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 마음을 간질이는 질문과 키워드를 잘 뽑아 가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기쁨을 느끼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내뱉는 말을 잘 귀담아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이다. 그러기 위해서 숨겨 둔 말을 자극할 수 있는 질문, 그림, 놀이도구,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수집하여 교육안을 마련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편이다.
교육안이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
물론, 교육안을 소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고 좋은 교육안을 만들어 가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전제가 있다. “교육안을 고집하지 않는다”이다. 같은 교육안이라 하더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과 만났는가에 따라 진행 내용과 결과가 판이하다. 게다가 어린이 인권교육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과 토대가 그렇게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학교, 지역아동센터 등 어린이들이 모여 있는 특수한 공간에서 교육할 때 막상 교육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에게 동기가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교육에 즐겁게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 “내가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죠?”라고 물어 오는 이들이 있을 때는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육 기관에서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 그 수많은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왜 듣는지 이유도 모른 채 앉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 진행자와 참가자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인권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동기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하고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말을 꺼낼 수 있도록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방적으로 ‘인권의 개념’에 대해 전달하고 올 것이 아니라면, 인권교육가가 준비해 간 교육안은 완성된 것일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반쪽짜리다. 나머지 반쪽은 참가자가 자신의 기분과 욕구에 따라 채워져서 함께 완성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한다. 인권으로 어린이들과 만나는 순간 여행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이다. 그들이 새롭게 만난 ‘인권’과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권교육가의 역할이니, 굳이 교육안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용과 방법을 조금씩 수정하기도 한다. 인권교육가 역시 어린이 속으로 들어가 공동의 참여자가 되어 내용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 힘센 사람이 말의 권력을 쥐고 상황을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고 그것을 조율하고 협력하며 바꿔나가는 경험이, 잘 짜인 교육안을 계획한 대로 모두 ‘완성’해내고 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일 수 있다. 존중받는 경험이, 존중에 대한 개념을 배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안은 계속 변할 수 있다
또 하나 전제로 해야 할 것은 고정되고 완벽한 교육안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구조에서 교육을 할 것인가, 교육에 참여하는 참가자들 삶이나 욕구가 어떠한가에 따라 준비해 가야 할 질문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30명의 어린이들과 하는 교육과 지역아동센터에서 10명의 어린이들과 하는 교육, 독서교육에 모인 5명의 어린이들과 하는 교육이 모두 같을 수 없다. 처한 조건과 상황을 잘 들여다보고 관찰하여 그에 맞는 교육으로 교육안을 변형하여 준비해갈 수 있어야 한다.
인권교육은 인권교육가와 참가자가 함께 뒤섞여 공통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육을 준비해 간 인권교육가 역시 참가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느끼고 경험한 것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권교육 교육안을 재구성하는데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가 처한 삶에서 그들이 느끼는 욕구, 분노, 억압의 실체를 함께 느끼고 그것을 토대로 교육안을 재구성하여 계속 변형해 나가며 변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꽤 힘든 작업이지만, 무척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무언가 함께 교류하고, 공감하고, 통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꽤 강렬한 것이다. 그 강렬한 공감의 감정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씨앗이자 인권교육의 목표라면 목표일 수 있다. 인권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준비한 교육안
여전히 숙제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과 즐겁고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더 나아가 스스로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계속 어린이를 만나면서 수정해 가야 할 것이고, 인권교육이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린이 삶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인권교육의 조건과 토대를 제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조건을 인권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어린이 인권교육을 하면서도 갈등을 느끼는 바는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조건이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인권친화적인 문화와 태도 속에서 인권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어린이보다도 어린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 대표적 어른들 교사, 학부모에 대한 인권교육이 제일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저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교육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문제의식을 마음에 품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만들고 있는 교육안을 소개할까 한다. 소개하는 교육안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인권교육활동가들이 쌓아온 교육활동의 일부를 어린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향으로 변형하고 재구성해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필자 본인의 힘만으로 재구성한 것도 아니다. 함께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서로 서로가 마음을 모아 교안을 만들고 그것을 기꺼이 공유하며 새로운 싹이 틀 수 있도록 함께 키워나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인권교육프로그램은 지역아동센터에서 고학년 어린이 10여명과 함께 총 4주 동안 매주 1회 1시간씩 함께 했던 것이다. 함께 한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차시 | 주제 | 수업내용 |
1차시 | 인권교육 참가자의 마음 열어보기 | 풍선통통 등 마음을 여는 놀이 프로그램 |
2차시 | 일상의 차별 알아보기 | 역할극, 차별 표현하기 |
3차시 | 일상의 폭력 알아보기 | 폭력에 대한 경험 나누기 |
4차시 | 인권 재구성하기 | 걸림돌 제거하기 등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체험활동 |
1차시 두근두근 콩콩 새로운 만남
인권교육에서는 참가자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자료가 된다. 서먹서먹한 관계와 분위기에서는 즐거운 인권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 첫 수업에서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풍선통통, 털실대화, 나는 누구일까, 짝꿍 인터뷰 등의 가벼운 놀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2차시 빛나지 않는 별, 차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별할까? 차별을 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걸까? 어떤 차이는 존중받는데, 어떤 차이는 거부당하고 배제당할까.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한 것일까에 대해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발견하고 경험하는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역할극, 가해자 소환, 차별경험 말하기 등을 통해 자신이 겪은 차별을 표현하고, 차별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함께 기르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3차시 폭력이 일어나는 순간은?
큰 싸움이 벌어지거나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평화를 깨는 일상의 폭력은 교실과 가정, 그리고 또래 관계에서 종종 등장한다. 더욱이 부당한 폭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폭력에 맞서야 할지, 혹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상 속에서 ‘폭력’을 찾아보고 ‘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의 맥락과 관계를 살펴보도록 한다.
2차시 수업과 마찬가지로 가해자-피하재 인물 관계도 등을 통해 참가자가 폭력에 대한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말할 수 있도록 한다. 부모-어린이/교사-어린이/다수의 사람-왕따/힘센 사람-약한 사람 등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를 제시하고 그 상황이 가진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눈다.
4차시 인권의 재구성
인간이 인간답게 살만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마지막으로, 인권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그것을 하나씩 헤쳐나갈 대안을 함께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차별에 맞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함께 머리를 맞대어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이는 시간이다.
차별 마을 탐험, 걸림돌 제거하기 등 우리가 사는 사회를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바꾸고, 해결해 나가는 체험 활동을 통해 마음의 힘을 모으고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수업내용을 구성한다.
같은 주제로 서로 다른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을 했는데, 참가한 어린이의 삶과 욕구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더 관심을 가지는 내용에 집중하여 내용을 풀어 볼 수도 있고, 준비해 간 교육안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종종 발생한다. 어디서는 잘 된 것이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렇게 한 교육안에 대해 나타났던 여러 다양한 반응을 다양한 반응을 묶어서 소개해 봄 직하다. 그렇게 하여 이번 연재가 잘 짜여진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어린이 삶의 어떤 부분을 건드려 함께 나눌 이야기들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는지, 혹여나 교육안에 비어 있는 지점이 있다면 어떻게 채우면 좋을지, 하나의 교육안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변형시키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모두 담아내어 보고자 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교육안이 인권의 바다를 잘 항해하기 위해서는 인권교육을 통해 무엇을 핵심적으로 나누면 좋을지 인권교육가 스스로 마음속 씨앗을 돌볼 필요가 있다. 인권, 차별, 폭력이라고 하는 키워드와 어린이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주로 억압받는 위치에서 자기표현을 거부당하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어떤 것을 핵심적으로 나누면 좋을지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핵심적인 목표 하나를 마음에 품고 어린이들을 만난다면, 교육안이라고 하는 도구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하고 적용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인권교육안을 만드는 일도 그렇고,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일도 그렇고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를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답’을 찾는 것은 괴롭지만 ‘문제’를 찾는 과정은 험난하면서도 즐거운 여행 같은 것이다. 함께 나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함께 나눌 질문 꾸러미를 잘 만들어서 가지고 가는 것이 훨씬 더 교육을 생생하고 살아있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안을 소개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이것이 제일 좋은 교육안이다” 라고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들과 각기 다른 주제로 어떤 질문을 나누고 문제를 풀어 가는지 그 과정을 함께 나눌 수는 있을 것 같다. 함께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