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만에 길 나서는 아침이다. 벚꽃은 미처 그 화사한 피어남을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꽃이파리 훌훌대며 지고 있었다. 낙화유수라더니, 곱고 아름다운 것들의 허망함이 예사로이 보아지지 않는 세월이다. 서른아홉 고개를 넘어가는 내 마음 자리가 어수선하고 난감한 탓일 게다.

벌써 20강이라니, 처음 서먹하게 얼굴을 마주한 온 겨울을 다 보내고, 새봄의 꽃잔치 한창인 계절.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 첫 주면 우리들의 강의도 마지막이려니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많은 속내야 나누지 못했어도 그새 얼굴들 하나하나가 정이 들었나보다. 반가이 맞아주는 미소들, 찻물이 스미듯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 온다.

김형준 선생님.
커다란 체구, 어수선한 머리칼, 계절을 고려치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었을 것 같은 옷차림. 비 오는 저녁 막걸리 한잔, 파전 한 접시 시켜놓고 얘기 나누면 딱 제격일 듯한 겉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강의를 접하게 되면, 쏟아지는 해박함과 예리함에 이전의 이미지는 달아나버리고, 쏟아지는 그의 말을 따라잡느라 뒷덜미 뻐근해지는 곤욕스러움이 있다. 술? 흠, 술자리에서도 이런 속도라면 결코 취할 수가 없겠는 걸.ㅠㅠ

<1>
지난 시간에 내준 과제물 점검으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나는 지난 강의에 결석을 했다는 핑계로 과제물도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좀 뻔뻔한 태도로 앉아있었다. 아, 그 전에 우리 강의실이 좀 좁은 장소로 바뀌었고 열 여섯 명이 함께 앉기 위해서 좌석배치를 달리 할 수밖에 없었는데, ㄷ자형태의 기본 배치에 책상 두 개가 가운데 자리에 놓여짐으로써 나를 비롯한 4명의 샘들은 강사샘과 정면으로 얼굴 맞딱뜨리고 앉아야하는,  졸지에 ‘나머지 학생’이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자꾸 얘기가 옆길로 샌다. 강의로 돌아가 보자.

과제물은 아래 3장의 그림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관한 것이었다.
1. 김 경환의 「탁족도」
2. 램브란트의 「자화상」
3. 피카소의 「게르니카」

3분의 샘들이 과제물을 제출하였고, 늘 그렇듯이 성실한 학생이 많지 않아 선생님께서 섭섭해 하셨다. 늘 마음에 찔리는 나...흠흠, 못해 온 샘들의 처지는 동병상련, 열심히 과제를 해 온 샘들에게는 존경의 마음. 다음에는 나도 꼭 과제를 해가고 말리라..결심은 하지만....

우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그림에 시대를 반영하는 특징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그림 하나하나에 대해 갖고 있는 배경지식은 자칫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게하는 함정일 수가 있다 라는 말씀.  

1. .램브란트의 「자화상」은 개인의 얼굴을 강조했다. 배경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얼굴 전체가 위압적일 만큼 크고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기법에 있어서는 원근법을 사용했는데, 이 또한 중세의 그림이 평면적이고 주관적인 것에 반해, 원근법이라는 객관적 표현형태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곧 전형적인 서구 근대이념의 표현, 즉 이성과 개인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림에 원근법이 적용된 배경 설명.
중세는 알다시피 신 중심의 세계관이었으며, 따라서 신분의 차이가 신의 뜻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시대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이념은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졌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는 자연과학적 사고가 발달하게 된다. 그 토대가 된 철학적 기반은 데카르트부터였다. 그림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여 원근법이 사용되어졌는데, 원근법이란 마치 사진을 찍듯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표현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원근법이라는 것도 보다 본질적으로 생각하면 화가의 시선이라는 주관성이 개입된 것이다.
화가가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사물은 주관적으로 표현되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 역시도 사진작가가 선택한 주제, 풍경, 지점, 각도에 따라 같은 풍경이라도 각각이 다른 모습을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사실이 반드시 객관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예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라는 현실에 적용해보면 보다 분명해 진다. 신문의 경우, 기사의 내용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사실을 두고도 그 사실에 대해 바라보는 신문사의 입장은 다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헤드라인이 달라지고 어떤 사진을 채택할 것인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사는 일선 기자가 쓰지만 제목을 뽑고 편집을 하는 것은 바로 신문사의 편집국이다!.  

(나의 생각...흠, 인간에 의해 표현되어지는 모든 것에 객관은 없다...가 되는군요.)

2. 이런 맥락에서 김 경환의 「탁족도」를 분석해 본다.
「탁족도」는 앞의 「자화상」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개인의 얼굴표정은 거의 알 수가 없고, 배경이 강조되었다. 즉, 개인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심산유곡에서 발을 씻는 상황 자체가 중시된다. 다시 말해 「탁족도」에서 보여주는 것은 봉건사회에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강조한 것이며, 이는 유교적 군자상이다.

3. 피카소의 「게르니카」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분석해 본다면, 원근법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적 시선이다. 이는 고정된 하나의 관점을 거부한 탈근대적 인식의 반영이다.

20세기 초 등장한 탈근대의 선두주자로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는데, 아인쉬타인과 프로이드 그리고 피카소가 해당된다. 이들은 각 영역에서 근대의 고정된 이론을 깨뜨리며 탈근대의 커다란 획을 긋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뉴튼의 만유인력과의 차이에 대해 F=ma ⇔E=mc2 라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셨는데...제 메모리 용량의 한계상 옮길 수가 없습니다요. ㅠㅠ)

그림이 나온 것과 연관되어, 형준샘 첫강의 때 나눠준 프린트 뒷장에 있는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에 대한 논제해석 보강.

●<파이프가 그려진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구가 있는 그림.>

이 문구는 맞다. 그림에 있는 파이프는 현실의 파이프와 다르니까,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파이프   ≠  그림
  ↓          ↓
현실        이미지, 기호 ⇒ 즉,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다.  

※ 그러나,(늘 이 그러나에 방점이 찍히겠지요?), 이것 자체가 심오한 현실의 한부분이다.  이러한 그림, 이미지로 표현 되는 것 또한 현실의 한 부분이며, 삶의 이면에 남아있는 복잡한 과정임.(아, 어렵다~~)

● 「뒤샹의 변기」에 대하여 : 뒤샹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예술가가 있고  그 예술가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이 예술품이다. 예술가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미 공장에서 만들어진 변기를 전시회에 갔다놓고 예술품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술가라는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러한 예술품을 선정하는 사회를 고발. 비판한 것이다. ‘변기’ 이후 빈 액자를 걸어놓고 예술품이라고 주장한 것 역시 같은 맥락.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어떤 것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사회와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지점(시대적 배경)을 잡아야한다 라는 것.  또하나, 인물을 평가할 때 그가 훌륭하다가 아니라 왜 훌륭한가가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

(들을 때도 무척 바쁘고 어수선했는데, 정리하는 것도 역시 어수선하다}


<2>
두 번째는 모둠 토론의 시간.

논제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4명씩 모둠을 형성해 토론을 했다.

● 1조 : 정치가,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 자체의 인식부족이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근대가 불구적으로 발달되어온 결과이다. 관용의 부족, 소수의 묵살 등이 문제라고 본다.

     Q.(형준샘) 민주주의가 낙후됐다라고 하는데 과연 누구와 비교해서인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소수의 국가일 뿐이며,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서구적 민주주
        의가 아닌가?  서구의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우, 유럽 몇 개 나라의 민주주의보다는 부족하지만, 아시아 여러나라들과 비교해서
       는 훨씬 선진적이라 할 만하다. 나아가 아프리카 등의 나라와 비교했을 때는 어떠한가?
       학생들과 수업할 때 이러한 질문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 2조: 겉은 민주주의이지만 속은 아니다.
    
     Q. 겉은 무엇이고 속은 무엇인가?
       겉이라는 함은 제도,정치..등을 일컬고 속이라 함은 가치,인권...등등의 내용임을 명확히  해야한다. 그렇
       게 보았을 때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정치형태라기 보다, 이상향(idea)다.
       현실 속의 민주주의는 어느 나라라도 문제점은 있다.

● 3조 : 과거청산의 문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시장, 소비의 자유일 뿐 평등은 부족하다.
           민주주의 정치형태가 과연 완전한가?

     Q.'자유‘는 ’자본‘이다. 정치형태에 따라 자유는 달리 이해된다.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는 '~할 자유,(소비, 사유재산 등등)' freedam.
       사회주의에서의 자유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liberation' 에 가깝다.
       현실민주주의에 나라별로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21C에 인류가 공통적으로 인정한 보편적
       가치는 민주주의다.


● 4조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패거리주의다. 지역, 인맥 등에 따라 주체가 없이 선택되어지는
        것이 큰 문제.

     Q. 토론거리의 핵심은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찾는 것.
         답은 지역주의이다.


<3>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란 권력의 문제이다. 따라서 계급이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근본적인 민주주의란 가능하지 않다. 인류역사에서 계급혁명은 크게 두 단계로 볼 수가 있는데, 그 하나가 시민혁명이라 일컫는 부르조아 혁명이며, 두 번째가 러시아의 혁명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이다.

시민혁명은 크게 1.명예혁명(영국), 2. 프랑스대혁명 3.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부르조아혁명이다. 즉, 봉건왕제에 대항한 부르조아 계급의 혁명일 뿐이지, 인민이라 일컫는 무산자계급의 혁명은 아니다.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며, 권력계급이 누구로 바뀌었는가일 뿐이다. 현재 우리의 교육에는 이것이 제대로 강조되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가르쳐지고 있다. 사회주의혁명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사회가 자본주의, 권력을 잡고있는 자본가들이 애써서 사회주의 혁명을 전파할 이유가 없지않은가?

(나의 생각....반공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과정을 걸어온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것이 심화된 형태일 수밖에 없겠지요.)

민주주의의 내적인 가치는 인권이다. 본질적으로 이성적이고 자유와 평등을 후속가치로 둔다. 다수결은 투표의 방식일 뿐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며, 만능일 수도 없다.

● 민주주의에 있어서 인권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마치 주체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주체적인 참여가 무시된  ‘동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프린트물 함께보기

주체가 빠진 동의는 인정될 수 없는 것 아닌가?
개인의 인권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선택에 대해 학생들과 수업해 볼 것.

예) 악법도 법인가?,  학교교칙 지켜야 하나?, 가정내의 규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 다음 주 과제
<최근의 우리사회 경제 쟁점 중 하나를 선택해 정리 발표하기>
--무작위로 3~4명 선정해 발표시키신답니다. .

(후반부에 가서 어수선해져 버린 이유는 형준샘이 필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필기를 멈추고 들었는데, 정리하려니 기억이 왔다갔다 해서리....그리고, 인간적으로 강의 내용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ㅎㅎ.
빠진 부분 다른 샘들이 보충해주시구요.)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순옥샘이 점심배달을 기획하여, 강의가 끝나고 샘들 모두 모여(지훈샘만 바빠서 먼저가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시간을 낸다고는 해도 모두들 주부, 또는 직업을 가진 입장이라 노닥거리며 차한잔 마실 여유도 가질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쉽다.

돌아오는 차창, 봄햇살이 눈부시다. 흘러가는대로 따르는 것이 또한 순리라...무소유, 무집착의 법정스님 말씀이 생각난다. 비워야겠지, 내 안의 것, 나 아닌 것들의 무게를.  그래야만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