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논술 강의 나눔터
김경옥 선생님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가톨릭의 입장과 황우석 교수측의 입장을 설명한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 했으면 좋겠으나
황우석 교수의 입장을 보여 주는 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혹 찾으신 분 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엔 제가 들었던 가톨릭의 성명서만 올립니다.
이번 김혜진 선생님의 수업후 많은 공부와 토론이 잇달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공부도 여럿이 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
- 배아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
최근 우리 사회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 결과 발표로 열광의 분위기에 젖어 있습니다.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핵이식하는 방법으로 환자 자신과 일치하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생산에 성공한 것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성급하게도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론매체도 이상하리만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에 처음 성공하였을 때 쏟아져 나왔던 찬반양론 가운데 생명윤리와 기술적 위험성을 문제 삼았던 정도의 비판이나 문제 제기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발표로 척수마비, 파킨슨씨병, 치매, 당뇨병 같이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세포 치료의 실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으며, 이러한 기술이 우리나라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습니다.
돌이켜 보자면 1997년 복제양 돌리의 출현은 세상을 경악시켰습니다. 복제양 돌리의 출생 사건은 이전까지의 생명복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인 체세포 핵이식 방법에 따른 복제였다는 점에서 그 놀라움은 더욱 컸습니다. 생명복제 기술의 발전이 이제 단성(單性), 무배우자 생식을 가능하게 하였고, 나아가 그 기술이 인간에게까지 적용되어 복제인간의 출현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생식에 관한 기존의 상식은 이제 완전히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이번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결과는 생명공학 기술의 치료적 활용의 범위를 확대한 것입니다. 이 연구에는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기술과 같은 체세포 핵이식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인간배아에게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난치병 치료를 위한 세포치료제나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는 것이 황우석 교수의 발표 내용입니다. 배아줄기세포란 인간배아의 생성 후 약 14일이 지난 배반포기 단계의 인간배아에서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신체의 모든 장기나 조직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만능세포입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이번 발표는 지난 2004년 2월에 이미 발표한 인간배아줄기세포 배양의 성공보다도 훨씬 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성 간, 다양한 연령층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뿐만 아니라, 난치병 환자들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까지도 성공함으로써 배아줄기세포 치료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년의 연구에서는 여성의 난자 242개를 사용하여 단 한 개의 배아만을 만들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185개의 난자에서 11개의 배아를 복제함으로써 복제 성공률이 작년에 비해 무려 1,440%나 높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높아진 배아복제 성공률과 함께 배아줄기세포 배양 기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 못지않게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데 대한 걱정과 우려의 소리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가능성이 불투명하였던 배아복제가 이번 연구로 해서 한층 더 가능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궁에 착상시키면 사람이 될 수 있는 복제배아를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대의 입장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첫째,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의 복제와 인간 생명체의 파괴라는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인간배아를 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생산해 낸다는 의미로서, 이는 인간의 생명을 창조주 하느님의 거룩한 창작품(창세 1,26-28; 2,7 참조)으로 믿는 우리의 신앙에 대립합니다. 비록 복제된 배아라 할지라도 이는 분명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인간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은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치료제를 만들고, 의약품을 만드는 일이 마치 그 자체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일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명백히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 생명체를 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처분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 수준으로 격하시키거나, 한 번 쓰고 버릴 생물학적 재료로 취급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 행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이번 연구로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황우석 교수는 인간복제를 원하지도 않고, 또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배아복제는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어 끝내는 복제인간을 출현시키고 말 것입니다. 수정 후 14일이 지난 배반포기 단계의 인간배아가 줄기세포로 추출되는 대신 여성의 자궁에 착상되어 복제인간으로 출산되는 것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성공적인 분화보다도 기술적으로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제인간의 출현을 심각하게 염려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린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처사이며, 인류에게 수많은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간배아 복제 연구로 해서 여성들은 자칫 생물학적인 몇 가지 기능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배아 생산과 복제를 위해서는 난자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황우석 교수는 난자 기증자에게 난자 기증 사유와 절차를 충분하게 알려 주고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난자를 기증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난자 채취 과정이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난자를 얻기 위하여 호르몬제의 투여, 난포의 성숙도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이로 인해 초래될 부작용의 발생, 부작용이 야기시키는 위험 - 예컨대 난소 손상, 영구 불임, 생명의 위험 - 외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의학적 또는 윤리적 문제들이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하여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서 근본적으로는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단언합니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목적은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고 살리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배아는 수정의 순간부터 확실하게 한 인간 생명으로 결정된 주체이며, 바로 그때부터 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점진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되므로, 그 진행 과정의 어떤 단계도 단순히 세포덩이로만 여겨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주체는 인간 개체로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인간배아를 연구나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수단으로 삼고,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고,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한다고 하여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한 생명을 치료하고자 또 다른 생명을 제삼자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희생시키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과학기술을 결코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틀림없는 인간 생명체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생명체인 배아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배아 상태의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고 자기 결정권을 수행하지 못하는 생명을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며 기득권자의 횡포입니다. 행위의 목표가 선한 것이라면 목표를 이루어내는 수단마저도 선해야 합니다. 행위의 목표가 윤리성을 지녀야 하듯이 그 수단도 윤리성을 지녀야 합니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임상적으로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 치료는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뿐더러 안전성도 탁월합니다.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줄기세포가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생명과학은 학문으로서 자율성과 자유를 담보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생명과학 역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와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건강한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책임과 양식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생명과학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과학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눈부신 업적에 자만하지 말고 거듭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뇌를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해서는 안 되는 경우를 식별하고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을 내릴 때 생명과학은 신뢰와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이로 여긴다거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로 여기면서 파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급속도로 확산시킬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에 열광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2005년 6월 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가톨릭의 입장과 황우석 교수측의 입장을 설명한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 했으면 좋겠으나
황우석 교수의 입장을 보여 주는 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혹 찾으신 분 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엔 제가 들었던 가톨릭의 성명서만 올립니다.
이번 김혜진 선생님의 수업후 많은 공부와 토론이 잇달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공부도 여럿이 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
- 배아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
최근 우리 사회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 결과 발표로 열광의 분위기에 젖어 있습니다.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핵이식하는 방법으로 환자 자신과 일치하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생산에 성공한 것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성급하게도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론매체도 이상하리만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에 처음 성공하였을 때 쏟아져 나왔던 찬반양론 가운데 생명윤리와 기술적 위험성을 문제 삼았던 정도의 비판이나 문제 제기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발표로 척수마비, 파킨슨씨병, 치매, 당뇨병 같이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세포 치료의 실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으며, 이러한 기술이 우리나라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습니다.
돌이켜 보자면 1997년 복제양 돌리의 출현은 세상을 경악시켰습니다. 복제양 돌리의 출생 사건은 이전까지의 생명복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인 체세포 핵이식 방법에 따른 복제였다는 점에서 그 놀라움은 더욱 컸습니다. 생명복제 기술의 발전이 이제 단성(單性), 무배우자 생식을 가능하게 하였고, 나아가 그 기술이 인간에게까지 적용되어 복제인간의 출현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생식에 관한 기존의 상식은 이제 완전히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이번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결과는 생명공학 기술의 치료적 활용의 범위를 확대한 것입니다. 이 연구에는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기술과 같은 체세포 핵이식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인간배아에게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난치병 치료를 위한 세포치료제나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는 것이 황우석 교수의 발표 내용입니다. 배아줄기세포란 인간배아의 생성 후 약 14일이 지난 배반포기 단계의 인간배아에서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신체의 모든 장기나 조직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만능세포입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이번 발표는 지난 2004년 2월에 이미 발표한 인간배아줄기세포 배양의 성공보다도 훨씬 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성 간, 다양한 연령층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뿐만 아니라, 난치병 환자들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까지도 성공함으로써 배아줄기세포 치료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년의 연구에서는 여성의 난자 242개를 사용하여 단 한 개의 배아만을 만들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185개의 난자에서 11개의 배아를 복제함으로써 복제 성공률이 작년에 비해 무려 1,440%나 높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높아진 배아복제 성공률과 함께 배아줄기세포 배양 기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 못지않게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데 대한 걱정과 우려의 소리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가능성이 불투명하였던 배아복제가 이번 연구로 해서 한층 더 가능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궁에 착상시키면 사람이 될 수 있는 복제배아를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대의 입장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첫째,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의 복제와 인간 생명체의 파괴라는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인간배아를 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생산해 낸다는 의미로서, 이는 인간의 생명을 창조주 하느님의 거룩한 창작품(창세 1,26-28; 2,7 참조)으로 믿는 우리의 신앙에 대립합니다. 비록 복제된 배아라 할지라도 이는 분명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인간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은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치료제를 만들고, 의약품을 만드는 일이 마치 그 자체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일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명백히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 생명체를 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처분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 수준으로 격하시키거나, 한 번 쓰고 버릴 생물학적 재료로 취급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 행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이번 연구로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황우석 교수는 인간복제를 원하지도 않고, 또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배아복제는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어 끝내는 복제인간을 출현시키고 말 것입니다. 수정 후 14일이 지난 배반포기 단계의 인간배아가 줄기세포로 추출되는 대신 여성의 자궁에 착상되어 복제인간으로 출산되는 것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성공적인 분화보다도 기술적으로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제인간의 출현을 심각하게 염려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린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처사이며, 인류에게 수많은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간배아 복제 연구로 해서 여성들은 자칫 생물학적인 몇 가지 기능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배아 생산과 복제를 위해서는 난자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황우석 교수는 난자 기증자에게 난자 기증 사유와 절차를 충분하게 알려 주고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난자를 기증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난자 채취 과정이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난자를 얻기 위하여 호르몬제의 투여, 난포의 성숙도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이로 인해 초래될 부작용의 발생, 부작용이 야기시키는 위험 - 예컨대 난소 손상, 영구 불임, 생명의 위험 - 외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의학적 또는 윤리적 문제들이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하여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서 근본적으로는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단언합니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목적은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고 살리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배아는 수정의 순간부터 확실하게 한 인간 생명으로 결정된 주체이며, 바로 그때부터 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점진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되므로, 그 진행 과정의 어떤 단계도 단순히 세포덩이로만 여겨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주체는 인간 개체로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인간배아를 연구나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수단으로 삼고,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고,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한다고 하여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한 생명을 치료하고자 또 다른 생명을 제삼자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희생시키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과학기술을 결코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틀림없는 인간 생명체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생명체인 배아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배아 상태의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고 자기 결정권을 수행하지 못하는 생명을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며 기득권자의 횡포입니다. 행위의 목표가 선한 것이라면 목표를 이루어내는 수단마저도 선해야 합니다. 행위의 목표가 윤리성을 지녀야 하듯이 그 수단도 윤리성을 지녀야 합니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임상적으로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 치료는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뿐더러 안전성도 탁월합니다.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줄기세포가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생명과학은 학문으로서 자율성과 자유를 담보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생명과학 역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와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건강한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책임과 양식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생명과학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과학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눈부신 업적에 자만하지 말고 거듭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뇌를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해서는 안 되는 경우를 식별하고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을 내릴 때 생명과학은 신뢰와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이로 여긴다거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로 여기면서 파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급속도로 확산시킬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에 열광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2005년 6월 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