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탐구에 대한 인식론 >>

* 과학기술
  (1) 기술: 실용적인 것
  (2) 과학: 학문, 사고태도  
           ① 자연 과학: (자연 세계에 대한) 대상으로서의 과학
           ② 사회 과학: 자연과학에서 파생된 연구 방법, 사고 방식과도 같은 의미

<이오니아의 자연철학>
이들의 학문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철학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자연 철학'이라고 불린다. 즉,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자연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와 분리하지 않았다. 즉, 최초의 과학은 철학과 구분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을 만든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 또 '그 근본 물질에서 어떻게 다양한 물체와 현상들이 생겨나는가'라는 문제를 탐구했었는데, 이는 실험불가능한 철학적 사고의 틀 안에서 기획되었기 때문에 현대에 불리어지는 과학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은 서로의 주장을 비판하고 더 나은 주장을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학문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그리스 자연 철학의 진정한 과학적 의의는 이런 점에 있다고 하겠다.

<만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 달리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논리학자, 철학자, 과학자 등 말이지요. 이것은 그가 그만큼 많은 분야를 섭렵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계에 대한 탐구만이 진정한 학문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위한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공헌은 이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관심의 방향을 바꾼 데에 있다.

=> 현재에는 학문의 발달로 인해 철학의 영역이 점점 축소되고 과학의 영역도 점점 전문화되어 과학의 영역을 한 개인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점이다. 따라서 인문학을 탐구하는 주체들도 자연과학적 영역과 방법론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과학적 사고와 탐구 태도를 익히는 것이 중요해졌다.


<< 과학적 사고의 특징 >>
① 실증적

② 분석적 : 과학 연구에 있어서 분석적 태도를 취하게 됨으로써 과학적 분업화가 이루어져서 점점 전문화되었다.(전문가주의) 그런데 이러한 전문가주의는 과학의 전 분야를 한 개인이 알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에는 어떠한 전문가도 자기 분야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과학 분야에도 정치력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하나의 예로 '황우석 사태'를 들 수 있다.

③ 초자연적 힘을 인정하지 않음 : 과학은 '자연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즉,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④ 반증가능성 : 과학은 반증가능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코 불변하는 진리가 될 수 없다. 과학은 진리를 연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진리 자체는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은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교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학과 진리를 동일화하여 '과학=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과학적 연구 방법을 평가절하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과학적 연구방법 자체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 반증가능성의 원리: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이론. 포퍼는 "이론의 예측을 전복하려는 수 없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실일 때만, 그리하여 그 이론을 지지하는 뚜렷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사실은 이론을 확증한다. 이론의 시험 가능성, 즉 이론의 과학성을 구성하는 것은 그 이론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 혹은 그 이론의 반증가능성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론에 대한 모든 시험은 그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예측을 반증하려는 시도이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까마귀는 전부 검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흰 까마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즉, 반증 가능성이 있어야만) 이 명제의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없다. 수 없이 많은 검은 까마귀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이 명제는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다.
또한 누군가 유령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반대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이에 대한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반증 가능성이 제로가 되는 탓에 과학의 이론을 벗어난 비과학적인 일이라 해석한다.
과학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원리에도 대담한 반증을 가할 수 있다. 억지스러운 반증이라도 이는 결국 이론의 신뢰도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과학적 탐구의 과정 >>
* 관찰/의문 → 문제제기 → 가설 → 실험설계 → 실험(No) → 가설
* 관찰/의문 → 문제제기 → 가설 → 실험설계 → 실험(Yes) → 평가 → 이론 → 체계화

  19세기에는 이런 과학적 탐구 과정이 매우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고 믿었으나, 과학을 탐구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 역시 주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 과학이라는 거대한 체계 자체가 주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거대한 주관적 체계, 즉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 지식은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 내에서나 옳을 수 있는 상대적 진리(잠정적 진리)인 것이다.
  한 예로 우리의 한의학은 서구 과학의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한의학이 비과학적이기보다는 의학을 바라보는 관점, 즉 사고 방식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 서구의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 과학혁명 >>
과학을 왜 혁명이라고 할까? 이것은 과학발전의 역사가 과학자들의 수세기에 걸친 연구업적의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발전의 혁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치제도가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혁명이 일어나듯이 과학에서도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⑴ 패러다임(사고의 총체)의 뜻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쿤(Thomas Khun)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였다.
  쿤에 따르면, 과학사의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쿤은 이러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하나의 패러다임이 나타나면, 이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탐구 활동을 하는데, 이를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한다. 이어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경쟁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그러다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항상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⑵ 패러다임 변화의 과정
천동설 -------> 지동설/고전물리학 -------> 현대물리학
                    코페르니쿠스/뉴턴           상대성이론/패러다임이론/불확정성의 원리/카오스이론

천동설을 지지하던 중세의 성경 중심적 사고 방식은 근대에 들어와서 지동설을 지지하는 증거 중심의 세계관에 의해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이것은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갖가지 문제가 발생되어서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 예이다.
이렇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상의 변혁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근대 과학혁명은 뉴턴에 이르러 그 완성을 이루었다. 뉴턴의 역학은 영국에서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18세기를 통해 세련된 발전을 이루었으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고전역학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고전 물리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항상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은 현대물리학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물리학은 고전물리학의 갖가지 문제점에 대해 반역을 꾀했는데 대표적인 이론으로 상대성이론/패러다임이론/불확정성의 원리/카오스이론을 들 수 있다. 이들 과학적 이론들은 각각의 별개의 이론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물리학의 절대적 법칙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거대한 사고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성이론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뉴턴 역학의 절대성을 붕괴시킨 것이 아니라 바로 질량이 없다고 생각한 빛의 질량을 상상하게 했으며 절대적이라 믿었던 시간과 공간조차도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상대적으로 변형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뉴턴의 힘의 공식은 F=ma인데, a(가속도)를 c(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때 F는 E가 되는 것이다. 즉, 힘이 에너지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공식이 아인슈타인의 E=mc²이다.
예를 들어 우주인은 우주선에서 10시간 잤는데 지구에서 바라보면 우주인이 10시간 보다 오래 잔 것처럼 보입니다.(11시간으로 치자.) 우주선과 지구의 상대 속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지므로 뉴턴의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즉, 물체와 공간과 운동의 속도에 따라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속도 차이가 크면 우주인은 10시간 잤지만 지구에서는 13시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속도차이가 별로 없으면 우주인은 10시간 잤지만 지구에서는 10시간 30분 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지구에서 잠자는 사람이 (지구에서는 10시간이라면) 우주선에서는 11시간으로 길게 측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시간과 공간은 변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 고전역학에 의하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전자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항상 동시 측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물리량의 측정값이 불확정하다는 것은 측정기술이 불충분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고 쌍방의 불확정성에 의해 서로 제약되어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측정하려면 위치가 불확정해진다. 즉, 여러 물리적 양을 측정할 결과가 반드시 확정적인 값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값이 확률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의 온도를 잴 때 온도계를 물에 넣는 순간 물은 온도계에 의해 온도가 변할 수 있다. 또한 핵을 둘러싼 전자의 궤도를 확인하기 위해 측정 도구의 빛을 쏘는 순간 전자의 위치는 달라지게 되는 예도 있다. 이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측정 도구가 있다고 해도 관찰자가 관찰하고자하는 대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상의 원래 모습을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원리는 고전역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태개념의 규정과 시간적 변화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카오스이론 :
고전물리학에서는 변인을 최대한 통제한 후 하나 또는 둘의 원인에 의한 결과만을 측정하여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변인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의 한계의 지점이 발견되었다. 즉,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보이면서도 안정적이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안정적인 여러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론이 바로 카오스 이론인 것이다. 카오스이론을 보여주는 예로는 증권시장에서 주식 가격의 변화, 나뭇잎의 낙하운동, 물의 난류 현상, 회오리바람, 태풍이나 지진 메커니즘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은 '나비효과'이다.
나비효과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이는 지구상 어디에선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 곧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카오스이론은 그 적용 방법으로 확률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프랙탈이라고 한다. 해안선길이를 측정할 때 프렉탈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정확한 길이 측정이 불가능하다. 정확한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해안의 모래알 하나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또 50년 후의 해안선의 변화를 측정할 때도 수많은 변인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럴 때 프랙탈 이론을 적용하면 좀더 효과적이고 정확하게 측정 할 수 있다.

<< 끝으로 현대물리학은 과학이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반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반증 가능성을 무한히 지니고 있는 현대과학이야말로 과학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지 않은가 싶다. >>


<< 기술 >>
기술은 우리 눈에는 단순히 편리한 것으로만 보일 수 있는데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세탁기는 우리에게 옷을 깨끗하게 하는 편리함을 제공해주었지만, 실제로는 옛날 보다 옷을 더 자주 세탁해야 하는 문화적인 현상도 낳게 되었다. 이제는 깨끗하게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MP3 또한 우리에게 노래를 스스로 선곡하여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는 편리함을 제공해준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음반시장의 축소라든가 격리와 고립의 효과 등의 부정적인 효과도 낳고 있다. 따라서 기술을 단순히 편한 것으로만 인식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고 인간 생활의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 기술의 가치중립성 논쟁
(기술의 가치중립성) : 과학적 결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어서 그것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인간과 사회가 그러한 비판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대응이다. 과학적 결론은 엄격한 객관적 논리의 산물이며 그 결과는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결론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결정론) : 기술이 사회 제도의 성격과 사회 계급적 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사회학 이론.

* '기술의 편리'는 진짜이고, 또 항상 긍정적인가?
1. 기술은 편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전기가 부족하게 되어 문제를 해결해야할 때 기술적 방식으로 그 문제에 접근한다면 '댐'을 건설해야하는데, 이것을 문화적ㆍ사회적 방법으로 해결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나은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좋은 것이고 항상 긍정적인가에 대한 질문은 답은 '아닐 수도 있다'이다. 왜냐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자본주의적 조건 아래에서 항상 더 나은 기술만을 생산하거나 기술적으로 우수한 상품만을 판매하지는 않으므로 현대의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 첨단 기술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 BNR+IT>>
* BNR( Bio, Nano, robot)
Bio -   인간 복제 기술 : 인간의 존엄성 문제/ 무성생식으로 인간이 낳아지는 문제
    -  유전자 변형 기술(GMO) : 생태계 관련 문제 - 과학계에서는 GMO가 무해하다고 생각하지만 유해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생물체를 획일화시켜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Nano - 나노 수준의 환경 오염 문제 발생 가능성, 나노 수준의 병기 계발로 인해 군사적으로 악용될 가능성
     - 지나친 극찬으로 부정적인 면에 대한 고찰과 대책 방안의 미비
Robot  - 인간의 정체성 문제(인간의 고유 영역 침해)
       - 자동화로 인한 실업 문제

* IT 기술의 발달로 유비쿼터스 환경이 가능해짐
  - 사생할 보호 문제 : 우리가 언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네트워크가 언제나 우리를 감시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 미소짓는 파시즘(정보파시즘) : 편리함을 위해서는 무조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
  - 정보의 격차, 정보에 접근 제한 -> 빈부격차의 심화

<<바람직한 과학 논술 수업>>
=> 우리가 과학을 배우는 까닭은 ‘자연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통해 ‘과학적 사고방식과 탐구 태도’를 익히기 위해서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은 우리가 삶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논술에서도 과학이론수업이 아닌 과학적 사고와 방법을 유도할 수 있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 잘못된 과학논술 수업유형
        ① 과학자 일대기
        ② 호기심 천국식 수업
          (호기심을 유도하긴 하지만 결과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해결과정을 간과하기 쉬움)  
- 가능한 과학논술 수업유형
        ① 과학적 사고 탐구 활동
        ② 과학사 탐구 활동
        ③ 과학과 사회의 연계성을 고려한 과학설계활동

*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틀로서 과학적 사고의 내면화를 위한 수업으로서 논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 주 숙제 : 에히리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를 읽어오기, 출판사는 범우사판이 번역이 잘 되어 있음. 적어도 70페이지까지는 읽어와야 수업을 듣는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