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랑, 산유화로 지다>

                                             -- 발제 내용 --

1. 17세기 이후 가부장제가 완고해지면서 계모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족은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혈연주의, 조선후기 여성의 이혼과 재혼을 금기시 하는 사회 풍조 등이 계모를 악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향랑의 계모도 역시 부정적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계모는 가부장제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등 외국 동화 속 계모들은 왜 악인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2. 향랑은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뜻을 밝히는 방법으로 왜 자결을 선택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녀의 가치관 속에 가부장적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인가?
그녀의 죽음은 이후 양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3. 조선 후기에 정착된 가치관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2006년 현재도 가부장 제도에 묶여 지내는 여성들은 수없이 많다. 심지어 여성 자신들조차도 가치관 전환이 쉽지가 않다.

2008년부터 적용되는 호주제 폐지, 현대의 이혼, 재혼의 일반화 등으로 가부장적 의식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


4. 5월 8일 수업을 듣고, <향량, 산유화로 지다>를 읽으신 선생님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 ‘전체’의 삶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그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지위에 대한 이해,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 등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되어 왔다. 당 시대의 관습이나 제도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 또한 변화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과연 가치라는 것이 관습이나 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그 외에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요, 위의 4가지 정도로 간추려 보았어요. 혹시 수업 시간이 여유가 된다면 다음의 “그 외 발제”도 토론을 해 보면 좋을 듯 싶어 올립니다.

5. 고대 삼국과 고려, 조선 초까지 이어져왔던 ‘처가살이’. 이 때 남성들의 지위는 낮았고, 매 맞는 남편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 또한 남녀 불평등이 아닌가? 실제로 남성들의 능력이 낮았던 것일까? 처가살이를 거부하는 남성들이 많지 않았을까?


6. 고려 때는 아무 이유 없이 처를 버리는 행위가 만연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엔 이를 막기 위해 아내가 칠거지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칠거지악은 여성억압적인 제도가 아니라, 여권보호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내를 학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칠거지악이 어떻게 해서 여성억압적인 제도로 변하게 되었을까?
여권보호책의 역할을 충분히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