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강의 나눔터
1. 혼인 형태
혼인은 여러 형태가 있엇다.
족외혼은 고조선, 고구려, 백제에서 볼 수 있었고, 족내혼은 신라와 고려에서 볼 수 있었으며
취수혼, 남귀여가혼, 그리고 친영제와 반친영제가 있었다.
지금 우리 문화속에 깃든 혼례는 불과 200여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성리학중 주자가례의 형식을 빌어왔다.
2. 고려시대 가족제도
고려인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가족제도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박유는 몽고의 예를 들며
다처제를 제안하였고 지배층은 시행되기도 하였다.
다처들의 지위관계는 서로 차이가 없었고 동등관계였다.
또한 재혼도 스스럼없이 이루어졌고, 쌍계(양계)적 방계가족제도를 구성하였다.
자녀들에게 재산 상속이 이루어 질때도 균분한 상속제도가 이루어졌다.
가족유형도 부계직계가족이 아닌 여러 형태의 유형이 존재했다.
남녀의 차별이 없고 장자와 차자의 차이가 없으므로 상주또한 아들, 딸이 없을 경우 조카들이나
외손까지 될 수 있었다.
호주도 여자들이 될 수 있었고 연령이 높은 순위가 우선이 되는 사회였다. 출가외인이라는 사상도 없고,
남녀의 차별도 없는 사회였기에 장남의 우위가 뚜렷하지도 않았다.
3. 조선시대의 가족제도
송나라 성리학의 실천으로 가족제도가 종법적인 부계질서를 이상으로 모든사회제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중헌을 금지하면서 위반자는 처벌을 하였고, 재가녀를 성종8년이후
문제삼기 시작했다. 또한 수절하는 여자들을 열녀로 책정하면서 정표정책을시행했다.
자손들과 가문을 살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정책으로 정절이데올로기를 이끌어 냈다.
또한 사생활까지 간섭하면서 거리 행사도 관람하지 못하고 복장까지 규정했으며 남녀칠세 부동석을
강요하였다.
조선은 15-17세기의 과도기를 거쳐 17-18세기 이후부터는 부계질서로 정착되었다.
상제도 종가에서 시행하고 독관하게 된다.
가부장제도를 강력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족보였다. 이로 인해 아들을 중시하게되면서
양자제도 또한 성행하게 된다. 19세기 과거 합격자 중 12%가 양자였다고 한다.
4. 우리가 알아볼 수 있었던 점들은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 교육은 지금껏 정치적이거나 사건 중심 위주의 역사를 다루어 왔다.
문화사에 대한 연구나 실생활에 관련된 자료들이 부족한 관계로 좀 더 흥미있고 재미있는 역사 교육이
이루어 지지 못헸다.
근 200여년의 역사를 전부인양 우리 역사를 모두 그 틀에 맞추다보면 실증적이고 좀 더 사실적인
우리의 역사를 지나치거나 왜곡될우려가 있다.
그 시대 시대마다 접할 수 있었던 최고의 문화를 고증할 수 있는 많은 학자들과 자료들이 풍부햇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5. 아이들과 수업 할 때 다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과 수업 할 때는 편협된 사고로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성리학이 모든 조선의 가족제도와 문화를 만들면서 빚어진 불합리한 요소들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될 것이다.
고려의 여성 지위는 평등하였지만 가치가 인정이 안되었고 조선의 여성에 대한 지위는 남성보다
낮았지만 본처에 대한 가치는 고려보다 높았음을 알려주면서 각 시대별로 비교를 하되 그 시대의
특징을 인정할 수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