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역사논술 나눔터
7강 중세(2)
#1. 봉건제도 - 봉건제도의 특징을 알아본다.
1) 봉건제도(封建制度)
-봉건제도란, 봉토를 매개로 한 지배관계를 말한다.
- 노예와 농노의 차이는 노예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주인에게 귀속된 재산 취급을 당한 것에 비해 농노는
약간의 소유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 봉건제도는 고대 로마시대의 소작농민제도에서 시작되어, 게르만민족의 주종관계, 프랑크왕국의 은대지제도로 이어지다가 결합되어 성립된다.
2) 봉건제도의 특징
- 봉건제도는 왕과 영주, 영주와 기사와 같은 주종관계를 기초로 이루어진 군사제도에 바탕을 둔다.
- 정치적으로는 지방분권제.
- 장원제도가 있다.
3) 장원구조
- 장원은 농노가 부역과 공납을 제공하고 영주로부터 보호와 강제를 받는 것이 기초가 된다. 피라미드 구조로,
왕, 영주, 기사, 농노의 신분제도를 이룬다.
- 장원 안에는 영주의 성이 있고 그 가까운 곳으로부터 제분소, 제빵소, 창고 등의 시설물,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또 도로변에 농가가 모여 있다. 이외에도 경작지와 공동목장도 있는데, 경작지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한 곳은 휴경지, 한 곳은 겨울곡식, 나머지 한 곳은 봄곡식을 경작했다.
4)신분구조
-영주 : 최대의 권력자로,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농노들로부터 여러 가지 세금과 부역을 제공받아 생활한다.
-기사 : 영주를 호위하거나 전쟁에 나가 싸움으로써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키워나가는 신분층으로, 전쟁이 없을 때에는 마상시합 등으로 전쟁을 대비해 연습하기도 한다.
- 성직자 : 사회에서 높은 신분으로 대우받는 계층으로, 단순히 예배를 주관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일 뿐 아니라,
고해성사, 결혼, 출생, 장례 등의 일상 생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 농노 : 영주의 땅을 빌려쓰는 대신 영주를 대신해 갖가지 부역을 담당한다. 포도주나 빵 등을 만들어 영주에게 제공하고 여러 종류의 무거운 세금을 책임진다. 결혼세, 장례세 등 모든 것에 거의 세금을 내야 했고 영주의 허락 없이
자신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결혼 첫날밤에 신부까지도 영주에게 보내야 하는 고달픔을 가진 채 살아야 한다.
5) 마무리 활동으로는, 중세 봉건사회의 특징을 정리하는 신문을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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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십자군 전쟁 - 종교의 정치세력화와 종교간 충돌, 역사의 흐름이 바뀌다.
1) 십자군 전쟁 전, 기독교와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짚고 넘어간다. (활동지 사용)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계기로 기독교는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널리 알려진다.
- AD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훈족에 의해 쫓기던 게르만족의 이동과 하층민의 동요로 인함.).
본래 로마는 모든 종교를 수용하는 문화였으나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 오히려 박해받는 계기가 되었다.
- AD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에 만들고 이주했다.
- AD395년,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 동로마는 교황 중심, 서로마는 황제 중심인 정치의 중심이 된다.
-AD476년 서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된다. 게르만족은 동프랑크, 서프랑크, 이탈리아로 나누어 갖는데,
이는 현재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다.
- 7세기 무렵, 이슬람 세력은 마호메트의 메카 수복으로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게 되고, 이슬람 세력이 이룩한
과학문명 등은 유럽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AD1054년, 동서 로마가 최종 분리되면서 동로마는 그리스정교회, 서로마는 카톨릭으로 교권과 황제권의 대립이 극명해진다.
(위의 내용은 퀴즈로 아이들과 한 번 더 정리한다.)
2) 십자군 전쟁의 원인.
- 표면적 이유는,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족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성지 순례를
금지시키고 기독교세력의 근거지인 동로마제국을 위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 하지만 실제 이유는 각자의 이득을 위해서이다. 서로마 교황은 전쟁을 기회로 동로마를 굴복시키고 기독교세력을 통일할 욕심을 가지고 있었고, 동로마 황제는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이다. 영주와 기사는 전리품을 얻어 재산을 늘리고 상인은 전쟁을 계기로 안전하게 동방무역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이다. 또 황제와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대립관계에 있었고, 농노는 장원을 탈출할 해방의 기회를 갖기 위해 전쟁에 찬성했다.
- 전쟁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3) 십자군 전쟁의 결과.
- 교황과 교회의 권위가 하락했다.
- 반면 황제권의 권위는 강화되어 이를 계기로 중압집권화가 시작되어 절대왕정을 이루게 된다.
- 봉건제도가 해체된다.
- 육로가 막히자 해상을 통한 무역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베네치아의 상업활동 왕성해져 결국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된다. 또 이슬람의 과학문명이 유럽으로 전해지게 된다.
4) 마무리 활동으로는 지도에 십자군 전쟁과 관련 있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을 표시하고 배운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한다.
서명희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몇 가지 만 고칠게요^^
AD395년 동서 로마의 분열로 서로마는 교황 중심, 동로마는 황제, 정치 중심이라는 것
7세기 무렵에는 이슬람이 팽창하기 시작하고, 유럽에 과학문명을 전해준 것은 12세기 십자군 전쟁 이후라고 해야 겠지요. 십자군 전쟁의 결과 중 흑사병 창궐이 빠졌네요.
십자군 전쟁 마무리 활동으로 '십자군 전쟁의 원인 가운데 종교적 이유외의 것 정리하기' '각 신분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생각들 써보기' '십자군 전쟁 결과 정리하기' 활동이 있었지요. 십자군 전쟁의 원인과결과는 꼭 알아야할 중요한 사항이라 수업 중 설명한 것이지만 아이들이 한번 더 마무리활동으로 정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수업안도 빠짐없이 잘 만들어 오시고 수업 후기도 너무나 잘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 내재되어 있던 능력들이 점점 표출되어 나오고들 있어서 앞으로의 수업이 더욱 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