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로빈슨
- 『로빈슨 크루소』와 『방드르디, 원시의 삶』

이가윤 본지 기자

『로빈슨 크루소』는 『십오 소년 표류기』 등과 함께 청소년들을 위한 모험 소설로 흔히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다니엘 디포가 쓴 원작 전체를 읽은 학생들은 별로 없지만 내용을 간추려 만든 동화는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고,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서구 문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꿋꿋이 살아남아 본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설 줄거리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자연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고, 그리고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과 제국주의적 사고가 너무도 깊게 뿌리박혀 있습니다. (또다른 모험소설 『80인의 세계일주』 또한 이와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지요.)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프라이데이"라는 식인종을 등장시켜, 옷을 입고 고기를 익혀 먹고 로빈슨이 믿는 신을 믿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진리는 오직 백인이자 서양인이고, 기독교인인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올 뿐, "프라이데이"라는 인물은 로빈슨이 이루어낸 문화에 완벽하게 경도된 모습으로 끝까지 그의 충실한 심복으로 남게 됩니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러한 점을 비판하면서, 서구 문명인으로서의 로빈슨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세계, 문화를 접하고 유연하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하는 로빈슨의 모습을 그려내었습니다. 그는 소설을 쓴 뒤 인터뷰를 통해 작품 기획 의도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은 오직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난파한 배의 유류품을 주워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 놓지요. 그러니까 로빈슨은 과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로빈슨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투르니에가 1719년에 나온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1967년에 다시 쓴 작품 『방드르디, 원시의 삶』 속에서 불쑥 나타난 방드르디("금요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가 로빈슨이 이룩해놓은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립니다. 그리고 백지처럼 되어버린 그곳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다시 쓴 이야기가 원작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보면서, 로빈슨과 방드르디가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