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병 (病院病)

‘의사가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중 한명으로 평가되는 이반 일리히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의사의 숫자가 늘어나고, 의료 기계가 현대화되며, 병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건강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사람들은 의료의 진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비례적으로 바라보는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히가 밝혀낸 자료에 의하면 결핵이나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은 병원이 이해되고 특수한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에 그 독성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이런 질병을 잡아낸 것은 의사나 병원이 아니었다. 우선 주택의 개선과 미생물 유기체가 갖는 독성의 감퇴 등이 지적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양의 개선으로 인간의 저항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의료의 진보와 관련해서도 일리히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기가 현대화되고 의료인원이 증가했지만 이에 비례해 보험료의 부담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비용의 증가가 평균 수명을 눈에 띄게 연장시키거나 결정적 질병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 중 의사가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진료시 의사는 첫 진단에 의해 이론적으로 그의 환자가 어떤 질병에 걸려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안전 장치(fail-safe)의 원칙에 의해 의사는 환자에게 질병이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언제나 어떤 질병이 있다고 말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의학적 결정의 규칙이 의사를 압박하여 건강하다기보다는 질병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으로 안전함을 추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이러한 자기 방어적 진료양태가 존재하지 않는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일리히는 고발한다. 따라서 일리히는 질병으로부터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정치의 임무이지 의사인 전문가의 임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오히려 전문가에 의해 건강관리에 대한 의료(제도)의 독점은 한 번도 제대로 점검되지 않고 확대되어 왔으며 우리들의 몸에 관한 자유를 침해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병원이 병을 만드는 병원병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현대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생각해 봅시다.

1. 의료기술의 진보에 따라 해마다 새로운 질병의 양상과 유형, 그리고 처음 접하는 질병목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병이 전에도 있었던 것인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인지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의사집단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구체적인 의료맥락을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우리의 몸에 대한 사항을 전문가에게 의탁하는 것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 토론해 봅시다.

2. 슈퍼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는 의료의 오․남용에 의해 미생물이 약물에 적응함으로써 발생했습니다. 결국 의료의 진보가 더 큰 의료의 난관을 만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질병은 의료의 진보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다양한 근거로 비판해 봅시다.

3. 현대의학은 인간의 몸을 기계에 비유해 치료하고 있습니다. 신체를 고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수선한다는 개념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체를 부품의 조합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몸은 매우 복잡합니다. 만화에서 보여주듯이 치료과정이나 치료후의 부작용은 이러한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우리 몸의 특징을 고려해 현대의학의 치료방법의 문제점을 밝혀봅시다.

4. 몸은 세계와 소통하는 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과 나의 의식세계를 연결하는 소통통로인 우리들의 몸에게 편지를 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