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이나 날적이 쓰기 특강을 준비하는 교사를 위해
주제가 있는 날적이 쓰기 II

이우선 | 논술교사

(이메일, 대상, 참고도서, 학습목표 2월호와 똑같음)

이 글은 필자분이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써 온 날적이를 주제별로 모아, 이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방법들과 함께 정리해본 것입니다. 2월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8. 이 주에 만난 사람 - 정밀 묘사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 친척, 친구, 선생님들이다. 이 날적이 주제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정밀 묘사에 초점을 둔 것이다.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정보를 될 수 있으면 자세하게 써 준다. 먼저 외모, 주로 입는 옷차림, 관심 분야, 성격, 그 사람만의 특징, 취미, 잘 하는 것, 잘 못하는 것, 표정, 습관 등을 써 본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이해의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가 논술을 공부하는 것도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상호 이해와 배려에 있으므로!

이번 주에 만난 사람
주영규(5학년, 2007/02/03)
나는 오늘 이우선 선생님이라는 논술선생님을 뵈었다.
첫 인상부터 밝고 좋으신 선생님이라는 걸 알았지만 막상 수업을 해보니 더더욱 좋으신 선생님인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정말 올바르신 분 같다. 선생님이 하신 말 중에 "순수한 아이들과 공부하는데 불법제조품으로 공부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처음에 다니던 논술학원을 끊기 싫었는데 지금 해보니까 잘 했다는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공부도 재밌게 하셔서 금방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지적해 주시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머 있게 가르쳐 주신다.

내 친구들
강민지(5학년, 2007/02/13)
오늘 나는 나의 친구들과 모여서 쵸콜릿을 만들었다. 그 친구들은 나의 수많은 친구들 중 나와 가장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나윤이, 지선이, 은경이, 혜빈이 등
먼저, 나윤이는 우리반 회장이고 얼굴은 계란형이며 이마가 넓다. 그리고 눈은 초롱초롱 사슴처럼 맑고 항상 밝게 웃기 때문에 나윤이를 좋아한다.
지선이는 나와 아주 친한 단짝 친구이다. 눈이 좀 나빠서 안경을 썼고, 빨간머리 앤처럼 주근깨가 있다. 또 지선이는 운동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한다. 그러나 지선이와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서 5학년때는 꼭 같은 반이 되길 죽어라고 빌고 있다. 아! 그리고 지선이는 3반의 자랑스런 회장!
은경이는 우리 반 인기짱! 얼굴형은 약간 삼각형이다. 그러나 마음씨 하나는 정말 선하고 착하다. 또 은경이는 머리도 길고 지선이처럼 안경을 썼다.
마지막 우리반 1학기 회장, 2학기 부회장인 송혜빈. 혜빈이 역시 인기 급상승! 수업태도도 아주 좋고 친구들이 본받을 만한 친구이다. 그런데 혜빈이는 우리 집과는 좀 멀어서 자주 놀지는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집이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지각을 할 일은 없겠지?
그 친구들이 내 앞에 나타나서 나의 친한 친구가 되 준 게 정말 고맙다. 또 키 작은 나윤이와 혜빈이는 내년에는 키가 좀 더 크고,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쓴 혜빈이, 은경이, 지선이는 하루 빨리 눈이 좋아져서 안경 없이 편하게 다녔으면 좋겠다.

6학년 3반 얼음 선생님
허보령(6학년, 2007/04/09)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문득, 얼음이 떠올랐다. 얼굴형이 각이 졌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고, 온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내 첫인상대로 6-3의 담임 이영희 선생님은 얼음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약간의 웨이브와 삐친 머리를 하고 계신다. 선생님의 성격과 잘 맞아서 그런지 머리스타일과 잘 어울리셨다.
이영희 선생님은 탁자 위에 발을 올려 놓거나 신발을 벗으시며 수업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이영희 선생님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며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이영희 선생님의 특징은 우리에게 존중의 뜻으로 존댓말을 쓰신다. 그리고 잘 혼내시지 않고, 우리들을 잘 기다려주는 분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얼음이 떠올랐지만 언젠가는 선생님 하면 따뜻한 봄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다가가겠다.

9. 독후활동 - 다양한 글쓰기

수업시간에는 될 수 있으면 글을 쓰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곱씹어 생각해 보고,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기 위해서 날적이 주제를 수업 시간에 다룬 책의 내용으로 내 준다. 수업시간에 다룬 내용 중 몇 개의 날적이 주제를 내준 후 그 중 하나를 골라 날적이를 쓰게끔 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유미가 재준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편지 쓰기
문성윤(6학년, 2007/10/14)
재준아! 하늘나라에서는 잘 있니?
네가 떠난 뒤로 우린 참 힘들었어. 눈물도 많이 흘렸고, 화도 많이 냈어.
난 네가 떠난 게 너무 싫어서, 널 살릴 수 있었는데도 그 자리를 그저 지나 간 사람들이 너무 미웠어.
세상이라는 건 참 이상하지?
하루아침에 사람이 죽고 사람이 태어나니까 말야.
처음에 네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난 신이 있다면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 거지? 사람들은 모두 공평하게 살아야 하는데 말야. 하지만 어쩌면 네가 죽은 건 신의 뜻이 아닐지도 몰라. 그저 실수일 뿐이겠지.
재준아!
난 너 덕분에 참 고마웠어.
넌 날 이성친구로서가 아닌 진실한 친구로서 아무 거리낌 없이 대해줬고, 난 너 때문에 자주 웃을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배울 수 있었어.
기억 나니?
내가 처음 전학 온 날 아무도 말 걸지 않는 내게 네가 다가와 줬지. 나는 그 때 새침하게 굴었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다가와 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아무도 내 불량한 겉모습만 보고 다가와 주지 않았잖아. 그런데 넌 내가 안에서는 외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알아줘서 고마워. 널 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즐거웠어. 네가 어린 나이에 일찍 죽어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넌 영원히 이 강유미의 최고의 친구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거야.
재준아! 잘 가. 안녕.
이제 내 마음 속에 너에 대한 슬픔을 모두 지워 버릴 수 있겠어.
고마워 재준아!

『우리 누나』
- 쇼이치가 되어서 '우리 누나는 장애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쓰기
유재은(2007/10/26)
우리 누나는 장애인입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저는 이 말을 쓰기 싫었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누나는 장애인'이라고. 제가 이 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누나 덕분입니다. 우리 누나는, 매일 일을 하면서 어렵게 탄 첫 월급으로, 레스토랑에서 밥을 샀습니다.
저는 우리 누나가 부끄럽지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누나는 남을 배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누나를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대한 비장애인들, 우리 누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만약 그 뜻을 알았다면 우리 누나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장애인을 대한 태도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 우리들이 장애인이고 우리누나가 비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인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동생이나 누나는 정말 기분이 안 좋았을 겁니다.
우리 누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장애인이지만 저에겐 비장애인인 착한 누나입니다.

김병우(6학년, 2007/10/26)
우리 누나는 장애인입니다. 우리 누나는 정신연령이 자기 나이의 또래보다 떨어지게 되는 다훈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누나를 볼 때면 창피하고 누나가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야, 너네 누나 숫자도 모른다면서?" 하고 무시하며 누나를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이 쳐다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고 '누나는 과연 그것을 알까' 하는 생각과 함께 누나를 놀린 아이들을 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17살이나 되었는데도 지능이 6살 밖에 안 되는 누나를 볼 때면 친구들의 그런 생각이 이해가 갈 때도 있습니다.
우리 누나는 비록 장애인이지만 마음은 바다보다도 넓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누나가 아빠를 붙잡고 레스토랑에 가자고 약속을 하자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고요. 결국 우리 가족은 레스토랑에 가게 되어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우리누나가 흰 봉투를 아빠에게 주었지요. 그 봉투 속에는 누나의 첫 월급이 들어있었고 누나가 첫 월급으로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고 하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봉투 속에는 비록 3천엔(약27,000원)이라는 작은 돈이 들어있었지만 그 봉투는 우리가족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누나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모두가 장애인을 무시하지 않고 좋은 점을 본받았으면 좋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양진호(6학년, 2007/10/29)
우리 누나는 장애인입니다. 지능지수는 50 이하이고 말도 못하고 사람들이 불쾌해하는 그런 장애인이 우리 누나입니다. 저는 우리 누나가 장애인인 것이 싫었습니다. 친구들이 와도 "내 멋진 누나야. 그리고 나는 누나의 동생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없고, 누나와 함께 다니면 부끄럽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친구들이 놀러왔습니다. 그 때 누나가 제 친구들을 본 것이 잘못이었지요. 친구들과 누나의 눈이 마주치자 제 친구들은 누나를 보고 동물인양 행동하였습니다. 제 친구들의 행동이 오히려 당연시 여기는 것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은 장애인을 반기는 사람이 드무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장애인을 꺼려하니까요.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니 저희 누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요.
한 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누나는 못난이, 뚱보, 바보, 세 가지 다 갖추었지!"
정말이지, 우리 누나가 그렇게 싫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누나가 장애인이라고 놀려댔고 저는 어쩔 줄 몰라 했지요. 누나가 놀림을 받으니까 꼭 내가 놀림을 받은 것 같아 울음이 나올려고 하여도 저는 참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누나를 놀렸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 부끄러웠던 건 바로 어제였습니다.
어제 아침에 누나는 무슨 일인지 저보고 학교에서 빨리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무슨 영문이지 몰라 그렇겠다고 하였지요.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누나와 함께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제가 맛있게 먹을 그 비싼 음식들이 누나의 월급으로 살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누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번 돈. 고작 삼만원을 가지고 레스토랑에 간다는 것이었지요. 정말 누나가 고마웠습니다. 속으로는 누나를 비웃고 속여도, 아무것도 모르고 오히려 나에게 잘해주는 누나가 고마웠습니다. 그 때 저는 느꼈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얼굴이 이상하다고 해서, 말을 잘 못한다고 해서 놀림거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누나가 한 달 동안 힘들게 일해 번 돈 삼만원은 우리 가족에게는 삼만원의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오이대왕』
- 우리 아버지
문성윤(2007/11/18)
사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아빠라는 말에 비해 좀 어색한 존칭이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아버지가 친할 수 없는 사람 같다. 아버지들은 옛날부터 사실상 집안의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은 가족들이 다 상의해서 결정하기는 하지만, 옛날의 그런 모습을 보면 아버지들은 집 안에서 사실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이대왕'에 나오는 아버지께서도 그러셨다. 대부분 다 권력을 가지고 있고 엄격하신 아버지들이어서 아이들이 다가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다행히도 그런 다가가기 어렵고 엄격한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 점이 다행인 이유는 그러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적었을 것이고, 아버지와의 대화도 적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할 일이 많으셨는데도 함께 놀아 주시고, 시간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요즘 후회되는 게 많다. 이제 아버지께서 지방으로 가셔서 볼 기회가 적어졌는데도, 사춘기여서 짜증을 잘 낸다는 핑계로 버릇없게 군 것이다. 여태껏 정성스럽게 보살펴주신 아버지이신데 정말 죄송하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아버지와 멀어진다던데 나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라도 아버지께 공손하게 대해야겠다.
하지만 가끔씩 아버지와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정말 버릇없게도 아버지와 싸우고 만다. 그러지 않고 싶은데, 싸우게 되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께서 옳으실 때가 많지만,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대드는 것이다. 그러면 항상 아버지께서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이기시는데, 그렇게 되면 난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집안 분위기는 썰렁해진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항상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김병우(6학년, 2007/11/18)
우리 아버지는 참 따뜻하신 분이다.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대하여 주시며 나의 말을 이해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나의 장난이나 실수도 모두 웃음으로 받아 넘겨주신다. 또 언제나 힘들고 피곤하셔도 나에게만은 소홀하지 않으신 감사한 분이시다.
그런데 나는 지난 번 '좋은 일과 슬픈 일 예상하기' 활동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에 대하여 매우 잘 아는 사이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번에 활동을 해 보자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하여 맞힌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더욱 대화를 많이 하자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결심이 잘 지켜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나의 불만을 받아 주느라고 고생을 하셨다.
나는 앞으로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겠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항상 감사하게 여기도록 하겠다.

허보령(6학년, 2007/11/20)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시는 분이셨다. 학생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시면 그 학생들에게 다가가 그 행동에 주의를 주시는 분이셨다. 남이야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하여도 아버지는 학생들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하여서 난생 처음 보는 학생들을 혼내셨다. 엄마는 이런 아빠의 모습을 좋아하시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아버지는 남을 도우실 줄 아셨다. 장애인이 아빠께 말을 걸면 일반인처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았고 그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도움'이란 단어를 생각만으로 멈추지 않으시고 실천으로 옮기셨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셨다. 내가 의정부에 살 때. 그 곳은 아파트의 층이 20층 정도 있는 터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 층에서 내리고 탈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문을 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안 왔으면 기다려서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내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있을 때마다 매우 호통을 치셨다. 다음에 탈 사람도 생각하여야지 나만 생각하면 어쩌냐면서.
그 시절 나는 나의 행동이 아빠께 혼날 만큼 잘못됐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제 와보니까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이 싫으셔서 혼내신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일에는 앞장서서 실천으로 옮기는 그런 멋진 아버지셨다. 나에게 모범이 되어 그 모습을 보고 잘 자라라고 아버지는 누구보다 나의 모범이 되시고 바탕이 되셨다.

『불균형』을 읽고
- 독후감 쓰기

문성윤(6학년, 2007/12/04)
'불균형'은 여태껏 본 적 없었던 특이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나'는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와 동시에 그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기도 한다. '사라'라는 여자를 만나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에 대한 용기가 생겨 예전에 자신을 괴롭히고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아이를 만나 복수해 주기도 한다.
사라도 그 아이에 눈에는 완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마음 속에 많은 고민이 있는 여자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디자이너가 되지 못해 디자이너들을 시샘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의 친구 '미즈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이 괴로워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 미즈에는, 그것을 끊고 싶어서 투신한다. 미즈에를 '나'는 매일 병문안 가는데, 그 과정에서 친해지게 된다.
미즈에는 사라와는 다른 존재이다. '나'는 사라에게서 자신이 일방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즈에에게는 서로 동등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서로 도와주면서 변해가는 과정은 참 현실적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서로 친해지면 그만이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가끔씩 서로 화도 내고 다툼도 벌인다. 상처 치료 과정도 힘겨운 것이다. 모두들 행복하게 끝나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사실 현실적인 면은 이 책이 더 강하다. 사람들은 사실 이런 식으로 상처를 치료한다. 이 책은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책이다. '나'는 너무나 평범하게 이 책을 해설한다.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시선으로 이 책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도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왠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특이하고 신비로운 느낌의 책이었던 불균형,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10. 일상의 기록

보통 학생들이 날적이 쓰기를 싫어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쓸 거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숙제니까 억지로 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컸다. 또한 어렵게 써 간 일기에 교사의 의도하지 않은 내용으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더욱 쓰기를 꺼리게 된다.
게다가 일기는 사생활을 쓰는 작업이기 때문에 공개를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이유에서 주제가 있는 날적이는 소소한 일상을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공개를 해도 되는 일상을 날적이로 쓰기 원하는 학생들의 글 역시 막지는 말아야한다.

바베큐 파티
김주희(5학년, 2007/11/11)
오늘은 바베큐 파티를 하는 날이다. 오늘 오후 1시에 찬수 친구 조경호의 집에서 한다. 집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아, 벌써부터 군침이!
오후 1시가 다 되어 간다. 금강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플마에서 얘들 줄 빼빼로를 사 가지고 갔다. 112동인데 어딘지 위치를 잘 모르겠어 금강아파트를 한바퀴 뺑~ 돌고 왔다. 집안에 들어왔는데 5층이라 2층 방인데 계단으로 올라가다 머리를 박을 뻔 했다.
"우와, 나도 2층 집에서 살고 싶어!"
찬수 친구들도 어느 새 모두 모였다. 바베큐는 맛이 끝내 줬다.
그리고 2층에서 컴퓨터에서 신포켓몬하고 폭행몬스터 등을 봤다. 재밌었다. 나는 혼자 먼저 우리 집에 와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찬수가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이다.
그래서 티비 보고 만화책 보고 하다가 진규네도 불러서 괴물놀이를 하러 밖에 나갔다. 재밌게 놀고 나서 집에 왔는데 아직도 엄마, 아빠가 안 와서 전화를 해 봤더니 둘이서만 데이트하러 제부도에 갔단다. 그래서 내 돈으로 찬수랑 컵라면을 사 먹었다. 참 재밌고 즐거운 날이었다.

11. 찬반 논쟁 후 글쓰기 - 상호 이해

모둠을 찬성, 반대 모둠(개인의 선호로 모둠을 나누지 않는다)로 나눈 후 각각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정리한다. 그 후 다른 모둠의 주장을 꺾을 근거를 예상하여 정리해 본 후 토론을 진행시킨다. 이 토론 수업은 어느 모둠이 논쟁의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각각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대안의 고민이라는데 있다. 비록 나와는 입장이 다르지만 해당 모둠에서의 활동을 기초로 날적이를 써 봄으로 두 가지 입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가 있다. 수업을 할 때 입장 정리가 잘 돼야만 날적이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찬반논쟁수업일 때는 말하면서 꼼꼼하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

가) '안락사' 라는 것은 죽음에 임박해서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거나 경감할 목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임의적 조치이다. 그리고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eu'와 '죽음'이라는 뜻의 'thanatos'가 합쳐진 말로, 어원상으로는 '좋은(편안한) 죽음'을 뜻한다.
나는 안락사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죽게 된다면 그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또 나는 치료를 계속한다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안락사만은 반대한다.
안락사는 살인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서 환자가 죽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안락사가 허용이 된다면 사람들이 안락사를 악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안락사는 죽음에 임박해서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거나 경감할 목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임의적 조치다.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다면 생명 연장 장치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한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는 삶을 산다고 하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즉, 죽는 게 낫다. 또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가족이나 의사로서 환자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안락사를 찬성하며,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안락사를 하게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다) 저는 안락사에 반대합니다.
첫째, 대부분의 안락사 대상자는 불치병 환자들입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환자를 죽이는 것은 편안히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편안한 죽음이 그 사람이 원해서 죽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식물인간, 또는 불치병 환자가 원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살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환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가망이 1퍼센트라도 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 환자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그 어려움을 이겨내어 꿋꿋이 생활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면, 편안히 죽는 것보다는 그 1퍼센트의 기적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사회적으로 악용될 경우가 많습니다.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은 물론, 노인, 빈곤층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살만한 가치가 없고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제거하는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락사 허용으로 인해 「죽을 권리」는 「죽어야 할 의무」로 바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죽음은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죽음은 신만이 결정하며 신의 섭리에 따라 죽는 것이 옳습니다. 아픈 생명이라도 신께서 주신 자신의 운명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됐든 살인이고 죄입니다. 그리고 안락사는 그 사람이 되살아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짓밟아 버리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안락사에 대해 반대합니다.

라) 나는 안락사가 실행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상인이었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라고 생각해 보자.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가 없다. 또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없다. 만약 수술을 하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수술을 한다고 몸이 완전히 정상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의미 없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죽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마) 물론 하나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환자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면 그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 사람들은 사는 것이 오히려 엄청난 고통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안락사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의사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최대한 가지고 해야 한다. 안락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과 기분을 고려해야 한다. 안락사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직업에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안락사는 환자뿐만이 아닌 환자 가족에게도 도움을 준다.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가족을 보느니 차라리 가족이 편안하게 죽는 것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또한, 환자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차피 죽을 거면 힘들고 고통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편안하게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12. 기타

활동 수업이나 수업에 대한 평가, 서로 나누고픈 이야기 등을 날적이 주제로 제시해도 좋겠다.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해
- 내가 기자가 되어 가상 인터뷰 하기
허보령(6학년, 2007/05/07)

아나운서: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5월 18일 민주화 운동 기념일입니다. 5.18을 맞이하여 허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허기자!
허기자: 네. 허기자입니다. 여기는 5.18 기념 공원인데요. 시민 한 분과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KDS 방송국에서 왔습니다.
시민: 네, 반갑습니다.
허기자: 5.18을 맞이하여 취재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민: 네.
허기자: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민: 10.26사건(1979년)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국가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하여 정권을 강탈하게 되지요. 이에 반대하여 전국적 시위가 벌어지게 됩니다. 특히 광주에서 열정적인 시위가 진행됐고, 이에 5.18이 생겨났습니다.
허기자: 아, 그렇군요. 그럼 그런 열정적인 항쟁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시민: 제 생각에는 민중들의 수준 높은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정신인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 의의가 아닐까요?
허기자: 네. 좋은 답변입니다. 마지막으로 5.18의 한계는 무엇인지 들어 보고 마치겠습니다.
시민: 5.18 민주화 운동은 각 계급, 계층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허기자: 네, 잘 들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하고,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이상 허기자였습니다.
아나운서: 네. 허기자와 시민 여러분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학가는 성윤이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
문성윤(6학년, 2007/12/09)
이사 갈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처음 이사 간다고 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간다니까 슬프다. 그 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논술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었다. 함께 먹었던 간식, 함께 했던 이야기, 함께 했던 수업까지. 그리고 항상 내 긴 날적이를 참을성 있게 읽어 주었던 친구들. 모두에게 그동안 나와 잘 지내줘서 너무 고맙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항상 우리들을 열심히 지도해 주시고, 수업 중 다른 이야기를 해도 화를 내시지 않던 선생님, 수업에 항상 열심히 참여하고 집중하던 친구들, 다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처음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이 됐었다. 내가 가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선생님도 날 잊어버리지 않을까? 기억 할 일도, 만날 일도 없는데 그대로 잊혀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좀 됐었다. 그러나, 어쩌면 사람들이 잊어버리기 전에 내가 흔적을 남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매일매일 날적이를 썼고, 친구들과 오랜 시간 수업했으니 그렇게 빨리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이사를 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웃을 수도 있고 슬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사를 가게 되어서 정말 슬프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업은 『오이대왕』으로 했던 가족에 대한 수업과,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상처를 치유하는 수업이었다. 내가 그 두 수업에 가장 열심히 참여해서이기도 하고,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이었다. 먼저 오이대왕은 가족간의 이야기라 별로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감동을 느끼면서 읽었다. 그리고 우리 집도 저 정도는 아니지만, 더 나아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적이를 열심히 썼었다. 나름대로 실감나게 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업을 할 때도 유미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것이 흥미로워서 열심히 수업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했던 『불균형』도 괜찮았는데,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부분이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논술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서로의 의견도 공유하고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남은 1주를 열심히 수업해야겠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친구들아, 그동안 너희랑 수업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나 없어도 잘 수업하고, 나중에 서울 오게 되면 너희 꼭 만날게."
약 1년 간의 논술수업. 그 수업을 하는 동안 난 많은 것을 배웠고, 함께 한 친구들과 해어지게 되어서 정말 아쉽다.

김병우(6학년, 2007/12/09)
나는 너와 아주 많이 친하지는 않았고 같은 반이 되었던 적도 많지 않지. 그러나 논술 수업을 통하여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해 보고 성격이나 장점을 많이 알게 되었어. 우선 너는 놀랄 정도로 글을 쓰는 능력과 독해력이 뛰어나고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그 능력을 전학을 가서 전학을 가게되는 초등학교에서 잘 발휘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렴. 그리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면서 말이야.
네가 전학을 가고 나면 덕우와 현우가 심심해 할거 같아. 쉬는 시간에 매일 너를 괴롭히는 재미로 쉬는 시간을 기다리던데……. 그리고 전학을 가서도 서울오정초등학교와 우리와 같이 공부했던 기억들을 잊지 말아 주렴. 잘 가!

허보령(6학년, 2007/12/10)
성윤아. 내가 오정초등학교에 전학 왔을 때. 가장 내 눈에 잘 보였던 친구는 파란색 털옷을 입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무표정을 하고 있는 너였어.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생활에 적응을 하게끔 도와준 친구 중 하나도 성윤이였지.
큰이모 댁에서 너와 같이 수업하며, 또 논술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성윤이가 매우 똘똘한 애임을 알 수 있었어. 날적이를 쓸 때는 항상 너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써서 우리를 설득하였고 수업할 때도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말을 하였지. 그리고 13살의 나와 같은 나이인데도 영어는 나보다 몇 배나 잘하는지 몰라. 뿐만 아니라 성윤이는 참 배려 깊은 아이인 것 같아. 먼저 사과할 줄 알고 친구를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아이 말야.
성윤아! 네가 시골로 가면 논술이 매우 썰렁할지도 모르겠다. 함께 하던 친구가 한 명이라도 빠진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거든. 많이 그리울 거야. 1년간 서로 많은 것을 주고 받았는데…….
성윤아! 난 항상 좋은 친구가 나에게 와 주었으면 하였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스스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야지만 행복한 것이고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거야. 너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전학가는 곳에서도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언제 서울로 올라와 우리를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 잊지 않고.
몇 년이 지나버리면 아마 성윤이의 기억 속에는 오정초등학교가 남아있지 않겠지? 그래도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라도 차곡차곡 우리와 함께 하였던 시간들 묻어두렴. 성윤아! 우리들과 함께 했던 시간. 잊지 마. 그리고 한번이라도 연락해.
그럼 성윤이가 서울에 놀러오는 날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일 년 가까이 수업하던 학생이 전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앞으로 수업을 함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난 수업시간에 작은 송별식을 하며, 그 동안의 수업 내용과 날적이 쓰기에 대한 평가를 자연스럽게 나눴다.
여학생 3명은 워낙 쓰는 것을 즐겨했고, 한 남학생의 경우 이런 수업을 받았던 터라 읽기나 쓰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쓰는 것을 즐겨하지도 않고, 이런 수업도 받지 않았던 남학생 두 명은 책을 읽어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날적이 쓰기 또한 무척이나 버거워했음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아이들이 지금은 별 일 없으면 책도 다 읽어오고, 날적이 또한 꾸준히 써 온다.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남학생의 평 또한 자신들의 변화된 모습에 만족스럽단다. 처음에는 쓰는 것에 두려움이 많던 학생들이 달라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친구들이 글을 잘 쓸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글의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가 수업시간 발표하는 글을 들어 보고 나름 자신감을 얻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또 글 솜씨에 대한 평가는 없고 - 물론 적절한 표현이나 멋진 표현 혹은 달라진 글에 대한 칭찬 빼고 - 내용에 대한 이야기 나눔만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칠 줄 모르는 교사와의 전화 통화 - 이것은 물론 교사인 내 생각이다.
한 모둠 친구는 교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따라와 줘 큰 대회에서 상도 받아와 내심 뿌뜻했다. 하지만 글을 맛깔나게 쓰지는 못하나, 큰 상 또한 받지 못하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서툴게 나마 표현하는 학생과 함께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교사는 크게 만족한다. 날적이는 자라는 아이들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쓰기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