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자유로운가

김혜진|누리하제 전임강사

학습 목표
1.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 개인의 형성과 더불어 '자유' 혹은 '책임'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거나 확장되는지 이해한다.
2. 자유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들어가며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유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다른 이들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유롭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쉽게 억압에 굴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유' 개념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주체성과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유는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선 개념입니다. 우리는 쉽게 고대의 노예들이 '자유'를 갈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랬지요. 그래서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노예해방론자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이 근대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와 동일어는 아닙니다. 우리는 쉽게 자유라는 개념을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자유에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행한다는 적극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선택'한다는 사고가 있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나 선택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근대에 들어와서 '개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전에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거나 어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집단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권리의 주체인 '개인'의 형성으로부터 '자유'라는 말은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매우 추상적이고,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매우 많은 왜곡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왜곡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자유의 왜곡 1 - 자유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 개념을 물으면 내 맘대로 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지요. 내 맘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능'이라고 불러야 좋을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자유가 없지요. 자신의 본능에 따른 행위가 있을 뿐입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본능에 의해서, 충동에 의해서 즉각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능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치 판단에 따라 자기 스스로 어떤 행위를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맘대로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도 옳지 않은 말입니다. 자유라는 개념이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안에는 이미 그 선택에 따른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려가 들어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유를 본능과 동일한 말인 것처럼 인식시켜서 자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놓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로 자유 자체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자유를 구가하는 '선택'이 '어떤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가'입니다. 그 기준이 사회적인 기준에 합치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사회적 기준에 따라서 선택을 합니다. 그 기준이 올바르다고 믿도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회적 기준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재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자유이지만 학생은 머리를 길러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준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것이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회적 기준은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끝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기준 자체가 다른 이들의 선택을 억압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선택을 가로막는 사회적 기준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진정한 자유가 가능해집니다.

자유의 왜곡 2 -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
많은 사람들이 집회 때 사람들에게 교통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이나 세계인권선언문 등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자유로 간주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인 집회·결사의 자유, 혹은 파업의 자유 등은 왜 인정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자유가 당장에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여도 그 효과나 의미가 그런 피해를 감수할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피해가 있기 때문에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유를 누림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사회적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당장의 피해에 연연하지 않고 그러한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내가 지금 숨쉬는 행위 하나도 다른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더 자유롭게 공기를 마실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대끼고 사는 사회에서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침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사람의 자유, 어떤 상태에서의 자유를 더 높은 가치로 여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유와 자유간의 대립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가치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도둑질할 자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가 사유재산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하는 자의 자유를 결박합니다. 그런데 경제특구 등에서는 한 기업이 한 지역 전체 주민들의 반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 땅을 강제 매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은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기업 활동의 자유가 더 우위에 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더라도 인정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기준에 따라서 자유간의 대립을 조율하는데, 우리는 어떤 자유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그런 사회적인 기준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롭고자 하는 자기 행위의 준칙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의 왜곡 3 - 자유와 평등은 대립한다.
자유에 대한 가장 심한 왜곡은 평등과 대립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너무 심해지면 평등이 침해를 받고 평등이 심해지면 자유가 침해를 받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제한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심각한 왜곡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자유가 확장되었다고 해서 정치적인 평등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자유가 확장될수록 정치적인 평등은 높아집니다. 1인1표라는 결과적 평등이 얼마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은 대립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기업 활동의 자유와 개인들의 평등은 대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기업 활동의 자유와 개인들의 자유도 대립하지요. 즉 기업과 개인들이 대립하는 것이지, 자유와 평등이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교묘하게 치환하여 자유와 평등의 대립으로 만들고, 그래서 한 쪽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은 오히려 더욱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근대의 중요한 문제의식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 대립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이유는 우리사회의 가치 기준이 바로 '기업의 자유'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모든 자유가 기업 활동의 자유로 치환되어 있고, 이것이 자유의 절대 선이기 때문에, 이것을 침해하는 것은 곧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일반화되어 버립니다. 평등은 때로 기업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개인들의 자유, 노동자들의 자유를 넓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런 가치관, 즉 기업 활동의 자유만을 자유로 간주하는 논리가 과연 타당한지, '자유'란 정말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자유는 좋기만 한 것일까?
그런데 진정한 자유는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는 자유롭게 되기를 갈망하지만 자유는 몹시 괴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유는 사회적인 가치에 대한 반대라고 인정되고 있는 행동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특정한 집단 안에서 태어나서 살아가고, 그 가치체계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에서부터 벗어나는 일은 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선택이 결국 나 스스로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계속 제약 안에 있게 되므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위협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속에서 다시 주저앉고 자신의 선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과 현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로울수록 인간은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유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자유롭지 않으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지만,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이 주체가 되고, 그래서 매 사안에 대해 내가 왜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쉽게 알기 어렵기 때문에 매번의 선택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를 아는 것이며, 쉽게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지 않고 나의 선택과 떳떳하게 대면하는 것입니다.
집단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면서 집단의 가치 기준을 수용하고, 그래서 자유로우나 실은 자유롭지 않은 개인으로 살기보다는, 어렵더라도 진정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 자아와 주체성을 가진 올바른 판단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설령 그 이후의 선택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진정하게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우리가 우리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독해하기
다음 제시문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를 분류하여 각각의 개념에 맞는 사례를 들라.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 사유로부터 '정치적 자유'라는 특정한 쟁점을 분리시켜야 한다. 로크의 경우 '진정한 자유'를 '자아의 결정에 따르는 행위'로 정의함에 비해 '정치적 자유'를 이야기할 때는 '타인의 일정하지 않고, 불확실하고, 알려지지 않은 의지에 복종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대개의 철학자들은 참된 자유 혹은 자유의 본질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아무도 그 점에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를 정치적 자유의 문제로 혼동하는 철학자들은 비난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철학적 자유'는 최종적이며 초월적 자유를 탐구하는 것이며, 이것은 합리적 자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적인 자유를 이야기할 때 이러한 철학적 개념들을 사용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부득이하게 이 개념들을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진정한-즉 철학적인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구분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자유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을 할 자유가 있다"라는 구절은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나는 ~을 할 수도 있다"와 "나는 ~을 할 수 있다"인 것이다. 첫 번째는 '허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능력'을 의미한다. 물론 능력이 결여된 허락과 허락이 결여된 능력은 덧없는 것이므로 이 둘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양자가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 자유나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허락'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며, 자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의 경우는 주로 '능력'으로서의 자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외적영역과 내적영역 사이의 차이인데, 우리가 자유의 외향화, 즉 '외적 기관으로부터의 독립', '억압으로부터의 보호' 등에 관심을 가질 때 자유는 허락의 형태를 띤다. 반면 우리가 자유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즉 '자율성'이나 '의지' 등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의 자유는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는 내적 자유는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