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정지현 | 누리하제 전임강사

학습목표
1. 문화를 가르는 것 속에 내포된 이데올로기를 살펴본다.
2. 내가 생각하는 문화의 가치기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개념은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의 분류 역시 채택하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집니다. 대체로 지금까지 문화는 문화의 심미적, 도덕적 수준이나 또는 문화가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의 특정적 성격에 견주어 분류되었습니다. 문화의 심미적, 도덕적 수준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은 문화를 고급문화, 중급문화, 하급문화, 혹은 우수문화, 범속문화, 저속문화 등으로 분류해 왔고, 이에 비해 문화의 생산과 수용 과정의 특징적 성격에 따라 문화를 분류하는 사람들은 한 사회의 문화를 지배 계층의 문화라든지 민속예술이나 민속문화로 나누기도 하고, 매스 미디에이티드 컬쳐(mass mediated culture)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시다. 문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문화란 무엇인가'하는 질문 앞에서 이미 연구해놓은 결과만을 외우고 기억하여 나열하는 것에서 그칩니다. 논술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므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정된, 단선적인 연관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 '사물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현상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 안에 내포된 의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문화를 나누어 왔는지 살펴볼까요?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문화의 이분법들
외래문화 vs 전통문화 (고유문화)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문화란 "지식,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 획득한 능력과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서 습득된 것들이 총체적으로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문화란 어느 특정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로 이동해 가면서 새롭게 창조되고 변형되며, 또한 사라지고 태어나는, 유동성과 변형성을 내포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전통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우리 것이었냐는 의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량한복, 목조주택, 마시는 차(茶), 즐겨듣는 음악 등 생활주변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형, 융화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 것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흔히들 우리의 전통문화 혹은 토착문화의 중요성을 논하는데, 그 문화들은 당시 선진대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여진 것들이 우리 것에 맞추어 생활 깊숙이 뿌리내려져 전통문화란 이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통음식중의 하나인 김치를 봅시다. 지금과 같은 매운맛의 빨간 김치를 먹게 된 것은 고추가 들어온 임진왜란 이후이니 사실상 400년 정도 밖에는 안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빨간 색의 매운 김치는 이제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가 되었지요.
우리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자어도 우리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앙드레 김을 희화화하면서 자주 쓰는 '판타스틱'이라는 말과 '환상적'이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을 우리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환상'이라는 한자어에 '~적'이라는 일본식 언어까지 있으니, 이야말로 국적불명의 말이 아닐 수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전통문화는 우리의 것이고 외래문화는 남의 것이라는 구분은 황당해집니다. 어느 것 하나 남의 것이 아닌 적이 없었으며 우리 것이라는 것도 어느 시절 돌아보면 남의 것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오히려 어떤 기준에서 보면 전통문화는 과거의 문화이고 외래문화는 현재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급문화 vs 저급문화
흔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할 때 그 문화를 소비하는 계급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급(지배) 계급이 소비하면 고급문화이고, 하급(피지배) 계급이 소비하면 저급문화가 되는 것이죠. 즉, 문화 자체가 나누어지면 그것을 각 계층(계급)이 소비하는 게 아니라, 계층(계급)이 나뉜 후 문화가 분류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급문화는 대중문화와 달리 문화의 창작자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문화의 사용자들은 창작자의 수준과 식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 문화의 수용자 대부분은 이를 창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워낙 수용자의 수가 적고, 대개 창작자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며 같은 계층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대중문화는 민속문화와는 달리 대량 생산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급문화와는 달리 대량 소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대중문화는 가치의 상하관계를 구분하지 않는 "popular culture"가 아니라 "mass culture"를 뜻하는데, 분화되지 않고 저급한 일반 하층집단의 문화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부정적 뉘앙스를 풍깁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성악가 박인수 교수가 대중가수와 음반을 취입하고 대중가수와 같은 무대에서 가요를 부르는 등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을 깨는 작업으로 화제를 불러모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열린 음악회>에서 보듯 그런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박 교수의 시도는 꽤 신선하고 새로운 것이었고, 박 교수는 그 대가(?)로 국립오페라단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한 바 있습니다. 이는 박 교수를 쫓아낸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과소평가하는 엘리트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죠.
우리가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미학적 기준과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예술 교육은 온전히 고급문화의 가치관에 따르고 있고 문화에 관한 사회적 담론, 예컨대 문화예술에 관한 언론보도, 비평 같은 것들 역시 대부분 엘리트주의적 시각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트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고급문화는 대중에게는 쉽사리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어렵다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대중문화에 대한 오랜 비판은 '대중문화'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사회적 계급으로서의 '대중'에 대한 경멸과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노동 이외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집단의 문화와,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이 누리던 문화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노동에 참여하지 않던 이들이 누리던 향유만을 문화라 여겨왔던 것입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폭넓고 일반적인 비판은 그래서 다양한 개체들의 집합으로 이뤄지는 문화의 속성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대중문화이건 고급문화이건 중요한 것은 '문화' 그 자체이지 '대중'과 '고급'이 아닙니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는 결국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재구성과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기획으로서 어떤 문화적 실천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예술영화 vs 상업영화 (오락영화)
"예술은 사기다"
미국에서 천재적인 비디오 예술가가 된 백남준의 호기 어리고 재치 있는 말입니다. 이제는 이 발언을 두고 "예술모독죄"로 모는 일 따위는 없어졌습니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요즘에 예술영화론은 상업(오락)영화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이 오락이나 상품이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술과 대중문화를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국의 영화담론은 크게 영화작품을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구분에 의하면 예술영화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가 상업적 목적으로부터 초연한 상태에서 오직 창조적 표현을 위해 만드는 작가영화이며, 상업영화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저급한 관객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혼합하는 대중영화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자세히 봅시다.
1995년 가을, 예술영화 전용관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예술영화 붐을 만들었던 영화사 백두대간이 펴낸 소책자에는 "예술영화 전용관은 기존 극장에서는 상영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세계 유수영화제 수상작, 영화사의 고전들, 현대의 걸작들, 세계 우수단편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엄선해서 상영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자에 게재된 반쪽이의 일러스트는 "삶과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영화"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로 <시네마천국>과 채플린의 영화를 꼽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예술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정의는 없었던 것이죠.
우디 앨런은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전통적인 예술인 연극이 깡패 손아귀에서 창조되는 오락상품이면서도 예술일 수 있는 부조리성을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도 협잡꾼과 건달, 부도덕한 연애놀음 사이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요즘 세계 유수영화제들은 경쟁적으로 할리우드 초대작들을 개막작으로 선정하고 있으며 최근 10년간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목록을 보면 할리우드영화가 유럽이나 아시아영화를 수적으로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네마천국>은 대중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명화'로 자리 잡았으며 채플린 영화의 주 관객도 일반 대중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예술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조차 형성돼 있지 않는 상황에서, 왜 예술영화는 고상하고 상업영화는 저질인가 같은 이분법적인 질문들이 나타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술영화에 대한 집착은 영화 초기부터 강하게 발견되는데, 예술영화의 개념은 장터와 극장의 신기한 구경거리나 오락상품으로써 전 세계에 퍼져나간 영화가 고색창연한 예술의 신전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영화창작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이어 화가나 미학자들, 시·지각이론가들이 이 흐름에 가세하여 이미 예술로 공인받은 전통적인 예술들(문학이나 연극, 미술 등)과 영화매체가 표현성과 기능에서 갖는 유사성을 역설합니다. 영화가 상품성을 지니긴 했지만 여전히 예술일 수 있고 또 예술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됩니다. 영화의 출발이 그러했듯이 영화는 예술이기 전에 자본의 산물인 상품의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단순히 상품인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도 대중매체로서, 대중매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어 사회의 자원 및 권력의 배치를 반영합니다. 이런 동시에 그 자체가 새로운 권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영화를 예술이냐 오락이냐를 나누는 일은 무의미한 일일 뿐입니다.

주류문화 vs 비주류문화
인디문화란 무엇일까요? 보통 사람들은 인디에 대해서 가장 먼저 '자유, 탈상업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디란 Independent(독립)의 약자로 기존 주류문화와 상업화에 대항하여 탈상업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하는 비주류 문화를 가리킵니다. 인디작가들은 제작사나 회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깔이 묻어나는 창작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디 문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 개념은 점점 규격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주류문화하면 락, 홍대앞 문화, 독립영화 등 도식화된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비주류 문화가 차별 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문화가 아닌,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다는 이유로 상품화되기 시작합니다. 탈상업화라고는 하지만 락이나 힙합 등은 이미 충분히 상업화되었고, 예술영화라는 이름으로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전용극장이 생겨날 판입니다.
초기에 비주류문화는 지배문화의 바깥에서 이에 대항하는 저항문화로서의 의미를 지녔지만,  현재 상황에서 대중문화 바깥에서 비주류문화 혹은 대안문화를 찾아내 그 가치를 주장하는 일은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비주류문화와 주류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 또한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