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살림 글살림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이야기 (2)

이선희 | 해오름 평생교육원 전임강사

봄들이

아직도 바람은 쌀쌀한데
아직도 코끝은 시리운데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은 따스하고
물먹은 버들개지 눈망울은 보드랍고

보이는 건 겨울
느끼는 건 봄

겨울의 길목에서
미처 오지 못한 봄을 기다려

저 맑게 시린 하늘 숨이
저 땅 속 깊이 스며서

여린 잎 냉이가 나올 때까지
솜털 보송보송한 꽃다지가 나올 때까지

봄을 기다려
따스한 봄을 기다려


정말 신기하게도 해마다 입춘이 오면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바람은 쌀쌀하고, 때론 깜짝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지만 어느 새 살며시 봄이 다가와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땅 속에서는 햇빛을 모아 생명 기운으로 바꾸는 계절 겨울. 그 기운이 땅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봄. 보이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알고, 오지 않아도 있는 줄 아는 선견지명을 갖는 것은 참 지혜로운 일입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도 입춘(立春)이라 하여 봄에 들어섰다고 하고,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아도 입하(立夏)라 하여 여름에 들어섰다고 합니다.일 년 열두 달 바쁘게 사느라 몰라도 하루 중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추분이 있고,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 하지, 동지가 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내 앞에 있는 것만을 살필 줄 아는 요즘 세상에,바빠서 주위를 살필 줄도 모르고 종종거리는 사람들에게, 24절기는 보이지는 않지만 늘 변함없는 우주의 질서를 가르쳐주고, 우리 모두 해의 기운을 받아 살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아이를 볼 때, 아이라는 존재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마음으로는 그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나 성향, 혹은 성적을 가지고 아이 전체에 대해 판단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일부이며 그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아이를 가지고 단언하여 평가하려고 하는 유혹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어른도 많은 이유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없으면 어떤 상황이 변화하고 발달할 것이라는 잠재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상대방의 완전한 모습과 심오함과 가장 깊은 의도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준다.
-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중 8장 383쪽)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는 대개 자기 앞에 주어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세상에 자기 자신을 맞춰 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고 싶은 아이들은 자기 앞에 길을 새로이 만들며 이 세상에 대해 여러 연습을 해 가면서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갑니다.

♣ 『수일이와 수일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은 먼저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표지는 책의 얼굴과 같은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미리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의 표지 읽기는 암묵적이지만, 줄글로 된 책은 많은 이야기를 한 장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어 암시된 내용을 읽어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읽기 전 지도' 등의 독서 지도법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제목이나 표지의 그림은 책을 읽는데 동기를 부여함으로 아이들이 보다 재미있고 진지하게 책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내용이 궁금해 다른 것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먼저 속부터 들춰보려고 하는 것이 아이들의 심리지만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제목, 표지의 그림, 드물게는 간지에도 뭔가 있는 경우도 있고, 머리말, 차례 등을 꼼꼼히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특히 머리말의 경우, 작가가 그 책을 왜 썼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작가와 직접 대화하는 것같이 느낍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머리말만 따로 모아서 읽어보세요. 글의 길이는 짧지만 글을 쓴 의도를 파악하기에 좋은 읽기가 됩니다.)
이 책의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글을 쓰는 능력 못지 않게 그 글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 『강아지똥』은 정승각 선생님의 그림이 있었기에 감동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강아지 똥이 녹아 민들레 속에 스며드는 장면을 그토록 생생하고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에 우리는 『강아지똥』이 주고자 하는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글과 그림의 조화는 그림책의 경우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줄글 책도 예외는 아닙니다.
초록색 줄무늬로 쓰여진 앞의 '수일이' 글자와 쥐털 감촉이 느껴지는 위의 '수일이' 글자. 또 학원 가방을 든 아이와 축구공을 든 아이의 대조적인 얼굴 표정과 분위기, 그 사이의 쥐 한 마리. 표지의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표지 그림은 무엇을 상징할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등등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훑어 읽어내려 가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 들어가 멈춰설 줄 아는 것입니다. 즉, 대강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쫓아가면서 중심인물도 되어보고, 주변 인물도 되어보고, 주인공이 겪고 있는 문제나 갈등이 되는 사건은 무엇인가 알아보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공감도 느끼고, 의문점도 찾고, 비판도 해가며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힘과 부분을 살펴보는 힘을 같이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대강의 흐름을 잡아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수일이와 수일이는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란 아이의 이야기란다. 이러저러해서 결국 수일이는 자기가 하나 더 생겼는데, 자기가 처음 생각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자꾸 꼬여만 가는구나. 어떻게 꼬여가는지 잘 살펴보렴." 아무 말도 않고 책을 줄 때와 미리 책에 대한 암시를 주면서 읽으라고 할 때 그 결과는 사뭇 달라집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과정에 보면 「메모하며 읽기」란 단원이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적어가며 책을 읽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메모를 하며 읽으면 그냥 읽을 때보다 글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또 글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적기 때문에 읽은 내용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글의 내용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됩니다. 저학년의 경우는 이런 과정이 어렵겠지만 고학년들은 조금씩 이런 연습을 계속 해나가면 주체적으로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끔 책에 낙서한다고 몹시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나의 느낌이나 생각이 결코 낙서가 아니며, 나중에 다시 책을 읽어보게 되는 경우 전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기억할 수 있어서 좋고, 혹시 친한 사람에게 권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 사람이 나의 생각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됩니다. 시집의 빈 여백을 활용하여 서로 책을 돌려 읽으며 느낌 나누기를 해도 좋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1) 줄거리 간추리기

읽은 내용을 먼저 정리해 봅니다. 줄거리를 간추리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먼저 시범적으로 간추리는 것을 계속 보여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점차 앞부분은 선생님이, 뒷부분은 아이들이 돌아가며 정리를 한다든지 하여 자기 혼자 전체 내용을 간추리는 힘을 기르게 합니다. 줄거리를 간추릴 때는 이야기의 구성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간추리라고 하면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은 책을 친한 친구에게 권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고 묻는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
- 방학이어도 놀지 못하고 학원에 다니는 수일이란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서 기르는 개 덕실이가 가르쳐준 대로 쥐에게 자기 손톱을 먹여 자기와 똑같은 수일이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책 17쪽 그림 넣기)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
- 가짜 수일이를 자기 대신 학원에 보낸 진짜 수일이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된다. (49쪽 그림)

  이야기가 고조되는 부분
-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가짜 수일이는 태도가 변하고, 진짜 수일이는 가짜 수일이를 다시 쥐로 돌려보내고 싶어 엄마에게도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수일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수일이는 가짜를 돌려보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보지만 어림없다. (p.92, 34,135 그림을 작게 옆으로 같이 넣어주세요)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는 부분
- 가짜 수일이를 쥐로 돌려 보내려고 들고양이를 찾아 나섰다가 가짜 수일이의 쥐발톱을 먹고 수일이와 덕실이는 그만 쥐로 변하고 만다. (p.193 그림)

  이야기가 결말에 이르는 부분
- 들고양이 방울이를 만나 수일이와 덕실이는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고, 방울이는 남을 길들이지도 말고 남에게 길들지도 말라고 한다. 수일이는 마음을 새롭게 먹고 당당하게 맞서려고 한다. (p.219 그림)

2) 인물 살펴보기

『수일이와 수일이』의 주인공은 진짜 수일이지만 가짜 수일이나 덕실이, 방울이, 그리고 수일이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인물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짜 수일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 방학인데도 계속 학원을 많이 다녀요.
-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해요.
- 처음엔 노는 것이 좋아 가짜 수일이를 만들었지만 점점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느껴요.
- 처음엔 자기가 힘든 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투덜거리지만 속으로는 엄마도 생각해요.
- 수일이는 바보 같아요. 처음부터 엄마랑 터놓고 이야기를 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 그래도 자기가 벌인 일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가짜 수일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얄미워요. 교활한 것 같아요.
- 처음엔 겁이 나서 쥐로 돌아가고 싶어하다가 점점 사람 맛을 알아가면서 거꾸로 수일이와 덕실이를 쥐로 만들어버리는 걸 보니 무서워요.
- 그래도 꿈이 농부라고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깝실이네 패거리와도 싸우는 걸 보니 기특하고 용감한 면도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이 이야기에서 덕실이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 덕실이는 진짜 수일이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유일한 친구예요. 다른 사람들은 덕실이의 말을 못 알아듣는데 수일이만 알아듣는 걸 보면 그래요.
-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잖아요.

·들고양이 방울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 방울이는 처음엔 집고양이였다가 도둑 고양이였다가 들고양이가 되었대요.
- 길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어요.
- 수일이에게 진짜 자기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어요.

·이 책에서 수일이의 부모님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요?
- 수일이 부모님은 수일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아요.
-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학원에만 가라고 하고, 바쁘다고 수일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요.
- 진짜 자기 아들이 누군지도 몰라요.
- 자기 아들이 잘 생긴데다가 말 잘 듣고, 밥 잘 먹고, 공부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영어도 잘 하는 줄 알아요.
- 자기 말을 들을 때만 잘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엄마 말대로만 하는 가짜 수일이가 의기양양하잖아요.

3) 토의거리 찾기

책을 읽어나가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나 깊이 나누고 싶은 것들을 찾아봅니다.

·이 이야기는 수일이가 방학이 되어도 놀지 못하고 계속 학원에 다니는 것에 불만이 생긴데서 시작합니다. 우리 친구들도 대부분 학원에 다니는데, 왜 학원에 다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나도 수일이처럼 또 하나의 내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또 하나의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싶은가요?

·진짜 수일이는 이 다음에 축구 선수나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가짜 수일이는 이 다음에 농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나는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가짜 수일이는 진짜 수일이에게 "너 같은 아이보다는 나 같은 아이를 더 좋아해"하 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방울이가 설명한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자기 마음에 들도록 남을 다듬어 고치는 것'
"남을 함부로 길들이려고 하면 안 돼. 무턱대고 남한테 길이 들어도 안 되지."

·마지막 부분에 가면 수일이는 "나는 진짜 수일이!"라고 외칩니다. 진짜 수일이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4) 마무리 활동하기

책의 주제를 심화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활동을 알맞게 골라서 합니다.

◇ 편지글 쓰기

☞ 보다 솔직히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편지글 쓰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가 김우경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누구나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풀어야지요. 누군가 힘이 되고 마음을 북돋아 줄 수는 있겠지만, 끝내 그 일을 풀어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수일이처럼 당당하게 맞서야 할 일들이 나에게도 있나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바라는지, 진짜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 봅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습니까? 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와 권하는 내용을 편지글로 써 봅시다.

·수일이의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글로 써 봅시다.

토의하여 뒷이야기 쓰기

☞ 뒷이야기 쓰기 활동도 할 수 있는데 이야기의 결말을 짓는 부분이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많이 부담이 됩니다. 모둠별로 토의를 해서 말로 이야기하고 한 아이나 혹은 선생님이 정리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짜 수일이는 자기가 새 수일이고, 진짜 수일이가 헌 수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새로운 수일이가 돌아오면 그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방울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가짜 수일이가 물러나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시 돌아간 진짜 수일이가 해결해야 될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집, 학교, 학원에서)

·이 다음에 수일이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 또 하나의 내가 필요한 세상

『수일이와 수일이』란 책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결말이 없이 조금 답답하게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 속에 있는 수많은 수일이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일이는 학원 가기가 좀 싫을 뿐 별다른 문제가 없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방학이어서 아이들과 가재도 잡고 축구도 하면서 신나게 놀고 싶지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바둑 교실, 영어 학원, 검도를 하루 종일 왔다갔다 합니다. 엄마한테 가짜 수일이 일을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만, 엄만 믿어주지도 않고 또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 동생이 놀랄까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 하려고 가짜 수일이를 만들어낸 것부터 그렇습니다. 가짜 수일이한테 시키면서도 이젠 진짜 자기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조금은 기특한 아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조금만 다니고 싶다고하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문에 난 이야기만 보고 내막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는 집 근처 학원에서 하루 3~4시간 동안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6학년아이들이 그 기사를 보고 "나 같으면 벌써 몇 번은 죽었겠다"고 합니다. 그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하면서 방학 땐 하루 평균 6~7시간은 학원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길들지 말라고 하는 말은 어쩌면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혼자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참 답답합니다.
수일이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진짜 수일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짜 수일이가 된다는 것은 가짜 수일이, 임시적인 새 수일이처럼 엄마 말을 잘 듣고 학원을 잘 다니는 아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진짜 수일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다른 아이들의 생활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어떤 곳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느껴볼 여유도 없이 학원만 오간다고 진짜 수일이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방울이의 말을 깊이 새기며 당당하게 맞서려고 노력하는 수일이가 되겠지만 수일이의 엄마가 변하지 않으면 수일이는 언제고 또 가짜를 만들어 자기를 대신하게 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수일이 엄마가 변해야 합니다. 공부를 시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것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고쳐나가야 합니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의 말을 먼저 들어주어야 합니다. 전인교육이 교육의 목표이긴 하지만 뭐든지 완벽하게 잘 하는 만능 아이를 만들어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 하는지, 잘 할 수 있는지, 혹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것도 교육을 받을 동안에 아이들이 할 일입니다.
공부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6학년 남자 친구가 "책상에 앉아서 칠판을 보고 선생님 말씀을 듣거나 책을 보면서 샤프를 가지고 글자나 숫자나 부호를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두 친구의 정의가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진짜 수일이가 되는 길.
그 길은 어떤 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