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을 찾아라!
-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강순옥 | 논술교사

대상: 중학생∼고등학생
시간: 1차시(150분)
텍스트: 영화 <모던타임즈> 중 일부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로버트 레빈 / 황금가지) 편집자료
참고자료: 『잠도둑들』(스탠리 코렌 / 황금가지)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 범우사)
학습목표: 1. 시간의 의미를 문명사적으로 탐구해 본다.
2. 내 삶과 시간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인식해 본다.

'바쁘다'라는 형용사만큼 현대인의 삶을 적절하게 대변하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바쁘다'라는 말은 '피곤하다', '졸립다', '쉬고 싶다', '다음에 만나자', '다음에 놀자' 등등 스트레스와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고충어린 말들의 어버이로 군림한다. '바쁘다'라고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우리들. 삶의 고충까지도 한숨 섞인 한마디 말로 요약해서 내뱉게 된 우리들. 또 그 말 한마디면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서로를 보내주고 붙잡지 않는 우리들의 오랜 익숙함은 어디서 연유한 걸까?
해마다 방학이면, 특히 '기나긴' 겨울방학이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이들과 제법 두껍고도 의미있는 책을 많이 읽으리란 착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임을 번번이 깨우치면서도 미련을 접지 못한 채 부담스런 수업 계획을 짜곤 한다. 이번 겨울, 방학의 초입부터 여기저기 학원이다 과외다 저마다의 내밀한 프로젝트에 꽉 잡힌 듯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또하나의 돌덩이 같은 부담만큼은 주지 않아야 되겠다 싶어 짤막한 프린트 몇 장과 영화 한 토막으로 다가서고자 했다. 그러나 이 수업은 책을 읽어오지 않아도 되는 룰루랄라 신나는 수업을 향하고 있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은 150분 후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아마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교실을 떠나게 되리라.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짐 속에서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우리들. 시간은 과연 유유한 강물처럼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흐르는 자연의 한 줄기일까?

마음열기

1. 현대인의 삶의 템포를 엿보고 내 삶의 템포를 헤아려 보자.

영화 <모던타임즈> 중에서 초반부를 잠깐 감상하는 시간부터 가졌다.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동료들과 함께 끊임없이 제 앞에 착착 도착해대는 나사를 죄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공장 사장은 자기 사무실에 편안히 앉아 영양제를 먹고 담배를 피며 모니터로 노동자들의 작업 상황을 실시간 감독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아주 잠깐의 쉬는(화장실 왕래용) 시간과 작업대 바로 곁에서 대충 때워야 하는 식사 시간이 휴식의 전부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장실의 모니터에도 보고되고 있지만 각자 소지한 타임 카드(오늘날 여러 회사에서 사용하는 출퇴근 확인용 카드 같은 거)로도 정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식사 시간마저 획일적으로 줄이려는 사업가들이 '자동배식 겸 시식기'를 개발해 와서 사장에게 선보이고 찰리는 시범 가동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른다. 기계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찰리의 얼굴은 온통 기계가 재빨리 퍼다 넣는 음식들로 엉망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심한 따분함을 느낀다. 그래서 슬슬 '딴짓'을 하다 마침내 사장실의 모니터를 망가뜨리고 공장의 기계 작동을 멈추게 한 채 정신병원에 실려 간다. 실려가기 직전까지 그는 자신의 본분이던 나사 죄는 동작을 습관적으로 반복해 보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공장 아저씨들 삶이 어떻게 느껴지냐?
- 스트레스 엄청 받겠네요.
- 몸은 되게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실상 하루종일 똑같은 일만 하니 정말 재미없겠다.
- 나라면 미쳐버릴 거야.
- 찰리 채플린이 객기 부리는 거 이해가 되요.

·자동 배식기 겸 시식기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이상한 기계 발명해서 팔려고 온 사람들과 은근히 관심 보인 사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그 사람들이 꼭 그런 것 같아요. 괜히 자동, 편리만 추구하다가 기계가 고장나니까 완전 엉망 됐잖아요?
- 맞아, 그런 건 아니 만드니만 못한 거야.
- 이 영화 되게 오래 된 거 같은데 사장실의 모니터며 이 기계며 상당히 앞서 있네요.
- 그러게요, 사장실의 모니터는 요즘 CCTV 같아요. 그 당시에도 이런 기계로 사람들을 감시하다니 대단해요.

·이 영화는 1936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심각한 경제 공황에 처해 있었지. 그래서 공장 폐쇄라든가 대량 실업, 빈민, 기아의 문제가 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어 있어. 글쎄, 그 당시에 CCTV가 벌써 사용됐는지는 선생님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찰리 채플린이 여러모로 천재적이어서 미래를 예견한 거 아닌가 생각해.

2. 삶의 템포를 음악에서의 빠르기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서양 음악>
라르고(Largo) - 아주 느리고 폭넓게
렌토(Lento) - 아주 느리고 무겁게
아다지오(Adagio) -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
그레이브(Grave) - 아주 느리고 장중하게
안단테(Andante) - 느리게
안단티노(Andantino) - 조금 느리게
모데라토(Moderato) - 보통 빠르게
알레그레토(Allegretto) - 조금 빠르게
알레그로(Allegro) - 빠르게
비바체(Vivace) - 빠르고 활발하게
프레스토(Presto) - 매우 빠르게

<국악>
진양조- 느리게
중모리 - 약간 빠르게
중중모리 - 중모리보다 조금 빠르게
자진모리 - 중중모리보다 더 빠르게
휘모리 - 아주 빠르게

·그건 그렇고 여기 아저씨들 일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데 음악에서 빠르기로 표현하면 어디에 해당할까?
- 제일 빠른 거, 그러니가 '프레스토'나 '휘모리' 아닐까요?
- 각 빠르기에 해당하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판단해야 정확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집에 가서 직접 해보도록. 그거 하다가 시간 다 가거든. 미안! 그런데 너희들은 요즘 어떠냐? 방학 시작했는데 늦잠 좀 자고 그래?
- 무슨 소리! 하루 네 시간도 못 자요.
- 엉? 나는 학원 다 끊겨서 널럴한데.
- 방학 때 더 바빠요!

·그럼 너희들의 방학 중 삶의 템포도 음악의 빠르기 중에서 한 번 골라 봐.
- 전 화목토 오전 9시에서 오후 7까지 영어학원에만 있어요. 잠은 새벽 1시쯤에 자요. '모데라토' 정도 아닌가 싶어요. 근데 요일에 따라 템포가 약간씩 달라요.
- 전 요즘 늦잠 자고 또 일찍 자니 '안단티노'요.
- 전 부모님 계시면 '자진모리', 안 계시면 '중모리'요. 월수금 오후에서 밤까지 학원, 화목 오전, 오후 학원! 7시 30분에 일어나서 새벽 2시에 자요.
- 중 1때는 '프레스토', 중2 때는 '안단티노'였고, 중3 때는 '라르고'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 것은 속도는 점점 느려지지만 분위기는 점점 암울해지죠. 분위기의 변화가 중요하죠. 월~금 학원, 과외 도배입니다.

·선생님도 수업 준비하랴 너희들 글 첨삭하랴 애보랴 밥하랴 청소하랴 무지 바쁘다. '안단테'를 꿈꾸지만 현실은 '알레그로' 정도 되지 않나 싶다. 근데 우리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만 할까?
- 그런 질문은 아니 한 만 못해요, 잘 아시면서….
-새삼 물어 뭐해요. 해결할 수도 없는데….

·아니, 너희들도 잘 안단 말이냐?
- 잘 안다기보다 감은 잡고 있단 편이 더 나을 듯….

·잘 됐네. 그럼 감 잡은 김에 아주 확실히 잡자. 이것 좀 읽고 나서 얘기 계속!

펼치기

1. 시계 시간이 지배하는 문명의 특성을 내 삶과 연결지어 비판해 보자.
※ 시계문명의 변천에 따라 시간 개념도 변화되었다. 다음 읽기자료를 읽고 그 변화 양상을 파악해 보자.

읽기자료 _ 시간을 훔친 사람들

언젠가는 시간이 더 이상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시간에게 봉사하고 시간의 노예가 되는 때가 온다. 그때는 우리가 시간 계획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으면 사회체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 제한에 근거한 삶에 얽매이게 된다.
- 할란 엘리슨,『어릿광대짓을 뉘우쳐라』

시계 바늘은 바삐 사는 삶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시계는 행동의 속도를 규제하고 사회 생활의 속도를 통제한다. 시계 시간은 일상 생활의 리듬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산업화된 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 시계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어떤 사회학자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면 사회생활 부적격자로 낙인 찍힐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계 시간이라는 새로운 사회규범이 등장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시간 엄수라는 현대적 개념과 시계에 의존하는 삶은 대부분의 선조들에게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이제 시계 시간이 자연의 시간을 누르고 제왕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된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시간을 재는 기구들의 탄생: 해시계, 물시계….

최초의 위대한 발명은 경험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것, 즉 '시간'이었다. 단지 년, 월, 주, 일, 시, 분, 초를 구별해서 인류는 자연 순환의 단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림자의 변화, 모래, 물, 시계의 똑딱임으로 전환된 시간은 인간 활동을 유용하게 측정할 수 있게 했다. 시간의 공동체는 최초의 지식공동체를 만들어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동의 국경을 갖게 했다.
- 다니엘 부어스틴, 『발견자들』

고대 천문학자들은 해(일 년)를 구분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달(개월)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균일한 시간의 측정은 현대의 발명품이다. 분과 초라는 개념은 더욱 최근에 등장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는 '해시계' 또는 '그림자 시계'이다. 약 5,500여 년 전 사람들은 해가 하늘에 낮게 떠 있으면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러 원시적인 해시계 모형을 거쳐 고대 이집트인들은 작은 T자 모양의 구조물이 끝에 붙어 있고 약 30센티미터 정도의 수평 막대로 된 해시계를 개발했다. 그 T자가 막대를 따라 그림자를 비추면 시간의 경과를 좀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그 그림자가 눈금 표시를 해준다. 막대와 T자 구조물을 아침에는 동쪽을 향하게 해놓고, 정오 무렵이 되면 해질 때까지 서쪽을 향하도록 거꾸로 놓았다.
그러나 고대 희랍인들이 이렇게 시간을 재는 것은 아무래도 정확성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해가 지고 나서의 밤 시간은 아예 잴 수 없었기에 어떤 해시계에는 '해가 지면 쓸모없다'고 적혀있기도 하다. 그래서 날씨나 태양에 의존하지 않고 낮과 밤에도 시간을 재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물시계'이다. 최초의 해시계 이후 5세기만에 발명가들은 시간의 경과를 항아리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으로 측정하기 시작했다. 구멍을 통과한 물의 양을 측정하는 것, 그것이 물시계의 공통 원리이다. 고대 이집트의 한 물시계는 안에 눈금이 표시돼 있고 바닥에 구멍이 하나 있는 석고 항아리였다. 물이 구멍 밖으로 떨어지면서 한 눈금에서 다음 눈금으로 물의 높이가 내려간 것을 보고 시간의 경과를 측정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1700년경에 등장한 진자 시계에 이르기까지 물시계는 해가 나지 않을 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기계 장치였다. 실제 인류 역사 시대의 대부분을 낮에는 해시계가, 밤에는 물시계가 쟀다. 그러나 물시계의 문제점도 많았다. 우선 기온이 떨어지면 물이 얼어 측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물시계의 구멍이 막히거나, 닳아서 커지는 것을 미리 막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물시계의 원리에 의거해 흐르거나 소모되는 물질들을 이용한 시계들이 발명되었다. 모래시계, 향시계 등이 그것이다. 중국인들은 향시계를 개발했는데, 각 상자에 다른 향을 태워 퍼지는 공기의 냄새로 시간을 측정했다.
최초의 기계적 시간 측정 장치들은 14세기경 유럽에서 등장했다. 이것들은 추로 작동됐는데 대개의 경우 물시계보다 정확하지 않았다. 이런 최초의 시계들은 신앙이 돈독한 수도사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알려주는 아주 단순한 목적을 위해 개발됐다. 모래 시계의 경우 당번 수도사가 자지 않고 계속 뒤집어주어야 하는 애로가 따랐기에 정해진 기도 시간에 그저 종만 쳐주는 시계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초기 시계들은 시계 바늘도, 시간 표시도 없이 교회 장식물이 되곤 했다. 중세 영어인 'clock'은 중세 독일어 '종'(bell)에서 유래한 말이다.
시간을 재는 기계 장치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갈릴레오가 진자 운동을 발견한 16세기 말에 일어났다. 갈릴레오는 진자 운동의 진폭과 진동 주기는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몇십 년 뒤 1700년경 네덜란드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가 최초의 진자 시계를 개발했고 이 초기 시계 중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은 하루에 10초 이상 틀리지 않았다. 겨우 3세기 전에 이르러서야 우리 인류는 진자 시계로 시, 분, 초를 정확히 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받은 것이다. 'speed(속도)','punctual(정시에/꼼꼼한)','punctuality(시간엄수)' 등의 영단어는 진자 시계의 발명 이후에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들은 좀더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도록 진화되면서 개인의 삶 속 깊이 침투해 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문자판이 설치된 최초의 손목 시계는 1850년경에 등장했다. 당시 손목 시계를 차는 것은 '바보 같은 유행'으로 취급되어 곧 사라지리란 예견을 낳았으나 이러한 부정적 전망을 뒤엎은 채 오늘날에 손목 시계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18~20세기에 걸쳐 시계는 더욱 급속도로 진화하였다. 컴퓨터가 10억 분의 1초인 '나노'초까지 측정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는 백만 년 동안 1초의 오차도 없는 'NIST-7'이라는 원자시계를 공개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지적대로 인간은 길이보다 오히려 시간을 더 정확하게 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1미터는 빛이 0.000000003335640952초 동안 움직인 거리로 정의될 수도 있다. 또 빛이 1초 동안 움직인 거리를 '광초'라는 새로운 단위로 나타낼 수도 있다.

2) 어떻게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헤로도토스의 글을 읽어보면 당대의 위대한 여행가이며 박학다식한 인물인 그도 생전 '시간'이라는 개념을 접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그 개념을 가리킬 단어조차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말은 시간표와 계획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의 시대와 그 후세에도 인간의 활동이 시간을 규정한 적은 많았어도 정해진 시간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는 적은 없었다. - 알렉산더 자라이

과연 시계는 기술적 진보만으로 오늘날 인간 삶의 표준으로 군림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상품으로 판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인류가 자연시간에서 시계시간으로 옮겨간 것은 기술적 진보를 비롯하여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과 매우 적극적인 마케팅 행위 덕분이었다. 산업혁명 전의 시간 계산은 대개 환경의 요구에 따랐다. 자연은 단지 씨 뿌릴 때와,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를 지시할 뿐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나일 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수직 눈금자였다. 오늘날에도 산업화가 안 된 농경사회는 여전히 자연 시계에 의존하고 있다.
초기 시계가 대중화되는 과정에는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 시계는 있어도 시간은 지역별로 제각각이라 시간의 표준화 문제가 대두한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자정이 기준이고 다른 곳에서는 정오가 기준이고 또다른 곳에서는 일출, 일몰이 기준이 되었다. 시계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행자들은 통과하는 지역마다 계속해서 시계를 새로 맞춰야 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세계는 여전히 통일되지 않은 달력과 시간대로 뒤덮여 있었다. 미국에서만 1860년대까지 약 70개의 다른 시간대가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새로운 기계와 기술들은 인간 행동의 정확한 조정과 통제를 요구했고 시계는 이를 위해 하루바삐 표준화되어야 했던 것이다. 1880년대까지 시간대의 수가 50개로 줄었고 과학자들은 시간의 기준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표준화된 시간이 없어 애를 먹던 곳은 철도회사, 일기 예보자들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상품화하는 데 적극 투신한 기업가들이 등장했다. '사무엘 랭글리'와 '레오나드 왈도' 두 사람이 시간의 표준화 사업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1867년 랭글리는 경영난에 허덕이던 펜실베니아 주의 알레게니 관측소의 소장을 맡아 발빠르게 관측소의 시간 기록 능력을 개선시켰다. 그는 전신을 매개로 피츠버그 전역의 산업시설에 관측소 시보의 형태로 시간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무역, 여행 등 세계 간 상호 교류의 시대가 펼쳐진 마당에 지역 시간은 허구이며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한편 하버드대와 예일대 교수인 왈도는 시간을 과학자들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도덕을 근거로 내세웠다. "정확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 성질상 교육적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정확한 시간이 좀더 건전한 도덕성을 가꿔나가는 데 도움이 되며 일상에서 정확성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 회사 이사들에게 공장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자질에 관한 보고서를 보낸 왈도는 "고용된 시간만큼 임금을 주는 데 있어 노동자들이 정확성과 시간 엄수의 습관을 갖도록 훈련시키고 모든 고용인들과 피고용인들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끼칠 어떤 서비스가 있다면 주정부에게 커다란 득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무질서한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로서 표준 시간을 제정하는 것이 당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왈도는 이러한 명분으로 마침내 1882년에 각 사무실, 가정에 전신을 통해 정확한 시보를 보내고 비싼 수수료를 챙기는 표준시간회사를 구성했다.
랭글리, 왈도 등의 시간서비스는 '주인시계들'을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 '하인시계들'에 연결시킨 통합적인 시스템을 제공했다. 시계 회사들의 주요 판매 전략 중 하나는 왈도의 전례를 따라 쉬지 않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 시간의 특성을 도덕적 우월감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한 시계 모델을 '독재자'라고 이름붙인 회사의 경우 '독재자는 어디에서 사용되건 군대의 엄격함, 실용성, 신속성, 정확성을 가르친다'라고 선전했다. 경쟁사인 블로젯 시계 회사도 '질서, 신속함, 규율은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깊이 심어줘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들이다'라고 선전했다. 1880년대에 뉴욕의 보석상 윌라드 번디와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알렉산더 데이는 노동자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시간 기록 시스템을 개발했다. 1907년까지 타임카드에 시간을 찍는 시스템을 제조하는 거의 모든 주요 회사들이 국제시간기록회사에 매입됐고 이 회사는 후에 'IBM'으로 발전했다. 1914년 국제시간기록회사의 카탈로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시계는 돈을 절약해주고, 규율을 강제하고, 생산시간을 늘려주며 기록된 시간은 개인들에게 시간의 가치를 심어줌으로써 시간엄수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시계시간의 권위가 점차 강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keeping a watch on people'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지키게 한다'라는 뜻과 더불어 '사람들을 감시한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시간엄수의 중요성은 특히 교과서를 통해 고압적인 전도방식으로 전파되었다. 한 교과서는 직원이 지불을 늦게 해서 망한 회사와 사면장을 전하는 전령이 5분 늦게 도착해서 처형을 당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나폴레옹도 부하 장군이 늦게 왔기 때문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죄수로 생애를 마쳤다고 서술했다. 시계시간을 절대시하는 풍토 속에서 시간엄수의 실천은 인간의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소설가는 주인공이 중산층이 되는 것을 좋은 양복과 더불어 좋은 시계를 소유하는 것으로 상징했다. 시계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자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시계클럽'을 만들어 회원들이 돌아가며 시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프레드릭 테일러'는 마침내 능률공학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로써 '시계인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과학적 경영의 시조'로 알려진 테일러는 절대적 효율이라는 공장 경영의 새로운 성과를 얻기 위해 시계를 사용했다. 즉 회사의 업무들을 각 구성요소로 분할하고 각 신체동작에 대한 표준시간을 정하기 위해 근로자의 모든 동작을 화면에 담았다. 그리하여 근로자의 모든 작업에 대해 몇 분의 1초까지 측정된 적정시간들이 정해졌다. 공장주들은 잡담, 하품, 머리 긁기 등과 같은 '쓸데없는' 동작들을 생산과 관련된 동작들과 구분했다. 이런 측정의 정확성은 마침내 1만 분의 1분을 다루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시간-동작 연구들은 거의 모든 작업 환경에 적용됐다. 미국체계공정협회의 시간도표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류를 찾지 않고 서류함을 여닫는 데 0.04초, 책상 가운데 서랍을 여는 데 0.026초, 가운데 서랍을 닫는 데 0.027초, 옆 서랍을 닫는 데 0.015초,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 0.033초, 의자에 앉는 데 0.033초, 회전의자에서 한 바퀴 도는 데 0.009초, 옆에 있는 책상이나 파일함까지 의자에 앉아 움직이는 데 0.050초….' 생산효율을 위해 일분 일초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테일러주의의 업적은 자본주의 서구사회에 미국이 끼친 세계적, 역사적 공로로 평가되었다.
자연시간을 무너뜨리고 인간 삶의 지배자격으로 등장한 기계 시계의 역사는 손목시계의 등장 이래 지금까지 150여년에 이른다. 최근 이런 기계 시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디지털' 시계이다. 기계 시계(아날로그식)는 그나마 시침의 스피드를 통해 지구가 하루 동안 자전하고 있음을 인간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손목시계를 들여다 볼 때면 지구가 돌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계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이 한번에 한순간만을 표시한다. 모든 주변환경과 상호관계를 무시하는 고도론 훈련된 전문가,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계요 디지털 문명이다. 기계 시계의 권위 아래 살던 현대인들은 디지털 시계의 새로운 권위 아래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글의 제목이 '시간을 훔친 사람들'인데 왜 그럴까?
- 오늘날 우리가 한 시, 두시하는 시간이 원래 있던 게 아니라 기계시간을 만들어낸사람들이 상업적으로 퍼뜨린 것이라서.....
- 그 결과 이 시간의 발명가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의존해 온 자연시간을 뺏은 도둑이라는 거죠.
- 나도 고대나 중세에 태어났으면 좀 여유있게 살았을 텐데….

·그놈의 기계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거 많나 본데 오늘 다 털어내 보자.
- 아침에 진짜 못 일어나겠는데 알람 소리, 엄마 잔소리 땜에 짜증 엄청 나요.
- 지루한 수업 시간 끝나는 멜로디는 왜 그리 더디 울리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매점에서 잠깐 노닥거리다 보면 쉬는 시간 마치는 멜로디는 왜 또 그리 빨리 울리는지!
- 컴퓨터 게임만 시작하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요.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으련만….
- 맞아, PC방에서의 황금 같은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
- 시험 끝나면 다음 시험이 너무 빨리 다가와요.

·됐다, 잘 알겠어. 너희들이 이렇게 고생하게 된 거, 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서 특히 기계시간의 표준화와 상업화에 앞장선 '랭글리' 아저씨랑 '왈도' 아저씨의 공 이 큰 것 같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견해를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을 교육시킨 사람들의 공도 크고. 무엇보다 어떻게든지 노동자들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못하도록 관리감독 을 철저히 하고 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려 했던 숱한 자본가들의 공도 무지 크다고 생각해. 결국 이들 모두의 합작으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시간은 금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류의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속담, 격언에 거의 세뇌당한 채 살게 된 거 아닐까 싶다.
- 그래도 시간을 아껴서 잘 쓰면 결국 개인에게 유익하지 않을까요?
- '시간을 아낀다'는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 같아요. 맹목적으로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만 떠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할 수 있으니까요. 무작정 부지런을 떨기 전에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시간을 잘 써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철학이 랄까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우와, 대단하다!(모두들 감탄!)

·정말 놀라운 생각인 걸! 선생님도 적극 공감한다. 그런데 현대인에게 강조된 시간 의식은 대체로 개인의 주체적 결단이나 목표의식을 중시했다기보다 그저 시간을 아끼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성공한다는 식의 뿌리없이 얄팍한 성실론에 더 가깝지 않을까?
- 음, 저는 이런 경우가 자주 있어요. 제딴에는 방에 누워있어도 뭔가 진지하게 생각중인데 엄마가 방문을 확 열어보고 "야, 맨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만 자냐? 어서 일어나 공부해!"하고 백발백중 야단치거든요. 그러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김이 확 새요. 저한테는 그런 사색의 시간, 공상의 시간이 되게 즐거운데 말이에요.
- 너도 그러냐? 나돈데. 우리 엄만 제가 방에서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책을 펼치고 있을 때 가장 안심이 된대요. 그래서 엄마 마음 편하라고 되도록 책상에 앉아 만화책이나 잡지 펴고 펜을 들고 있지요, 하하하! 물론 엄마가 가까이 오는 걸 느끼면 재빨리 문제집으로 교체해야죠, 이 순간엔 순발력이 생명이에요.

·흠, 학생 신분과 공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질긴 관계 때문이지. 행동의 목적이나 본질보다 표면적인 행동 그 자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가 너희들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구나. 그럼 우리가 이렇게 성실한 척 애쓰면 살도록 도와준 문명의 이기가 기계 시간 이외에 또 뭐가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시계가 있어도 이게 없으면 밤엔 제대로 일할 수가 없지.
- 불빛! 조명! 전구!

·빙고! 에디슨 아저씨의 전구 발명은 인류에게 밝은 빛을 가져다 주었지만 너희들의 밤샘 공부의 길도 환하게 열어주었지.
- 나쁜 아저씨!

·시계, 전구 외에도 또 뭐가 있을까? 예를 들어 아무리 시계랑 전구가 있어도 이게 없으면 공장은 돌아갈 수 없지. 사회시간에 산업 혁명기 공부하면서 다 배운 거!
- 기계? 동력? 제임스 와트?

2. 24시간 사회로 진입하다

·그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 기관에서부터 시작된 동력 혁명은 오늘날 수력, 화력, 원자력에 의한 전력 공급에 이르고 있지. 전구로 밤을 밝혀 기계를 돌리고 좀더 짧은 시간 안에 좀더 많은 걸 생산하게 되는 변화가 바로 윗글의 기계시간의 상업화와 맞물려 돌아간 거지. 이와 더불어 철도, 항만, 항공 등 교통의 발달, 그로 인한 무역, 유통의 발달,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가능해진 산업 시스템의 변모, 그게 소위 현대산업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 아닐까? 문명화된 현대사회를 흔히 '24시간 사회'라고 해. '24시간 내내 작동한다, 깨어있다, 활동가능하다' 정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인데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회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꺼리가 무척 많단다. 뭐가 있을까?
- 낮에도 밤에도 정겨운 내 친구 컴퓨터, 인터넷!
- 핸드폰, 스카이 라이프, 케이블 TV, 심야 극장!
- PC방, 찜질방, 룸싸롱, 24시 편의점!
- 동대문 쇼핑몰!(두타, 밀리오레, 디자이너클럽....)
- 독서실, 학원, 밤샘공부!
- 자동차, 고속도로, 휴게실!
- 심야 배달 전문 중국집, 치킨, 피자점 등 야식 업소!
- 일일 2교대, 3교대 근무조! 밤샘 근무!
- 야간 수송!
- 당일 도착 택배 서비스!
- KTX! 비행기!

·다들 너무 잘 아는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 노동생산력의 발달, 교통의 발달, 유통체계의 발달, 정보 통신의 발달, 상업 문화의 발달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것 같다. 또 학원 심야 수업이다, 독서실이다 너희들의 '학업문화'를 뒷받침하는 요건들도 결정적으로 산업화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해진 것 같다. 옛날 전기 공급이 안 되던 소위 등잔불, 촛불 시절엔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 밤을 새서 공부하기 무척 힘들었겠지?
- 좋았겠네!
- 이 몸은 반딧불이를 잡아 그 빛으로라도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 저는 뭐 밤샘 공부는 일년에 한두 번밖에 안 하지만 새벽까지 인터넷 하며 놀 수 있어서 지금이 더 좋은데요.

·나도 밤 좋아해. 난 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은데 가족들 모두 잠든 한밤중, 새벽 시간에만 그럴 수 있거든. 근데 이런 건 개인적인 기호이고 좀더 포괄적 안목으로 24시간 사회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냉정하게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24시간 불야성 시대를 연 숱한 사람들이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과연 우리들의 잠을 빼앗은 잠도둑일까, 아니면 우리들 삶을 한없이 편하게 해 준 은인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라.

  아이들과 함께 정리해 본 내용


마무리

처음엔 단순하게 '야행성' 운운 하며 환한 밤을 예찬하던 아이들도 함께 토론하면서 자기 생각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KTX로 서울, 부산을 매일 출퇴근할 수 있게 된 한 회사원에 대해 '그저 잘 됐다, 편하게 됐다'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이제 그 회사원이 무척 피곤할 수도 있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독서실에서 시험공부하다 출출해진 자신들이 인근 24시 편의점으로 달려가 개운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기쁨과 더불어 그 편의점에서 잠 못 자고 서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가늠하기도 했다. 모든 게 전선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사실 그 전선 속을 흐르는 전기는 원자력이라는 위험한 통로를 통해 공급되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또 24시간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우리가 엄청나게 소비하는 각종 에너지의 문제도 생각하게 되었다.
수출 계약을 따낸 공장의 노동자들은 연장 근무 수당이나 보너스에 고무되기도 하겠지만 단순반복적인 업무에 지치기도 할 것이다. 병원 응급실은 야간 응급환자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두지만 많은 응급환자들이 야간 과속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음주 상태에서의 폭력 시비에 얽혀 몸을 다친 채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피자, 치킨, 족발로 대변되는 한국의 야식문화는 한국의 아이들을 성인병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창조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음란성 스팸메일에 늘상 노출되며 상대방을 함부로 조롱하는 댓글놀이에 빠져들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24시간 사회가 있어 편리하고 풍요로워졌다고 단순히 판단하기 전에 왜 우리가 24시간 사회에 살게 되었나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근면성실의 이데올로기 속에 밤을 이용해 경쟁하고 수익을 늘리려는 조직과 사람들, 이러한 현대산업문명의 생리를 잘 알아채고 그 주변에서 밤의 문화를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조직과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24시간 사회를 '당연'의 세계로 여기고 생각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낮 시간이 모자라 밤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한다면 아이들에게 24시간은 어른들이 기꺼이 불 밝혀 준 경쟁의 터전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한밤중에조차 자기만의 일기쓰기나 사색에 빠져들기가 겁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내면에 투자하는 것은 언제나 대학 간 뒤, 취직 잘 해서 자리잡고 난 뒤의 일로 영원히 미뤄지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24시간은 두서너 개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겠지만 그 두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밤새 뛰어야할 사명이 반드시 그들의 삶의 기쁨이 되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부지런 떨 수밖에 없는 사정을 천박한 근면성실 신화의 미끼로 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우리는 앞서 읽기자료를 통해 시계 시간의 발명가, 판매자들이 교과서를 통해 근면성실의 신화를 퍼뜨렸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참으로 교활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일하는 근면성실의 삶 속에 정작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빠졌다면 그 근면성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 될까? 그들은 이러한 질문과 대답의 가치를 쓰레기통에 쳐 넣고 오로지 기계적으로 빨리빨리 움직이는, 그래서 대단히 부지런해 보이기만 할 뿐인 숱한 바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 바보들의 대열에서 과감히 이탈하기를 바란다. 그 시작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스스로 그리고 함께 답을 찾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내 시간의 주인인가?'


더 읽고 생각해 보기

1. 잠빚의 대가

수면 부족이 야기하는 사고의 직접 경비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다미앙 레제 박사가 미국국립수면장애연구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한 해 수면 부족으로 인한 개인 자동차 사고경비가 379억 달러에 달했다. 또한 대중 교통 수단으로 인한 사고 경비는 7억 2천 만 달러였다. 수면 부족과 관련된 노동 분야 사고 경비는 133억 4천 만 달러였다. 추락 사고를 포함하여 공공 장소의 사고 경비는 13억 4천 만 달러, 집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 경비는 27억 2천 만 달러였다. 이같은 피해 액수도 막대한 것이지만 인명 피해는 더 끔찍한 지경이었다. 1988년 한 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사고 때문에 총 24,318명이 사망했다. 수면 부족으로 정신력이 약화되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진 것이 배후 원인으로 지목된 사고로 인해서는 2,474,430명이 일시적, 장기적 장애를 일으키는 손상을 입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근무중 상해는 같은 해 미국에서 2,925만 일의 근무일을 날려버렸다. 근무 외 사고로도 2,340만 일을 잃었고 둘을 합쳐서 5,265만 일의 근무일을 잃은 결과를 낳았다. 이 모든 것은 같은 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사고가 만들어낸 시간 손실에 해당한다. 철도, 선박, 항공과 같은 상업적 운송 수단의 사고에서 경비는 개인적 운송 수단의 사고보다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조종사가 잠이 들거나 잠 부족으로 조종을 잘못해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조종사의 생명뿐 아니라 모든 승객과 다른 승무원의 생명까지 앗아간다. 여기에 비행기 기체의 가격과 보험비용, 사고조사비용, 추락으로 인한 지상 구조물의 피해, 각종 법정 소송비용 등을 덧붙이면 이러한 사고에 소요되는 비용은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고 만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석유 유출 사고인 '엑슨 발데즈 호'의 경우를 돌이켜 보자. 당시 대다수 언론은 선장이 술 취해 있었던 점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긴 근무 시간으로 인한 잠빚이 아니었던가 싶다. 실제 심문 결과에 따르면 엑슨사는 경영난 때문에 선박 근무 인력을 감축해 왔다. 전보다 적은 인력으로 기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근무자 일인당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 결과였다. 당시 이 선박의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14시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수면 패턴은 비정상적이 되었고 그들은 계속 피로를 호소해 오고 있던 터였다. 그 결과는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1989년 3월 25일 이른 새벽, 3등 항해사가 배의 핸들을 잡았고 24시간 주기 중 수면 주기인 새벽 1시경에 이 항해사는 걷잡을 수 없는 졸음 때문에 잠이 들고 말았다. 곧이어 배는 알래스카 해안의 암초에 부딪혔고 약 24만 배럴의 석유가 흘러나와 아름답고 원시적인 피오르드 해안을 집어삼켰다. 우리는 이 사고가 초래한 손실의 진정한 규모를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다. 엑슨사는 벌금과 사고 수습 경비로 수억 달러를 지불했다. 수많은 노동자, 자원봉사자들이 여러 달 동안 오염 제거 작업을 했다. 생태계 파괴는 막대했고 그 회복은 길고 더딘 상태이다. 실제 경비를 정확하게 산출하기 어렵다해도 이 사고는 잠빚에 시달린 3등 항해사 개인이 끼친 피해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펜실베니아의 '스리마일 섬 사건' 역시 그러하다. 1979년 3월 28일 이 지역 핵 발전소의 2호 원자로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 역시 24시간 주기 중 수면 주기에 해당하는새벽 4시경에 발생했다. 당시 근무조는 2,3일 전에야 밤 근무로 배치된 상태여서 그들의 인체 리듬은 근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 결과 통제관은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사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큰일이 발생했음을 알아채고 나서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냉각수가 부족해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근무조는 엉망의 조치를 취해 결국 원자로가 녹아내려 대규모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원자력 사고로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으로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건'이 있다. 순환되는 근무 일정, 몇몇 기술자들은 특별히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는 점, 근무조의 인체 리듬이 수면 주기에 달했을 무렵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 정부에서 정한 시간 내에 안전테스트를 끝내야 한다는 행정상의 압력이 있었던 점 등 이 사건의 주요인도 근로자들의 잠빚이었다. 그 결과 직원들은 안전과 직결되는 자동안전장치를 전부 차단해 버렸다.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자 졸린 직원들은 자동안전장치를 다시 가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원자로의 비상 냉각 시스템을 오히려 꺼 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했다. 마침내 원자로는 폭발했고 방사능 물질은 2,000 평방 마일이 넘는 주변 지역에까지 흘러나갔다. 이 사고로 5세 이하의 어린이 250만 명을 포함한 1,700만 명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방사능에 오염되거나 불타 숨졌다. 사고 후 5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출생률이 크게 떨어지고 사망률이 급증하였다. 평균 수명은 74.5세에서 63.3세로 줄어들었다. 갑상선 암이 700퍼센트 증가했고 향후 50년 동안 암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측하였다. 세슘137처럼 오랫동안 방사능을 유출하는 물질로 인해서 토양이 오염될 것이고 그것은 다시 식품으로 들어가 인간이 섭취하게 되는 탓에 발암율이 높아지는 원리이다. 이러한 경비를 어떻게 다 계산할 수 있을까? 이러한 보건상의 영향을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면 그 액수는 아찔한 정도에 이를 것이 확실하다. 이 모든 것은 통제관들이 충분히 잠을 자서 신속, 정확한 방식으로 사태에 대응했더라면 모두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상호 기금 관리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잠이란 돈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내내 깨어있는 것뿐입니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 있어야 기화가 왔을 때 시간 맞춰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있죠.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그의 발언을 이렇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졸음은 돈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유일한 길은 충분히 쉬어서 기회가 왔을 때에 말짱하게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시간 맞춰 논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있죠.

-『잠도둑들』 중에서 (스탠리 코렌 / 황금가지)

☞ 우리 주변을 둘러 보자. 졸음 운전자들이 흔하다. 수술하면서 조는 의사들도 있다. 잠 부족에 시달리는 야간 근무조들도 허다하다. 잠들어버린 비행기 조종사, 기차나 지하철 운전자들을 생각해 보자. 특히 한국에는 심야 학원 수업이나 밤샘 시험 공부로 정작 학교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넘친다. 피곤에 절어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지금까지도 잠빚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왔지만 앞으로, 당장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천만한 사고의 가능성에 완전 노출되어 있다. 나는 얼마만큼의 잠빚을 지고 사는 걸까? 그 잠빚 때문에 내가 노출된 위험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2. 일 많이 하고 잠 적게
우리나라 성인들은 미국과 독일인에 비해 잠은 덜 자면서 일은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 한국여성개발원이 공동 주최한 '2004 생활시간조사' 분석 세미나에서 김외숙 방송통신대 교수가 발표한 '국민 생활시간 활용의 국제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들이 잠자는 시간은 하루 7시간44분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8시간34분)과 독일(8시간15분)에 비해 최대 50분이나 짧은 것이다.
반면 일하는 시간은 우리나라 성인들이 4시간57분으로 미국(3시간39분)과 독일(2시간53분)에 비해 최대 2시간이 많았다.
성별로 일하는 시간은 우리나라 남녀가 각각 6시간21분과 3시간37분으로 미국 남녀(4시간22분?2시간59분), 독일 남녀(3시간45분?2시간4분)보다 월등히 길었다.
특히 우리나라 40대 초반은 일에 파묻혀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후 고려대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인구특성별, 행동분류별 국민의 생활시간 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이 40 44세는 315.4분으로 19 24세(187분), 25 29세(249.2분), 30 34세(272.2분), 35 39세(294.9분)에 비해 월등히 길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남성들은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46분으로 2시간22분인 미국 남성이나 2시간43분인 독일 남성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한국 여성은 4시간9분을 집안일에 써 각각 4시간2분, 3시간38분을 집안일에 쓰는 미국과 독일 여성보다 가사노동 시간이 길었다. 특히 미취학 자녀가 있는 한국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가장 긴 8시간25분으로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없는 취업주부(3시간26분)의 두 배를 넘었다. 이와 관련, 김종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200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업주부가 가사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는 1인당 월 111만원, 연 1337만원"이라고 평가했다.  
- 『파이낸셜뉴스』(05/12/27)

☞ 이처럼 한국인의 잠빚이 세계적으로도 많음을 입증하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크고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 개발도상국 국민의 삶의 템포가 후진국에 비해 훨씬 빠르다고 한다. 항상 서두르고 시간을 돈처럼 아껴 쓰며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국민들이 국가의 생산성 높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의 템포에는 기후, 문화적 특성 같은 환경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처럼 더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템포가 느리며 한결 여유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보다 집단 내에서의 관계를 중시하는 특성도 더불어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런 지역에서도 도시와 시골의 격차는 존재한다. 인류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알제리의 집단주의 사회인 '카빌' 부족을 연구했다. 이 부족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서두르는 것을 경멸하며 그러한 태도를 '악마의 욕망과 결합된 예의부족의 결핍'으로 여긴다. 그들은 시계를 '악마의 맷돌'이라고 부른다. 우리 한국 사회, 한국인과는 너무 대조적인 삶의 태도라 할 만하다.
지금은 학생이기에 공부 중심으로 내 삶이 운영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대엔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게 되리라. 출근길의 러시 아워, 과다한 업무량, 잦은 야근으로 늦어지는 퇴근이 아이들 일상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위의 기사처럼 일에 묻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가족관계에도 소홀한 장년으로 늙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청년 시절을 어떤 일을 하며 어떤 템포로 살 것인가? 사실은 이것이, 공부보다 더 중요한 당면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