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김혜진 | 누리하제 전임강사, 해오름 평생교육원 전임강사

논제
아래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를 찾아 각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하시오. (1,800자 안팎. 150분)

(가)
『주역』의 화택규(火澤睽) 괘는 태하리상(兌下離上)의 괘다. 상리괘(上離卦 ☲)는 불(火)이고 하태괘(下兌卦 ☱)는 연못(澤)이다. […] 규(睽)는 노려볼 규. 등지다, 배반하다의 뜻. 곧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서 반목하다, 노려본다는 의미다. […]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흘러가니 이것은 서로의 의사가 합쳐지지 않고 반목해서 서로 배반하는 상태다. […] 규괘를 한 개인으로 보고 해석하면 곧 그 마음이 순일(純一)하지 못해서 사욕과 도리(道理)가 갈등하므로 생각이 통일되지 못해 바른 길을 못 찾는 상태다. 이래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루기 어렵다. 집단이나 한 국가로 보고 해석해도 내용은 같다. […] 군자는 이 상(象)을 법도로 삼아, 귀결되는 바는 설사 같다 할지라도 그 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선처해야 한다. […] 사람이 행복을 구하는 뜻은 비록 같다 해도 그 행위는 모두 다르다. ‘같으면서 다름’(同而異)은 이런 의미다. […] 이 우주와 인생에는 시간과 공간, 환경의 변화 때문에 동일한 것이라곤 존재할 수 없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성(人性)도 비록 근원은 동일할지라도 말단에 이르러서는 서로 어긋남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규괘는 이런 도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 어긋남을 인식하면서 화협(和協)의 도리를 찾아야 한다. […] 규의 상태는 고금왕래(古今往來)에, 인류사회에 면면히 계속되고 있다. 「단전」에는 […] ‘다르면서 같음’(異而同)의 도리를 말했으며 「대상전」에는 ‘같으면서 다름’(同而異)을 말했으니, 이 도리를 터득하면 인간만사에 통용되어 큰 허물을 범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긋남(睽)의 때의 쓰임이 위대하다”라 했다. […]
「계사전」에서는 “나무를 굽혀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서 활과 화살을 이용함으로써 천하를 위협하니, 아마 이것은 규괘에서 취함이니라”고 언급하였다.
― 남동원, 『주역 해의』

(나)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축복의 단지를 곁에 두시고, 말씀하시길,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겠노라,
이 세상 여기저기 흩어진 부를
이 한 줌에 다 모으리라.”

그래서 먼저 힘이 길을 뚫자, 이어서 아름다움,
다음엔 지혜, 명예, 쾌락이 흘러 들어갔다.
거의 동이 날 무렵, 하나님은 잠시 멈추셨다.
모든 보물 중에 혼자만 남아,
안식이 맨 바닥에 있음을 보시고.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만약 내가
이 보석조차 인간에게 부여한다면,
나보다도 내 선물들을 더 숭배할 것이니,
자연을 지은 하나님 대신, 자연에서 안식할 것이요,
결국 우리 둘 다 패배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다른 축복은 누리나,
늘 목마른 불안에 젖게 하리라.
인간은 풍요롭되 피로에 시달리게 하라. 그리하여 적어도,
선(善)이 그를 인도치 못하면, 피로함이 그를
내 품에 던질 수 있도록.”
                                 ― 조지 허버트, 「도르래」

(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불안의 현상 가운데 몇 가지만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의 관심을 그런 현상들에 국한시켜야 한다. 예를 들자면 그런 현상들은 아이가 혼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거나 또는 어머니처럼 아이가 잘 알고 있는 사람 대신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난다. 이 세 가지 예들은 단 한 가지의 조건, 즉 아이가 좋아하고 갈망하는 누군가가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경우로 축약할 수 있다. […]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상상실의 문제 외에도 더 고찰할 것이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지 어머니가 자기의 모든 욕구를 지체 없이 만족시켜 준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위험으로 느끼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상황은 욕구로 인해 긴장이 증가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아무 해결도 할 수 없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
자극이 심리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채 불쾌감을 유발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아이들에게는 필경 태어날 때의 경험과 유사할 것이고, 따라서 위험상황의 되풀이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해소되어야 할 자극이 축적되는 것, 이것이 위험의 진정한 본질이다. 이로부터 불안의 반응이 나타난다. 불안은, 출생 시 이 반응이 체내의 자극을 해소하기 위해 폐를 활성화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또한 축적된 자극을 호흡기관과 발성기관으로 돌려 엄마를 부르게 되는 과정을 유도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라)
위대한 발견은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고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생겨난다. 플람스테이드와 핼리의 실용적인 천문학 해석은 뉴턴으로 하여금 혜성의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해내게 했고, 그 후 하늘에 있는 모든 물체들 상호간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법칙을 주장하게 하였다. 혹성과 혜성들의 궤도가 공히 타원형인 이유는 이 법칙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뉴턴의 이 ‘중력론’은 주어진 데이터에 대한 전적으로 순수과학적인 논증은 아니었다. 사뭇 신비롭게 들리는 이 ‘보이지 않는 인력’ 개념은 유럽 전역이 유달리 불안정했던 때인 17세기 후반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주 나타났던 혜성에 대해 우주적 신비 등을 내세워 설명하려던 미신장이들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초판에서 뉴턴은 우주의 조화와 균형이 곧 깨어질 수도 있다고 암시한 바 있다. 그 예로 최근 하늘에 나타난 일련의 놀라운 현상들, 즉 혜성의 잦은 출현을 들었다. 그리고 핼리는 1697년에 영국 왕립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에 혜성과 같은 크기의 물체가 충돌할 때”의 효과를 “다시 태초의 카오스 상태로 지구가 환원될 수도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특히 1680~81년 혜성은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뉴턴도 여든 살이 넘었을 때 조카 존 컨듀잇에게 1680년에 태양을 스치듯 비껴간 혜성에 의해 지구가 거의 멸망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 혜성이 중력에 의해 태양으로 끌려 들어갔더라면 그 결과 지구는 엄청난 화염으로 멸망했으리라는 것이다. 핼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
핼리와 뉴턴은 둘 다 1680년에 왔던 혜성이 다시 나타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결국 “그 혜성의 여파”로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핼리의 계산에 의하면 그 혜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은 575년이었다). 컨듀잇은 뉴턴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언제 이 혜성이 태양으로 떨어질 지 알 수는 없네. 어쩌면 그 혜성이 대여섯 바퀴는 더 돌고 난 후일 수도 있지. 그게 언제이건, 혜성이 떨어진다면 태양의 열은 치솟아 지구는 다 타버리고, 생명체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네.”
― 리자 자딘, 『기발한 탐구: 과학혁명의 구축과정』

1. 출제 의도

인간은 언제나 불안하다. 바깥의 위협으로부터 오는 공포와는 다르게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불안감을 늘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불안’은 늘 화두였다. 굳이 하이데거나 사르트르를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연세대학교에서는 2006년 논제를 ‘불안’으로 선택했다. 김도형 교수는 ‘논술고사 출제 보도자료’를 통해서 ‘불안의 생산성, 항존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의 역동성으로 작용하는가를 묻고자 했다고 말한다. 즉 불안은 우리 사회에서 이상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며, 항상 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들어와서는 “인간적인 존재 자체로부터 사회구조적으로 강요된 개별화와 고립감, 심지어 예측하기 어려운 글로벌 금융자본의 투기와 시장의 교란,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나 환경 및 생태위험 등 불안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안은 사회를 해체하는 병리현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문명을 진보시키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한 불안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이것이 어떤 역사발전의 에너지로 작용하는지를 밝히게 하기 위해서 논제를 출제했다고 말한다. 즉 학생들이 불안은 문제가 있는 감정이며 빨리 없어져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불안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다.

2. 제시문 분석

(가) 주역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이 상화하택(上火下澤)이라는 말은 2005년 한자말로 선정된 단어이기도 하다. 이 말은 서로의 의사가 합쳐지지 않고 반목해서 서로 배반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상태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주역에서는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어긋남이라는 것은 필연이므로 이 어긋남을 인정하면서 ‘화협’의 도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론에서 “어긋남의 때의 쓰임이 위대하다”는 성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는 서로 반목하여 배반하는 불안한 상태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나)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식을 주지 않은 이유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택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간은 풍요롭되 피로하며, 목마른 불안에 젖게 하여 하나님을 찾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불안할 때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나아갈 바를 고민한다. 안주하는 삶에서는 그러한 깊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불안은 인간에게 깊이와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에서는 욕구로 인해 긴장이 증가하지만 스스로 아무 해결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불안’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 아이는 이런 불안함 때문에 폐를 활성화시키고, 어린아이는 ‘엄마’를 부른다. 즉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불안이 없다면 어떻게 인간이 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라)에서는 서로 부딪히고 경계가 허물어질 때 위대한 발견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신념체계가 깨지거나 우리의 안정된 삶이 흔들린다고 믿게 될 때 사람들은 미신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새로운 조화와 균형을 찾으려고 하고, 뭔가를 새롭게 증명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불안이 주는 생산성을 말한다.

3. 논제 해제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는 불안이다. 제시문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바는 불안이라는 것은 ‘항존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원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인간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다. 그 불안을 통해서 인간은 선으로 인도되기도 하고, 새로운 발견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몸이나 정신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즉 제시문들은 불안의 ‘항존성’과 ‘생산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논제에서 요구하는 바는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불안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찾아보라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는 결국 균열의 시대이며, 그것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하면서 발전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시대에서는 불안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한 전진만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목표가 허구일지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감을 다시 끄집어낸 일련의 사건들 -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 사북사태, 광주민주화운동 등 - 로 사람들을 불안을 겉으로 드러내게 되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이 정치를 변화시키고 사회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다.
이미 출제자가 이야기를 했듯이 글로벌 금융자본의 투기와 시장의 교란, 노동으로부터의 소회나 환경 및 생태위험 등 불안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반대하기도 하고,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라’고 요구하기도 하며, FTA가 과연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하는지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불안은 파시즘처럼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만들고 타인을 배척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은 파시즘의 전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만 놓고 코뿔소처럼 달려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불안은 우리 곁에 언제나 있다면, 그 불안을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면,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타인을 배타하는 집단적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을 성찰하고, 현실의 모순을 끄집어내고, 그 모순을 극복하는 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 모순을 끄집어내고 극복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면의 불안함을 ‘대자적 존재’가 되는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공부를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이것이 과연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인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하는가?’ 등 다양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불안을 금방 떨쳐버린다. 쓸데 없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다시 일상으로 매몰된다. 그런데 그런 불안을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은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경쟁으로 내모는가? 무엇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선택이나 결단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될 때 사회적인 불안이 마치 파시즘처럼 타인에 대한 배타와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고 진정하게 사회를 생동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 참고자료: 2006 연세대 발표 해설

1. 우리 대학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풍부한 독서와 문화적 체험을 쌓고 이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논술고사를 실시하여 왔다. 우리 대학의 논술고사는 “한국 및 동서고금의 고전을 포함한 다양한 소재에서 출제”한다는 서울지역 12개 대학의 합의(1997년 12월)에 따라 출제되고 있다.
2. 논술고사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은 평소에 고전을 많이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는 능력과 우리 주변의 사물과 사건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비판적, 창의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3. 제시문은 동서양의 고전과 현대사회에 관한 여러 책에서 고루 선정하였다. 최근 문자의 형태가 그림, 광고, 표 등 다양한 시각적 기호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대학은 이를 제시문으로 활용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학생들이 단순한 독서만이 아니라 미술 등의 작품을 통해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명화를 제시문에 넣기도 하였다. 비록 제시된 책을 직접 읽지 않거나 그림을 보지 않은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꾸준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다양한 지적 경험을 쌓은 학생들이면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에서 논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올해는 지난 몇 년간의 연세대학교 논술고사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언제나 느끼는 익숙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였다. 평소에도 학생들이 세상과 사물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논리성과 창의성을 키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생각과 열린 마음, 그리고 성찰적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장래는 물론 본 연세대학교의 학풍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 문제 설명

아래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를 찾아 각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하시오.
제시문(가), <주역>(남동원, <주역 해의>)
제시문(나), 조지 허버트, <도르래>
제시문(다), 프로이트,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제시문(라), 리자 자딘, <기발한 탐구: 과학혁명의 구축과정>

제시문을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는 ‘불안’이며, 본 문제는 제시문 속에 보이는 ‘불안의 생산성, 항존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의 역동성으로 작동하는가를 묻고자 한 것이다.
불안은 다양한 사회제도 속에서 그 조건들과 함께 발현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과거의 개인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대의 흐름은 불안으로 점철되어 왔지만, 그 불안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혹은 주관적인 의식세계 속에서, 때로는 종교 속에서, 심지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과학 속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특히 현대사회는 ‘불안의 시대’라고 지칭될 만큼 개인, 사회적으로 다양한 불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적인 ‘존재’ 자체로부터 사회구조적으로 강요된 개별화와 고립감, 심지어 예측하기 어려운 글로벌 금융자본의 투기와 시장의 교란,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나 환경 및 생태위험 등 불안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시대의 불안을 성찰하고, 또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오고 있다. 인간에게 불안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회를 해체하는 병리현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문명을 진보시키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불안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구와 결핍, 경쟁과 강박, 내재적인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요소이기도 하였지만, 개인이나 역사의 변동(진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동적 에너지로 작용해 왔던 것이다. 불안은 인간에게 환경을 변형시키고, 자원을 동원하게 하는 하나의 증후이기도 하고, 새로운 욕구로 도전하게 하는 촉매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안은 말끔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항존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유발한다.
본 문제는 바로 이러한 불안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수험생들에게 불안이라는 증후를 통해 사회변동의 흐름을 성찰하게하고, 더 나아가 불안이 개인이나 역사발전에 어떠한 에네르기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게 하였다. 기존의 불안에 대한 인식, 즉, 긴장과 갈등, 소외 등 병리현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시켜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적 현상들에 내재하는 불안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응전’을 다시 반추하게 될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 출제위원장 김도형 교수(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