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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어린이 운동가를 찾아서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

|정숙영 논술교사|

*대상: 초등 4학년
*수업시간 :2시간(1차시)
함께 읽은 책 :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제인 베델 글 / 김순금 그림 / 꼬마이실)
관련도서:
『난 두렵지 않아요』 -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프란체스코 다다모 글 / 노희성 그림 / 랜덤하우스중앙)
『루이 브라이』(마가렛 데이비슨 글 / J. 컴페어 그림 / 다산기획)
『자이 자유를 찾은 아이』(폴 티에스 글 / 크리스토프 메를랭 그림 / 사계절)
학습목표:
1. 스물 한 명의 어린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처했던 환경을 새겨보고 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생각해 본다.
2. 나의 환경을 돌아보고, 우리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본다.

동이 훤하게 밝아오는 이른 새벽 부스스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일이다. 시동을 걸며 혼자 생각해 본다.
자동차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먼저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기어를 넣지 않으면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 나는 어느 기어를 넣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그래 그리로 가는 거야. 가야 할 곳은 분명해졌는데, 어리석게도 기어는 넣지 않은 채 불평만 하고 있다. 너무 오래 굶어 뼈와 가죽만 남아 엄마 품안에서 축 늘어져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며, 부모에게 맞아 온 몸이 퍼렇게 멍든 채 병원에 실려 온 아이들의 뉴스를 들으며, 난 멍하니 운전대만 잡고 있다. 그리곤 말한다.
“나쁜 놈들!”
말잔치로 끝나는 나의 실천력 부족에 또 한 번 몸서리를 치며 오늘도 나는 나의 삶만을 챙기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고 있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인가? 나의 삶 자리만 잘 만들어 나가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는 걸까?
새벽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세상은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걸까?
수없이 많이 대하는 인물전 속의 인물들은 정말 특별한 삶을 살았고,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제와 변함없이 또 그렇게 오늘을 살고 있는 나를 보며 풀이 죽는다. 하지만 또 한 번 다짐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용기를 냈는데 ….
그래, 나도 용기를 내서 기어를 넣고 움직여 보는 거야. 그래 시작하는 거야. 얘들아, 너희들도 초대할게.  

마음 열기

* 어린이날 잘 보냈니? 너희 같은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 공부와 노는 거요. 배우는 것도요. 효도도 해 드릴 수 있어요. 안마나 동생 돌봐주기 같은 것 말이에요. 게임과 운동도 잘 하죠. 꽤 많은데요.
* 그럼 어른들은 할 수 있는데 어린이들이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 운전도 못하고 돈도 못 벌어요.
- 왜 못해? 어린이들도 장사를 하고 아니면 부모님 일을 거들어 용돈을 벌기도 하잖아.
- 그런가?
- 커피도 마시면 안 되고, 결혼도 못 해요. 놀이동산에 가면 못 타는 것도 많아요.
- 투표권도 없고, 자유로울 권리도 없어요. 어른들 맘대로 하잖아요. 엄마가 하라는 것만 하래요.
- 어, 우리 엄마는 안 그러는데….      
* 정말 어린이로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못하는 것도 참 많구나.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에서 보면 ‘용기’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너희들은 용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 힘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걱정하지 않고 일을 해 내는 것 말이에요.(윤주)
- 자신감이에요.(지연)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내는 것이지요.(승원)
- 나쁜 것을 바로 고치는 힘 아닐까요.(현섭)
- 거리가 멀죠. 용기라는 말과 나쁘다는 말은 상관이 없어요.(지연)
- 아니, 힘든 일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라고 고칠게요.(현섭)
- 나쁜 것을 바로 고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잖아요.(승원)

* 사전에 보니 ‘용기란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라고 하는구나. 그럼 너희들은 언제 이런 용기가 필요했었니?
- 시골에 가서 축구하러 갔다가 큰 형들한테 주먹으로 맞을 뻔 했어요. 사촌 형들과 함께 덤벼 싸움이 크게 벌어졌는데, 우리 형이 그 형들을 세게 때리니까 도망갔어요. 통쾌했어요. 힘 센 형이 있어 든든했어요.(현섭)
- 그랬구나. 폭력을 당할 뻔해서 정말 놀랬겠다. 그런데 힘 센 형이 없을 때는 어쩌지????
- 쉬는 시간에 교과서를 폈는데 숙제를 안 해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대로 말하니까 용서해 주셨어요.(윤주)
-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 엄마에게 매 맞을 때도요.(현섭)
- 매 맞을 때는 어떻게 하니?
- 숨어 버리거나, 도망가요. 히히히
- 그냥 맞으면 되지 왜 도망가니? 비겁하게….
- 미안하다고 말하고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요.  
- 우리들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기는구나.
* 선생님은 너희들이 이렇게 용기 있는 아이들인 줄 몰랐다. 정말 대단해요.

어린이날 다음 날에 수업을 진행해서 어린이로서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해 낼 수 있는 존재인지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엄마가 하라는 것만 한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다른 친구의 말에 위로를 받기는 했지만요. ‘용기’라는 낱말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면서 실생활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용기 있게 행동했는지,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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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 나오는 21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이 다른 곳에서 다른 처지에 놓여 살던 친구들이지.
그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이 입으로 말한 스물한 명 세상을 바꾼 용기있는 아이들

이크발 마시흐 -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예 반대 투사
가난했어요. 가족의 빚 때문에 공장 일을 했는데요. 새벽 4시에 일어나 16시간씩 일을 해도 이자가 계속 늘어나요. 48도나 되는 더위 속에서 일해요. 실내 환경이 너무 나빠 병이 들고 일은 죽도록 시키면서 돈은 조금만 줘요.
● 관련도서
『난 두렵지 않아요』 -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프란체스코 다다모 글 / 노희성 그림 / 랜덤하우스중앙)

알렉산드라 스콧 - 레모네이드를 팔아 소아암 치료 기금을 모은 소녀
스콧은 우리랑 동갑인데 소아암과 싸워야 했어요. 나도 스콧처럼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어린이날에 아빠 가게에서 쓸 풍선을 불어 용돈을 벌었어요.

클로데트 콜빈 - 흑인 인권 운동의 투사
인종차별과 싸웠어요. 버스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운 사소한 일로 감옥살이를 했어요.

루이 브라이 -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발명가
시각 장애인 학교를 다녔는데 음식도 형편없고 공기도 너무 습해 건강이 나빠졌는데도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면서 점자를 발명했어요.
● 관련도서
『루이 브라이』(마가렛 데이비슨 글 / J. 컴페어 그림 / 다산기획)

테리 팍스 - 의족으로 뛴 ‘희망의 마라톤’의 영웅
의족이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딛고 마라톤을 성공했어요.

안 촌 폰드 - 캄보디아의 평화 투사
전쟁이 일어났는데 아이들도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어요.

리바이 코핀 - 흑인 노예를 도운 ‘지하 철도의 대통령’
백인이었는데도 목숨을 걸고 흑인들을 자기 집에 숨겨 주었어요. 자신이 할 일을 끝까지 해냈어요.

메리 베스 팅커 - 학생의 학교 내 표현의 권리를 주장한 소녀
자기의 생각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게 되자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자신의 권리를 찾아요.

화무란 -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간 고대 중국의 소녀
여자인데도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많은 전투에서 이겼어요.

아셀 아슬레 - 아랍 인과 유대 인의 화해를 위해 헌신한 평화의 순교자
“우리 자신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정말 멋진 말을 했어요.

라이언 화이트 -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의 권리 수호자
에이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판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에이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어요.

딜리 초우더리 - 노예 제도 반대 운동가

톰 새비지 - 미국 식민지 개척 시대의 통역사 및 평화 중재자
인디언과 영국인들 사이를 오가며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메이얼리 산체스 - ‘콜롬비아 어린이 평화 운동’의 창시자
내전이 일어난 자신의 나라에서 폭력과 맞서 싸웠어요.

피에르 라비쉬 - 제2차 세계 대전 때 활동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어른들과 함께 아군 군인들을 도망시키는데 참 용감했어요.

만지로 나카하마 - 14세의 나이로 미국에 최초로 갔던 일본인
일본이 외국과 무역할 수 있게 많은 일을 했어요.

트레버 페렐 - 노숙자의 수호천사
노숙자들에게 베개와 이불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다가 호텔을 개조해 노숙자들을 위한 집을 만들기까지 했어요.

레오노라 시로카 - 발칸 반도의 평화 투사
폭력과 싸웠어요.

시빌 루딩턴 - 미국 독립 혁명 때 위기를 알린 소녀
영국이 쳐들어오자 민병대를 모으기 위해 빗길을 쉬지 않고 달렸어요.

코조 지세누 - 아프리카 토고의 인권 운동가
성적인 폭력과 용감하게 싸웠어요.

에바 룬트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덴마크 유대 인의 구원자
정의를 위해 싸웠어요.

스물한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을 모두 정리하기가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할 때마다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해냈어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2.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두려움과 역경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돌아가며 이야기 해 보자.
- 용기를 가지고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겼어요.
- 지혜롭게 행동했어요.
-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했어요.

3. 이 어린 친구들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운 걸까?
- 평화를 위해 싸웠어요.
- 아동학대와 폭력 그리고 전쟁과 싸웠어요.
-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이요.
- 두려움과 싸웠어요.
-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웠어요.
*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힘이 그런 마음에서 생기는 거구나.

4. 역사 속의 어린 영웅들에게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용기’가 있었다는데, 너희들에게는 지금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 공부가 정말 힘들고 싫은데요. 이 친구들을 보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해요. 특히 영어 공부요.(승원)
- 폭력을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현섭)
-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을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해요.(윤주)
- 무식하게 자기 힘만 믿지 말고 지혜롭게 용기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지연)
* 이런 생각들을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세상이 정말 아름다워지겠는 걸.

5. 인권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 자유, 평등 등에 관한 기본적인 권리를 말한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권리지. 아래 기사에 오병헌 형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걸까? 오병헌 형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이 있을 텐데, 이 기사에 자신의 의견을 담은 댓글을 하나씩 써볼까?

고3 재학생, ‘체벌·두발규제 개선 등 인권보장’ 학교앞 1인시위

8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오병헌 학생이 학교 정문 앞에서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오 군은 강제 보충수업과 체벌, 언어폭력, 두발규제 등으로 인해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오 군이 그동안 학교 내 게시판 등을 통해 학생 인권개선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1인 시위에 나섰다”면서 동성고측이 오 군의 1인 시위에 대해 징계를 내리지 말 것을 요청했다.
「노컷뉴스」(2006/05/08)

아이들의 댓글

지연: 고등학교 선생님들 너무하다. 머리 기르든 말든 내 맘인데 이래라 저래라…. 고등학교 다니면 가발 쓰고 다닐 거야. 나 같아도 시위를 했을 것 같다.
현섭: 형아, 정말 외롭겠다. 혼자 일인 시위를 하니까 말이야. 형아, 힘내. 우리도 같이 가서 시위하자. 그럼 5인 시위할 수 있겠다. 힘내, 파이팅!
승원: 저도 같이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도 설득해서 같이 하면 효과가 더 클 거예요.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머리도 안 잘랐는데 지금은 반대네요. 어쨌든 파이팅!
윤주: 혼자서 일인 시위하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외로울 것 같은데…. 인권, 자유, 평등 등의 권리을 위해 일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고맙네요. 고등학생들은 인권 문제 때문에 정말 힘들 것 같네요.

마무리

이야기 지도 만들기

세계지도에서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친구들의 나라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오려서 붙이고 우리들이 사는 나라 위에 너희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어떤 ‘나’가 우리나라를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 적어보자.
(책에는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 21명이 사는 나라가 각장마다 지도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배경지식과 사전도 담겨있습니다. 세계지도를 확대복사 한 뒤 아래의 자료로 오려 붙이기를 했습니다.)


**첨부파일 참조(세계 속 어린이 운동가)


1 라이언 화이트(미국) - 1980년대 초 에이즈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13살의 나이에 혈액제제를 통해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이후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려 했으나 감염에 대한 사회적인 공포로 배타당했습니다. 이후 학교, 학부모 단체와 싸워 ‘에이즈 환자도 정상적인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법적으로 획득했고, 이후 19살에 죽을 때까지 에이즈 교육 캠페인을 했으며 대통령 자문 위원회 앞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2 클로데트 콜빈(미국) -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몽고메리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는데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고 같은 판결을 받아, 마침내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사건으로까지 이어져 이후 미국 전체를 흔든 흑인 혁명의 발단이 되었고, 이 사건으로 흑인 해방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3 메리 베스 팅커(미국) - 13살에 베트남 참전 반대 의견을 학교 내에서 표명하여 당시 참전의 열기가 뜨거웠던 미국 사회에서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교 내에서의 의사 표현을 금지하는 학교 당국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싸워 마침내 대법원까지 올라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4 알렉산드라 스콧(미국) - 1살에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아세포종양 걸려 암투병 중에 암치료법을 연구하는 의사들을 돕기 위해 4살 때 ‘레모네이드 판매대’를 만들어 집 앞에서 레모네이드를 팔았습니다. 이 소식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기부금이 쏟아져 75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았고 캐나다 프랑스에도 100개 이상의 레모네이드 판매대가 만들어졌습니다. 2004년 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행사를 통해 1백만 달러의 암 연구 기금을 모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 시빌 루딩턴(미국) - 미국 독립 혁명 당시, 영국군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16살 소녀의 몸으로 빗속에서 말을 타고 나가 민병대원들을 깨워 소집해 대처하게 했습니다. 이 공으로 조지 워싱턴의 방문을 받았고 새로운 미국 탄생에 커다란 자극이 되었습니다.

6 트레버 페렐(미국) - 어릴 때부터 글을 읽는 데 문제가 있는 실독증을 겪고 있었는데, 11살 때 텔레비전에서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 그 즉시 자신이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 시내의 노숙자에게 베게와 담요를 제공하는 일을 시작, 이후 방송에도 소개되면서 지금 현재까지 노숙자들의 구호와 자립 보조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7 톰 새비지(미국) - 식민지 초창기 당시 13살에 아메리카로 건너가 제임스타운 식민지에서 ‘통역’으로써 포우하탄 추장이 다스리는 원주민과 식민지 정착민 사이의 평화를 도모했습니다.

8 리바이 코핀(미국) - 노예 제도가 극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그 부당함을 깨달았고 15살 때부터 흑인 노예의 탈주를 도왔는데, 남북 전쟁 사이에 도망친 노예 10만 명 중 3만 명 이상이나 그의 도움을 받아 ‘지하 철도(흑인 노예 탈주 조직)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9 메이얼리 산체스(콜롬비아) - 내전으로 폭력 사태가 끊이지 않는 콜롬비아에서 가까운 친구의 피살을 겪은 뒤 12살에 《콜롬비아 어린이 평화 운동을 설립하여 전국의 어린이들과 함께 콜롬비아의 평화를 부르짖었고, 이후 콜롬비아에서 폭력을 근절시키는 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두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었습니다.

10 테리 팍스(캐나다) - 18살에 골수암 판정을 받고 오른쪽 무릎을 절단한 뒤 의족을 하고 캐다나 횡단 마라톤 《희망의 마라톤》에 나섰습니다. 143일 동안 달리기를 했고 암이 폐에 전이되어 중단했습니다. 전국에서 암 치료 기금이 쏟아져 23살에 세상을 떠난 뒤 지금까지 3억 달러 이상의 기금이 모였고, 전 세계적으로 《테리 팍스 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습니다.

11 피에르 라비쉬(프랑스) - 귀머거리 소년으로, 프랑스가 나치스의 점령당했을 때인 13살 때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여 목숨의 위협 속에서 비밀리에 연합군을 도왔습니다.

12 루이 브라이(프랑스) - 3살에 맹인이 된 뒤 12살에 맹아 학교에 들어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개발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15살에 점자를 개발하여 시각 장애인이 읽고, 쓰고, 악보를 그리고, 수학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43살에 죽을 때까지 점자 개발에 노력했습니다.

13 레오노라 시로카(알바니아) -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의 알바니아 출신으로 14살에 폭력과 유혈 사태를 뿌리 뽑기 위한 《포스트페시미스트》 단체에 든 뒤 인종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한자리에 모아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 등 발칸 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4 코조 지세누(아프리카 토고) - 서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토고 출신으로 12살에 동기 여학생이 선생님의 성(性)적 제의 거부로 벌 받은 사실을 알고 수업 거부를 하여 성추행한 선생님이 징계를 받고 교육부 장관이 나서게끔 했습니다. 18살에 ‘양심’이란 뜻의 《라 콩시앙스》 단체를 만들어 토고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힘쓰고 아울러 토고의 어린이 밀매를 막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15 에바 룬트(덴마크) -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덴마크 점령 하에서, 19세의 나이에 저항 단체에 가입하여 덴마크의 유대 인을 숨기고 스웨덴으로 도피시켰습니다. 에바의 단체는 800명가량의 유대 인을 나치스의 손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16 아셀 아슬레(팔레스타인) - 분쟁의 중심지인 팔레스타인에 태어나 일상으로 벌어지는 폭력 유혈 사태에 염증을 느껴 14살에 《평화의 씨앗》이란 단체에 가입,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 간의 평화를 도모하고 《중동 청소년 정상 회의》에서 양국 청소년을 모아 공존 모색하는 헌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17세의 나이에 시위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7 딜리 초우더리(네팔 부근의 타루 족) - 네팔 정부의 침략 이후 자신이 속한 타루 족 대부분이 부채 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13살의 나이에 자신이 처지를 깨닫고 온갖 폭행과 굴욕 속에서 학업을 강행해 나갔습니다. 15살에 동족의 교육과 자립을 위한 일을 하기 시작했으면 《후진 사회 교육》이란 단체를 만들어 네팔의 노예 노동 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행동하는 청년 상》, 《반 노예 상》 등을 받았고 지금도 노예 노동 금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18 이크발 마시흐(파키스탄) - 4살에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카펫 공장에 들어가 하루 열두 시간 이상씩 카펫을 짜다가 중노동과 학대에 못 이겨 경찰서에 신고했으나 오히려 다시 주인에게 넘겨졌습니다. 《노예노동해방전선》 모임에 나가 빚을 빌미로 한 노예 노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인과 싸워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파키스탄을 돌아다니며 어린이 노동 해방에 대해 가르치고 직접 공장에 들어가 착취 고용주들을 고발하여 300여 명의 어린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1994년 《리복국제인권재단》이 주는 《행동하는 청년 상》을 받았고 《국제 노동 기구》에서 어린이 노동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13살의 나이로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그 뒤에는 카펫 산업 관계가의 음모가 있으리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19 화무란(고대 중국) -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중국 소녀로, 아버지 대신 전쟁터에 나가 12년 동안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시와 민요 경극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20 안 촌 폰드(캄보디아) - ‘킬링 필드’로 잘 알려진 공산주의 무장 단체인 크메르루주의 잔혹한 통치하에서 가혹한 노동과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다가 13살에 구사일생 탈출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힘겹게 전쟁의 악몽을 씻고 자신처럼 전쟁의 고통을 겪은 아이들을 돕고 캄보디아 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인권 관련 상을 받았습니다.

21 만지로 나카하마(일본) - 일본이 쇄국 정책을 펴고 있던 때, 바다에서 난파되었다가 미국인에 구조되어 14살의 나이에 일본인 최초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영어와 미국의 문물을 배우고 22살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교육에 힘썼고 미국과의 개항 때 통역으로 활약했으면 이후 정부의 고문과 일본 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이야기 지도 위에 아이들이 찾아 온 신문 기사를 오려 붙여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습니다. 이 이야기 지도를 만들면서 아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며 자신들이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누려야 할 권리는 그냥 우리 손에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핸들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알았고, 이제 기어를 D드라이버로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새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고자료

[지지 성명-동성고는 학생인권 보장 요구에 응하라!]

동성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오병헌 학생이 폭로한 학교의 인권유린 실태를 접하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학생에 대한 비인간적인 체벌, 폭언, 두발규제, 그리고 그에 불응 시 이루어지는 제식훈련 등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상식으로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위들이 바로 이 학교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동성고의 폭력에 분노를 감출 수 없으며, 징계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학교 현실을 바꿔내고자 1인 시위를 시작한 오병헌 학생의 행동에 대해 지지를 표한다.
흔히 한 나라의 인권지수를 확인할 때 살펴봐야 할 곳이 병원, 감옥, 학교라고 한다. 특히 학교라는 교육기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장하는 곳으로서 그 사회 미래의 인권지수를 살펴볼 수 있기에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번 동성고의 인권유린 현실을 확인 했을 때 우리는 이 사회 인권의 절망적인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엿볼 수 있기에 좌절감을 느꼈다.
나아가 진의든 수사이든 경찰까지 인권경찰을 운운할 정도로 인권의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이 때, 유독 변화되고 있는 패러다임을 전혀 따라잡지 않고 인권의 사각지대로 버티고 있는 학교의 현실에 더 큰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인권의 불모지인 학교를 바꾸고자 나선 오병헌 학생의 용기 있는 행동은 자칫 학교당국의 징계를 부를 우려가 있다. 우리는 학교당국에 호소하고 요구한다.
오병헌 학생에게 어떠한 징계도 내려져서는 안 된다. 학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자 한 합법적인 1인시위에 징계를 내린다면 동성고등학교 자신이 헌법과 인권을 부정하는 야만과 폭력의 기관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터져 나오는 인권의 요구에 동성고는 귀 기울여야 하며, 그동안 학교 안에서 이뤄져 왔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인권실태 개선을 약속해야 한다. 부디 학교당국은 학교의 명예를 운운하며 정당한 외침에 탄압을 가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징계가 내려질 경우, 우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징계철회와 동성고등학교 인권개선을 이루어낼 때까지 다른 시민사회단체, 정당, 언론, 그리고 무엇보다 청소년인권을 외치는 학생들과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덧붙여 우리는 오병헌 학생이 지적한 학교의 인권탄압 현실이 단지 동성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쉽게 드러나기는 힘들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과 탄압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인권의 역사를 믿는다. 인권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인권의 개념이 확장되어가고, 세계 곳곳으로 인권의 외침이 퍼져 나갔던 것처럼, 곧 이 땅의 학교, 아니 더 많은 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이 외치는 인권의 목소리가 교문을 넘고 넘어 사회로 터져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 인권의 외침을 위한 저항의 작은 불씨가 된 오병헌 학생의 투쟁에 다시 한 번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2005년 5월 8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 아동·청소년 대책 ‘문제는 돈’

사회복지 학자와 전문가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빈곤층 어린이·청소년을 적게는 100만명에서 많게는 16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게 급식값(점심값) 지원이다. 하지만 이 혜택을 받는 초·중·고생은 52만6천명(2006년)에 불과하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1775억원이다. 국내 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라는 우리나라에서 끼니를 거르는 아이가 여전히 수십만명에 이른다.
미래 세대의 빈곤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때는 1998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 이후였지만, 빈곤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은 2004년 7월 국정과제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마련된 안의 이름은 ‘빈곤 아동·청소년 종합대책’(희망투자전략)이다. 빈곤의 대물림을 막고, 모든 사람이 공평한 출발을 하도록 만들자는 게 취지였다. 이 대책은 △기본생활 보장 △건강한 성장 보장 △균등교육·보육기회 보장 △빈곤 탈출을 위한 희망경로 제시 △위험 노출 아동·청소년 보호 내실화 △빈곤 아동·청소년 전달체계 구축 등 6개 분야, 47개 세부정책을 뼈대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대책에 대해 구체성이나 현실성과는 별개로, 사실상 처음으로 어린이·청소년의 인권과 복지를 전반적으로 아우른 것으로, 뒤늦었지만 뜻깊은 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2004년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의 6살 미만 아동 1만7천명에게 34억원을 지원했던 양육비가 지난해에는 2만1천명, 93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빈곤탈출 프로그램의 핵심인 재원 마련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회성 또는 전시성 행정에 그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경양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 대표는 “복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돈”이라며 “가장 중요한 재원 확보 방법은 고려하지 않은 채 겉보기에 화려한 계획만 세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종합대책에는 되레 어린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전시성 내용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보기로 저소득층 학생들을 억지로 모아놓은 ‘방과후 교실’ 제도는 이들을 교사나 다른 학생들로부터 소외당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상 어린이의 인격과 자존심은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도 “종합대책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체 빈곤 아동의 얼마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도 명확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종합대책 시행 기관이 교육부·보건복지부·청소년위원회 등으로 나눠져 있어 사업이 중복되거나 유기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도 숙제다.

『한겨레』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초등생 전자명찰 논란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전자 명찰을 달아주세요.” “범법자처럼 왜 어린이 가슴에 전자명찰을 붙여야 하나요?”
서울시 교육청이 초등학생에게 전자 명찰 달기사업을 지원하기로 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0일 시교육청은 KT와 ‘초등학교 정보화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 전자명찰을 단 어린이들의 등·하교 경로 등을 교사나 학부모에게 문자메시지로 통보해 주기로 했다. 서울지역 560개 초등학교 가운데 희망하는 학교에 한해 빠르면 다음 학기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학부모 단체들은 전자명찰 사업이 어린이 인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 사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초등학생 가슴에 전자명찰을 달아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감시하는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월 3000원의 이용료를 학부모가 내야 하는 것도 ‘부모의 조바심을 유발해 사기업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장은숙 사무처장은 “학부모 개인이 문자 제공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문제 없지만 교육청이 나서서 사기업 영리활동을 도와주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고 인권침해 요소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와 전교조 등 교육 관련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기로 했다.
반면 교육청은 이 사업이 학교장 재량에 따라 원하는 학교에 한해 실시되며 저렴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옹호하고 있다. 학교당 시설 설치비가 1000만원 이상 소요되며 사용료를 월정액으로 지불해 건당 20원인 일반 문자서비스 비용보다 싸다는 것.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는 업무협약만 한 상태로 시행 여부는 개별 학교에서 논의한 뒤, 관련 시설까지 설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2006/05/05)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아프간 12세 소녀 4살에 결혼 ‘가사노예’ 7년
인권유린 당하는 지구촌 소녀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열두살 소녀 굴소마의 등은 온통 흉터투성이다.
아프간에 아직도 남아있는 조혼(早婚) 풍습으로 네 살에 결혼한 뒤 지난 7년간 갖은 구타와 폭행으로 점철된 시집살이 때문이다. 동심을 빼앗겨버린 굴소마의 기구한 사연이 미 CNN 특파원 출신 종군기자 케빈 사이츠의 블로그를 통해 폭로돼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굴소마의 삶은 세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불행으로 치달았다. 1년 뒤 재혼한 어머니가 새남편이 딸의 양육을 거부하자 이웃집에 굴소마를 시집보낸 것. 신랑은 이웃집의 서른살짜리 장남이었다. 그러나 굴소마의 삶은 ‘새댁’보다는 ‘가사 노예’라 는 단어에 더욱 걸맞았다. 빨래부터 12명의 시동생·시누이를 돌보는 일까지 거의 모든 가사노동이 네살에 불과했던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굴소마는 사이츠와의 인터뷰에서 “시아버지가 손님을 맞을 때가 유일하게 토막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밤에도 담요 한장 없이 집밖의 카펫 조각 위에서 자야 했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굴소마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시아버지의 끊임없는 폭력. 시아버지는 몽둥이로 상습 폭행했고, 12명 자녀들에 게도 “뼈를 부러뜨려라”며 폭행에 동참하게 했다. 보다 못한 이웃이 굴소마에게 음식을 갖다준 사실이 발각된 뒤에는 창고에 2 개월간 가두고는 하루에 한번 빵 한조각을 던져줬을 뿐이었다. 어떤 때에는 바닥에 엎드려 눕힌 뒤 그의 맨 등을 도마로 활용하기 도 했다.
그리던 지난해 어느날 시누이가 손목시계를 잃어버리자 시아버지는 굴소마의 팔을 뒤로 묶은 채 ‘시계를 찾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며 뜨거운 물을 끼얹고 막무가내로 구타했다. 오른쪽 팔과 발은 이미 부러진 상태였다. 굴소마는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도망친 뒤 인력거꾼 도움으로 경찰에 인도된 그가 상처로부터 회복되는데 한 달이 걸렸다.
현재 수도 카불의 고아원에서 지내고 있는 굴소마는 시아버지가 폭행죄로 구속됐지만 여전히 “밤만 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까 봐 두렵다”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케빈 사이츠는 전했다. 그는 자신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앞으로 인권부문을 공부하겠다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다. 케빈 사이츠는 기사에서 “열두살 소녀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또래에 비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에 놀랐다”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굴소마의 강한 용기 에 찬사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에는 현재 전세계 또래 어린이들의 격려를 포함, 7900여건의 댓글이 붙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화일보』(2006/04/06)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

[NIE] ‘혼혈과 함께 살기’ 생각해 볼까요

◆혼혈이란=혼혈은 서로 다른 인종(또는 종족)이 결혼해 혼혈아가 태어나는 현상이다. 혼혈은 이질적인 두 집단이 인접한 경우와 이민, 전쟁으로 점령된 지역의 성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도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혼혈은 거의 모든 시대에서 볼 수 있으며, 세계 여러 지역에 분포한다. 혼혈아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보다 근대 유럽 여러 나라의 활발한 식민 활동은 물론 전쟁에 따른 이민족과의 접촉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혈인은 대개 차별 대우를 받아 사회적 지위도 낮은데, 흑인 혼혈의 경우 차별이 한층 더하다. 미국에서는 흑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취급해 차별 대우가 심하다.
예로부터 혼혈에 대한 편견은 대개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했다. 생물학적으로 혼혈은 순혈보다 양친의 우수한 형질을 물려받아 키가 평균 이상으로 크고 강인한 등 부모보다 뛰어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순혈보다 혼혈이 오히려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혈통주의를 고수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혼혈에 대한 편견이 심해 열등한 존재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혼혈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문화의 충돌’로 나타난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혼혈에 대해 기피하기도 하고, 심하면 법으로 금지하거나 인종 폭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미국에선 백인과 흑인의 제1대 혼혈아를 물라토(mulato)라고 부르며, 인도나 말레이시아 일부에서는 현지인과 백인의 혼혈아를 유레이지언으로 칭한다. 이 밖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혼혈아는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현재 혼혈아 비중이 가장 높지만 차별이 심하지 않은 곳은 중남미다. 이곳에서는 백인(특히 스페인계)과 아메리칸 인디언의 혼혈아를 메스티조(mestizo)라고 한다.

◆국내 혼혈 현황과 차별 실태=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단일 민족을 자랑으로 여기며 순혈주의를 고수했다. 몽고와 왜구 등의 침략을 당하며 일부 다른 민족의 피가 섞였지만, 피부색과 얼굴 생김이 비슷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혼혈의 역사는 동두천 등 미군부대 주변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전쟁(1950~53년) 이후 미군과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국내 혼혈 1세대인 셈이다.
90년대 중반 이후엔 동남아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오면서 이들과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 혼혈 2세인 ‘코시안(Kosian)’이 태어났다. 2000년대부터는 우리나라 농어촌 남성과 동남아 여성의 결혼이 늘면서 코시안이 급증했다. 현재 코시안은 3만여 명에 이르며,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 남성의 국제 결혼율은 35.9%며, 대상은 주로 동남아 여성이었다. 전북 무주의 한 초등학교에선 내년 입학생 8명 중 절반이 혼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만 결혼한다’는 순수 혈통주의는 이제 허물어졌다. 학자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우리나라 여성의 농촌 기피 현상 때문에 앞으로도 혼혈이 크게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다인종․다문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얘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4년 국가인원위 발표에 따르면 국내 혼혈인의 약 40%가 차별에 따른 고통을 겪다 자살 시도까지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순혈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의 배타주의의 결과다. 현재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단일 민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 12쪽엔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기술했다.
혼혈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어린이가 ‘왕따’당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가난과 소외의 대물림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혼혈 어린이들은 30%가 넘는다.
혼혈인들은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차별을 받아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혼혈인은 병역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병역법(시행령 제136조)에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의 경우 제2국민 역에 편입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혼혈인은 어려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해 단체생활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올부터 자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지만 실제로 입대한 혼혈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중앙일보』 이태종 NIE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