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인류에게 책 권하는 사연

인공지능 시대에도 독서가 필요한가?


  인공지능(AI)이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시대다. 아직까지는 기존작품들을 학습해 모방하거나 재조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이를 두고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놀람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독서의 경우는 어떨까. 엄청난 연산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책을 읽고 요점을 정리해준다면, 인간이 굳이 책장을 일일이 넘길 필요가 있을까.
  실제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데 ‘독서’가 활용되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인터넷 소설 60만여 편을 ‘읽고’ 소설 속의 문장들을 통해 사람의 행동패턴을 분석하도록 했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학습을 거쳐 조건에 따라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는데, 그 정확도가 71%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사람이 밖에서 집에 돌아오면, 먼저 전등을 켠다’는 식으로 다음 행동을 예측
했던 것이다.

   이 인공지능이 이룬 학습 성과는 놀라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예측이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다. 수많은 소설의 문장들을 분석해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가장 빈도수가 높은 다음 행동을 답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공지능이 이러한 확률 연산능력만으로 책이 담고 있는 고유의 콘텐츠와 메시지를 오롯이 인간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사다리 위의 인류
   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고, 책은 인류의 기억이기도 하다. 돌, 대나무, 나무, 점토,밀랍,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 인류가 글을 담아온 ‘그릇’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지만, 책이 지닌 지식과 지혜의 공유, 소통
과 이해를 확장시키는 힘은 시공을 뛰어넘어 늘 인류의 발전을 촉진해왔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전자책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이러한 책의 장점에 접근성과 확장성이 더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이자 여러 세대와 문화 간의 다리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문화, 수많은 이야기와 생각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 받고 영감을
얻는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TV,스마트폰 등 여러 대안매체의 발달로 인해 책이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책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사다리”라고 한 막심
고르키(Maxim Gorky; 러시아 문학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인류는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유네스코가 1995년 총회에서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Book and Copyright Day)로 제정해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고, 창작 활동이 위축되지않도록 지적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본연의 효능(?) 이외에도 독서의 다양한 효과는 이미 여러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책(종이책)을 읽으면 뇌를 자극해 정보처리와 분석, 이해, 기억 등 뇌의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킬 수 있다. 지속적인 독서는 치매나 기억력 장애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서섹스 대학(University of Sussex)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팀(인지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독서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루이스 박사팀이 음악감상, 산책, 커피 마시기, 비디오 게임, 독서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 해소법의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측정한 결과, 6분 정도 책을 읽으면 심박수가 낮아지고 스트레스의 68% 정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다른 해소법의 스트레스 감소 효과는 음악 감상(61%), 커피 마시기(54%), 산책(42%) 순이었다.
  미국 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SocialScience & Medicine) 2016년 9월호(통권164호)에는 ‘독서와 수명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논문이 실려 눈길을 끈다. 예일 대학 공공보건학교 마틴 스레이드, 베카 레비교수 등이 남녀 3635명을 대상으로 12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책을 안 읽는 이들에 비해 평소 책을 읽는 사람들이 평균 23개월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레비교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독서가 뇌 활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축구선수, 책을 든 까닭
  하지만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러한 부수적인 효과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10월 축구 전문매체인 풋볼리스트(www.footballist.co.kr)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대한민국 U-19대표팀의 안익수 당시 감독이 소집훈련 기간마다 선수들에게 독서를 과제로 냈다는 것.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선수들이 독서를 통해 생각의 힘을 키우고, 책에 대한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넓히길 바랐기 때문이다. 경기의 결과를 떠나, 안 감독의 시도는 실제로 선수들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독서로 ‘생각의 힘’을 길러 창의적인 도전을 하고, 책장 너머로 수많은 미지의 사람들과 만나 유대감을 넓히는 일 말이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자처하며 평생 책을 벗 삼아 살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처럼 우리 모두가 ‘책벌레’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따금씩은 많은 이들이 책을 쥐고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삶에 쉼표가 필요하다면 한번쯤 책을 펼치고 꿈을 꿔보자. 아직도 우리 곁에는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고 말없이 외치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 않은가.


송영철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

[참고자료]
<조선비즈>(2016. 12. 8 뉴스)
<메디컬 트리뷴>(Medical Tribune)(2016. 8 뉴스)
<Social Science & Medicine>September 2016, Pages 44–48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