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나이들면 저도 선생님처럼 그럴까요?
저희 시모님께서 연세 82세신데, 양천 허씨 5대째 종손 며느리라 일이 몸에 배어 아직도 일 무서운지 모르고 제사 준비하십니다. 그래도 요즘엔 며느리 밖에서 일한다고 많이 간소화되었는데도 하는 것은 다 합니다.
제 위로 두 며느리가 다 미국 나가 사니 막내인데도 제가 일해야지요. 정말 명절 하루 저녁때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온 몸이 욱신욱신 말이 아닌데 그래도 내색 않고 일하시는 어머님 뵈면 정말 위대하다 싶어요. (보통 때도 김장 50포기 죽자살자 다 해놓으면 금방 저녁때 만두할 배추 삶으시는 분이시니..)
예전에는 그런 어머니가 정말 밉고 지겹고 힘들었는데, 이젠 나 죽으면 하지 마라 하시는 말씀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올핸 대학 갈 딸아이가 도와주어 많이 수월했는데, 삼 대가 부엌에서 며칠 동안 같이 산 느낌입니다. 녹두 빈대떡은 이렇게 부쳐야 된다, 계란 지단은 이렇게 해야 한다, 식혜는 밥알을 동동 띄어야 한다, 제사 음식은 이렇게 담고, 이렇게 상에 올려야 한다, 등등... 나도 모르게 딸아이에게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 계속 해가는데 시어머니 말씀이 "아서라, 혜무 때 제사지내겠니? 이렇게 모이지도 않을 거다. 가르치지도 말아라"하십니다.
일은 지겹고 힘들지만,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 한 자리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고, 수다 떨며 즐길 수 있겠지요.
명절의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하며 남은 명절 마저 지내야겠습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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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더라구요.
>결혼 첫 해, 명절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았는지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면서 죽을 힘을 다해 했지요. 세상이 아득해 보이고 평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구덩이 속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한 십년 지나니까 제 목소리가 슬금슬금 먹히고 요령도 생기고 지낼만 합디다. 그렇게 무섭던 시아버님도 가끔 그 고집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시어머니의 의뭉함이 우스워질 때도 있더라구요. 시누이들의 간섭을 방어할 순발력도 생겼죠. 물론 흠잡히지 않을라고 장보기도 순식간에 해 치우고, 빈대떡 한 다라이(^-^)도 거뜬히 해 내고... 탱탱해진 배와 우람해진 팔뚝으로 "뭐 까짓 것" 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시아버님도 안계시고, 시누이들도 제각기 살기 바빠 뭐 별로고...팍삭 풀죽어서 가여운 우리 어머님은 그저 편한대로 하자고 하십니다. 명절이면 오히려 더 쓸쓸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들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으니 음식준비도 아주 조금, 한나절이면 다 끝납니다. 어머니, 남편, 나, 이렇게 달랑 세 식구가 아침 예배를 봅니다. 그리고 우리 두 내외가 뻘쭘하니 어머니께 새배드리고 나면 할 일이 없지요. 멍하니 텔레비젼이나 보다가 자다가 먹다가 그럽니다.
>버릇은 들이는대로 가는거라 이제 너무 편해져서 일하기가 싫습니다. 더군다나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생각만 해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은 참 그립습니다. 누군가 새해라고 인사오겠다고 하는 전화가 그립고, 그러면 무엇무엇을 준비하라고 꼼꼼하게 이르시던 시아버님이 그립고, 강정들고 다니면서 흘린다고 야단쳤던 아이들 어린 시절이 그립고, 저녁에 남편에게 가자미 눈을 해대던 젊은 날의 제 모습이 그립습니다.
>명절의 부산함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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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 부산함 속에 계실 우리 선생님들, 모쪼록 마음이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15기 글쓰기 선생님들, 자꾸 휴강이 생겨 마음이 흐트러질까 걱정이 되지만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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