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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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어딨니?” “작은 방”

“동근아 뭐해?” “작은 방에서 책 봐.”

“색연필은?” “작은 방 책상위에!”

“가연이 울어?” “응, 작은 방 책상아래서...... 나오라고 해도 안 나와”

 

우리집 작은 방의 작은 풍경들이다.

오밀조밀한 일상이 매일 들고나는 곳이다. 고만고만한 일상이래도 어떤 날은 달달하고 어떤 날은 매콤새콤하거나 얼큰하다. 맛이 다르니 향도 다르다. 재료는 엇비슷한데 말이다.

작은 방에는 어느 집에나 있는 가구들이 있다.

우선 책상이 하나, 의자 세 개가 있다. 그리고 크기가 각각 다른 5단 책꽂이가 5개 있고 3단 서랍장이 있다. 문은 두 개다. 방문과 베란다 통창이다.

책꽂이가 ㄱ자로 둘러쳐 있고 방의 3분의 2 쯤에 책상과 의자들이 있다. 3단 서랍은 문 옆에 있다. 문은 ㄴ자로 위치해 있다.

방문은 묵직하다. 입무거운 친구같다. 종종 문고리에 보조가방을 걸고 있는데 오늘은 야옹~, 고양이 가방이다.

매일밤 하늘꿈을 꾸는 건조대가 있는 베란다. 비록 지금은 옆집 담이 보일망정 우리집 베란다는 빨래와 함께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그 곳으로 통하는 문이 작은 방에 있다.

5개의 5단 책꽂이들. 재주많은 5형제같다.

첫 번째 책꽂이. 열린 방문과 일직선 상에 있다. 방문과 잘 어울리는 색이어서 바닥 나무결과도 잘 어울린다. 여기에는 여러 책들과 함께 사전들이 있다. 사전은 귀소본능이 매우 강해서 자기 일을 마치면 어디에도 머무는 바없이 잘 돌아온다. 기특하다.

두 번째 책꽂이.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주는 책들이 있기때문이다. 고래가 그랬어의 ‘흥식이가 돌아왔다’를 보며 아이들은 콧구멍이 벌렁벌렁해지도록 웃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 보물찾기, 살아남기 시리즈, 고래가 그랬어 등 이 책들은 우리집에서 가장 바쁘다. 화장실도 마다않고 친구집도 마다않는다.

작은 방의 모서리에 있는 세 번째 책꽂이, 연초록으로 내 가슴쯤 높이의 네 번째 책꽂이는 방문과 마주한 벽면을 꽉 채우고 있다. 사회과학류 책들이 많다. 그래도 조정래, 박경리 선생님의 한강과 토지가 있다. 동녘, 돌베개, 백산서당, 시대의 창 등의 책들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모서리에는 키작은 5단 책꽂이가 있다. 내 자전거와 같은 그림책들이 많다. 아쉽지만 이 책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작아진 옷들 같다. 애틋한 책들을 지나면 베란다로 가는 창이다.

몇걸음 안되는 길을 길게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작은 방을 작은 방답게 하는 것들이 아니다.

아무도 쓰지 않는 샤프심, 그리고 네모 딱지가 한 장, 굽네 치킨 쿠폰 2장, 주워온 지우개, 손톱만한 돌멩이 다섯 알, 다수의 메모지 등과 같은 것들이야말로 작은 방을 작은 방답게 한다. 그것들은 작은 방 도처에 있다. 사전 앞에는 레고 피큐어 두 개가 앉아있고 그 옆에는 지우개와 반쯤 사용한 작은 식염수통이 한 개 있다. 고래가 그랬어가 있는 곳엔 야광연두색이 화려한 남편의 자전거 장갑이 있다. 책꽂이의 맨 위에 비하면 이 장갑이 아무렇게나 있는 건 애교수준이다. 책꽂이의 옥상에 해당하는 맨 위에는 서류뭉치들이 거칠게 꽂혀있다. 작은 박스도 하나 있다. 볼펜 모음 박스이다. 그리고 작은 아이의 태권도 트로피도 있다. 물론 먼지도 기대만큼 수북하게 있다.

네 번째 책꽂이는 책을 꽂고 남는 여유공간이 넓다. 그러니 일상의 온갖 것들이 난전을 펼치기 딱이다. 한강과 토지앞에는 연필꽂이와 연필꽂이와 연필꽂이와 연필꽂이 그리고 연필통이 기차 행진을 하고 연필꽂이에는 잡동사니 승객이 많다. 여섯 개의 구슬, 왕단추도 있고 뜯지 않은 건전지도 있다. 아랫칸 앞섶에는 줄자가 있고 그 옆에는 메모지가 있고 한 뺨쯤 떨어져서는 유에스비와 아날로그 감성을 가졌을 것 같은 거북이 장난감이 있다. 그 줄을 따라가면 노란 고무줄, 다섯알의 돌맹이를 만나고 그리고 다시 연필꽂이가 있다.

난전은 언제나 작은 축제같다. 그 난전의 하이라이트는 책꽂이 구석 끝에 있는 원색의 에프킬라도이다. 에프킬라의 원색이 꽃무늬 바지처럼 경쾌하다. 다섯 번째 책꽂이 맨 위에서 시장구경으로 나온 커플을 본다. 망가진 노트북과 밀짚모자이다.

시장기가 돌아 나는 국밥대신 후루룩 뜨끈한 녹차를 한 잔 하고 책꽂이 기둥마다에는 있는 아이들의 찬란한 상형문자를 본다. 중간중간 이동근 이가연이 끊임없이 나온다. 최초의 인간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나? 상형문자와 그림들 사이 사이에 동물들의 화석인양 동물스티커들이 있다. 구석기 고분으로 명명하기에 손색이 없다.

동굴을 빠져나와 강가로 갈 차례이다. 20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채석강. 그 책상에 다다랐다. 20권 속에는 책뿐만 아니라 신문도 있고 메모 종이들도 껴 있다. 책상위에는 농협은행 당산지점에서 남편이 받아온 청은차라는 치약이 채석강의 신비를 더하고 있다.

물결치는 채석강을 건너면 의자들과 만난다. 의자에는 츄리닝과 면티, 가디건 등의 옷 2-3벌이 척하니 얹어져 있다. 언제나 옷걸이 겸용으로 쓰여서 늘 한 덩이 짐을 지고 있지만 꼿꼿한 우리집 의자들이다. 그 의연함은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짐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나는 오늘밤 짐진 자가 되어 숙제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주님의 은총이 내리는지 약간 졸립기도 하다.

의자 아래 방석 위에는 레고가 한 다발이다. 밟으면 얼마나 아픈지 안 밟아본 사람은 모른다. 윽! 주님~! 그래도 색색의 레고는 은총처럼 오색찬란하다. 꽃밭이다.

꽃구경까지 마치고 휘 돌아오니 처음 그 자리다.

초저녁쯤 나섰는데 꽤 늦은 밤에 이르렀다. 짐 없는 여행이었는데도 뒷목도 아프고 어깨도 제법 아프다.

여독이 풀릴 때까지 당분간 작은 방 청소는 미뤄두고 싶다.

남은 커피가 있다면 한 잔 해겠다. 내일의 작은 일상을 위해서.

 

“내 자전거 장갑 못봤어?” “작은 방에!”

“내가 주워온 돌멩이 어딨어?” “작은 방에!”

“우리 놀러가자~!” “그래 작은 방 채석강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