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새벽, 막내 녀석이 뒤척이는 바람에 잠깐 깨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보니 7시 25분. 이게 뭔일이래~ 7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큰애 깨워서 겨우 세수만 하고 둘이 손잡고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9시 전에 종합운동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오신 샘들이랑 아이들이랑 한바탕 인사를 치르고, 당산에서 버스가 8시 50분 정도 되어 출발했다니 안에서 기다리자며 지하철 매점으로 갔다. 우리는 어느 샘이 지각했을 것 같냐며, 김밥(너무 맛있었다:모든 샘이 동의함)이며, 호빵, 어묵, 핫바 등을 먹으며 조그마한 매점을 아이들과 함께 점령하며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맘씨 좋은 매점 아저씨는 마냥 우리의 수다가 즐거운지(?) 싫은 내색 한번 없이 편안하게 쉬게 해주셨다.
드디어 9시 30분이 되어서야 버스가 근처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밖을 나오니 박형만 선생님이 와 계셨다. 샘은 아이들 논술시험 관계로 먼저 가셔야 된다며 차를 가지고 오셨다. 조금 있자 맞은편에서 우리 팀을 태운 버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선생님” “여기 여기” 누군가 우리를 발견할 걸 기대하며 빽빽 소리를 지르니, 역시! 반장님~ 반장님만이 우리를 알아보고는 손을 흔든다.
“누가 지각 했어요?” “우리 31기 샘들 대단해요. 아무도 지각 안했어요.” 반장님 말이 대신 주문한 떡과 양푼 비빔밥이 지각해서 늦었다고 하신다. 역시 우리 31기 샘들이다.
모두 38명을 태운 버스는 본격적으로 양평을 향해 출발하고, 모든 준비에 한 치 빈틈도 없이 해낸 반장님 덕분에 떡이며 식혜며 귤 먹어가며 느긋하게 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박형만 선생님이 2킬로는 걸어야 된다는 말씀에 신발끈 다시 단단히 조이고 옷깃을 여민 다음 마을로 향했다. 마을을 들어서니 소머리를 꼭 닮은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마을 뒷산의 이름이 ??라고 하셨는데(기억이 안 납니다. 사실 많은 내용이 기억안납니다. 용서하시고요. 이것저것 기억나는 샘들은 댓글 많이많이 달아주세요), 소머리산이라든가 뭐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다. 같은 기운은 같은 기운을 부른다고 참 신기했다.
100미터도 채 못 걸어가니 동화속에 나올 법한 조그마한 흙집이 아담하게 서 있는데 느낌이 꼭 우리의 목적지 같았다. 역시나 그 집이었다.(박샘이 우리에게 뻥쳤다)
집을 들어서니 왠 홀쪽하고 약간은 지저분하지만 그것이 매력인 남자분이 계셨는데, 후두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커다란 나무판대기로 작업대를 만들고, 그 작업대 끝에는 옛날 펌프질하며 사용했던 수도도 멋(?)스럽게 달려 있었다. 천정에는 여러 크기의 종들이 달려 있었는데 어찌나 종을 세게 치시는지 귀가 멍멍했다. 화장실과 부엌을 같이 사용하는 곳은 사실 조금 지저분했지만 그 집과 후두둑과는 잘 어울려서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후두둑은 참 재미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나 몸에서 쓸데없는 힘은 빼고선 약간의 심드렁한 분위기까지 잡으며 웃음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샘들과 아이들을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후두둑이 했던 재미있는 이야기와 유익한 설명들을 여기에 옮기지 못함이 정말 정말 원망스럽지만 생각이 안난다. 머리를 쥐어 짜낸다면, 좋은 공기를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한 손을 올려 손가락으로 공기를 만들 듯 돌리며 “좋은 공기” 그러고선 손으로 훔쳐와 “흡”하고 마신다. 몇 번 그런 장난을 하다 “나쁜 공기” 하면 손으로 휙휙 내젓다가 “흡”하고 마시면 댄단다. 산에 가서 산 좋으면 “산~ 좋다!”, 흙 좋으면 “흙~ 좋다!”, 나무 좋으면 “나무~ 좋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하고 있어도 끝없을 것 같다. 역시나 아이들을 많이 다뤄 본 분이시라, 똥이며 방귀 이야기에 아이들은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흙피리 설명을 하시면서는 우리 몸도 하나의 악기라며 악기를 조율해야 된다고 하셨다. 머리, 목, 가슴, 배를 바람통이니 저장통(?)이니 똥꼬를 구멍통(?)이니 설명하시면서 배에서 내는 소리, 가슴에서 내는 소리, 목에서 내는 소리, 머리에서 내는 소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흙피리를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다며 미리 만들어 놓으신 흙피리를 숟가락으로 다 문지른 사람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란다. 참, 후두둑의 당부 한마디, 아이들에게 산에 가서 도를 깨닫고 오지는 말란다. 엄마 아빠가 골치 아파진다고.
흙피리를 설명하자면 후두둑이 직접 손으로 일일이 만드신 건데, 오리모양, 개구리, 장수풍뎅이, 바지락, 새 등등, 참 미친개구리(이것은 일일이 음을 내지는 못하고 새소리와 무슨(?) 소리를 낸단다. 미친개구리에 대한 일화: 이것을 가지고 새소리를 내면 새들이 날아온단다. 왠 놈이 우리 구역에 들어 왔냐 싶어 싸우려고, 그러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왠 미친분 하며 다시 날아간단다.) 까지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다. 어떤 것은 오카리나 소리를 내고, 또 어떤 것은 훈의 소리를 낸다며, 훈은 단소를 불 수 있는 사람만 가지게 했다.
동수저, 은수저, 금수저 섞어가며 흙피리를 살살 문지르면 빛깔이 참 예쁘게 나온다고 하셨다. 주의할 점은 흙피리에서 금 그어난 부분은 우리의 입과 혀에 해당되는 부분이기에 그곳은 문지르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고른 흙피리에 숟가락을 하나씩 쥐고 살살, 박박, 개성껏 열심히 문질러 댔다. 역시 한 번 잡으면 뿌리를 뽑는 김태미 샘이 마지막까지 문질러 댔고, 그 옆에 앉은 나는 얼결에 같이 문질러 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양푼이 비빔밥에 곁들여 먹은 삼겹살의 맛이란!(이 순간 입에서 도는 침을 참을 수가 없다) 양푼이 밥 준비며 삼겹살 굽느라 고생하셨던 여러 샘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합니다. 특히 밤 12시 반까지 쌈(모둠 쌈) 씻느라 고생하신 주혜영샘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흙피리는 옆에서 솔솔 구워지고, 여기서 잠깐, 흙피리는 처음에는 직접 불에 닿으면 터져 버리기 때문에 옆에다 불을 떼고 서서히 말려 나가야 한단다. 그 과정이 끝나면 직접 불에 구울 수 있다고 한다.
거의 밥을 먹고 나자 후두둑이 흙놀이를 할 것인지, 그냥 이대로 놀 것인지 하란다. 밥 먹던 샘들 하나같이 하는 말 “후두둑, 애들이랑 흙놀이 하세요”. 후두둑에겐 죄송하지만 우리샘들의 계획, 후두둑이 보모가 되어 애들과 놀아주는 사이 막걸리를 마시자였다. 애들은 흙놀이를 한다는 말에 와~하고 뛰어가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샘들의 흐뭇한(?)미소
반장님이 막걸리는 제대로 흔들어야 된다며 막걸리병을 잡고 앞뒤로 흔드는 모습에 모모샘이 왈 “나이 드니 저런 모습만 봐도 그게 생각나네” “뭐? 뭐가?” “왠, 순진” “샘~ 너무 야하다” “나, 순진한데, 어! 그거였어요.”  ‹-  알아서 상상하시길
막걸리는 8병을 준비해 갔지만 2병도 채 먹지 못하고, 대신 아이들 없이 먹으니 고기가 입으로 들어간다며 너무나 맛있게들 먹었다.
후두둑과 아이들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봐야 겠다 싶어 안으로 들어가니 흙 얘기가 한창이다. 니 똥 내똥도 흙으로 돌아가고, 죽은 몸둥이도 흙으로 가고 모든 것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단다. 그러면서 흙으로 웃기니사우루스를 만들어, 웃기니사우루스 똥꼬를 만들어서 가스를 빼야 구울 때 터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후두둑은 잘 반죽된 흙으로 자장면 면뽑는 실력을 발휘해서 흙을 길다란 절편으로 만든 다음 먹기 좋은 절편으로 잘라놓고는 새며 뱀이며 과일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달아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몇 몇 들어오신 샘들에게 만들어 보라며 흙을 푸짐하게 주셔서, 후두둑이 만든 방식대로 동글동글 빚어 주둥이 만들고 꼬랑지 만들어 ‘새’ 완성, 길게 길게 빚어 나무에 칭칭 감고 ‘뱀’완성, 다들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후두둑이 흙피리를 꺼낸다며 우리를 불렀다. 흙은 300도가 넘어가면 땀구멍이 열리고 그 때 솔 향이 들어가면 좋다고, 불에서 꺼낸 흙피리를 솥단지에 담고 솔가지를 얹었다. 솔이 바지직 타들어가는 냄새가 참 좋았다. 그리고 물매기기 과정이 남았다며 부엌에 가서 물을 한입 머금고 와서, 옛날 분무기가 나오기 전, 다림질 할 때 물을 입에 머금고 푸~우 뿌리듯이 흙피리에 뿌리란다.
드디어 흙피리 완성! 저마다 받은 흙피리에 줄을 달고 불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두둑은 이제 자신이 맡은 일정은 끝났다며 알아서들 놀고 가란다. 저녁먹꺼리까지 준비한 31기 샘들 잠시 당황, 시간은 겨우 3시, 우찌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3시 30분에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는 방법은 따로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니 조금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랴 객은 떠날 수밖에.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들고 온 노래공책을 꺼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종합운동장에 거의 다와 서야 발동이 걸린 김태미샘, 급기야 일어나서 몸을 흔드는데 어찌하랴, 버스는 운동장에 도착하고,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밖에. “우리 종강식날 찐하게 뒤풀이 한번 해요”를 외치며.
당산에 도착한 우리샘들 이대로 혜어지기 너무 아쉽다며 조그마한 카페에 모여 요구르트 먹으며, 아이 가졌을 당시 고생담이며, 시댁이야기, 부부싸움에서의 요령 등, 이런 저런 수다를 실컷 떨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아쉬웠던 점, 박형만 샘! 점심도 못 드시고 일찍 가셨지요. 늘 쫓기듯이 수업 마치자마자 가시는 샘을, 이날만은 느긋하게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우리만 남겨놓고 가시다니. 일정 끝났다는 후두둑의 말에 있자니 눈치 보이고, 쫓기듯 올 수 밖에 없었던 우리 31기가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다시 날 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