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먼지 날리던, 깡말라 보였던 흙길은 그리 신통하지 않는 어딘가로 끝없이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 먼지는 너무나 건조해서 무엇이든 시큰둥하게 만들어 싫었다. 언제쯤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적 어느 봄 날의 기억이 아닐까. 지금도 그 길을 떠올리면 황량하고 쓸쓸한 무엇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비가 오면 유난히 질어지는 길이 있었다. 한 발작 한 발작을 두 손으로  장화를 떼어 내며 걸어야 했다. 뭐가 이렇게 찰지고 쫀득쫀득한지 낑낑대면서도 신발을 착 달라붙게 하는 흙의 놀라운 힘에 감탄했다. 몇 발작 가다 떼어 내기가 너무 힘들면 먼저 가고 있는 오빠를 불렀다. “오빠야~ 신발이 안 떨어진데이” 그러면 우리 오빠야는 자신도 힘들게 갔던 길을 웃는 얼굴로 되돌아서 와줬다.

동생 신발 떼 주고 한 발
동생 신발 떼 주며 두 발
지도 퍼붓는 비에 눈 못 뜨면서
손 꼭 잡고 데리고 가네  

그 후 흔하게 보였던 흙길이 시멘트로, 아스팔트로 바뀌고 난 뒤부터 흙에 대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팬 늙은 농부의 뒤를 따라 조그마한 텃밭으로 갔다. 호미를 깊게 꽂지 말고 땅을 살살 달래며 감자를 캐라신다. 생전 처음 해보는 거라 조심스레 흙을 들쳐 내는데, 호미 뒤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 여기저기서 올망졸망한 감자들이 옹골종골 달려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 흙이 위대해 보였다. ‘흙이 생명을 이렇게 길러내는 구나!’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며칠을 그 느낌에 짜릿했던 것 같다.

흙은 무엇일까? 까마득한 옛날 텅 빈 우주공간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여기 흙이 있게 된걸까? 쉽게 모든 것은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무, 꽃, 복숭아, 사람, 거북이, 개미, 도롱뇽……. 살고 있는 모든 것은 흙에서 태어났다니, 세상 모든것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아닌가!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흙의 어떤 부분을 닮았을까?

어떤 여스님이 공사로 파헤칠 위기에 처해있는 산에서 살고 있는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단식을 하다 목숨이 위태롭다고 한다. 공사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에겐, 그 산만 뚫으면 돈이 생기고, 더 빨리 기차가 달릴 수 있는데, 고깟 도롱뇽 땜에 포기하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을 게다. ‘실질적인 이익’에 가치를 두는 사람에겐, 산 하나쯤 없어지는 것은, 그 산이 길러낸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너무 먹어 대어, 비싼 돈을 들여 수술대에 올라 비계덩어리를 도려내는 사람 옆에 굶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끔찍하고 요상한 꿈 얘기 같은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야기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먹다 남은 음식을 거의 매일 버리고 있으니, 죄인이다.
세상이 병들어 가고 있다. 사람 때문에.
처음엔 사람이 먼저 병들었다. 흙을 밟지 못하고 흙에서 뛰어 놀지 못해.
흙이 생명을 낳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위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보지 못해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 안고 길러내는 흙의 사랑을, 내가 지켜 내야할 우리안의 가치 있는 것들은 흙에서 물려받은 것이란 것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생명이 가진 건강성을 어떻게 다시 찾아야 하나? 그 답은 흙에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