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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논술 강의 나눔터

나무한그루
2016.11.06 18:58

난 단풍나무다.

워낙 단단해서 악기 만드는 곳이나 가구 만드는 곳에 가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엔 좀 이상한 곳으로 왔다. 개량 한복을 입고 아침마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는 낯익은 아저씨가 나와 친구들을 한아름 데려가더니 땀을 뻘뻘 흘리며 가래떡 썰듯이 자르는 게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소나무들이 인사를 건넨다.


“어이~ 친구! 여기가 좀 낯설지? 우린 나중에 어떤 한 사람의 이름표가 될 거야. 멋진 나무 이름표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좀 지루하겠지만 어떤 사람이 너를 선택할지 기다려봐~ 그런데 너를 선택하는 사람은 좀 불쌍한걸? 넌 너무 단단해서 모래종이로 갈아도 잘 갈리지도 않고 우리처럼 멋진 나이테를 드러내지도 못하잖아~”


속상하다. 나의 단단함이 악기나 가구 만드는 곳에서는 얼마나 환영을 받는데....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나를 선택해주면 좋겠다.

오! 제법 힘도 세보이고 키도 큰 사람이 나를 데려가네?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냄새를 맡는다. 옆에 소나무를 집어든 사람들은 나무 향기가 좋다고 하는데 우리 주인은 별 말이 없네. 그도 그럴것이 난 소나무처럼 좋은 향이 나지는 않으니.... 쩝....괜히 미안해진다. 이번에는 루페라는 것을 들고 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우와~ 여기 그랜드캐년이 보여요.”


그랜드캐년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멋있는 것인가 보다. 우리 주인이 나의 가치를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걸까?

이번에는 종이사포로 내 몸뚱이를 긁는다. 어...시원하다. 몇 년 묵은 때를 벗겨내니 나의 하얀 속살이 드러나네~ 주인이 이제 나를 좀 마음에 들어 할라나? 어! 근데 이상하다. 우리 주인이 자꾸 주변 사람들을 살피면서 고개를 갸우뚱해하네. 아차! 내가 너무 단단해서 사포로 잘 갈리지 않으니 당황했구나. 땀을 뻘뻘 흘리며 더 힘을 주네~ ㅎㅎ 그래도 별 소용 없는데.... 내가 워낙 단단해서 안 갈리는 걸 우리주인이 모르고 있구나. 괜히 또 미안해지네... 말을 할 수도 없고...

다시 루페로 들여다본다.


 “아... 그랜드캐년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왜 저는 아무리 사포로 갈아도 나이테가 잘 나타나지 않죠?”

 “아! 선생님 나무는 소나무가 아니라 단풍나무네요~ 단풍나무는 좀 단단해서 잘 갈리지가 않아요.”

 

그 개량한복 입은 아저씨가 내 대신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우리 주인도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내가 마음에 안들면 어쩌지?


우리 주인이 나를 필통속에 넣더니 자기 집에 데려갔다. 남편에게 180호 모래종이를 사다달라고 하더니 나를 또 하염없이 문지른다.

“나이테는 잘 안 나타나고 여기 잘린 자국은 계속 남아 있어서 속상해요.”라고 남편에게 하소연한다. 나도 속상하다. 타고난 게 이런 걸 어쩌냐.... 그래도 우리 주인은 내가 사랑스러운가보다. 남편이 갈아준다고 해도 끝까지 자기가 간단다. 몸도 아픈 것 같은데.....

몇 번을 반복하더니 나를 쓰다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앞면에 자기 이름을 네임펜으로 쓰더니 왠지 네임펜으로 쓰는게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다시 색연필로 칠한다. 뒷면에는 나무한그루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쓰더니 색연필로 멋진 나무 한 그루를 그린다. 나를 예쁘게 꾸미더니 이제야 마음에 드나부다.


며칠 후 다시 낯익은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이번에는 초로 투박한 옷을 입혀주었다. 혹시 초로 밀봉이라도 하려고 마음먹은 걸까? 아주 두껍게 반복해서 내 몸을 칠한다. 앗! 이제는 나를 촛불 곁으로 데려가네? 그래도 아주 가까이에 데려가지는 않고 1센티미터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내 몸의 촛농이 따뜻하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을음 묻지 않도록 정성을 들이는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우와~ 고급 옷을 입힌 느낌이다.’

 이제는 주인의 마음속 외침도 들릴 정도로 우리 마음이 통한다. 갈색 끈을 묶더니 나를 계속 만진다.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 데려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까지~

힘들었던 만큼 나에게 애정이 생겼다보다. 나도 우리 주인이 좋다.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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