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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음 시간 총균쇠 발표순서

00. 프롤로그 - 현대 세계와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품다 (조)
01.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 상황 (황)
02.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 낸 모델 폴리네시아 (송) 
03.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진)
04. 식량 생산의 기원 (신)
05.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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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조)
07.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황)
08.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송) 
09. 선택된 가속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진)
10.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신)
11.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김) 
12.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연관 (조)
13.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황)
14.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송) 
15. 대륙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진) 
16.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신)
17.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김)
18.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조) 
19.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조)
20. 추가논문_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조)

[02] 사피엔스 요약

12. 종교의 법칙 :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다. 상대성이론이 종교가 아닌 것은 이것을 기초로 한 인간의 가치와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축구가 종교가 아닌 것은 그 규칙이 초인적인 칙령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불교, 공산주의는 모두 종교다. 모두가 초인적 신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13. 성공의 비결 : 사후 깨달음의 오류를 고려해보면,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2단계 카오스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역사라는 여신이 확인하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적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화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개별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며 우연한 결과의 연속일 수 있다. 그러나, 1500년 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14. 무지의 발견 : 근대에 이르러 우리가 아직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을 통해서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과학이 문제를 하나씩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과학을 통한 새로운 지식획득은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단지 이론 창조에 만족하지 않고 새 힘의 획득 특히 적용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목표는 과학, 제국 그리고 자본의 결합으로 가속화되게 되었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 서구의 신화, 사회정치적 구조는 서구인의 시야를 넓혀 주었고, 새로운 대상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하였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지식에 대한 욕구는 침략에 대한 죄책감을 잊게 하였고, 과학은 정복과 지배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는 과학 발전을 이루는 큰 배경이자 밑거름이 되었다. 근대에 서구의 제국주의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학과 제국주의의 결합이었다.

16. 자본주의 교리 : 자본주의에서는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 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였다. 성장 우선으로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탐욕의 결과는 파국이다.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분배는 더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불평등을 겪는 사람도 더 늘어났을 뿐이다.

17. 산업의 바퀴 : 인류의 경제는 미래에 대한 신뢰, 이윤의 재투자, 그리고 유한한 줄 알았던 에너지와 원자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이것이 산업혁명이다. 인간은 한 유형의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바꾸었고, 더불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는 에너지든지 알맞은 기계, 엔진을 발명해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에 사용한다. 원자재, 에너지 역시 기술 개발, 발명 및 발견을 통해 새롭게 얻어냈고, 그 결과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은 농업에서 가장 먼저 크게 나타났는데, 덕분에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이 많아져 도시의 산업혁명도 가능해졌다.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과잉 공급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소비 지상주의라는 새로운 윤리로 부자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 물건을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 되었다. 

[03] 오늘 얻은 인식의 지평확대 개념들

01. 죽음

"죽음을 앞두고 자신보다 오히려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욕심과 집착으로 살 만큼 살았는데도 죽음 이후를 준비하지 못해 자손들을 죽은 다음까지 괴롭히는 이들도 있다. 죽기 직전 성숙한 개성화 과정을 거쳐 천사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어린이가 있는 반면에 어두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죽을 때까지 응석만 부리다 가는 노인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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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진 죽음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는 과정을 "부정하고(Denial),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며 화를 내고(Anger),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 타협하다가(Bargain), 우울감에 빠지며(Depression), 결국 받아들이는 상태(Acceptance)"로 요약했다. 물론 꼭 모든 단계가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고, 처음부터 체념하고 사후 세계에 몰입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과 의연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잘 받아들인다. 문화나 종교의 차이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고대 이집트나 티베트 사람들은 사후에 더 장엄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굳건히 믿기에 죽음을 축복처럼 준비했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정서를 가졌다면 질병, 노화,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어떤 종교건 영성(Spirituality)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과정을 비교적 잘 견뎌낸다는 보고도 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힘든 일이다. 환자의 죽음 앞에 느끼는 자괴감과 무력감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 없이 차갑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환자들이 많이 서운할 수 있다. 환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 말기 환자를 격려해야 할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지 몰라 슬금슬금 피하는 경우도 있어서 환자가 더 외롭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말보다는 따뜻하게 안아 주는 몸짓과 공감하는 눈길이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간 사라질 존재지만, 죽음은 마치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사는 사람들도 많다. 천국을 가고 싶어 하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든, ‘무(無)’로 돌아간다는 허무주의자든 죽음만큼 어려운 삶의 비밀이 있겠는가. 융 심리학자 폰 프란츠(Von Franz)와 야페(Jaffe)는 임종 환자들의 꿈에 대해 책을 썼는데. 공통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는 모티프들이 많이 등장했다. 죽음이란 또 다른 나로의 변환, 혹은 원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이라도 죽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면 오히려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죽기 전 쓸 ‘버킷 리스트’를 사망선고를 받지 않아도 일찌감치 실행하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용기와 결단력이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6651293 2011/11/12]

02. 이성적인 사피엔스가 왜 초월적 존재를 만들어냈을까? 두려움과 혼돈

 사피엔스가 무리를 지어 살다 보니, 죽음을 목격하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같은 지위를 가진 동식물을 살인할 때 발생하는 가치관의 혼돈 그리고 앞으로 식량 수급에 대한 두려움 등이 종교라는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수업 정리는 종교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의 관점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으니, 특히 기독교 및 천주교를 믿고 계신 분들은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03. 역사적 관점에서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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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적 상황이 변해오고 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해석이 변하고 있다.
(2) 고대의 신탁체제와 현대의 정치체제와 공통점 : 명분 (초월적 존재를 사용) + 가치관의 혼돈 (복종)
(3) 종교가 사피엔스를 분열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공위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종교라는 전체적 틀 속에 더 많은 인류가 통합되게 되었다.
(4) 기독교도 지금의 관점으로 파악하면 분열된 상태로 보이지만, 05번의 선생님들처럼 통합을 실천해서 후대에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 존재했던 잠시의 암흑기였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제 사견입니다)

* 여기 부분은 고민을 많이 해보았는데, 자신이 좀 없습니다. 너무 일반화를 시키려 하다 보니, 비논리적인 구석이 존재합니다. 틀린 부분을 정정해주시거나 의견을 주시면 좋겠네요 ~~

04. 기독교의 계열별 분화 

325년에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부터 787년에 열린 제2차 니케아 공의회까지의 첫 일곱 공의회에서 기독교의 중요 신학적인 문제가 논의되었다. 공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교였는데, 이것은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교회 조직과 전례 등을 정비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초기의 일곱 공의회 이후 동서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 동방 정교회는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개최한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곱 공의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당성 획득의 과정)

1.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25년):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닌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주의를 배격하고 니케아 신경을 작성했다. 결론적으로 삼위일체론이 공인되었다.
2.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381년): 니케아 신경을 개정했다.
3. 에페소스 공의회 (431년): 사람으로서의 예수와 신으로서의 예수를 구분한 네스토리안주의를 배격하였다. 특히, 마리아의 위상에 있어서 성모 즉 신성이 있다고 공인하게 되었다.
4. 칼케돈 공의회 (451년): 예수에게는 신성 밖에 없었다는 단성설을 배격하고, 예수는 완전한 하느님이며, 사람이라는 칼케돈 신조를 작성하였다.
5.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년): 기존 공의회 결정들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형태의 아리안주의, 네스토리안주의, 단성설을 정죄하였다.
6.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680-681년): 단의론을 배격하고 그리스도에게 사람과 신으로서의 뜻이 다 있었다고 정하였다.
퀴니섹스트 공의회 (692년): 트룰로 공의회라고도 함. 제2/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관련된 교회법 102개조 공포하였다.
7. 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7년): 성화상에 그려진 성인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을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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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05. 한국의 위대한 통합의 실천자들 : 한 분은 실천으로 분열된 기독교와 동양의 종교를 통합하셨던 분이고, 다른 분은 실천을 통해 생활 통합을 이끄셨던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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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즐겁게 죽음을 기다렸던 다석 류영모 

"모든 말은 천천히 씹어 보아야 한다. 천천히 씹어보면 저 멀리 있는 게 여기도 있다. 곧 성경에 있는 것이 여기 유교에도 있다. 모든 진리라는 게 모두 다르면 어떻게 하나? 진리는 하나다. 진리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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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석 류영모. 우리말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의 이름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글과 말에 대해 깊은 통찰을 통한 혜안을 보인 인물이며, 예수와 석가, 공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 톨스토이, 토인비, 간디와 같은 인물들과 같거나 그 이상의 깨달음을 이룬 성인이라고 한다. 나는 두 번 놀란다. 우리나라에도 인도의 간디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같은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런 사실을 여태 몰랐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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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모가 지적한 인간 속에 들어있는 수성(獸性)인 삼독은 다음과 같다. 탐은 탐욕(貪慾)을, 진은 진에(瞋恚, 성냄)를, 치는 치정(癡情)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수성을 끊어내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질투나 음욕을 가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셋을 완전히 내려놓고 사는 사람을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탐-진-치의 삼독을 끊어야 동물이 아닌 참인간

 다석 류영모의 제자면서 <다석일기>의 저자이기도 한 박영호의 설명에 의하면, 탐의 결과는 부자(富者)이고, 진의 결과는 귀인(貴人)이며 치의 결과는 미인(美人)이다. 각각 자본지상주의, 권력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다석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돈을 모으면 자유가 있는 줄 아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영업이나 경영이 자기 몸뚱이만을 위한 짓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평등을 좀먹습니다. 경영을 하게 되면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생 동안 모으려고만 하게 될 것이니 자유와 평등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돈에 매여 사는 몸이 무슨 자유겠어요? 매인 생활은 우상 생활입니다."

 사상가 류영모는 1890년에 태어나 1981년 91세의 나이로 숨졌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고 을사늑약을 거쳐 조국이 식민지가 되는 과정과 독립운동가들과 위정자들의 활동을 지켜보았으며, 해방을 겪었다. 그리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경험한다. 그의 역사는 1903년 처음 세워진 기독교청년회(YMCA)와 1907년 개교한 오산학교와 함께한다.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과 도산 안창호를 알게 되고, 평생의 제자 함석헌을 만나게 되고, YMCA에서는 연경반 강의를 35년 동안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1930년대에 학교 학적부를 쓰는데 양반, 상민의 계층을 밝히는 신분란이 있었다. 류영모는 자녀들의 가정환경조사서에 직접 평민(平民)이라고 적어 넣었다. (중략) 류영모는 참사람이 되려면 가장 미천한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와 석가가 무소유의 삶을 산 것은 이 때문이다. 무소유의 삶이란 거지의 삶이다. 톨스토이가 루바시카를 입고 농사를 지은 것도, 간디가 웃통을 벗고 맨발로 다닌 것도 가장 미천한 자리에 서고자 함이었다"라는 설명과 함께 류영모는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톨스토이나 간디와 함께 성인으로 여겨야 할 인물로 조명한다.

류영모의 철학과 종교

 류영모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자 하였다. 노동이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는 예수가 젊어서 목공 일을 한 것과 공자가 젊어서 목장 일을 한 것, 만년의 톨스토이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것은 모두 땀 흘리는 삶에서 진정한 철학과 공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깨닫고 있었다. 

"괜히 충돌하여 남의 잘 믿는 신앙을 흔들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서로 다른 대로 같습니다. 나도 16살에 입교하여 23살까지는 십자가를 부르짖는 십자가 신앙인이었습니다. 우치무라나 무교회는 정통신앙이지만 나나 톨스토이는 비정통입니다." 

 1960년에 류영모가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바울로의 대속 신앙이 정통신앙이고 비정통 신앙이란 예수의 영성 신앙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전체의 영원한 생명이지 어떤 시대, 어떤 인물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고 그를 쳐다보는 것은 예수의 몸 껍질(色身)을 보고 따르자는 게 아니라 예수의 속알(얼나)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예수의 속알만 말고 먼저 제 마음속에 있는 속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의 몸도 껍질이지 별수 없습니다. 예수의 혈육(몸)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혈육입니다. 속알이 하느님과 하나인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요약된 바울로의 대속의 교의 신앙을 버리고 예수의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는 영성 신앙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는 류영모의 육성이다. 다석 류영모는 태어난 지 몇 해를 헤아리는 나이보다는 태어난 날로부터 날수를 세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날수를 세면 하루하루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으로 여겨져 좀더 삶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숨 쉬는 것까지 숫자로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살다 간 날은 총 3만 2000일이고 들고 난 숨을 쉰 횟수는 약 9억 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간 나는 참 나가 아니라는 거다. 

"죽음이란 없습니다.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거지 죽는 게 아닙니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보통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껍데기 몸이 퍽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이 껍데기 몸이 그렇게 되면 어떻습니까? 진리의 생명인 얼나는 영원합니다."

평소 류영모가 즐겨 한 말이라고 한다.

[첨부] : 하나님 귀일신앙 연구 (석사학위 논문) 유영모 자료.pdf by 이재철_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1354]

(2)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지냈던 정일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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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자리 15주년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97qk8cbu_wU

정일우(鄭日祐, John Vincent Daly, 요한, 1935년 11월 21일 ~ 2014년 6월 2일)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40년 가까이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신부이자 빈민운동가이다. 

미국 일리노이 주 출신인 정일우는 1953년 8월 8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에 왔고, 1963년 실습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66년 사제서품을 받고,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한국은 떠난 지 4년 뒤 1967년에 다시 한국으로 와서 서강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정일우 신부의 은사 프라이스 신부는 서강대학교 설립의 주역으로,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연구소를 열고, 이후 34년 동안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선구자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예수회 수련장으로 일하고 있던 정일우 신부는 그 자신에 대해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생겼다. 이에 정일우 신부는 1973년 예수회 수련장에서 물러나고 찾아 들어간 청계천 판자촌에서 평생 동지였던 ‘배달학당’ 야학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고 제정구 선생(1944~1999, 바오로)과 처음 만났다.

이후 제정구 선생과 정일우 신부는 1975년 11월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 집단이주 마을로 복음자리(1977년), 한독주택(1979년), 목화마을(1985년)을 건립하였다.

양평동 판자촌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주거민을 이끌고 집단 이주해 조성한 공동체가 '복음자리 마을'이고, 이 복음자리 공동체에서 만든 제품이 복음자리 딸기잼이다.

1980년대는 목동, 상계동 등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에 함께 하였다. 1985년 천주교 도시빈민회, 198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를 교구장 자문기구로 설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1988년 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 설립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일우 신부는 1986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고 제정구 전의원과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정일우 신부는 1991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빈민촌에 ‘한몸공동체’를 세웠다. 청소년들의 쉼터, 외국인 노동자들 쉼터, 농촌의 누룩공동체 등 예수회 사회사도직은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약물청소년, 아이들 공부방, 농촌 분야로 확산되었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정일우 신부는 도시빈민 운동이 교회와 사회에서 자리잡아 가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값싼 노동력 제공과 저가 미곡정책으로 희생을 강요 당한 농촌으로 눈을 돌려 농민들을 위한 신앙과 생활 공동체인 '예수회 누룩공동체'를 충북 괴산군 삼송리에 세웠다.

정 신부는 누룩공동체의 삼송리 농부생활 8년을 마감하고, 2002년 4월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서울 무악동 '한몸공동체'로 다시 왔다. 그러면서 2006년까지 예수회 제3수련장을 맡았다.

정일우 신부는 2004년 70살 생일을 앞두고 63일간 지속한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오다, 2014년 6월 2일 선종하였다.

06. 강대국의 비밀 (EBS 다큐프라임)

(1) 로마 시민권 https://youtu.be/tgITngdQk-0
(2) 대영제국의 탄생 https://youtu.be/pCjAoPTKpQ8
(3) 세계제국 몽골 https://youtu.be/kaV-R8UCroU
(4) 가장 작은 제국, 네덜란드 https://youtu.be/mIksswx_EtY
(5) 1964년 미국, 미시시피 자유여름 https://youtu.be/dtPyMev4W5o

07. 역사적 관점에서 복지    
(1) 제정일치 및 과도기 시대까지 종교가 복지의 기능을 담당
(2) 정교 분리 이후, 국가가 복지 기능을 담당
(3) 시장활성화를 위한 최소 개념의 복지만 수행 (ex. 노동의 질 향상)
(4) 애초의 복지의 의미로 복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08. 인류의 복지라는 외피를 쓴 아프리카 환경기금
(1) 유럽인이 아프리카의 환경을 염려해서 만든 것이다.
(2) 절대 그런 일은 없었고, 유럽인용 휴양지 경관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금이었다.
(3) 이는, 네덜란드에서 국왕이 이동할 때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 청소부를 고용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09. 탐사와 정복
(1) 성공한 유럽 : 무지의 발견 + 정복의 탐욕 
(2) 실패한 중국 :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 + 투자 대비 효과성 떨어짐 
    (중국의 과학기술은 16C 이전까지는 유럽보다 뛰어났었음)
 
10. 한글이 최고의 발명품이다. (아래는 2005년 마니샘이 게시하셨던 글입니다)

재릿 다이아몬드 박사,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 

 1994년 우리나라 각 일간신문는 다이아몬드가 디스커버지에 쓴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스런 글자이고 그 한글을 쓰는 한국말이 가장 좋은 말글살이다”라는 기사를 소개한 일이 있다. 그래서 세종 호텔에서 그를 만났을 때 한국이 가장 과학스런 말글살이를 한다고 생각하는 지 확인하니 “두 가지 글자를 섞어 쓰는 일본의 말글살이가 가장 비과학적인 말글살이이고 그를 따라하는 한국의 말글살이도 마찬가지 불편하다. 한글만 쓰는 북쪽의 말글살이가 가장 편리하고 과학적인 말글살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나라 지배층인 국무총리와 장관을 지낸 정치인, 서울대학교 총장과 교수였던 사람, 대기업 사장과 조선일보 같은 언론들은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말글살이가 가장 편리한 말글살이라고 떠들며 한글만 쓰기를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 때 세계에서 이름난 과학자는 그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가 가장 미개하고 불편한 말글살이라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다른 세계학자들도 인정하는데 우리 지배층만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했다. 이 한자를 섞어 세로 쓰던 보수신문들은 일본식 한자혼용이 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말글살이란 것은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재럿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글이 영문 로마자보다도 더 좋은 글자라고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은 한자를 혼용함으로써 불편한 말글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로마자 같은 소리글자가 가장 좋은 글자이고 로마자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데 그 글자보다 한글이 더 과학에 기초를 두고 질서 있게 짜여진 글자라고 말했으니 세계에서 한글이 가장 잘난 글자임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이몬드 글에 반론이나 반박문을 본 일이 없으니 세계가 인정하는 진실이다. 그 때 그가 디스커버지에 쓴 내용을 조금 옮겨본다. 

“어떤 문자(한글)들은 사람들의 말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반면, 다른 문자들, 예를 들어 영어 따위들은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것은 문자의 진화인가? 아니면 문자에 동등하지 않은 논리가 적용된 것인가? 당신은 영어를 읽고 쓸 줄 아는가? 당신은 대답할 것이다. 물론이지, 재릿 다이아몬드. 당신도 알잖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이 잡지를 읽겠소? 그렇다면, 당신은 문자 영어의 배후에 있는 이치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해본 적이 있는가? 즉, cede나 ceed, 혹은 sied대신 우리가 하듯이 seed라고 적는 이치는 무엇인가? 또는 sh 소리에 대해, 단지 몇 가지의 경우만을 거론한다 하더라도, (ocean에서와 같이) ce로 적을 수도 있고, (nation에서와 같이) ti로 적을 수도 있으며, (issue에서와 같이) ss로 적을 수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글은 입으로 내는 소리와 적는 기호 완벽하게 일치 

이런 류의 셀 수 없이 많은 예는 영어를 적기가 심지어 교육받은 어른들에게조차 끔찍하게 어렵다는 것을 예증한다. 지금 일 학년인 쌍둥이 아들들을 통하여 필자가 거듭 발견한 바와 같이, 영어 맞춤법은 기본 법칙을 (그런 것이 있기나 하다면) 배운 어린이들이 적힌 낱말들 다수를 읽을 수 없거나 들은 낱말들을 적을 수 없을 만큼 일관성이 없다. 덴마크어를 적는 것도 어렵다. 중국말 적기와 남한 말 적기는 더욱 어렵고, 일본말은 가장 어렵다. 

그러나 다 그렇진 않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들은 낱말들의 철자를 적지 못할 때가 자주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적혀 있는 낱말의 대부분을 읽을 수는 있다. 핀란드와 북한에서는 입으로 내는 소리와 적는 기호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므로 ‘그 말의 맞춤법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이 사실상 있을 수 없다.” 

그는 덧붙여 “세종대왕이 만든 28개 부호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알파벳이며 가장 과학적이고 초이성적(ultrarational)인 문자체계인바,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다. 둘째, 자음부호 형체는 그 소리가 날 때 입술, 입 혀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셋째, 이들 부호는 수평 또는 수직으로 묶어져서 네모 꼴 안에 든 음절 문자가 된다.”며 한글이 최고임을 설명하고 있다. 

보통 영어 알파벳이 가장 뛰어난 소리글자요 그 로마자를 쓰는 미국말이 가장 발달된 말로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었다. 같은 발음도 여러 글자로 적기도 하고, 같은 낱글자도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발음이 된다는 것이다. 재미동포 박양춘 선생은 “ 로마자 a는 아, 에, ... 들 여덟 가지로, o는 아홉 가지로 소리 나는데 한글 ㅏ는 아 하나로만 소리를 내고, 오우라는 이중모음은 o, au, aw...ow 등 11가지로 표기된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든 표기와 발음체계가 정확하고 과학스러워 로마자보다도 훌륭한 한글을 세계글자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다이아몬드 말고도 하버드대학 교수인 라이샤워 박사, 네덜란드의 언어학자인 보스 박사, 영국의 언어학자인 샘슨 박사, 미국 매어리랜드 대학교 언어학자인 램지박사,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 교수로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삿세 박사, 전 일본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인 우메다 히로유키 박사,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실증을 들어 말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에서는 한글을 인류가 발명하거나 발전시킨 세계적 기록문화 유산으로 지정했
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문맹퇴치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이라고 지었다. 

세계 유명 언어학자들 ‘한글이 최고의 언어’ 극찬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자와 정치인, 대기업주,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잘난 글자를 가지고도 그것을 잘 갈고 닦고 빛내어 세계 으뜸가는 문화를 창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중국 한자만 섬기고, 미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자고 하면서, 가장 비과학스럽고 미개한 일본의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최고라고 생각하니 한심스럽다. 

일제 식민지 한자혼용교육에 물든 일제 지식인이 제 편익만 생각하고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고, 미국문화 숭배자들이 미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자는 것은 한글 역적행위이고 겨레말과 겨레 얼을 죽이는 민족 반역행위이며 국어독립을 가로막는 죄악이다. 한자 고집은 ‘죽
은 아들의 알불 만지는 것’이고, 미국말 섬기기는 ‘남의 떡만 큰 것’으로 알고 하는 못난 짓이다. 

한글이 살고 빛나려면 할 일이 너무 많다. 한글만 쓸 거냐, 한자를 섞어 쓸 거냐는 말싸움은 너무 많이 했다. 이제 그런 말싸움에 국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한문나라인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수십 년 동안 일제 식민지였기에 중국과 일제 한자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한자는 지는 해요 한글은 뜨는 해다. 큰 흐름은 한글세상이니 한글을 빛내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알아듣기 힘들고 혼란스런 한자말을 될 수 있으면 토박이말로 바꾸고, 새로 만들어 쓰자. 요즘 자꾸 늘어나는 미국말도 그렇다. 한국말이 북쪽 말보다 불편한 것은 한자와 미국말을 많이 섞어 쓰기 때문이다. 

일제 지식인과 그 제자들은 말할 거 없고, 정부는 멀리 후손과 겨레의 앞날을 생각해 오늘 우리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글세상을 만들어 우리 한글 자주문화를 꽃피우고 세계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하자. 지금부터 정부와 학자와 언론과 국민이 함께 한마음으로 한글세상을 만들려고 힘써도 온전한 한글전용, 한국어 독립은 50년에서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수천 년 동안 쓴 한자와 일제가 철저하게 길들인 한자말, 전문용어를 다듬고 고르고 길들이기가 손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쓴 한자말을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많은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자를 고집하지 말고, 한글세상 터전을 닦아 후손에게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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