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슬로건.JPG

 금요일 수업 과제를 준비하면서 영혼과 신앙관에 대한 그 동안의 혼돈을 일부 정리했었습니다. 짐멜이 답은 준 것으로 생각했으나, 우리의 함석헌 선생님(류영모 선생님 제자)이 체계적으로 답을 내리셨었네요. 방향성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 계보를 파서 우리 모두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01] 다음 시간 <짐멜의 모더니티> 발표순서

12. 감각의 사회학 (신)
13. 감사, 사회학적 접근 (조)
14. 신의, 사회심리학적 접근 (황)
15. 편지, 비밀의 사회학 (송)

<4부> 인간의 내면적 삶과 형이상학
16. 모험 (전)
17.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 (김)
18. 비밀, 사회심리학적 스케치 (신)
19. 분별의 심리학 (조)
20. 다리와 문 (조)

[02] 우리의 얼굴에는 우리의 영혼과 과거의 모습들이 보여집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얼굴에서도 우리는 예전부터 동일한 지식들을 얻어내왔었습니다.  

01. 소를 양으로 바꾸는 까닭 from [강의] by 신영복

 신은 호흘(胡齕)이라는 신하가 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왕께서 대전大殿에 앉아 계실 때 어떤 사람이 대전 아래로 소를 끌고 지나갔는데 왕께서 그것을 보시고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물으시자 그 사람은 “흔종(釁鍾)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왕께서 “그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까요?” 그러자 왕께서는 “흔종을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왕도를 실천할 자질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한 질문입니다. 먼저 제선왕의 신하인 호흘한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부들부들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 없어서 양으로 바꾸라고 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인인지심 (不忍人之心)'이 제선왕에게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맹자의 질문에 대한 선왕의 답변과 맹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왕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맹자 : 그런 마음씨라면 충분히 천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인색해서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신은 왕께서 부들부들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왕: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백성도 있을 것입니다만, 제齊나라가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내가 어찌 소 한 마리가 아까워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죄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맹자: 백성들이 왕을 인색하다고 하더라도 언짢게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바꾸라고(以小易大) 하셨으니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어찌 왕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하게 여기셨다면 (소나 양이 다를 바가 없는데) 어째서 소와 양을 차별할 수 있습니까(牛羊何擇焉)? 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재물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닌데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으니 백성들이 나를 인색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군요. 맹자: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곧 인(仁)의 실천입니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금수(禽獸)를 대함에 있어서 그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그 죽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읽도록 하겠습니다. 맹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동물에 대한 측은함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측은함으로 말하자면 소나 양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소를 양으로 바꾼 까닭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보고(見), 만나고(友), 서로 안다(知)는 것입니다. 즉 ‘관계’를 의미합니다. 

02. 철부지급

 어떤 사태나 처지가 매우 곤궁하고 긴박할때 이런 이야기가 인용된다. 장자(莊子) 외물편에 나오는 ‘철부지급(轍魚+付之急)’이라는 고사 말이다. 글자 그대로 수레바퀴 자국 속 붕어의 만큼이나 형편이 위급하다는 것이다. 학철부어(水+固轍魚+付魚) 혹은 철중린(轍中鱗)이라고도 하는데 언제 말라버릴지 모르는 바퀴 자국에 괸 물 속 붕어의 처지를 비유한다.  이 고사에는 이런 유래가 전해 온다. 집안이 가난한 장주(莊周)는 어느 날 위나라의 문후(文侯) 감하후(監河侯)에게 양식을 꾸러 갔다. 그러나 장주가 쌀을 언제 갚을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친 그는 “빌려 드려야지요, 다만 며칠 후 영지에서 세금이 걷히면 그때 300금을 드리지요”라고 한다. 당장 끼니가 걱정인데 참으로 한가하고 속 터지는 얘기다. 쌀 한톨 어림 없다고 야박하게 내치는 것이나 나을 것 하나 없는 말이다. 그 속내를 모를리 없는 장주는 이런 말로 꾸짓는다. “내가 이리로 오는 도중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속에 붕어 한 마리가 애타가 부르고 있었소. 붕어는 자신이 동해의 신하인데 물 몇 바가지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소. 나는 곧 오나라 월나라 왕에게 유세를 떠나는데 그때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했소. 그러자 붕어는 필요한 것은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거늘 그런 태평한 소리만 한다며 건어물전에 가서 나를 찾는게 낫겠다 했소.” 당장 연명이 절박한 사람에게 후일을 약속하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나를 박대했던 얼굴을 보면 ...) 

03. 눈 생김새로 본 성격적 특성들 : 예로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눈의 생김새를 보면, 그 사람의 면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눈이 사악하게 생겼으면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다. 반면에 얼굴은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웃는 눈에 부드러움이 깃들면 우리는 그에게서 진실성을 느끼게 된다. 눈의 표정은 언어 이상의 것을 상대에게 전하며, 그때그때 마음의 움직임이나 감정을 순간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눈은 윤택하게 빛이 나는 상태가 가장 좋다. 흐리멍텅한 눈은 아무리 잘 생겼어도 좋은 것이 못 된다. 눈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가령 복수심에 불타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면 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신들린 사람의 눈을 보면 물기가 심하게 흐른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사람은 눈동자를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런가 하면 깊은 생각과 명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눈빛이 그윽하고 안에서 빛이 난다. 책을 많이 읽거나 어떤 일에 집중하는 사람의 눈 또한 총명하게 빛난다. 반면에 희망이 없이 사는 사람의 눈에서는 빛이 없다. 이제부터 몇 가지 눈의 생김새에 따른 특징들을 열거해보기로 한다. 물론 너무나 다양한 눈의 생김새를 다 묘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대략 다음의 어디엔가 가까운 눈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볼 때 그 눈의 생김새에 따라 삶의 방식도 각기 다른 것이 사실이다.

01. 매섭고 큰 눈.jpg

(1) 매섭고 큰 눈

- 큰 눈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 하나는 날카롭게 쏘아보는 듯한 다소 위압적인 눈이다. 
- 날카롭게 쏘아보면 때론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 이들은 투지가 넘치고 어떤 어려움에도 맞설 당찬 기세를 가진 사람들이다.
-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강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지지자를 모을수 있다.
- 초년운이 좋아서 비교적 일찍 출세하는 사람이 많다. 
- 거울을 보면서 매서운 눈초리를 다소 부드럽게 바꾸면 더욱 좋을 것이다.

02. 크고 온화한 눈.jpg

(2) 크고 온화한 눈 
- 큰 눈의 또 한 가지 타입은 사교적이고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눈이다. 
- 이들은 기회 포착이 빠르고 재빠른 상황 판단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 실행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말을 한다.
- 표현력이 뛰어나며 표정이나 화술, 제스처, 목소리의 매력 같은 것으로 인기를 얻기 쉽다. 
- 탤런트 중에서 주로 미남 미녀 역을 맡는 사람들의 눈이 크다. 
- 역시 초년운이 좋고 일찍 출세할 수 있는 유형이다. 

03. 좌우가 가지런 하지 않은 눈.jpg


(3) 좌우가 가지런하지 않은 눈 
- 남성으로서 왼쪽 눈이 작은 사람은 공처가이며, 오른쪽 눈이 작은 사람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다. 
- 여성의 눈이 이런 경우에는 남편 때문에 고생을 심하게 겪을 수 있다. 
- 눈의 좌우가 가지런하지 않은 경우는 좋지 않다. 
- 좌우 눈의 언밸런스는 태아였을 때 어머니의 마음 상태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 어머니의 마음이 언밸런스하면 자식의 눈에 그대로 반영된다. 

04. 아래 삼백안.jpg


(4) 아래 삼백안
- 검은 눈동자와 아랫눈꺼풀 사이가 희게 벌어져 있는 눈을 아래 삼백안(三白眼)이라고 한다. 
- 이상은 높고 지성도 있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 아래 삼백안을 지닌 사람은 전력을 다해 일을 성취하려고 하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다. 
- 한번 목표를 정하면 기어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굉장한 집념이 있다. 
- 사람을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상대방에게 미움을 사거나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 

05. 냉혹한 표정의 삼백안.jpg


(5) 냉혹한 표정의 삼백안 
- 사회에서 소외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잔혹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 살인범이나 상해범 중에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많다. 
- 아래 삼백안에 냉혹한 표정이 깃들어있는 사람은 사회에 잘적응하지 못한다
- 성질이 비뚤어져서 남의 선의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 한번 세운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마는 집념의 소유자 이기도 하다. 
-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성품에 따라 극과 극의 인생을 살기 쉽다. 
- 최근 부산에서 검거된 성폭행범 피의자의 눈을 보면 삼백안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06. 사방 삼백안.jpg

(6) 사방 삼백안 
- 도덕성이 결여되어 상식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 
- 특히 사방 삼백안은 폭력, 횡령, 강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 지적인 데가 전혀 없이 동물적 본능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 감정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 신앙생활이나 자기 수양에 열중하고, 평소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07. 위 삼백안.jpg


(7) 위 삼백안 
- 꾀가 많은 권모술수형 지략가의 눈이다. 
- 자신의 꾀를 과신하여 남을 무시하기 쉽다. 
-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성향이 있다. 
- 차가운 인상 때문에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면이 있다. 

08. 눈이 흐리멍텅한 사람.jpg


(8) 눈이 흐리멍텅한 사람
- 눈이 흐리멍텅하고 움직임이 둔한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모든 것이 둔하다. 
- 흐리멍텅한 눈은 설사 눈 모양이 잘 생겼다고 해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 목표의식이 없고 무기력해 보인다. 
- 무능해보여서 어떤 사람에게도 신뢰를 주기 어렵다. 

(9) 눈이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 
- 경계심이 강하고 불안한 사람이다. 
- 눈이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 동요하거나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증거이다. 
- 누군가에게 쫓길 일을 했거나 초조함을 떨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다. 

10. 작은 눈.jpg


(10) 작은 눈 
- 성실하고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이다. 
- 관공서나 기업의 중견 간부가 되어 착실하고 견실하게 조직을 떠받치는 사람들이다. 
- 남과의 교제에 서툴러서 인생을 즐기는 면은 적다. 
- 초년보다는 근면과 노력으로 중년 이후에 운이 열리는 대기만성형이다. 

11. 안구 자체가 튀어나온 눈.jpg


(11) 안구 자체가 튀어나온 눈
- 관찰력이 뛰어나고 남의 기분을 꿰뚫어보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 금붕어처럼 안구가 튀어나와 있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개방적이다. 
- 세심하여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으나 마음이 약하다. 
- 무슨 일이나 중도에 좌절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 윗눈꺼풀이 두터운 사람은 대단한 활동가이며, 일에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다. 
- 이들은 재계나 정계 등에서 영웅호색하는 면이 있다. 
- 샐러리맨으로서 맹렬사원이 되거나 독립해서 상업을 하면 잘할 스타일이다.

(12) 움푹 들어간 눈 
- 끈질기게 맞붙어서 일을 성취하는 성격이다. 
- 조직에서는 뒷전에서 실적을 쌓아 올릴 때가 많다. 
- 이해심 많은 상대를 만나면 크게 된다. 
- 자기표현이 서툴고 말도 잘 하지 못하며 표정 변화도 별로 없다. 
-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에는 부적합하다. 
- 주의 깊고 참을성도 강하지만 교제에 서툴다. 
- 묵묵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공하는 만성형이다. 

13. 눈과 눈썹 사이가 넓은 사람.jpg


(13) 눈과 눈썹 사이가 넓은 사람 
- 눈과 눈썹 사이가 넓으면서 살이 붙은 사람은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인기를 많이 끈다. 
- 인기 연예인 중에 이런 눈의 소유자가 많다. 
-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마음이 넓은 편이다. 
-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도 노력하여 성공한다. 
- 다만 이 부분의 살집이 엷은 사람은 호인 소리는 듣지만 남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 눈과 눈썹 사이가 넓은 상태에서 삼백안인 경우에는 흉상으로, 많은 여성들을 울릴 수 있다. 

(14) 눈과 눈썹 사이가 좁은 사람 
-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대기만성할 스타일의 눈이다. 
- 인품은 소탈하고 건실하다. - 완전 노력형이다. 
- 성실해서 이런 사람을 데리고 일하면 믿고 맡길 수 있다. 

15. 가느다란 눈.jpg

(15) 가느다란 눈 
-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눈이다. 
- 통찰력은 있으나 침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기 쉽다. 
- 이 모양으로 가로로 긴 눈이라면 친구가 적은 편이며 친구도 가려서 사귀는 형이다. 
- 성공할 인상의 하나이지만, 때론 남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성공이 되기 쉽다. 
- 여성이라면 차분하게 애정을 지켜나가는 사람이다. 
- 가느다랗고 작은 눈이라면 알찬 살림으로 큰 불편 없는 생활을 할 것이다. 

(16) 눈을 마주 보지 못하는 사람 
- 상대방과 이야기할때 눈을 마주 보지못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다
-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해도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음을 의미하므로 상대방에게 기선을 제압당하기 쉽다.
- 편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연습을 부단히 하는 것이 좋다. 

17. 위로 치켜오른 눈.jpg


(17) 위로 치켜 오른 눈 
- 적극적이고 고집이 센 성격이다. 
- 위로 치켜오른 큰 눈이라면 성미가 불 같지만 성격은 단순하다. 
- 자아의식이 강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주면 의외의 도움을 받는다. 
- 여성으로서 이런 눈을 가졌다면 자아의식이 강하고 권력 지향성이 강한 성격이다. 
- 무슨 일에나 적극적이고 고집이 세어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린다. 

18. 아래로 처진 눈.jpg

(18) 아래로 처진 눈
-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 아래로 처진 큰 눈이라면 정계나 재계에서 성공할 소질을 지니고 있다. 
- 여성이라면 옳고 그릇됨을 분명히 따져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다. 
- 목표를 크게 세우고 자신을 계속 단련시켜야 한다. 

(19) 눈이 웃지 않는 사람 
- 이런 사람은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 냉정하게 상대방을 관찰하고 마음이 차갑다. 
- 항상 마음을 놓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 얼굴은 웃고 있는데도 눈이 조금도 웃지 않는 사람은 냉정하고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04.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정한 동물들 

기독교 관점 부정한 동물들.jpg


[03]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내용 요약

08. 얼굴의 미학적 의미 : 인간의 영혼이 가장 명백하게 표현되고 내적인 통일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얼굴이며, 얼굴은 대칭의 형식적 원칙과 개별화의 미학적 종합이다. 얼굴은 개별화를 실현시키면서도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대칭의 형식 속에서 종합화를 이룬다. 인간 정신의 고유한 업적은 이 세계의 요소들이 지니는 다양성에 내적으로 통일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 

09. 양식의 문제 : 양식은 개별성과 혼합되거나 개별성을 몰아내거나 대변하는 보편성의 원칙이다. 특히 양식은 보편적 삶의 법칙 아래 놓인 광범위한 감정의 범주들을 지향하며 우리에게 평온함과 안정감을 준다.

10. 알프스 여행 : 알프스의 미학적 의미는 황량한 빙하의 고독함으로부터 오는 환희, 즉 삶을 초월한 높은 환희의 감정이었지만, 자본주의는 무엇이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환희를 향유할 수 있는 듯한 착각을 제공했다. 자본으로 포장된 교육은 인간의 본질에 접근과는 시종일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린다. 우리가 얻은 것은 순간적인 느낌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적 효과를 위해 체험학습을 가고 여행을 가지만 돌아와서 너무 좋았다라는 한마디를 남기는 것과 유사하다. 

11. 식사의 사회학 : 식사의 발달 과정은 비극적인 것이 지닌 숙명과는 정반대가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열등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자신을 통해서, 자신을 넘어 성장하며, 또한 심연은 심연인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신적이고 더 의미 있는 것이 위치한 정상으로 고양되기 때문이다. 

[04] 오늘 얻은 인식의 지평확대 개념들


 생사학은 인간의 죽음과 생명의 문제를 다룬다. 서양에서는 죽음의 과정과 의미에 대한 사색과 연구가 ‘타나톨로지 (이후 죽음학)’(Thanatology)라는 학문으로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왔다. 서양의 죽음학은 죽음과 생명을 대립 관계로 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존재의 불안을 극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더 높은 차원에서 반추하고, 그 긍정성을 모색하는 학문을 지향해 왔다. 다른 한편 동양에서는 죽음을 생명 순환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 있다. 이에 따라 서양의 “죽음학”을 동양에서는“생사학(生死學, life and death studies)” 또는 “사생학(死生學)”으로 재정의하고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생사학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의학과 종교, 철학,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 사회복지 등 다양한 범주에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전개하는 융합학문이기 때문에 본 연구소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학제적 연구를 통해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탐색하는 긍정의 학문을 지향한다. 

 삶의 긍정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생의 원동력으로 죽음의 의미를 접근하는 학문으로 “생사학(生死學, life and death studies)”의 전망을 설정한다. 또, 한국적 생사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 체계가 융합하여 진화하는 학문과 실천적 사회 공헌 사업을 추진코자 한다.


02. 지학순 주교님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박정희


김수환 추기경.jpg


(02) 김수환 추기경님과 박정희 대화 

박정희 : 추기경님, 종교란 마음의 정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종교가 정치, 경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가는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정교분리 원칙은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부 인사나 정책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문제에서 인간 기본권이 유린당하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 사건 중 (2004. 2월 1일 평화신문)

 1974년 4월 유신정권은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4호'를 발령했다.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대량 구속했는데 이 가운데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포함돼 있었다. 교회와 국가권력이 정면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1974년 7월 10일 청와대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이 만나 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왜 사제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지' 따져 물었고, 김 추기경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름 회담이 만족스러웠던지 박정희는 선물(?)로 지학순 주교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풀려 나온 지학순 주교는 '죽음을 각오하고 독재권력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내보였다.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결국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지 주교는 선언한다. "본인은 양심과 하느님의 정의가 허용치 않음으로 비상군법회의 소환에 불응한다. 유신헌법은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 의도와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 크게 화를 낸 박정희는 지 주교를 구속했고, 결국 양심을 고백한 죄로 지 주교는 유신정권으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게 된다. 교계는 거세게 들끓었다. 가톨릭 각 교구는 시국기도회를 열어 유신정권 탄압을 규탄했다. 피가 끓는 젊은 사제들은 타 교구 시국기도회까지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학순 주교는 구속된 지 이듬해인 1975년 2월 석방되었다. 다음은 그와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후일담이다. 

 "지 주교님은 옥고를 치르고 이듬해(1975년) 2월 15일 석방되셨다. 그 사건을 겪는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교회분열이었다. 젊은 신부들은 지 주교님 사건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9월 26일 시국선언을 하고 명동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사제들이 주도한 최초의 가두시위였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는 연장 신부들은 반대편에서 '구국사제단'을 만들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회가 이념논쟁에 휘말리는 형국이었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 사건 중 (2004. 2월 8일 평화신문)

지학순 주교 양심선언.jpg


 김 추기경 설명대로 1974년 유신정권과 극명하게 맞서 구속되었던 지학순 주교 사건으로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다. 사제단의 정신적 지주는 지학순 주교였다. 그런 행동에 반대하는 반대세력이 가톨릭 내부에도 있었다. 일부 나이 든 사제들은 '구국사제단'을 결성해 내부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03. 다니엘의 독일 친구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방송인들의 모국친구들이 난생 처음 한국을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한국 문화를 통해, 우리가 놓쳤던 한국 문화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jpg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02.JPG


04. 기간제 교사의 설움 : 사실, 사립 초중고에 있는 선생님들을 생각해오지 못했네요.

(01) 선생님 빗자루로 때리고 욕설에 침 '막장' http://me2.do/GLfRHwes : 2015년 12월 23일,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39세)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니? 애색히가 선생을 때려? 사람을 때려? 라는 생각에 좀 알아봤다. 경기도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라고만 언론에 알려졌고 이 때문에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인성이 바닥을 쳤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이천제일고등학교 1학년 3반 기계과 즉, 실업고등학교(공고)였다. 사건 경위는 이렇다. 3명의 학생이 자신들은 (땡땡이를 치지 않고)교실에 있었는데, "무단 결석 처리 됐다." 기간제 교사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교실에 비치된 빗자루로 기간제 교사를 폭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머리, 팔 몸을 수차례 가격 및 욕설(신발놈아, dog색히야 등)을 퍼부었다. . 말로 하자는 기간제 교사를 계속해서 폭행했고 쓰러진 기간제 교사에게 침을 뱉기까지 했다고 한다. 같은 반 애색히들도 문제였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 할 능력도 주제도 못되는 3진들은 '선생님 힘내세요~ 특종이다.' 로 사태를 방관했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다른 교사에게 발각되어 오늘 언론에 보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해자는 (좌측부터)김재윤, 안용민, 유광열 3인으로 이미 전화번호, 사진, 페이스북 계정 등의 신상이 털린 상태다. 고교 1년이면 한국 나이 17살짜리들이 한국 나이 40세의 기간제 교사를 욕하고, 조롱하고, 침을 뱉고, 때렸다는 얘기다. 기간제 교사는 현재 아이들의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부처스러운 면모를 보였고 학교측에서는 가해 학생 범죄자 3명 및 동영상을 유포한 2명의 학생에 대해 처벌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의 자의인지 타의인지(보통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이들이 실업계 고교에 '돈을 내고' 교사로 취직한다.)는 모르겠고, 기간제 교사의 바람과 달리, 이 범죄자들에 관해서는 집단 구타, 집단 폭행 죄로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 상관 없이 처벌 대상이며 경기도 이천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02) 기간제 교사 폭행사건, 해결의 주인공을 묻다 : 정부는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순직한 교사, 한마디로 참교사이기에 충분했던 이들에 대해 정부는 ‘교사’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부려먹을 때 정규직 이상으로 부려먹으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은 완강히 거부하는 자본가들의 속성 그대로를 빼닮았다. 정부와 자본가들의 이런 태도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교육에서도 이런 사회의 모습은 거울처럼 투영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터진 이른바 기간제 교사 빗자루 폭행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 뿌리칼럼 160203기간제교사.pdf

05. 에포크 수업 (주기집중 수업) : 발도르프 학교는 리듬을 중요시 여기는데 하루, 일주일, 한달, 절기, 계절 일년의 주기에 따라 교육 내용을조작한다. 이 리듬을 고려한 것이 바로 에포크 수업이다.

- 동일한 과목을 매일 2시간씩 3주에서 5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슈타이너 교육의 독특한 수업방식이다.
-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어떤 교과를 주요 수업으로 정하고 이 과목을 매일 오전 첫 수업으로 해서 약 100분 동안 공부한다. 이런 방식으로 한 과목을 3주에서 길게는 6주까지 학습한다.
- 한 과목의 에포크 수업이 끝나면 다른 과목을 선택해 다시 수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수업을 행한다.
- 에포크 수업은 대개 언어(외국어)와 예술 교과목을 제외한 수학, 역사, 지리, 과학 등 주요 과목 전체에 걸쳐 행해진다.  
- 수업은 1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담임교사가 대부분의 교과를 가르치고 9학년부터는 과목별 전문교사에 의해 수업이 진행된다.
- 에포크 수업의 내용은 각 담임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예를 들어 7학년의 경우 1년 동안 원예, 역사, 기하, 국어, 물리, 지리, 화학, 역사(여행), 수학 등 각 과목의 에포크가 3-6주간씩 차례로 이뤄진다.
- 같은 과목이 대략 1년에 두 번 정도 반복된다.

 슈타이너는 아이의 체내 리듬이 40분이나 50분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다르며, 특히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는 집중력이 매우 높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시간에 100분에 걸친 에포크 수업을 행한다. 아침을 여는 활동은 잠들어 있는 감각을 일깨워 사고의 힘이 필요한 배움의 과정으로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다. 실내뿐 아니라 실외에서 간단한 유리드미나 체조, 몸동작과 운동을 행하기도 한다.
 
 슈타이너 교육에서는 '리듬'을 강조한다. '시간의 리듬'을 고려하여 교육이 행해지는데 하루, 일 주일, 계절, 일 년의 시간에 따라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는다. 또한 서로 성질이 다른 리듬을 가진 교과목, 예를 들어 말, 음악, 동작이 갖는 리듬을 고려해 가르친다.
 
시간과 교육내용의 리듬감 외에도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각자의 리듬도 교육적 고려의 대상이다. 리듬을 고려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아침, 점심, 저녁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하루 동안에 깨어 있음과 잠자기, 그리고 활발한 상태와 차분한 상태를 번갈아 경험한다고 한다.
 
 학습한 것을 가능한 한 기억하게 하려는 교육과 달리 슈타이너는 '잊어버린다'는 사실이 교육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부한 내용은 아이 내부의 무의식의 영역 속에서 천천히 소화되어 완전한 지식으로 변용돼 가는 것이다.

06. 동의택견 :  연개소문이 만들어내 평안도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택견이라 한다. 원래 이름은 수밝기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남한에 임태호라는 전수자가 유일하게 동이택견을 전수받아 아산에서 초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박성호(현재 동이택견의 수장)분께서 7살 때 당시 98세였던 임태호 선생이 희안한 동작으로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동이택견을 전수받았다. 임태호 할아버지는 110세 때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박성호 회장은 그 이후 대전에 정착하여 동이택견을 전수하기 시작해 홍천을 거쳐 현재 서울 관악구에서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 발차기로 다 격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3&v=W9YVG8LNMlY

07. 퀘이커 :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 1624년 7월 ?일 ~ 1691년 1월 13일)가 1647년 몸이 진동하는 영적 경험을 한 후 창시했다는 개신교의 한 종파이다. 퀘이커라는 명칭은 1650년 영국의 치안판사 베네트가 조지 폭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몸을 떠는 자들'이라 조롱한 데서 비롯되었다. 청교도 혁명 시대를 통틀어 사회적, 종교적으로 크나큰 지각변동을 겪었던 영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의 경우 장로회)가 군림하는 기성 종교에 대한 큰 회의가 몰아쳐 브라운파(Brownists), 아담파(Adamites), 개간파(Diggers), 가족애파(Family of Love), 제5왕조파(Fifth Monarchists) 등 수많은 기성 교회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온 독립 종교적 파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영국 혁명의 광풍이 지나가고, 사회도 안정화되어 가면서 탄압과 회유, 재포섭 등을 통해 길던 짧던 그 명맥이 끊겼던 반면 퀘이커들만은 거의 유일하게 거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교세를 유지하면서 현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 '내면의 빛'이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평등, 정의 평화와 같은 선(善)을 이루고자 하였다. 1947년 영국 퀘이커 봉사 협회와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가 종교 단체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친우회라고 불린다. 현재 약 2-3만 명의 교도가 있다고 알려졌다.


함석헌.jpg
(다음의 글은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함석헌님과 당시 [마당]지의 한용상님과의 사이에 있었던 대담입니다. 신앙의 한 큰 선배로서 그분의 신앙과 퀘이커에 대한 이해를 알고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길지만, 우리가 그동안 공부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피엔스 12. 종교의 법칙 + 짐멜 13. 감사)

한용상 : 함선생님을 뵙게 되니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만은 오늘은 종교에 대해 주로 말씀 좀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함선생님은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으나 때로는 기독교를 초월하신 인상을 받게 되고, 또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무교회주의자란 건 잘못 알려진 것입니까?
함석헌 : 예. 그 전에 무교회주의였으니까 그렇지요. 꼭 무교회주의였다는 것보다 그저 일본서의 사귐 때문에 그랬었지요. 교리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야요, 교리도 한두 가지는 맘에 들지만.

한용상 : 함선생님이 퀘이커교도이신 줄로 아는데 퀘이커교 교리가 무교회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함석헌 : 우리(퀘이커교도)는 교리가 없고 제도도 없어요. 전연 없을 수야 없지만, 가능한 한 그것 없이 하려는 것이지요, 왜냐 하면 한번 제도나 교리가 결정이 되어 놓으면 변경이 잘 안 되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달라지고 시대도 달라지는데…….

한용상 : 사실 제도나 교회 때문에 본래의 기독교 정신이 구애를 받거나 생명력이 제약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함석헌 : 그렇지요, 퀘이커는 원래 대단히 개방적이야요, 극단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기독교란 말을 꼭 해야 되나 하고 주장하고 있으니까니, 종교적인 생각에 대해 가능한 한 ‘가타’, ‘그르다’ 그러지 않지요.

한용상 : 퀘이커교는 가장 규모가 작은 기독교 교파 가운데 하나로 압니다만, 어떻게 이 교단과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까?
함석헌 : 6.25직후 우리 나라 복구 사업을 하는데 퀘이커교에서 영/미 합작으로 수십 여명의 사람을 보내 왔었지요, 그들이 군산에서 파괴된 도립 병원을 복구했는데 여기에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참가해 처음으로 퀘이커를 알게 되었었지. 그 다음 유엔에서 한국 부흥단을 파견했는데, 여기에 퀘이커 사람이 서너 명 있었지요.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로부터 시작이 된 거지요. 그래서 1962년에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용상 : 퀘이커교는 제도나 교리가 없다는 것이 곧 교리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교회나 예배형식도 없는지요?
함석헌 : 예배도 형식 없이 하자는 것이나 전연 없을 수는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교회란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모임(meeting)이라고 하지요. 성직자라는 것도 없고, 목사 신부라는 이름도 없으며 조직 자체가 없지요. 예배 시간에는 강단이 있어서 격식을 차려 앉는 법도 없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앉아서 한 시간 동안 명상과 침묵하는 거야요.

한용상 : 설교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함석헌 : 성경공부는 다른 시간에 하지요. 예배는 명상으로 하다가 감동을 받은 사람은 자기 맘대로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를 수 있으며, 성경을 읽고 싶으면 읽을 수도 있고 감동/감화를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한용상 : 기독교 종파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신앙을 가진 것 같군요.
함석헌 : 예. 그렇지요.

한용상 : 남/녀 동등권 문제가 제일 먼저 퀘이커교에서 나오는 등 앞질러 가는 운동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함석헌 : 남녀 동등 문제도 퀘이커에서 나왔고, 노예 해방 문제도 제일 먼저 제안했었지요. 그 다음 퀘이커 교도들이 감옥에 많이 드나들면서 인간 대접을 아니 한다고 항의하고 감옥 제도를 개선하자는 발언도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들에게도 너무 인간대접을 아니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책을 부르짖는 등 이런 착상을 먼저 해왔지요. 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어 그 운동이 잘 진행되어 가면 그들은 자기네들 공으로 내세우지 않아요.

한용상 : 평화운동과 반전운동도 퀘이커에서 제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함석헌 : 퀘이커가 수는 많지 않은데 이 운동을 굉장히 진지하게 벌이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평화증언(Peace Testimony)'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대전 때에도 크게 활동했습니다. 한 예를 든다면, 적국에도 모금을 해 보내고, 적국의 부상자들을 위해 의약품을 보냈지요, 러시아에 대해서도 그랬고 베트남 전쟁 때도 적국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의약품을 보내곤 해서 미국 정부로부터 미움을 샀지. 그러나 그래야 된다는 주장을 갖고 계속하고 있지요.

한용상 : 투쟁과 분쟁 또는 전쟁까지도 평화의 범주로 옹호되는 예도 있지 않습니까? 가령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는 둥 평화의 개념도 여러 가지인데….
함석헌 : 그 분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고 한 것은 이런 전쟁이 아니고 사상적으로 충돌되는 것을 말한 것이지. 본래가 예수는 아주 평화주의자야요. 성경을 제대로 옳게 보기만 하면 모든 면에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한데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전쟁 문제를 참되게 다루지 않고, 전쟁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들은 모두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만 퀘이커는 이를 있을 수 없는 생각이라면서 거부하지요.

한용상 : 집총조차 거부한다지요?
함석헌 : 제가 듣기에는 1차 대전 때 양심적 거부라 해서 집총을 거부했답니다. 그걸 듣고 나도 놀란 사람인데, 서양이 우리들보다는 생각이 나간 나라들이니까 순수한 종교적 동기로 보아주어 위생병으로 돌린다든지 다른 걸 하도록 허락했답니다. 그런데 근래 와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퀘이커들 중에 군 복무조차 할 수 없다. 즉 ‘집총만 안 하면 된다는 식’의 미온적 방법으로만 할 수 없다면서 거부하고 자진해서 감옥을 택해 복역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야.

한용상 : 퀘이커교의 신학은 어떤가요? 우선 신관(神觀)이 전통적 신학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함석헌 : 하나님은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인격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일은 별로 없고, 꼭 무슨 유일신(唯一神)이라든가, 물론 유일신이지만, 삼위일체 신을 꼭 믿어야 된다는 그런 신학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적어요. 서양 사람에게서 난 종교 중에서 동양 사람에게 제일 가까운 사상이 바로 퀘이커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동양과 관계를 가진 어떤 경로가 있어서 그런지 이를 확실히 밝힌 사람이 없어요. 역사를 쓴 사람 중에 이런 분은 있지. ‘과연 퀘이커 사상이 어디서 왔겠느냐?’ 아마 유럽의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 소위 신비주의자들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한 사람은 있습니다. 유래를 찾으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유럽의 신비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말하는 그런 미스틱(mystic), 즉 성신 받고 병 고치고 하는 그런 식이 아니야요. 그들은 신비주의이면서도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영국으로 들어갔다는 거지. 퀘이커가 시작된 지역은 영국 서북부의 농민들 사이였대요. 그때 영국 국교가 극도로 부패하니까니 종교의 윗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부호요, 호화로운 살림을 하면서 사회의 못된 것은 다 갖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순수한 농민들 사이에 국교에 반대하는 그룹이 생겼는데 그 당시는 퀘이커뿐만 아니라 그런 잔 교파가 여럿이 일어났어요. 농민들은 순진하게 불만을 품고 ‘이런 것을 종교라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되어 그들의 가정에 칠팔 명씩 혹은 육칠 명씩 모여 자기네끼리 기도하던 것이 시작이라는 거야.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시커(seeker)다, 진리를 찾는 자다, 탐구자다, 그러면서 모였는데 되도록 참되게 살아 보자는 사람들이니까 감동적이었대요. 이 운동이 차차 커지는 가운데 젊은 지도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조지 폭스(George Fox)란 사람이었어요. 그는 종교적으로도 재주를 좀 가진 사람이었고, 순진하지만 좋은 의미의 리더쉽을 가졌던 모양이지요. 그 후에 국교에 반대하던 작은 교파들은 내려오면서 다 없어지고 유일하게 퀘이커만이 영국 국교의 폭력에 견디었지요. 근 70~80년 동안 감옥에도 갇히고 죽기도 하면서 끝까지 반대한 끝에 비로소 종교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는 거야요. 여러 종파 가운데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은 조지 폭스의 힘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되어 내려온 거죠.

한용상 : 조지 폭스(George Fox)를 창시자로 봐야겠군요?
함석헌 : 그렇지요. 그러나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아니야요. 농민들 사이에 자연히 일어났는데 이들은 대게 무식한 사람들이었지. 폭스도 남의 집 구두 수선공이었고, 그러나 솔직하고 정직하게 생긴 사람인데 장점이 있었나 봐요. 폭스는 상당히 번민을 했다 그래요. 왜 그런고 하니, 종교가 본래 뜻은 그렇지 않은데 왜 이렇게 타락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 그래서 회의를 크게 느끼고 캠브리지 옥스퍼드에 찾아가 신학자들에게 물어보아도 신통한 대답 안 해주고 그래서 ‘내 문제 해결해 줄 사람은 예수밖에 없다’하고 명상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야요.

한용상 : 폭스가 명상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은 싯달타가 불교의 진리를 깨우친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독교에서는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가 아직도 제기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봅니다만, 하나님은 노자 사상이나 불교를 통해서도 자기 모습을 계시(啓示)하는 것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많은데 함선생님은 어떠신가요?
함석헌 : 예, 저도 그래요. 언제부터 그랬나 하면 타골과 간디를 읽으면서 그렇게 되었지요.

한용상 : 퀘이커 사상에서는 이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함석헌 : 퀘이커는 그 후에 된 것이고, 타골을 읽으면서 보편주의적 입장에 서게 되었지요. 전에는 내놓고 보편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근년에는 공공연하게 어디서 강연을 할 때도 나는 한 종교의 특수성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보편주의에 선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지요. 꼭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다든지 그런 입장이 아니라는 말이야. 종교라는 것은 어느 종교나 자기네들을 절대화해서 우리에게만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은 성립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진리란 누구에게서도 완전히 표시될 수 없으니까. 적어도 도덕적인 종교 ― 잡교는 모르지만 ― 라면 진리야 하나이고 같은 거지 다른 거 있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종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입장이지요.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생각이 그런 사람이오.

 그 다음 내가 노자, 장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요. 왜 그렇게 되었나 하니, 우리 나라 역사가 고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들여다보아 오면서 노장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촌(內村)선생(일본의 무교회주의 신학자)의 사상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에 있을 때도 그에 대해 조금은 반발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동양적인 것 갖고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오. 꼭 그렇게 똑 떨어지게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주장이 그에게 있었지요.

한용상 : 노장 사상도 기독교만큼의 완벽한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노장의 도(道)를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있습니까?
함석헌 : 다른 종교들도 모두 자기네 종교가 완벽한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진리가 완벽하다 해서 내가 노장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야요. 내가 노장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가까워 오면서부터 느낀 거지요. 나는 그 당시 세계가 대전으로 치닫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이면 인간의 사회 살림이 근본에서부터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요. 내가 전문가는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차 대전이 끝나면 종전 모양 국경선이 달라져서 영토를 주고받고 하는 그런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생활 방식과 사회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달라지면 어떻게 달라지지? 종교의 역할이 뭐지? 종교는 새로운 문명이 나오려고 할 때 앞장을 서서 지도하려고 할까? 아니면,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모양으로 생산제도가 달라지면 의식이 달라지니까 거기에 적응해서 종교도 따라갈까? 후자라면 종교를 안 믿는다. 존재에 의해서 의식이 결정되어 갖고 나오는 놈의 종교, 그까짓 것을 믿으면 뭘 해. 문명에 앞장서서 인류를 건진다고 하는 것이 옛날부터 성현들이 말한 것이니까 그래야겠는데, 과연 기존 종교들이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40대 때 그 대답을 부정적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종교는 못 쓸 거다. 웬고하니, 지금 있는 종교는 내가 믿는 기독교까지 넣어서 정치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때는 밀착이라고 하지 않고 야합이라 그랬지요, 야합을 해 붙어먹으니까 종교의 본래 사명을 다할 수 없을 것이고, 인류를 구하려면 정치하고 손을 떼야겠는데 너무 깊숙이 붙어 놔서 그렇게 안 될 것 같았어요. 내 해석대로 하면 이 제2차 대전이란 뭐냐 하면 지금까지 있던 대국주의, 대국가주의, 혹은 국가지상주의라 해도 좋고, 이를 더 분명히 말하면 정부주의의 소산이야요. 이 국가들의 본질은 지배주의 정치니까. 본래 태고 적에 국가가 나올 때는 지배주의가 아니었단 말이야. 죽 내려오다가 농업을 멀리하게 되고 인류에게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노예 국가가 생기고 이렇게 하면서 지배주의가 형성된 거지. 이런 국가의 이상이 폭력을 가지고 세계 통일을 하자는 것이고, 이것이 이날까지 왔는데, 그러다 보니 제국주의로 바뀌어져서 1, 2차 대전이 되었지요. 그 제국주의의 모순이 폭로되어 이건 도저히 이 이상 갈 수가 없단 말이야. 만일 이 국가주의가 그대로 갈려면 충돌할 테고, 충돌하면 전쟁 날 테고 전쟁한다면 핵무기 밑에서 생명의 종자가 없어질 거니깐 이걸 건질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국가관이 새로워져야 된다. 이런 이야기지요.

 지배주의가 아니고 정말 민중을 위해 있는 국가라야지 민중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는 그따위 소리가 없어져야 된다는 것, 이것이 내가 두고두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뜻이라면 이를 위해서 동양사상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왜 그런고 하니 서양의 근대화라는 것은 시작이 될 때 르네상스 운동으로 출발되었거든요. 그것이 알프스 산을 넘어 북유럽에 와서 종교 개혁으로 되어 가지고 영국으로 가서 산업 혁명을 일으키는 것, 그 셋을 치지 않아요? 정관사를 붙여 더 리포메이션(The Reformation)이라고 할 때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 혁명이 합해야 됩니다. 이 형식대로 꼭 된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제 인류가 또 한번 고쳐 나려고 한다면 무슨 일로든지 생각이 달라져야 될 것 아니야? 그럴려면 서양의 고전은 써먹을 대로 다 써먹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을 이 이상 더 써먹을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동양에는 수천 년래의 고전이 있지요. 다만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는 종교 철학이 없다, 이렇게 봤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줄 알고 찾아보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제 우리가 이것을 캐어 내 봐야겠다는 것이 2차대전 후에 내가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워 본 적도 없고, 독학으로 한문을 공부했으니까 전문적으로 학구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나 살아가기 위해서 동양사상을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서 노자 장자 소리가 그 동안 많았지요. 이젠 보니까 그것도 상당히 많이 퍼져 나갔어요. (웃음)

한용상 : 기독교 신학에서도 사회 구원이나 역사 구원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지금 함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여기에 별로 기대할 것이 없는 것 같이 들리네요.
함석헌 : 우리 나라 기독교는 너무 후진성이래서, 너무 떨어진 사람들이라 못 쓰겠어요. 목사들이 아주 무식하기 한정이 없어요. 아이구!

한용상 : 너무 폐쇄적이란 말씀이신 것 같은데, 함선생님의 사상은 정말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불교의 해탈도 같은 걸로 보십니까?
함석헌 : 내가 신학 전문가가 아니니까 설명해 보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은 이름은 다르지만 자리는 같은 자리일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이지요. 내 식의 설명이지요. 기독교는 샘 민족의 종교인데 구약 때부터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 지대에서 살아 왔으니깐 그 지대가 사막이라 그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주 실천적으로 행동적으로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도는 자연의 멋이 굉장히 놀라운 곳이기 때문에 명상적으로 시작이 된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같은 종교인데 방향이 다르게 나타났어요. 인생에 대해 같은 문제를 놓고, 발표되는 것은 환경과 역사의 영향을 받아 다르게 나타난 거지.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죄 문제부터 시작하지 않아요? 죄다, 인간은 죄다, 그러니까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하지요. 이것을 인도 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무지다, 모른다, 모르니까 깨달아야 한다, 이런 건데, 발표되는 이름과 신학적인 명사가 다를 뿐이지 인간으로서 하는 자리야 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요. 이것은 내 식의 소리지요. 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충돌될 요소가 아무 것도 없다고 봐요. 아마 기독교에서 찾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리를 노자 장자가 말하면 도(道)라 하지 않겠느냐, 그걸 관념적으로 분석하면 차이도 있고 그럴는지 모르지만, 실지로 믿는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그 자리가 그 자리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지요.

한용상 : 저는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흔히 불교에서는 정의 문제에 너무 소홀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함석헌 : 정의 문제? 글쎄요, 김 동길 박사가 한 번 이야기했다가 불교도로부터 말을 듣기도 했지만, 뭐 그렇겠어요? 잘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갔디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내세관에 대해서도 각 종교의 그것들을 통일한 종합적인 신앙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함석헌 : 내세? 내세라는 것 나는 이것을 부정합니다. 그것보다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 영원 무한에 도달하는 거지요. 기독교에서는 죽어도 부활한다고 하는데, 이처럼 죽어 가지고 부활한다는 것보다 ‘예수는 부활해 가지고 죽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을 찾는 것이지요.

 종교의 세계에서 보는 차원과 과학자가 보는 차원은 달라요. 그것을 혼돈 말아야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과학적인 것을 새겨서 살려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과 종교를 혼돈하니까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했는데 진화론이 될 리가 있나’ 라고 논쟁하는 거야요.

 종교에서는 의미를 찾으니까 의미의 세계에 서는 거고, 과학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되어 왔는지 그 과정과 이치를 설명하자니깐 실험적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혼동해서 논쟁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지요. 이에 대한 생각이 노상 없으니까니, 부활이란 것도 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으로 알고, 어떤 사람은 아주 솔직하게 화장을 하면 못 살아 나는 것 아닌가 그래요. 무식해서 그러는 건데 부활이란 그런 말이겠어요?

 나도 젊었을 때 이에 대한 번민을 많이 했는데 그것을 이렇게 풀었어요. 즉, 부활이란 나긴 물질적인 것으로 육적인 것으로 났지만 생명이 인간에게 와서는 물질적인 단계를 초월해서 소위 정신적이라고 하는 데까지 갔으니깐 이젠 우리가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아직도 물질적인 것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지만, 몸이라는 것은 죽은 후에 무슨 형식으로 되갔는지 그 때 가봐야 알 것이니까 모르지만, 믿음으로 인해서 그 어느 세계에 벌써 올라갈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야요. 인간 속에 예수 같은 사람 또는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 하나만 있어도 정신계는 벌써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니까 자기가 경험 못 했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과학적 실험을 요구하는 모양인데, 과학이란 사색을 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고 실험을 해서 깨닫는 것이니까. 실험은 만인이 실험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내가 해보지 않았다고 안 믿는 것은 안 된 생각이지요. 과학적 진리 그것 때문에 어떤 과학자들은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해서 얻은 것인데 그걸 내 신조에 맞지 않는다고 안 믿을 수 있어요. 종교적 진리도 마찬가지지요. 여기에 대한 연구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위에 설 수 있는 보다 높은 정신계에 올라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게 종교의 목적이지, 옛날 무식한 때 믿던 하나님 모양으로 그렇게 천진스럽게 묶어 두어야만 좋아하는 그런 식은 없다는 거지요. 나는 내세에 대한 충돌은 아무 것도 없지요. 내 나름대로 해결했으니까.

한용상 : 그러니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세라는 것이 오늘의 세계를 시간적으로 연장해서 죽은 후에도 영원히 호화로운 생활을 가지기를 열망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겠지요?
함석헌 : 그렇지요, 그러니깐 죽어서 하늘 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높은 데 올라가는 것, 그것이 하늘 나라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의 종교라는 게 체험을 존중하지 않고 교리만을 자꾸 존중해! 또 행복주의, 복리주의로 좋은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 이것이 옅은 종교의 경우니까 샤마니즘을 탈피 못 했다고 그러는 거지. 그런데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교역자들에게 있어요. 교역자 자신들이 무식해! 무식할 뿐만 아니라 한 번 내가 영적인 정신적인 영역에 깊이 들어간다고 하는 그런 결심은 아니하고 어떻게 이대로 있어서 죽지 않고 오래 살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나라 종교가 요렇게 되었지요. 걱정이야요.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될려면 그러나 저러나 기독교인을 통해서 해야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썩어지니 어떻게 해야 될지! 나는 이럴 줄은 몰랐어요. 그들이 도무지 이렇게 무식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요. 그렇다고 절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 와서 참 심각한 문제라고 느껴지네요. 어떻게 여기서 살 길을 뚫고 나가느냐가 문제이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명상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퀘이커교에서 명상하는 방법과 기본적인 자세, 이런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함석헌 : 그런 건 없어요. 자세라는 것을 별로 말하지 않으나 동양적으로 보면 각 종교가 공통인데 초보적인 자세는 지킬 필요가 있지요.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이 아무리 정신 생활을 한다 해도 몸을 떠날 수가 없으니까. 지금은 생명이 정신적인 데까지 갔지만 아직도 이 육신 속에 있으니까 육신은 육의 법칙이 있거든요. 가령 먹지 않고는 안 된다든지, 잘 만큼 잠을 자지 않고는 정신 활동을 할 수 없다든지 이런 것들을 벗어날 수야 없지요.

 그런데 믿음이 강하면 무한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잠깐은 몰라도 그걸 계속한다면 무리가 되지요. 자세가 중요하지요. 서양 사람들의 경우, 우리 맘에 맞지 않는 태도가 많지요. 내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엘 첫 번 갔을 때 어느 신학자를 좀 면접하려 했더니 시간을 마치고 나오더군요. 그는 책상 위에 두 발을 척 올려놓고 비스듬히 누워서 이야기하는 거야요. 그냥 보긴 보았오만은 웬만하면 욕을 하고 그만두고 싶었오. 그 담에 또 대학 강의에 들어갔더니 한 처녀가 애견이라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놈의 강아지가 가만히 있어야지 말이야. 이것이 서양 사람의 자랑이라면 자랑이지만, 동양 사람 생각으로 하면 역시 어느 기본적인 것은 지켜야지요.

 적어도 초심자는 기본적인 자세를 훈련할 때 자세를 곧게 하는 것 등 지킬 것은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고 또 기본적인 태도를 권하기도 하지요. 꼭 강제로 요청하는 것은 없지만. 척추를 바르게 해라 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진리요. 건강을 위해서나 정신적인 것을 위해서도 기본이고 생리학이나 심리학에서도 뒷받침해주니깐.

한용상 : 요즘 서점에 가면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 같은 인도사상가들의 책이 제일 잘 팔리고 있고, 그 분들을 비롯한 동양사상의 공통방식이 명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함석헌 : 나는 그 사람들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 사람 것 아니라도 바가바드 기타와 같은 인도 사람 것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대게 짐작이 가지요. 노자도 어떤 전설에서는 명상을 인도에서 배워 가지고 들어갔다는 설도 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또 우리 나라의 고유한 종교와 도교와의 관계가 어더러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이능화씨의 학설이 좋다고 보아요. 나는 역사 공부를 하다가 못하고 그만둔 사람이지만, 중국 북경 지방은 은 나라였는데, 은 나라와 한국 민족과의 관계가 근래 와서 많이 거론되고 있어요. 나는 기자 조선 문제 때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만 기자 조선이 정말 중국의 기자가 평양에 와서 임금이 되었겠어요? 전혀 없는 말이 만들어졌을 리는 없고, 어떤 사실이 있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당시 북 중국으로부터 요동에 이르기까지 배타적인 경계가 없었으니까 우리 나라 사람이 많이 섞여 살았을 것으로 추리가 되었지요. 그 증거는 북경 교외로 나가면 ‘꺼우리’ ‘꺼우리’하는 지명이 많다고 해요. 꺼우리 촌, 꺼우리 장 등 그것이 고구려를 가르킨다는 설이 있는데 아무튼 우리 나라 사람이 많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은 나라 문명이라는 게 그 속에 원시적인 종교 사상이 많았지요. 이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무당이니 뭐니 하는 샤마니즘이라고 하는데 이는 종교 지경에는 채 못 가고 토속적인 것으로 내려왔다는 거죠. 한편 고구려 시대는 현인이라든가 선비, 도령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우리 나라 말이지 중국에서 온 말은 아니야요, 특히 도령은 종교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지요, 도령은 지금 있는 무당 같은 따위의 종교인이 아니고 본래 있었던 종교인데 제대로 발달을 못하고 퇴화해버렸는데, 이는 장자의 사상과 공통된 점이 상당히 있지 않나 보여집니다. 이능화씨는 이를 설명하면서 최치원의 말을 빌어 우리 나라에는 본래부터 현묘한 도가 있어 포함 3교라, 유, 불, 선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했지요. 최치원은 그 당시 당 나라까지 다니면서 국제적 지식을 가진 사람인데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 도교 사상이 평화주의야요. 우리 나라의 선비 사상도 그렇고, 단군신화에 전쟁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은 주의할 만한 일입니다. 고대 건국신화에는 모두 영웅적인 싸움이 있는데 그 말을 아니한 것 보면 우리 민족의 근본은 평화적으로 된 사람들인데, 그 후에 옳은 발전을 못해서 남의 식민지로만 돌아가게 되었지요.

한용상 :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싸움을 피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함석헌 :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의 압박을 받으면서 달라졌어요. 구차하게 살아 갈려니 비겁하게 된 거지요.

한용상 : 불교의 해탈이나 도교의 마음을 비우는 것, 기독교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 받는다’는 말도 모두 비슷한 것 아닙니까?
함석헌 : 그건 모두 같은 것으로 봅니다. 노자가 강조한 것이 비운다는 것, 즉 허정(虛精), 적막은 명상을 통해 하지요. 정신적인 것은 물력으로 될 수 없으니까 명상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지요. 퀘이커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서 명상을 한다고 그러지요. 그들의 명상은 동양 것과 다릅니다. 개인적인 명상이 아니고 단체적인 명상이니까. 2, 3명에서부터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단체로 명상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인데, 현대적으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개인주의가 아니니까. 동양의 명상은 열 사람이 참선을 해도 나는 내 참선이고 저 사람은 저 사람 참선이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된 것이지요.

한용상 : 퀘이커교에 대해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은데요. 퀘이커란 말 자체는 떤다는 뜻이 아닙니까? 무당이 신들리면 떤다든지 한국 교회에도 울며 떠는 신자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연상되는군요.
함석헌 : 초기에는 무식한 농민들이었으니까 기도를 할 때 감동해서 떠는 사람도 있었나 봐요. 그래서 멸시하는 이름으로 저 사람들은 떠는 사람(Quaker)들이라고 불렀고, 처음에는 좀 별난 사람들로 지목을 받았대요.

한용상 : 신학교는 있습니까?
함석헌 : 없어요. 교리가 없는데 신학교가 있을 리가 있나요?

한용상 : 그럼 퀘이커 신앙은 어떻게 전수가 됩니까?
함석헌 : 그 모임을 존중하지요. 그 모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모임은 세 가지가 있는데 매월 모이는 월회가 있고, 그 지역의 월회가 3개월에 한 번씩 모이는 4계회가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연회 즉 총회를 갖게 됩니다. 이 모임에서 행동에 지침이 될 만한 것을 결정해 주는데 이를 ‘퀘리’라고 부르지요.

 퀘이커의 특색 중에 하나는 다수 가결이 없이 전원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진리가 다수에만 있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한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는데, 수가 많다고 한 사람 생각을 없이 할 수 있느냐, 이런 뜻에서 만장 일치가 돼야지요. 이렇게 하면 회의 진행이 어려울 것 같은데 잘 되거든요. 왠고 하니 의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는 거야요. 충분히 말한 다음 사회자가 정리를 해서 발표를 하면 모두 가결이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또 다시 말하게 하지요. 이렇게 해도 의견이 조정되지 않으면 명상을 가진 후 토론하고…, 덤비거나 급속히 서둘지 않지요. 5년이 되건 10년이 되건 일치되는 대로 실시하자는 태도이지요.

한용상 : 한국에는 퀘이커 신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함석헌 :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환영해요. 이들을 참석자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참석해 보고 퀘이커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하면 원로들이 결정해서 회원이 됩니다. 회원이 되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물론 헌금을 거두거나 그런 것은 없어도 자기가 작정을 하고 내든지 하지요. 그러나 아주 자유롭지요. 미국에 약 10만 명, 세계 전체에 약 20만 명밖에 안 되지요. 한국에도 몇 십 명되지만 거의 참석자들이고 멤버쉽(membership)을 가진 사람은 몇 명 안 돼요. 내가 그것을 그렇게 중대하게 생각지 않아 좀 적은 것 같은데 이제 좀 열심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용상 : 세계 대회는 몇 년마다 열립니까?
함석헌 : 세계 총회는 3년마다 열리는데 각국 연회(年會)대표들이 참석합니다. 우리는 작은 단체라서 연회가 없지만 나도 대표로 참석하라고 해서 참석하지요. 월회는 연회에 다 소속이 되어야 하나 명령 기관은 아니야요. 절대 자립 자결권을 가지며 협의 기관뿐이지요. 세계적인 협의 기관이 F.W.C.C.(Friends World Committee for Consultation)라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직속되어 있어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하는 사람들인가를 보시오. 우리 나라도 어느 연회에 속해야 되겠는데 제일 가까운 곳이 일본이거든. 한국과 일본은 미묘한 점이 있는 줄 알고 FWCC에 직속시킨 거지요.

한용상 : 퀘이커교에서는 선교정책이나 전도 사업 같은 것이 없는지요?
함석헌 :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니깐 오는 사람들만 환영하지요. 오는 사람들에게도 야단스럽게 반기지를 않으니까 냉냉하다는 평을 듣지요.

한용상 : 성경 공부할 때 교재는 성경뿐입니까? 아니면 자녀 교육을 위한 체계적인 출판물이 있습니까?
함석헌 : 서양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자인 사람을 본 퀘이커(Born Quaker)라고 하는데 자녀 교육을 대단히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자녀를 꼭 데리고 모임에 참석하고 어린이들이 명상하기 힘드니까 10여분 있다가 먼저 내어 보내지요. 그리고 어른들은 40분 내지 1시간 동안 명상을 하는데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나오면 그가 원하는 종교를 선택하도록 하지요. 퀘이커가 마음에 들면 이것을 택하라고 자유에 맡깁니다. 아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각종 문서는 많이 나와요. 이것이 특색 중의 하나이지요. 선교용도 있고 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저 팜프렛을 만들어 배포를 하지요.

한용상 : 조직이 없는데 이런 활동이 원활하게 되겠습니까?
함석헌 : 그네들 중에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써내지요. 물론 월회/연회에서도 유인물이 나오지만 개인들의 의사발표가 많지요. 이것도 자유롭게 하는 거니까.

한용상 : 퀘이커 교도들은 생활을 대단히 검소하게 하고 구제 사업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특이한 생활 태도를 갖고 있는지요?
함석헌 : 퀘이커가 요즘은 돈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 있거든. 세상이 정직할 때는 돈도 잘 벌었지요. 그래서 퀘이커들은 천국에도 가지만 이 세상에서 돈도 잘 번다고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은 퀘이커가 사업이 되겠어요. 돈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재정이 모자라니까 사업도 제대로 못하고 수도 적고 그렇지요.

 생활 태도는 대단히 간소하지요. 교리가 없다고 하지만 교리가 있다면 ‘간소생활’과 ‘평화를 지키라는 것’, 이런 것 몇 가지가 있겠지요. 간소 생활은 옷을 검소하게 입은 것은 물론이고 말조차 간소화하라는 것이야요. 퀘이커들은 말도 필요 없는 말 많이 하면 못쓴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임금에게 간소한 말로 유(you)라고 하다가 죄를 받은 적도 있고 임금 앞에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감옥에 간 적도 있어요. 임금도 나하고 똑같은 사람인데 왜 모자를 벗느냐는 거였지요. 한때는 아주 엄격한 살림을 했었오.

한용상 : 앞에서 퀘이커는 남녀 동등권 문제라든가 노예 해방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고 했는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없습니까?
함석헌 : 지금은 핵 문제 때문에 제일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지요. 반핵 운동은 우리도 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무력한 사람이 되어서…….

한용상 : 반핵 운동을 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퀘이커들은 명상을 좋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데도 반핵 운동의 경우 데모와 행동주의로 나가는지요?
함석헌 : 데모를 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게 해보니까 또 신통치 않은 점이 있으니까 요새는 많이 강조하지는 않는 편이더군요. 사실 액쇼니즘(Actionism, 행동주의)이 퀘이커에서 먼저 나온 것입니다.

한용상 : 반핵 운동도 평화주의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만 오늘의 정세를 보면 세계 평화에 대해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소 초강대국이 빚어내는 무기 경쟁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고 가속화되는 문명의 발달은 결국 각종 공해와 생태계의 파괴로 인류의 존립이 큰 위기에 온 것이 아닙니까?
함석헌 : 우리가 전력을 걸고 싸워 보아야지요. 공해도 같은 문제인데 싸워 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잘못은 많지만 인간이 이성을 갖도록 창조된 이상 어느 정도 이야기하면 듣지 않겠느냐 하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지요. 그래도 정 듣지 않으면 인류는 망해버릴지 모르지요. 모든 전문가들이 예언하는 대로 아주 깡그리 끝장이 날지도 모르고 그 다음 것은 알 수 없지요. 지구 위의 문명이 없는 가운데서 창조되었으니까 인류가 끝난 후에도 또 어떤 무엇이 있게 되겠지요.

한용상 : 미/소간의 힘의 대결이 이 같은 보편적인 노력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새로운 차원의 특수한 방안이 있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함석헌 :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선한 본성을 주었다는 것을 믿고 그 양심을 때리면 된다는 신앙을 가져야지요. 양심을 때리는 데는 내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내 몸으로 폭탄이 되는 거지요. 평화주의자의 구령은 ‘자기희생’입니다. 자기 희생 않고는 평화 운동이 안 되지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턱턱 죽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지만 정성으로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는 것이지요. 내가 하는 것 아니고 위에서 올 것이니까, 그 자리에 가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없어지지요. 노자 장자는 생과 사가 따로 있는 것 아니라고 했는데 이런 자리에까지 가야 되는 것이야요.

한용상 : 오늘날 평화주의 운동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국경을 넘기 힘든 것 아닙니까?
함석헌 : 힘들지요, 그러나 이성에 호소해서 말하노라면 국경을 초월해서 열리겠지요. 스위스의 피엘 세르도라는 사람은 건전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이 사람은 겁이 없디오. 잡혀 갔다가도 벌금 얼마 내면 나오고, 나와서 또 하지요. 스위스에서 방공연습을 하느라고 불을 끄는 훈련을 하는데 이 사람은 촛불을 켜 들고 거리로 나가는 거야요. “하나님이 세상에 빛을 비추라 했는데 깜깜은 왜 하란 말이냐.” 이렇게 외치고서 ‘나는 어디까지나 빛을 증거할 것이다’ 라면서 평화 운동을 했지요. 그는 혼자서 인생을 그렇게 마친 사람이야요. 지독한 사람이지요. 그렇게 할 때 어느 구멍이 뚫리게 돼요. 구멍 하나 뚫어 놓으면 그 다음 또 살아나는 것이지요. 예수도 그랬고 순교자 없이 생명은 자라는 법 없습니다. 이런 점을 믿는 것이지요.

한용상 : 인도 간디의 평화주의가 혹시 퀘이커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은 없습니까? 간디가 영국에서 공부를 했으니까 퀘이커를 알았다면 사상적으로는 잘 통하지 않았겠나 싶은데요.
함석헌 : 간디를 제일 이해한 사람들이 퀘이커교도들이었답니다. 또 간디가 영국에 갔을 때 퀘이커 가정에서 숙박을 한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보아 서로 관계가 있갔지요.

한용상 : 퀘이커교가 미국 역사에 공헌한 바가 크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세계 퀘이커들의 반 수를 미국이 점유하고 있기도 한데 여기에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함석헌 : 우선 퀘이커교가 미국 독립 운동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물론 다한 것은 아니지만. 윌리암 펜 장군이 귀족으로 났던 사람인데 조지 폭스에게 전도를 받고 감동이 되었던 거죠. 그래서 퀘이커가 미국 건너갔을 때 펜실바니아가 중심이 되었었지요. 펜실바니아는 윌리암 펜이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 한번 해보자고 한 곳이니까. 이를 홀리 엑스페리멘트(Holy Experiment)라고 그러지요. 그래서 미국 독립 운동의 중심지가 펜실바니아가 되었었지요. 지금도 펜실바니아 정부 청사 꼭대기에 윌리암 펜의 동상이 서 있지 않아요?

 그 당시 다른 지방에서는 인디언과 충돌해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했는데 펜실바니아 주에서만은 평화주의를 내세워 인디언과 충돌 없이 지나지 않았겠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노예 해방 운동도 역시 퀘이커가 적극적이었지요. 이 때 남쪽에서 오는 흑인들을 퀘이커들이 숨겨 주고, 연락을 해주고 도망가도록 인도해 주기도 했었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몇 년 전 노벨 평화상 후보자가 되신 것으로 아는데, 역시 퀘이커교에서 추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함석헌 : 그거는 나를 잘 모르고 겉으로 보고 괜히 그랬던 거지요. 겉으로 보아 뭐 한 일이 있는 줄 알고 그러는데 부끄러운 일이지요. 한국에 몇 번 나와서 알던 퀘이커들이 지나쳐 생각하고 그랬지요.

한용상 : 퀘이커교도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함석헌 : “미국퀘이커교 봉사위원회”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요.

한용상 : 한국 퀘이커교의 정식 이름은 무엇입니까?
함석헌 : 종교 친우회(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그러지요. 퀘이커들은 서로 친구라고 하는데 이는 요한 복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친구라고 말했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한용상 : 한국에도 예배당은 있겠군요.
함석헌 : 이화여대 뒤에 조그만 집이 있습니다.

한용상 : 함 선생님은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의 성경 모임에 자주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도 퀘이커교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함석헌 : 그 분은 퀘이커가 아니고 전형적인 기독교인이며 골수 장로교회 교인이지요. 세상이 장 박사님 같으면 문제가 없어요. 참 어린애 같은 분이고 참 놀라운 분이지요. 돈을 벌려 했으면 제일 많이 벌었을 분인데 다 남 주고….

한용상 : 함 선생님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함석헌 : 퀘이커에서는 십자가 소리도 많이 하지 않고 세례도 없는 곳인데, 나는 일본 있을 때 내촌(內村) 영감한테 세례를 받았어요. 내촌도 퀘이커와 공통한 점이 많아요. 나도 그 때부터 퀘이커를 다 알았지요. 그때 나는 우찌무라(內村)와 미도베와 함께 퀘이커 모임에 갔었는데 우찌무라는 무교회주의자가 되었고, 미도베는 퀘이커가 되었어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최고의 사치가 전쟁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가 알 수가 없습니다.
함석헌 : 내가 근래에 오다가 이런 소리를 했어요. 쓸데 없는 것에 돈을 가장 많이 들여하는 게 전쟁이니까 사치이지요(웃음). 실은 사치 생활과 전쟁이 밀접한 관계에 있단 말이오. 왜냐? 자본주의에서 기업주들이 상품을 만드는데 실용품이기보다 거의 다 사치품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한단 말이야, 전쟁 목적이 경제권 외에 뭐 있어요?

한용상 : 우리 나라의 교회는 기적적으로 급성장을 해 약 9백만에 이르는 양적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젠 종교 국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함석헌 : 종교가 뭐이요, 참 부끄럽소. 일본 사람들의 경우는 그래도 진지한 태도가 있는데, 일본도 성신 받는다, 방언을 한다, 이런 것이 있기야 있겠지요. 우리 나라 사람 결점은 유행을 쉽게 따라 가는 거야요. 내 소리가 없어. 나는 나를 지키는 무엇이 있어야겠는데 그것이 없단 말이야.

한용상 : 양적으로 많아지면 질적으로도 좋은 부분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함석헌 : 그렇지 않아요. 양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 질적으로 좋아지겠어요? 글쎄! 가다가 보면 또 깨닫게 되겠지! 고생하고 쓰라린 경험을 하면 깊어지갔지. 그런데 아직 정신들 못 차리고 있어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과거에는 타종교에 대해 비판을 좀 하시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전연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비판 안 하시지요?
함석헌 : 그 전에는 가톨릭을 좀 좋아하지 않았어요. 내 생각의 기본은 자유인데 가톨릭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좀 달라졌어요. 나 믿으면 그만이지 남 아니라고 할 것 없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오히려 가톨릭 편이 좀 나은 편이고 개신교는 아주 규모가 없고 법이 없어요. 제멋대로야. 신부는 탈선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목사라는 사람들 형편없이 모자라는 인간들이 많은 걸요.

한용상 : 제가 볼 때 개신교의 특징 중에 하나가 분열입니다. 특히 정통이라 하는 사람들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잘 분열하는 것을 한국 교회 역사에서 잘 볼 수 있는데요. 퀘어커교는 조직이 없고 가장 자유로운 신앙을 가진 곳이니까 분열될 위험성은 전혀 없다고 보십니까?
함석헌 : 퀘이커에서도 사업을 하려니까 최소한의 조직이 필요하고, 예배 인도자가 있어야겠다는 주장이 생겨서 한때는 목사 있는 모임과 목사 없는 모임 쪽으로 갈라졌었습니다. 목사 없는 모임을 언프로그램드 미팅(Unprogramed Meeting)이라고 하고, 목사 있는 모임을 프로그램드 미팅(Programed Meeting)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화해가 되어 하나가 되었지요. 아프리카에는 주로 목사가 있는 모임이 많지요. 케냐에는 신자가 한 만 명 될 겁니다.

한용상 :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과 명상하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함석헌 : 명상은 노자의 말처럼 마음을 비우라, 비울 수 있는 데까지 비우라, 비운다는 생각이 없으리 만큼 비우라 이것이야요. 기도는 마음을 채우는 것이지요. 교회에서 묵도할 때 피아노 치는 것, 저는 반대야요.

한용상 : 기독교에서 회개하고 새 사람 되는 것과 불교에서 참선을 하다가 도를 깨친 것과 같습니까?
함석헌 : 교회에서 회개하고 성신을 받는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신을 받으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경우가 많이 있어요. 하나님의 영이라면 나의 에고(Ego)가 완전히 죽어 부정이 되어야 하갔는데 그것이 여간해서 됩니까? 완전은 못 되어도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가까워지지요. 이는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순수하고 단조한 마음으로 하노라면, 긴 세월 지나면 아 이런 건가 하는 뭐가 알려지는 것이 있지요. 말론 설명하기 어려우나 각자가 느끼는 것이 있을 거야요.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의 종교 편력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런 걸 알기 위해서 묻고 싶은데요. 처음에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함석헌 : 처음에 장로교회에 있었지요. 그 다음 무교회주의, 그 다음 퀘이커가 되었는데 자꾸 변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로 있어요. 처음에는 장로교회에서 순수하게 믿었는데 3.1운동 이후의 교회에 대해 불만이 좀 생겼습니다. 일본에 가게 되어 무교회를 택했었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은데 강연은 여전히 많이 하시지요? 피로를 느끼시지 않습니까?
함석헌 : 아직 피로는 몰라요, 힘이 있어 할 수만 있다면 이젠 무얼 아끼겠어요? 허락이 되는 한도까지 말을 해보자고 하는데 말만 해서 뭘 하느냐는 사람도 있어요. 인도의 네루는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으나 나는 ‘행동 못 하는 사람’이야요. 생각한다면 생각하는 사람이지.
 우리 나라의 큰 결점이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야요. 국민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을 만한 인격이 솔직한 말로 한 사람도 없다면 이것, 참 걱정이 아닙니까? 그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목은 길러야지 기르지 않는 재목이 어떻게 큰답니까? 이조 이후 오늘까지 내려온 이 잘못을 어떻게 깨쳐 주겠느냐가 문제이지요, 내 생각과 다른 것은 없애 버릴려고 해 왔지요.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제는 감정적인 문구는 사용 안하려 해요. 남들이 비겁하다고 볼는지 모르지만 나라가 잘 되는 것이 목적인데 욕을 해도 듣지도 않을 터이니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요. 참 걱정이지요.

한용상 : 우리의 사회와 역사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함석헌 : 그것은 내가 믿는 사람이니까 비관해서는 안되지요. 기독교 진리의 하나가 소망이요, 희망이니까. 무조건 긍정적 미래를 가져야지요. 세상을 내 지식 가지고 알 수 없지만 내 믿는 바에 의하면 바른 길, 잘되는 길로 가는 도중입니다. 산에 올라가다가 보면 내려가는 때도 있겠으나 그 다음 올라가기 위해 내려간다고 믿어야지요.
이런 믿음을 어떻게 심어 줄까가 문제이지요. 힘은 속에서 나오지 겉에서 들어오는 것 아닌데 믿는 사람들까지도 힘이 겉에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문제야요. 젊은이들이 툭 하면 자살하는데 이는 생명이 위로 올라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생명의 길을 열어 주도록 노력해야 되겠는데 종교는 복 받고 재미있게 살아 갈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뭘 하겠오? 그래도 어려움을 이기는 정신적 힘은 종교 신앙에서밖에 나올 데가 없는데 종교가 그걸 못하니 종교 책임이지요. 핑계가 없거든요.

 내가 어느 정도 한다는 의식을 갖고 하는 것은 내 용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것인데, 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믿음인 줄 안단 말이야. 노자/장자가 가만히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전국 시대에서는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서 했지요. 그래서 공맹(孔孟)은 퇴색해도 노장은 갈수록 서양에서도 자꾸 연구를 하지 않아요. 기독교 선배들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나 나도 여기에 보람을 느끼지요. 동양에는 동양 진리가 있는데 먼지를 털고 끄집어내는 것이 옳지요. 나는 이제 크게는 못 하지만 내 뒤에 젊은이들이 하자고 하니까 보람을 느낍니다. 미국의 어느 신학교에 갔더니 노장 사상을 모르고서는 신학을 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더군. 좋던데, 그 소리 들으니까 (웃음).

 저 하늘 위에 올라가면 하나님이란 할아버지가 떡 앉아 있을 것으로 믿던 것보다 하나님이란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다는 그것, 얼마나 높은 사상이야요. 그러나 예수가 걸은 길 가운데 십자가라는 것, 이것이 참으로 독특한 데 이 점이 노장만 하고 가만 있을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이야기한 장기려 박사가 내가 노장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염려가 되어서 나에게 좀 분명히 말해 달라고 물었어요. 그때 ‘내가 노자도 좋아하고 장자도 좋아하지만 내가 믿는 내 주님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지 다른 이가 있겠느냐’라고 했더니 장 박사님이 울었어요. 나는 ‘야, 말도 안 하고 속으로 얼마나 염려했으면 그랬을까’ 이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한용상 : 오늘의 병폐 중의 하나로 양극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마는 사상과 사회 정신에 있어서도 양극의 대립이라든가 흑백 논리 또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사고 방식 같은 것이 조화를 찾아 극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석헌 : 그렇지요. 난 이제 흑백 논리는 아주 싫어요. 한용상 씨는 그런 줄 다 알면서도, 현실의 필요가 있으니까, 이런 경우에는 흑백논리가 필요하다고 한 것, 그것도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원의 세계야요. 이 우주의 본의가 무엇인고 하니, 온갖 꽃과 수만 가지 식물이나 곤충들만 보더라도 다원의 세계이지요.

 왜 이처럼 다원적이냐는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이 다 지적했지만 우주의 근본원리가 다(多)이면서 하나(一), 하나이면서 여럿입니다. 생명의 단계는 처음에는 단세포이나 높아갈수록 다원화하게 되는데 여기에 따라 의식 작용도 미묘하고 복잡하게 발전해 가야하며, 이로 인해서 복잡하고 다원화된 조직을 가지지 않고는 안 된단 말이야. 이것들을 차차 과학이 헤쳐내는 것이지요. 바로 되면 이런 것들로 인해서 참 종교적 신앙에 갈 수 있거던요. 옛날 모양으로 모든 것을 의인화해서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될 거야요.

 이 담에는 종교가 그렇게 될 거야요. 공자가 하는 모양으로, 인도에서 브라만이라고 했던 모양으로 임퍼서날(Impersonal)한 것이 더 종교적이 될지 누가 알아요? 차차 의식이 높아지면 우리가 이 개체를 초월하는 모양으로 생각도 그렇게 될는지도 몰라요. 그릇이 깨어질려고 하는 현상인지도 모르지요. 지금 우리 보기에 싫은 것 나온다고 거기 너무 신경 쓰고 너는 없어져라, 그럴 수는 없단 말이야. 돋아날 때는 저것도 무슨 할 말이 있겠지, 공자 이야기가 나왔으면 그것도 무슨 발언권이 있으니까 나왔겠지! 이 단계에서 인류가 생각할 것은 다원적으로 하면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원하는 바일 거요. 생명의 목표가 그런 거니까. 그렇지 않고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 노자가 다 뭐냐 한다면 통쾌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너무 조그마해진단 말이야. 이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 하는 것입니다.

한용상 : 함 선생님은 이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씨?의 소리”가 없으니까 강연에서밖에 못하시겠군요?
함석헌 : 그러니까 강연이라도 열심히 해야지요. 씨?이란 말만은 어떻게든지 좀 널리 보급해서 새 말로 써 볼 필요가 있어요. 이걸 일반에게 널리 보급해서 국어사전에라도 올라야겠는데 아직도 생각 있는 사람밖에 이 말을 모르지요. 국민, 인민이란 말 듣기 싫어서 오염 안된 말을 좀 썼으면 좋겠어요.

 씨?과 민중이 같은 말이지만 기분이 좀 달라요. 바람은 새 바람이 시원한 것처럼 말도 새 맛이 나야 하는데,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된다는 말이 옳아요. 성경에는 사랑을 아가페란 말로 쓰지 않았어요? 이 말도 쓰이지 않던 것을 새 말로 쓴 것이지요. 요즘은 사랑이란 말이 또 진부해져서 사랑이란 말이 더러워진 것 같군요. 그 말 그만두고 옛날 모양으로 인(仁)이라든지 착하다든지 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시대의 말씀이 있으니까 생각이 새로 살아 나오는 제 옷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말을 갑자기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느 부문에서 쓰던 새 맛이 있는 말을 새롭게 채용할 수가 있어야겠지요.

 선진국이란 말부터 더러운데 그것을 따라 갈려고 뱁새가 황새 좇는 격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스위스가 조그만 나라지만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잖아요? 무슨 독특한 정신으로 만들어 낼 것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해야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책을 쓰실 때 항상 구어체를 사용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함석헌 : 글이라면 동양의 문장이라는 것 있거든요. 의미만 통하면 그만이 아니라 글은 글맛이 있거든요. 문체가 있어야 하는데 동양에는 소동파의 글이라든가, 성경에서는 이사야 시편이라든지 이런 글은 감흥이 오니까 생명을 움직입니다. 생명 자체가 음악적으로 교통이 안되면 글이 안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걸 해볼려고 했더니 천재로 타고나야지 나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돼서 그만두었어요. 본래 재주를 못 타고 난 것 단념을 하고 생각나는 대로 쓰면 그만이지 해서 글체가 지금 그렇게 되고 말았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은 식사를 하루에 한 끼밖에 안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제 하십니까?
함석헌 : 예, 점심 한 끼만 하지요.

한용상 : 함 선생님을 비난한 책은 최근 서점 주인들이 진열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함석헌 : 그건 그러라고 그래요. 내버려두라고 그래요. 나는 믿으니까 하나님 일 아닌 것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 누가 어떻게 하겠나, 무슨 까닭이 있어 그러시갔디. 내 잘못 없다는 것 아니야. 있기야 있지만... 이런 것을 내가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한국의 지성에 대한, 도덕에 대한 시험인지도 몰라요.

한용상 : 지금까지 함 선생님의 폭넓은 사상에 대해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함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종합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종교적 진리의 최고봉은 하나다, 높은 데까지 올라가면 동에서 출발하건 서에서 출발하건 서로 만날 수 있는데 중간에서 부분적인 것만 보니까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기독교 각 종파는 물론이거니와 각 종교간에 진리의 교류와 그 통합을 시도한다면 우리 종교와 사회의 조화는 물론, 전 인류가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추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시지요.
함석헌 : 그건 우리 생각이 좁아서는 안 되겠지요. 앞에서 말한 대로 우주의 법칙, 생명의 법칙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나와 달라도 하나로 되어야지요. 사람 얼굴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아요? 무슨 재주로 그 많은 사람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안 만든다니 신기한 일 아니야요? 생명이 본래 그런건데, 종교와 사상에서만은 나와 똑같아야 된다고 하느냐 말이야요. 생각이 좁아서 그렇지요. 그리고 이 시대의 분위기가 큰 걱정이야요. 나야 아니지만 침체하고 기운이 죽어 있으니까. 다양한 생명이 자라나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