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 한병철 / 문학과 지성사

 

* 수업일 : 20174월 20일 목요일

* 참석자 : *. **. *.

 

1.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 [피로사회]에 대한 조금 다른 입장을 나타내는 두 글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첫 글은 글쓴이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글이고 두번째글은 김진석 교수의 글입니다.)


1)번 글 :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냉전, 면역학, 규율사회)에서 부정성이 제거되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 즉 성과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결과로 해석된다.  더 큰 성과를 올려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극대화해가고 자발적인 착취의 양상을 띤다. 즉 성과주체는 자신을 착취한다.


2)번 글 :  성과에 매달리는 사회를 비판하면서 성과에 매달리기

이 책은 한국사회가 성과에 극도로 집착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엄청난 피로를 무릅쓴다는 특성을 잘 드러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의식은 호소력이 있으나 논증의 방식에서 먼저 그 개념들을 선택한 학자들의 업적을 충실히 소개하지도 독창적인 개념을 선보이지도 또 소개와 발견을 동시에 수행했다고도 보기 어렵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또한 성과사회의 주체는 부정하거나 부인할 일이 거의 없어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으로 신경성폭력이 야기된다는 식의 단순화된 논의는 저자가 부정성과 긍정성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 과도하게 기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외부의 타자에 대한 부정성은 줄어들지만 유사한 타자 혹은 동질성 내부의 부정성( (일베, 메갈리아, 동성애 등)은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김진석 교수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성과를 과도하게 짜내기 위해 기존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다는 반복된 논증을 사용하고 있는 점과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 모습을 들어 성과사회를 비판하면서 성과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 독일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고려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 독일에서 교수가 된 작가가 갖는 자부심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 총론에 대한 공감, 즉 긍정성이 증가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왜 행복할 수 없는가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이 이 책이 인정받은 이유일 것이다.

- 논증의 과정은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 근대사회(규율사회, 기획과 실행을 분리, 즉 노동자가 실행만을 담당하며 도구화되어가는 자본주의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던 시기) -->탈근대, 후기근대사회(성과사회,피로사회, 구글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성과를 기획단계부터 실행하는 시기)

-  이러한 기존 규율사회와 달라진 노동을 통해 얻은 +α를 착취로 볼 것인가 성장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에서 저자는 착취로 본 것이다.


: 비판적 읽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뭔가 어색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내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읽기에 급급합니다. 비판적 읽기는 너무도 요원한 일인 것만 같습니다. 



2. 책으로 들어가서 (일단 비평보다는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읽어보자.-박형만선생님)

1) 작가에 대하여

2)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 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규율사회의 측면이 강하다. 만인에게 자기주도적으로 될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후기근대적 인간의 좌절에 대한 병리학적 표현이 우울증이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3) 깊은 심심함 - 후기근대 긍정성의 과잉은 깊은 주의를 사라지게 한다. 정신적 이완의 정점인 깊은 심심함이 사라진 단순한 분주함은 새로운 것을 낳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깊은 심심함 즉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은 귀 기울여 듣는 재능, 귀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가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4) 활동적 삶 - 후기 근대사회의 자아는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세계는 탈서사화되었으며 탈서사화는 사람들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든다. 이러한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반응은 과잉활동으로 이어지고 사색적 능력의 상실로, 활동적 삶의 절대화로 인한 지배없는 자기 착취가 가능해지는데 (라깡의 탈근대사회에 이르러 전체구조속에서 타자로 인해 나의 사유가 결정되고 스스로 사유하지 못한다는 말에서도 보여지듯이), 이는 강제된 소진이라는 의미에서 나치수용소의 무젤만과 유사하다. (김선생님이 아렌트의 인용부분에 이의를 많이 제기하셨는데 일단은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5) 보는 법의 교육 - 사색적인 삶을 위해서는 보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활동과잉에 의해 저항없이 자극과 충동을 수용하다보면 정신적 탈진과 몰락에 이른다. 중단의 부정성 즉 막간의 시간이 있어야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돌이켜 생각하기도 가능하다. 

6) 바틀비의 경우 -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사회는 규율사회이다. 바틀비를 순수한 잠재력을 가진 형이상학적 존재로 바라보는 아감벤의 해석은 잘못이며 바틀비는 탈진한 결과로 발생한 무감각한 상태의 표상이다.


3. 다음 시간에는 7)피로사회부터 마지막까지 정리하고, 소비본능도  함께 끝내기로 했습니다.

소비본능 / 개드 사드 / 더난 출판

2장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신

3장 과시적 소비 -김

4장 가족 사랑에 숨겨진 유전자의 속셈-이

5장 호혜적 이타주의-조

6장 문화적 산물-황

7장 진화심리학으로 광고하기-신

8장 희망 속에 감춰진 교묘한 상술-김

9장 비합리적 소비행동을 부추기는 원초적 본능-이

10장 다윈에게서 경영을 배우다-조

11장 다윈의 혁명-황


황선생님. 장별로 나누기는 했지만 정리는 안해오셔도 되구요. 잘 읽어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