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슬로건.JPG


[01] 다음 시간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발표순서


03. 유행의 심리학 (송)

04. 장신구의 심리학 (전)

05. 이방인 (김)


<2부 미학의 문제>

06.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신)

07. 손잡이, 미학적 접근 (조)

08. 얼굴의 미학적 의미 (황)

09. 양식의 문제 (송)

10. 알프스 여행 (전)


<3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유형들

11. 식사의 사회학 (김)

12. 감각의 사회학 (신)

----------------------------------------------------

13. 감사, 사회학적 접근 (조)

14. 신의, 사회심리학적 접근 (황)

15. 편지, 비밀의 사회학 (송)


<4부> 인간의 내면적 삶과 형이상학

16. 모험 (전)

17.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 (김)

18. 비밀, 사회심리학적 스케치 (신)

19. 분별의 심리학 (조)

20. 다리와 문 (조)


[02] 총균쇠 마지막 증보판 부분의 호기심을 <조선상고사>로 이어가세요.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고,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고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이 파고들 것 없이 쉽게 말하면,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이 ‘아’이고 그 이외는 ‘비아’다. 예컨대 조선 사람은 조선을 '아'라고 하고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 하지만,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은 각기 자기 나라를 ‘아’라고 하고 조선을 ‘비아’라 한다. 무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아’라고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각기 자기 식구를 ‘아’라고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한다. 이뿐이 아니다. 학술•기술•직업•의견 표명이나 그 밖의 무엇에서나, 주관적인 ‘아’가 있으면 ‘아’와 대립적인 ‘비아’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아’ 속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속에도 ‘아’와 ‘비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진다. 그러니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틈이 없고 역사의 전진이 완결될 날이 없는 것 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아’가, 그리고 ‘아’에 대비되는 ‘비아’의 ‘아’가, 역사적인 ‘아’가 되려면 두 개의 속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첫째는 시간성으로, ‘아’의 존재는 시간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는 공간성으로, ‘아’의 영향력은 공간적으로 파급되어야 한다. 인류 이외의 다른 생물에도 ‘아’와 ‘비아’의 투쟁이 있다. 하지만 다른 생물의 경우에는 ‘아’라는 의식이 너무 미약하거나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의 창출을 인류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 사회를 떠나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아'와 '비아'의 투쟁도 없지 않지만, ‘아’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면 시간성•공간성을 띨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행위일 때만 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행위일지라도,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의 크기가 결정된다. 예컨대 조선시대 학자 김석문이 300년 전에 지동설을 주창했다고 해서, 지오다노 부르노의 지동설만큼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브루노의 학설은 유럽 각국의 탐험 열기를 달구고 아메리카 대륙 의 발견으로 이어졌지만, 김석문의 학설은 그런 결과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정여립이 400년 전에 군주와 신하 사이의 윤리<臣綱常說>를 타파하려 했던 동양의 위인이라고 하여, <민약론>[<사회 계약론>으로 이해]을 저술한 장자크 루소와 대등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여립의 영향을 받은 검계(노비들의 비밀결사)나 살주계 등의 활동이 전광석 화처럼 발생하기는 했지만, 루소 이후에 파도처럼 웅장하고 격동적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 비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되어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변함없는 이치다. 승자가 되 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의 인지상정이지만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선천적 측면을 보면 ‘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있는 것이지만, 후천적 측면을 보면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민족(아)이 출현한 뒤에 조선 민족과 상대되는 묘족•한족(漢族)(비아)이 있는 것이니, 이는 선천적 측면에 속하다. 그러나 묘족•한족이라는 대립자가 없었다면 조선이란 국명을 만든다거나 삼경(고조선의 세 도읍)을 만든다거나 오군(고조선의 군사 조직)을 둔다든가 하는 ‘아’의 작용도 없었을 것이니, 이는 후천적 측면에 속한다. 정신적 확립을 통해 선천적 측면을 지키고, 환경적 적응을 통해 후천적 측면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패망의 숲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종교를 갖고도, 돌궐족이 무력을 갖고도 몰락의 화를 피하지 못한 것은 후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미가 공화제를 갖고도, 말년의 이집트가 문예진흥을 하고도 쇠락의 환란을 구제하지 못한 것은 전자가 부족했기 때문 이다.


 이제부터 조선사를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 민족을 ‘아’로 설정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자 한다.


 (가) ‘아’의 성장•발달 과정을 서술의 제1요건으로 삼고자 한다. 최초의 문명은 어디서 기원했는지, 역대 영토는 어떻게 증감했는지, 각 시대 사상은 어떻게 변천했는지, 민족의식은 언제 가장 왕성하고 언제 가장 쇠퇴했는지, 동족인 여진족•선비족•몽골족•흉노족이 언제 분리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의 상태와 중흥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설명하고자 한다.


(나) ‘아’의 대립자인 주변 각국과의 관계를 서술의 제2요건으로 삼고자 한다. ‘아’에서 분리된 흉노•선비•여진•몽골이나 ‘아’의 문화적 강보에서 성장한 일본이 ‘아’의 巨×가 되지 않은 이유, 인도에서 간접적으로 또 중국에서 직접적으로 문화를 수입한 ‘아’가 수입의 양에 따라 민족적 활기가 약해지고 강토의 범위가 줄어든 이유, 서유럽 문화와 북유럽 사상이 세계의 중심이 된 오늘날에 우리 조선이 그 문화나 사상의 노예가 되어 소멸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씹고 소화하여 신문화를 건설할 것인지 등을 각각 서술하고자 한다.


(다) 언어•문자처럼 ‘아’의 사상을 표시하는 도구는 얼마나 정밀했으며, 그것은 어떻게 변천했는지, (라) 지금은 거의 가치가 없는 폐물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분명히 민족적 흥망성쇠의 관건이었던 종교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마) 학술•기예처럼 ‘아’의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어떠했는지, (바) 의식주•농업•상공업•토지문제•화폐 제도•경제 조직 등은 어떠했는지, (사) 인민의 이동 및 증가는 어떠했으며 강역의 증감에 따라 인구는 어떻게 증감했는지, (아) 정치 제도는 어떻게 변천했는지, (자) 북진 사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했는지, (차) 빈부귀천의 각 계급이 어떻게 상호 대항하고 투쟁했으며 그 흐름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가) 태곳적에 발생한 지방자치제가 근세에 와서 실질을 잃고 형식만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타) 외세의 침략으로 입은 거대한 손실과 그로 인해 얻은 얼마간의 이익은 무엇이었는지, (파) 흉노•여진족 등이 분리된 뒤에 우리와 다시 합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하) ‘아’의 문화 창조가 예로부터 적지 않은데도 항상 고립적•단편적이 되고 연속성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열심히 논증하고자 한다. '(다)' 이하의 문제를 이 책의 주요 항목으로 삼아 일반 독자들이 조선사의 만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신채호의 역사철학


 신채호는 역사를 ‘아’의 활동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다. 그는 역사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이 부분이 원문에서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에게 역사는 일기와 같은 것이었다. 아의 주체적 관점 에서 아와 관련된 것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고 본 것이다.


 그는 역사의 특징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들었다.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에서 역사적 행위를 추출한 것이다. 이것은 신채호가 역사의 3대 요소로 인간•시간•공간을 설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란 부분에 해당하는 원문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다. 신채호가 사용한 ‘발전’이나 ‘확대’란 표현은 전개나 펼쳐짐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점은 제1편 제2장에서 드러난다.


 역사는 아의 주쳬적 관점에서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신채호의 역사학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아’다. 그런데 이 ‘아’는 개인적 차원의 ‘아’가 아니다. ○ ○ ○ 혹은 ○○○○라는 이름을 가진 일개인이 생각하는 ‘아’가 아닌 것이다. 신채호는 인류의 행위 중에서도 사회적 행위만이 역사적인 행위라고 했다. 이것은 신채호의 ‘아’가 소승적인 ‘아’가 아닌, 대승적인 ‘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채호의 ‘아’는 실제로는 ‘우리’다. 이 대승적인 ‘아’는 단순히 국가나 민족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무산계급이나 유산계급도 ‘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학술•기술•직업•의견표명을 포함한 제반 분야에서 ‘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싹틀 수 있는 곳에서 ‘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신채호의 ‘아’가 점층적 단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의 ‘아’는 작은 ‘아’에서 더 큰 ‘아’로 확장될 수 있다. 일개인에 서부터 시작해서 가족-사회-국가-민족-인류의 범위로 확장 될 수 있는 ‘아’인 것이다.


 계급•국가•민족을 ‘아’로 설정할 경우, ‘아’는 다른 계급•국가•민족에 대해 위험한 배타성을 띠지 않을까? 신채호의 ‘아’는 그처럼 위험한 ‘아’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을 ‘아’라고 했다. 이 말은 ‘아’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입장에 그칠 뿐 객관적 입장이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 그는 “아 속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속에도 아와 비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아’의 상대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는 ‘아의 아’와 ‘비아의 아’의 공존 가능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신채호의 ‘아’는 ‘비아의 아’에 대해 평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채호의 ‘아’가 평화적인 ‘아’라면, 그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며 투쟁을 운운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의 투쟁이 넓은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그는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지니, 인류 사회의 활동은 쉴 틈이 없고 역사의 전진은 완결될 날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접근•분투 같은 다양한 양상이 아와 비아의 관계에 나타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이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물리적인 충돌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포괄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아와 비아의 접근 및 분투를 ‘인류 사회의 활동’이란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말한 투쟁이 넓은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채호는 ‘아’의 속성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제시했다. 원문에서는 이것을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펀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신채호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시간과 공간이란 부분이다. 문맥을 분석하면, 시간성과 공간성은 ‘아’의 속성이 아니라 ‘아의 행위’ 즉 역사적 행위의 속성이다.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역사적 행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모든 역사적 행위에 동등한 가지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생각이다.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김석문의 지동설은 조선 내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데 비해, 지오다노 부르노의 지동설은 유럽의 탐험 열기를 달구고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의 지동설은 똑같은 이론이지만 공간적 파급력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래 서 역사적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아’의 성립 및 승리 조건도 설명했다. ‘아’는 ‘아’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고 했다. “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생기는 것이지만,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의 성립 조건에 관한 말이다. 또 그는 ‘아’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아’와의 관계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아’의 승리 조건에 관한 말이다. 두 가지 조건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투쟁해도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말이다.


<조선상고사>에 대한 일제의 탄압


 “巨×”는 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 검열을 받아 거巨 다음의 글자가 삭제됐다.  1931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조선상고사>는 일본의 검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巨×”는 일본이 보기에 불온한 표현이기 때문에 삭제됐을 것이다. 문맥을 고려할 때, 신채호가 ‘臣下’(신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다가 고의로 혹은 실수로 “巨下”(거하)라고 썼고, 의도를 알아차린 총독부가 하下 자만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민족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일본이 한민족의 신하가 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겠다는 게 신채호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03]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핵심내용 요약


01. 현대 문화에서의 돈 : 돈은 중세의 종속적 인간관계를 근대의 독립적 인간관계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삶에는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첫째, 인간과 소유가 분리됨에 따라, 자율성이 증가된 인간은 객관적인 사회적 결사체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돈의 무가치성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결합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인간들은 관계 속에서 분리되어 상호 소외 현상과 내적 회귀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셋째, 화폐 경제는 수평화와 평등을 실현시켰지만, 개인의 불만족과 둔감화 현상은 증대되게 되었다. 또한, 돈이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첫째, 등가물이 된 돈은 수평화의 비극이라 질적 하락 속에서, 질이 양으로 변환되는 현상들이 보편화되었다. 둘째, 돈이라는 수단이 목적으로 바뀌게 되어서, 돈에 대한 탐욕성이 절대적인 목표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돈을 신으로 삼게 되었다. 셋째, 수학적 조작이 언제나 필요한 화폐 경제에서 사람들은 이성적인 특성을 더 강화하게 되었지만, 증가된 이성과는 상반되게 양심하락 현상으로 발생한 윤리적 파탄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돈이 인간과 사회에 위와 같은 영향들을 지대하게 미치기 때문에 화폐 경제가 독립적으로 내재적 법칙을 따르는 것일까? 돈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세상의 법칙이 적용되어 작동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화폐는 자신이 만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신비의 창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다.


02. 대도시의 정신적 삶 : 정신의 세계사에서 대도시는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18세기에 개인은 정치, 농업, 길드, 종교에서 억압적이고 무의미한 구속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19세기에는 이러한 자유주의가 괴테와 낭만주의에 의해,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노동 분업에 의해 나타났다. 역사적 구석으로부터 벗어난 개인들은 이동의 자유라든가 편견이나 고루함의 제거라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본질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질적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가진 개인을 말한다. 그러나 대도시의 현대인들은 사회나 역사적 유산, 외적 문화 및 삶의 기술의 압도적인 힘들로부터 어떻게 개인이 자기 자신의 독립과 개성을 지켜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전형적인 대도시인은 개인의 주체적 삶을 대도시의 억압적 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방어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데,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지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양한 경제적 교역으로 북적대는 대도시는 화폐 경제와 이성이 지배한다. 화폐 경제는 정확성과 확실성, 약속과 명확성이 지배하므로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인 기질과 충동들, 즉 자기 주권적인 존재들을 배제시킨다. 따라서 대도시의 인간 관계는 몰인정하고 냉담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속내 감추기'의 태도를 보인다. 과거의 가족 집단이나 정당 조직, 종교 공동체 등의 작은 집단은 긴밀한 결속력을 지니지만 자유를 제한한다. 반면에 대도시인은 소소한 일들과 편견들에 얽매이는 소도시인들에 비해 자유롭다. 하지만 현대 문화의 발전은 객관 정신이 주관 정신보다 더 우세하다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대도시인은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04] 오늘 얻은 인식의 지평확대 개념들


(01) 가야를 통한 지역갈등 극복 전략

(02) 한글과 가림토 문자의 비밀

(03)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04) 종교인 과세

(05)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by 마이클 샌델

(06)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서울대 권장 100선) by 막스 베버와 짐멜의 비교

(07) 독일을 필두로 한 유럽의 교수 임용 체계

(08) 일본의 유식자 집단

(09) 김동인의 감자

(10) 슈타이너의 노작

(11) 로하스 운동

(12) 두 가지 관점에서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