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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음 시간 <짐멜의 모더니티> 발표순서

08. 얼굴의 미학적 의미 (황)
09. 양식의 문제 (송)
10. 알프스 여행 (전)

<3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유형들
11. 식사의 사회학 (김)
12. 감각의 사회학 (신)
13. 감사, 사회학적 접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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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의, 사회심리학적 접근 (황)
15. 편지, 비밀의 사회학 (송)

<4부> 인간의 내면적 삶과 형이상학
16. 모험 (전)
17.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 (김)
18. 비밀, 사회심리학적 스케치 (신)
19. 분별의 심리학 (조)
20. 다리와 문 (조)

[02] 짐멜은 칸트로 시작해서 니체로 끝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칸트와 니체를 조금 만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합니다.

01. 칸트 = 베이컨 (경험) + 데카르트 (합리)

(1) 칸트의 인터넷 평가 : 독일의 철학자.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그 이후의 발전에 새로운 기초를 확립하였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3권의 비판서는 순식간에 전 독일의 대학 및 논단을 석권하였고 인간학적 형이상학을 새로이 수립하였다.

  이상 3권의 비판서에 의하여 그 토대가 놓여진, 비판철학 사상과 밀접히 관련하여, 또는 그 위에 기초한 사고(思考)를 전개한 기타의 주요 저서로는 <순수이성비판>의 해설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롤레고메나 Prolegomena> (1783), <실천이성비판>에 앞서 비판적 논리학의 기본구상을 기술한 <도덕형이상학원론(道德形而上學原論)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이것에 기초한 법철학 •도덕철학의 구체적 체계를 전개한 <도덕형이상학 Metaphysik der Sitten> (1797), 그 자매편으로 자연철학의 체계를 전개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원리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가 있다. 또 오랜 기간의 강의를 정리하여 출판한 <인간학> (1798) <자연지리학> (1802)은 칸트의 폭넓은 실제적 지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칸트의 철학은 3권의 비판서 간행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예나를 비롯한 몇 곳을 거점으로 하여 순식간에 전독일의 대학 및 논단을 석권하였고, J.G. 피히테에서 G.W.F.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 철학의 선두 주자로서, 또 그 모태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 EBS 국어에서 소개한 칸트 (고3 수능 EBS 국어 강의 수준을 보시죠.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칸트는, 윤리적 명제는 모든 사람에게 불편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므로 특정 개인의 감성적 조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윤리적 명제에 단 하나의 예외가 인정되는 순간 그 명제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밀은 한 사회의 윤리를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개인의 윤리라고 보았다. 그는 상호 간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그간 축적되어 온 인류의 경험이다. 그가 보기에, 개인 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활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각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얻는 바가 많았던 것이다.

 비록 양자의 주장은 상반된 것으로 보이지만, 칸트와 밀은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을 통해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를 접목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점을 갖는다. 즉 칸트는 윤리의 보편적 특성으로부터, 그리고 밀은 공리 추구의 측면에서 개인 및 사회 윤리가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첫째, 개인의 도덕적 행위와 사회 규범이 서로 충돌할 경우 어떤 면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둘째, 개인 윤리의 시금석이 정해지면 과연 저절로 사회 윤리와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인가의 문제에서 서로 극명한 방법론적 차이를 보인다.

 칸트 식의 윤리관을 수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좋은 행위’를 위한 판단 근거는 결코 경험일 수 없다. 만약 윤리적 행위 원칙이 경험에 근거를 둔다면 각 개인의 경험적 내용에 따라 선의의 거짓말과 같은 예외가 인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제시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은 무엇보다 보편적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일종의 의무로서 기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원리에 따른다면, 각 개인의 행위 규범 간에 서로 상충될 만한 것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오로지 개인 윤리의 정립만으로도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 간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밀 식의 윤리관을 수용한다면, ‘좋은 행위’를 위한 판단 근거는 오직 경험이다. 단, 경험에 대한 평가는 평면적이고 즉자적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엄밀한 검증을 통과한 것이어야 한다. 이때 개인의 이익 증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개인 윤리적으로 ‘좋은 행위’, 즉 ‘선’으로 간주되고,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는 사회 윤리적으로 선한 것이 된다. 상시로 변하는 코앞의 경험에 따른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검증을 거친 경험이 가져오는 이익에 충실하는 한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의 접목은 자연스럽게 이익의 관점에서 모색될 수 있다.

 윤리적 행위 근거가 경험을 떠난 선천적 의무인가, 아니면 경험에 따른 이익의 증대 여부인가의 문제는 어느 한쪽으로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만약 모든 사람이 칸트 식의 경건주의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사회 전체가 잘 움직여 가리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확실하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도 가능한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도덕적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도덕적 가치 판단의 근거를 이익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개인의 위상은 과거의 그 어느 전통 사회에서보다 더욱 고양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에 의해 정립된 윤리적 기준은 그 원리상 새로운 경험에 의해 언제든 뒤바뀔 수 있거나 반박될 수 있기 때문에, 동일 사안에 대해 각 개인은 똑같은 권리를 갖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할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02. 니체 (차라투스트라 서문을 첨부해두었습니다. [00] 차라투스트라의 서언.doc )


(1) 니체의 인터넷 평가 : 니체는 "어떤 사람은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 말은 니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니체 없이는 20세기의철학/신학/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 카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문학비평에서 일어난 실존주의와 해체주의도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신학자 파울 틸리히, 레프 셰스토프는 "신은 죽었다"의 신학자인 토머스 J. J. 알타이저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위    대한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니체가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폴란드어로 옮겼다. 니체가 자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해했다고 말한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카를 융 등 심리학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토마스만, 헤르만 헤세, 앙드레 말로, 앙드레 지드, 존 가드너 등의 소설가와 조지 버나드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슈테판 게오르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의 시인•극작가도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그에 관해 글을 썼다. 분명히 니체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언젠가 하인리히 폰 슈타인 박사가 내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정직하게 불평했을 때, 나는 그에게 그게 당연하다고 말했었다. <차라투스트라>에 나오는 여섯 문장을 이해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문장을 체험했다는 것이고, 사멸적인 인간 존재의 최고단계에 '현대'인으로서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거리감을 느끼면서 어찌 내가 알고 있는 '현대인'에게 읽히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승리는 쇼펜하우어의 승리와는 정반대다. 나는 '나는 읽히지 않는다. 나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from 니체전집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 375

(2) "신은 죽었다"라는 의미
- 철학적 의미 : 이원론적 형이상학 파괴 
- 종교적 의미 : 그리스도교 신 개념 및 초월세계의 거부
- 도덕적 의미 : 그리스도교 도덕 비판 -> 유럽의 정신적 토대였던 플라톤주의의 종결 

(3)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파괴 : 존재적/인식적/도덕적 차원
- 형이상학적 이분법 : 세계를 존재와 생성으로 이원화하고, 전자에 후자에 대한 존재적 인식적 가치적 우위를 부여하는 사유방식
- 형이상학적의 역사 : 플라톤 -> 그리스도교 -> 칸트 -> 전복의 시작 (니체의 실증주의)

"기쁜 소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발견되었다는 것 - 이런 삶은 약속되지 않는다. 이런 삶은 거기, 너희 안에 있다.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서,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이다. 예수는 결코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신의 자식으로서 누구든 다 동등하다." [참조 - 니체의 초인은 부처인가? 니체의 초인은 부처인가.pdf]

[03]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핵심내용 발췌

03. 유행의 심리학, 사회학적 연구 

 유행은 한편으로 그것이 모방이라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의존 욕구를 충족시킨다. 다시 말해 유행은 개인을 누구나 다 가는 길로 안내한다. 다른 한편 유행은 차별화 욕구를 만족시킨다. 다시 말해 구분하고 변화하고 부각시키려는 경향을 만족시킨다. 이는 유행의 내용이 변화되면서 현재의 유행은 어제나 내일의 유행과 다른 개별적 특징을 갖게 된다는 사실뿐 아니라, 유행이 언제나 계층적으로 분화한다는 사실에도 입각한다. 상류층의 유행은 그보다 신분이 낮은 계층의 유행과 구분되고 낮은 신분의 계층에 의해 동화되는 순간 소멸된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해준다. 유행이란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들 중에서 특별한 것이다. / 유행은 내면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자립심이 없고 의존적이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주목 받고 눈에 띄고 싶어하는 개인에게 적합한 활동무대가 된다. 유행은 하찮은 사람까지도 그 지위를 높여주는데, 이는 그가 유행을 따르는 한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개인은 전체 정신이 자신을 떠받친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행의 노예가 된 사람들과 멋쟁이들에게 유행은 개인주의적이고 독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멋쟁이들은 유행의 경향을 정도 이상으로 추구하는데, 이를테면 뾰족한 신발이 유행하면 그는 신발 끝을 뱃머리처럼 만들고 높은 옷깃이 유행하면 옷깃을 귀밑까지 끌어올리며, 일요일에 교회 가는 것이 유행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무른다. 그가 개인적인 것이라고 표상하는 것은 실상 질적으로는 대중들의 공유 재산인 요소들을 양적으로 고양시킨 것이다. 단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갈 바로 그 길에 서 있기는 하지만 그들보다 앞서 간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공공의 취미를 극단적으로 대변하기 때문에 전체의 선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개인과 사회 집단의 관계에서 늘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 유행의 주인공에게도 해당한다. 다시 말해 지도하는 사람은근본적으로 지도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유행의 주인공은 사회적 충동과 개별화의 충동의 참으로 독특한 평형 관계를 대변한다. 보통 때는 분별 있는 사람이, 심지어 저명인사가 유행의 노예가 되는 이해하기 매우 힘든 현상도 유행의 그러한 매력 때문이다.

04. 장신구의 심리학

 장신구는 장신구를 단 사람을 부각시키고, 남들을 희생시키면서 그의 자부심을 지탱하고 증대시킨다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이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똑같은 장신구를 하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개인에게 장신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신구는 또한 이타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장신구의 즐거움은 바로 남들에게 주는 것이며 - 이에 반해서 장신구의 소유자 자신은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순간에만 그러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 이렇게 즐거움과 함께 장신구는 남들에게 반사될 때 그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서로 낯선 것으로, 또한 서로 적대적인 것으로 대치되고 있던 삶의 경향들도 미학적 형상에서는 내적으로 서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장신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신구라는 미적 형상물에서 역시 사회학적 상호 작용, 즉 자신을 위한 삶과 타인을 위한 삶의 각축장에서 나타나는 두 경향들은 서로 목적과 수단의 의존 관계에 놓인다.

05. 이방인

 우리가 이방인과 우리들 사이에 민족적으로나 사회적/직업적/보편적/인간적 차원에서 동일성을 느끼는 한 이방인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하지만 우리와 이방인과의 결합이 우리와 이방인을 넘어 다른 많은 사람들로 연결되는 동일성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우리에게 이방인은 멀리 떨어진 존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도 낯섦의 특성이 쉽게 등장한다. 에로틱한 관계는 그 첫번째 열정의 단계에서는 일반화의 사고를 아주 단호히 거부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이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관계로부터 그 유일성의 감정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에 소외가 - 원인으로인지 또는 결과로인지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 나타나는 법이다.

06.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는 - 아마도 같은 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 중에는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 단 한 사람의 조연(助演)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가장 심층적이고 전체적인 본질이 나타나는 경우에 그는 더이상 조연이 될 수 없다. 조연의 의미는 언제나 단지 자기 존재의 일부분만이 예술 작품에 표현된다는 사실에 있다. 이에 반해서 주연들은 예술 작품이라는 경계 안에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다빈치의 작품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성립하고 존속하느냐의 문제를 - 개별적으로 완전히 상이하며 동시에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격체들로부터 어떻게 유기적인 폐쇄성과 통일성이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 예술을 통해, 즉 ‘그림 안에서’ 이미 해결한 셈이다.

07. 손잡이, 미학적 접근 

 손잡이의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 광범위한 해석을 하는 것은, 이 해석 자체가 손잡이라는 눈에 띄지 않는 현상에 폭넓은 상징적 관계들을 부여함으로써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아마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의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테제와 안티테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는 전적으로 하나의 광범위한 영역의 단위에 속하는 동시에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물의 질서에 속하도록 요구된다. 이 질서는 존재에 대해서 목적을 부과하는데, 존재의 형식은 그러한 목적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형식이 첫번째 맥락에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두번째 맥락은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첫번째 맥락에 편입되어 있다. 이를테면 개인은 가족이나 지역과 같은 폐쇄된 영역에 속하지만, 동시에 국가나 직업과 같은 외부의 요구 사항들이 바로 가족과 지역에 전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치 그릇이 실제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듯이, 가족은 국가에 의해서 둘러싸며 있다 또한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마치 손잡이와도 같다. 국가는 이 손잡이를 통해서 가족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룬다.

[04] 오늘 얻은 인식의 지평확대 개념들

(01) 모방과 유행의 양태적 현상 : 계급이 상승해서 (상승이 중요하지 않고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자신의 선호가 사회화되는 순간 사회적 선호에 열망하고 몰입하게 된다. ex> 골프, 해외여행, 주식, 오피스 와이프, 여친, 남친, 커피, 양주, 남성의 학문적 교류 etc  

(02) 여성은 왜 비교 의식이 남성보다 더 높을까? 가설 01> 남성은 관계 속에서 개인차(능력)으로 차별 받지만, 여성은 gender 자체로 차별 받아 왔다. 따라서 동질화 경향성이 더 높고 이 경향을 뒤집으면 '비교 의식'이 된다. 가설 02> 여성은 아이를 출산해왔다. 모성애라는 본능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네트워크 구축 능력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구축 능력을 뒤집으면 또한 '비교 의식'이 된다.

(03) 영국에는 이야기 카페가 성행한다면, 한국은 오디오 클럽 (Pod Casting)이 성행하고 있다.  

(04) 시 읽기 모임도 유행이 되어 간다. [읻다 프로젝트 http://ittaproject.com/12347850

읻다 프로젝트 그림.JPG


(05) 혈구지도 [絜矩之道] : '곱자를 가지고 재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대학(大學)>에서 유래되었다. 

 <대학>의 마지막 장인 제10장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만드는 일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 사이에 효가 흥할 것이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이를 따라 할 것이며, 윗사람이 고아를 긍휼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도록 하지 말 것이다.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의 앞에 놓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인데도 앞사람을 따르도록 하지 말 것이다. 오른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 것이며, 왼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일러 혈구지도라 한다."

 혈구는 곱자를 가지고 잰다는 뜻이며, 곱자는 나무나 쇠를 이용하여 90도 각도로 만든 'ㄱ'자 모양의 자를 말한다. 여기서 유래하여 혈구지도는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 곱자를 가지고 정확한 치수를 재듯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점에서 추기급인(推己及人)과 같은 의미이며,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상통한다.

(06) 단어의 의미도 자족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의 관계로 이해해야 오해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들의 행동도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과 개인의 관계망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는 관계라는 '목적'이 개인의 '형식과 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참조 - 어휘의미론 어휘의미론.hwp ]

(07) 맥락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맥락을 얻기 위해서 일회적 인간관계가 아닌 장기적 인간관계 속에서 동감할 수 있어야 정보 과잉 사회에서 빠르게 펼쳐지는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In any organization, decision makers often find themselves working with simplified data that lacks any sort of context. They often deal with information in the abstract instead of experiencing it for themselves. In many cases, their disconnection from customers forces them to rely on so-called authorities who are anything but. Having an intuitive understanding of other people can help overcome these challenges. Empathy for the people you serve can make the abstract more grounded and immediate because that information is now connected to a real person you know. It can provide context for the data we receive by incorporating factors left off the map. And this kind of connection to other people can, over time, provide the kind of deep experience in a territory that people inside an organization need to identify new opportunities. 
[2017년 수능특강 독해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