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논술 수업이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점점 떨어지는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지만, 한 차시 한 차시 갈 때 마다 느끼는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와 각성하는 재미로 일요일부터 설래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차시 수업은 선생님께서 역사논술 수업 중 가장 중요한 수업이니 모두들 열심히 해달라는 말씀까지 하셨던 터라 더욱 기대를 하며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약 한 시간 이상을 우리 자신의 요즘 고민거리들에서 이야기를 한참 이끌어 내시더니, 현재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로 이야기 범위를 확대 하셨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밀도있는 수업을 할 것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으로 앉아 있던 우리들은 약간은 의아한 듯한 표정이었지요. "왜 저런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하시나" 하는 표정으로요.
하지만 의문은 곧 풀리고 우리가 이번 수업에서 꼭 알아야만하는 "역사에서 과제 찾기"의 한 가지 활동이었습니다. 즉 개인이든 국가든 넓게는 한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과제를 정확하게 찾아내야 하고, 그런 정확한 진단만이 정확한 해결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과제를 찾으려면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지요.
- 경제 :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 하기 시작하여 숙종때에는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으며 전국에 걸쳐 1000여개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상공업도 발달하여 객주와 여각이 많이 있었고, 조선 전기까지 국가 통제하에 있던 상인들도 이때 쯤 되면 송상, 개성상인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품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이를 뒷받침 할 만한 생산력의 발달이 있어야 하고 당시 농업 경제의 발달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물 문제로 인해 이앙법이나 이모작을 금지시켰지만 후기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저수지 공사를 하게 되고 쌀의 생산력에 큰 발전이 가능하게 됩니다. 또 담배, 고추와 같은 상업 작물을 재배하면서 전문적인 농사꾼이 생겨나게 되며, 이들은 이런 작물을 쌀과 교환하게 되고, 쌀의 가치에 눈 뜬 지주들의 수탈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지요.
지주들은 더욱 악날하게 수탈할 궁리를 하게 되고 광작과 마름을 통해 고정적인 소작인 제도 보다는 품팔이 농사 인력이나 머슴제도를 선호하게 됩니다. 결국 농민은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소작농에서 떨어져 나와 도시 빈민이나 일용직 품팔이로 전락하고 광작에서 마름으로 자라난 농민은 서민지주의 자리로 올라가며 농촌에서의 계급분화 과정이 심화 됩니다.

-사회 : 농업 경제에서 파생된 계층 분화 과정으로 인해 신분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돈만있으면 너도 나도 양반계층이 될 수 있고 양반층이 60~70 % 에 이르게 되며 이는 조선 후기사회 전체에 커다란 구조적 모순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들 양반층들은 세제 의무를 지지않으며 특히 군역이 면제 된다는 것은 나라의 병력 확보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 옵니다. 향후 밀려 오는 외세 앞에 무장해제 당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1801년 공노비를 해방시켜 군역을 하게 할 정도에 이르며, 모병제로 노비까지 포함한 속오군이나 5군영 제도가 실시됩니다. 아울어 상공업층이 많이 생겨나고, 국가의 근간이 되었던 건강한 농민층 또한 경제 부분에서 말했듯이 양극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문화 : 서민문화가 발달하여 한글 소설, 민화, 판소리 등이 널리 퍼집니다.

- 사상 : 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이에 따른 실용적 견지에서 실학이 생겨나고 양명학도 들어 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결국에는 모두 봉건체제 내에서의 변화라고 할 수 있고 근본적인 개혁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서학이 들어와 평등개념과 선진 문물에 눈뜨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실학이나 서학이 일부 계층에 한정된 변화 였다면 조선 후기 사회를 아래로 부터 뒤흔들고 널리 민중들 가슴에 퍼져 나가는 민중신앙들이 생겨 납니다. 정감록이나 비결, 미륵신앙,인내천 사상과 후천 개벽설을 담고 있는 동학의 출현은 후기 사회 일반백성들의 생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은 바로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이며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으니까요.

- 정치 : 세도 정치가 한참 극에 달한 때로 매관 매직 부패와 왕권 약화로 결국 이런 정권은 외세와 결탁 민족의 바람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 외세 : 제국주의 열강들은 전 세계에서 먹을 만한 곳은 다 먹고 이제 한반도에 눈독을 드리고 먹을 기회만을 옅보는 백척간두의 상황 바람앞에 등불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결국 우리의 반 역사적 모순들을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내부에서의 움직임들은 무능한 지배 계급과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개혁(혁명) 세력에 이들 외세까지 겹쳐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으며 좌절하게 됩니다.

이상의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정리를 통해 우리는 조선 후기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결국 반봉건 반외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사회의 모순이 안으로 밖으로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펴 보면, 똑같은 문제를 바라보아도 자신들이 처한 계급적 위치에 따라 얼마나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 개화파는 중앙의 집권세력과 민비를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이들은 외세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반봉건에만 주력하여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 척사위정파는 외세를 물리쳐 기존의 조선 사회를 지켜내자는 생각의 대원군을 위시한 지방의 유생들이 대부분이며 외세를 물리칠 의병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봉건 사회의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향후에는 이들이 일으킨 의병들이 농민 전쟁을 진압하는 세력화 하기도 합니다.
- 농민 전쟁 : 동학도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일반 농민들로서 이들은 조선 사회의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은 계층인 것입니다. 척왜척양, 보국안민을 깃발에 쓰고 반봉건과 반외세를 조선후기 사회의 모순 극복을 위한 해결책으로 본 진정한 혁명세력인 것입니다.

생산력의 발전이 모든 상부구조의 변화를 가져 온다는 막스의 보편적 역사발전론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됨을 깨닫게 되었고, 조선 후기 사회의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팽팽한 힘의 균형과 충돌을 외세의 간섭없이 그대로 두었다면 역사의 수레 바퀴는 어디로 굴러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서 꼭 한가지 우리 사회의 근대로의 좌절은 결코 외세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일제에게로만 돌리게 될 때 우리는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해결 되지 않은 더 큰 역사적 과제들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