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말경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손재주가 있어 성당의 궂은 일이나 자질구레한 일, 또 가난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 열심인 30대 중반의 스테파노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다정다감하거나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숨어서 선행을 하는 겸손한 분으로 노모와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리고 착한 아내를 둔 가장으로 군무원이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분이 1년을 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불쑥 나타나셨는데 부쩍 늙어보이고 야위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하고도 밝게 웃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풀이 죽어있고 행색도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 예쁜 아이들에게도 예전과 같은 건강하고 싱싱한 모습을 보기가 드물었습니다.
후에 들으니 그 분이 일을 끝내고 친한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방의 말을 하였다하여 안기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형을 살다가 면직까지 당하였다고 합니다. 겨우 본당 신부님께서 대구 교구 전체에 알리는 등 발벗고 나서셔서 풀려났는데 그 후 생활이 비참하여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민주", "민주"하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음에 이르렀던 때였습니다.
이제 역사의 주인으로 정신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또 다시 이땅에서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이 너무 당연했던 시절은 다시는 맞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역사논술 공부 덕분에 잊어버렸던 기억이 번쩍 들며 제 머리를 쳤습니다. 대학 때 저는 나중에 내 아이를 낳으면 "민주"라고 지어서 마음껏 불러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딸을 낳고 民主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가, 아니 이제는 民柱라고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여자애 이름이 더세서 팔자 세어지면 어쩌냐고 걱정하더군요.
우리에게 아직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주인의식을 갖고 기둥처럼 꿋꿋이 살아가면 우리 民柱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내일에는 분명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 나라에 살겠지요.
최지연 선생님, 건강하시고 감사드립니다. 역사논술 선생님들도 행복하세요.

눈에 쌓인 세상이 보기가 너무 아름다워요.


>이번 2월 23일로 모든 일정이 끝난 역사논술 팀의 과제 글입니다. 역사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 까지 얼마나 힘들고 먼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 글들을 읽으시고 여러 가지 생각이 나시면 답글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힘들게 수업에 동참하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입니다. 부디 선생님들 가시는 걸음걸음 힘차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몸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