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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할 것인가, 망칠 것인가 > -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

김은규 (부산 모동중학교 / poet612@hanmail.net)

1. 들머리

올해로 아이들과 함께 국어를 통해 생각과 느낌, 삶을 나눈 지 4년째 접어든 새내기 선생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국어 교육을 할 리 없고, 수업 뒤끝이 찜찜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모습은 아니었기에,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이기에, `그래도 괜찮아.`하고 위로한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지금껏 내가 받아온 국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부산 국어 교사 모임과 인연을 맺고 나서였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례들은 새로움을 찾아 나선 새내기 선생에겐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았다. 2주에 한번씩 하는 연구 모임을 마치고 나면 수업을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났고, 그 자신감은 선배 선생님들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그 자신감에 대한 목마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연구 모임에 나가게 해주었다.

모든 것들을 선배 선생님에게서 받고 써먹었다. 교직 생활 두 해쯤부터 `우리 모임에서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수업 말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 혼자 말고 우리 모임 선생님들과 함께라면 더 잘 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래서 `읽기 연구 소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을 만든 후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책 읽을 준비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짧은 교단생활이지만 행복한 순간은 참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학교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도맡아 했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아이들이 즐겨 찾는 도서관을 새롭게 마련한 일이었다(2003년). 개관식 이후 발 디딜 틈 없는 도서관 풍경은 뿌듯함으로 그득한 내 마음과 닮았다. 2004년에는 담임에서도 물러나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과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읽기 모임에서 읽고 나누었던 책들을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 건 학교에서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책을 반납하면서 `선생님, 이 책 너무 잘 읽었어요. 또 추천해 주세요.`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흐뭇했다.

2. 흥성스러운 독서 교육 판, 하지만...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독서량을 비교하면서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책 읽기 운동을 벌인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있었다. 진행자의 능숙한 진행 솜씨 탓이었는지, 추천된 도서에 대한 관심 탓이었는지, 그 프로그램은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추천된 도서를 구입해서 읽는 사람이 늘어났고, 나 역시 추천된 도서 몇 권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그 프로그램 덕에 그저 개인에게만 맡겨졌던 독서 활동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었던 책 읽기를 대중의 곁으로 옮겨오는 분위기 형성은 고마운 일이었다. 이제는 몇 개 방송국에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 운영하고 있다. 책 읽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학교에서도 독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갔다. 그동안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던 구석진 도서관을 새롭게 꾸미는 사업이 진행됐고, 학교 건물의 좋은 자리는 도서관 몫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학생 1인당 장서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도 있어 왔다. 학교 운영비의 5%를 도서관 도서 구입비로 편성하지 않는 학교가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학교라고 여겨질 정도다. 이제야 우리의 도서관은 도서관다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나의 경험상 이렇게까지 책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적은 없는 듯 하다. 책을 읽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교육부 차원에서도 이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아이들의 독서 습관 형성을 위해 정책적 대안을 마련 중이다. 지난 해 교육부에서는 독서 이력철 사용 계획이란 걸 발표했고, 2007년 이후에 학교에 도입 실시할 계획이란다. 이것은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기록하고 독서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다. 그리고 그 결과를 생활 기록부에 기록하고 대입 전형에 반영할 계획이란다. 각 교육청에서도 독서 교육을 강조 권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교육청에서는 재작년에 책의 내용을 묻는 문항을 개발하여 시험 치르는 형식의 독서 인증제를 각 학교에 권장 실시했고, 작년부터는 강원대학교와 손잡고ꡐ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ꡑ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각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독서 경시 대회, 골든벨을 울려라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많이들 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독서 새물결 모임의 한국 독서 인증제 시험은 올해에도 두 번 실시될 예정이란다.

정말이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흥성스런 독서 판이다. 흥성스러운 판이라면 신명이 나야 할 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앞서 말한 독서의 관심들이 독서의 참뜻을 왜곡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지난 해 전국 국어 교사 모임,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부산 국어 교사 모임 등지에서 이러한 독서 평가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일이 있다. 반대의 핵심은 이러한 독서 평가들이 학생들에게 책 읽기 자체가 즐거운 것이란 걸 깨닫게 하기보다는, 책 읽기에 염증을 느끼게 하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부산은 한참 더 앞서 나간다. 독서 교육에 대한 논의가 풍부해져서 내용이나 독서 기반 시설이 앞서가면 다행이겠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독서 교육이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K-CBRT, Korea Computer-Based Reading Test) 말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일 것 같다. 이 시스템이 강원도와 부산에서만 활용되고 있어서 지역적인 문제로 여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 시스템의 운영 계획에는 ꡐ시범 운영 및 검증을 거쳐 전국 시도 교육청 단위로 공유ꡑ한다고 밝혀 놓았다. 그렇다면 부산과 강원도에서 의욕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이 무엇인지, 그것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이래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라는 독서 교육을 파행적으로 몰아갈 소지를 이 시스템이 안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K-CBRT)이란 무엇인가

지금은 명칭이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이지만 원래 명칭은 '독서 인증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을 개발, 운영하고 있는 곳이 한국 독서 인증 센터이다. 이 센터는 강원대학교와 부산 교육청이 공동으로 설립하고, 강원도 교육청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증 센터에서 밝히고 있는 시스템 개발 목적은 '학생들에게 독서에 대한 흥미 유발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 업무 부담을 경감시켜서 실질적이며 효율적인 독서 교육의 내실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의 활용은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그 전에 각급 학교에서 행해지던 '독서 인증제'를 웹 상에서 하도록 구안된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종이로 인쇄되어 나왔던 독서 인증제 시험 문제를 웹 상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독서 인증 센터에서 수준별 권장 도서 목록을 정한다. 수준은 초등학생(3~4학년), 초등학생(5~6학년),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나뉜다. 이때 교육청 추천 도서나 각 학교의 추천 도서 목록을 참고하고 '도서 선정 전국 교수 자문단'의 자문을 받아 수준별 최종 목록을 확정한다. 이렇게 선정이 되면 문제 개발 위원으로 선정된 교사들이 선정된 책 한 권씩을 맡아 읽고서 문제를 50문항씩 출제를 하게 된다. 문제 유형은 4지 선다형 문항, OX형 문항, 진위형 문항, 단답형 문항이다. 이렇게 출제된 문제는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 내에 올려진다.

학생들은 책을 읽고서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에 접속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엔 인증 센터에서 선정한 도서 목록이 올라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이 읽은 책을 클릭해서 들어가면 그 책의 내용과 관련되는 문항을 볼 수 있다. 이때 문제 전체가 뜨는 것이 아니라 1번 문항만 뜨고, 그 문제를 풀고 나면 2번, 그걸 풀고 나면 3번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해서 10번 문항까지 풀게 된다. 이 가운데 4지 선다형은 6문항, OX형은 1문항, 진위형 1문항, 단답형은 2문항이다. 이렇게 10문항만 풀게 되는 건 문제 개발 위원이 개발한 권당 50문항 가운데서 10문항이 랜덤식으로 추출되는 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학생이 풀이한 10문항 가운데 6문항 이상이 맞으면 '감상문'을 쓰는 단계로 나아간다. 초등은 250자, 중학교는 400자, 고등학교는 500자 이상을 써야 된다. 이 감상문은 핵심 단어 채점(Key Word 채점)의 방식으로 평가된다. 이것을 통과하면 그 책에 대한 인증 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만약 문제 풀이 1단계에서 10문항 가운데 5문항 이하를 맞추게 되면 '한번 더 자세히 읽어보세요.'라는 문구가 뜬다.

이게 부산에서 주도하는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의 모습이다. 사실 이것의 애초 이름은 앞에서 말했듯이 '독서 인증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지난 해 우리가 그토록 반대해왔던 '독서 능력 검정 시험'이나 '독서 인증제'와 차이가 없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이 문제를 접하는 방식이 아날로그 식이냐 디지털 식이냐 하는 차이 말고는 없다. 결국 독서 새물결 모임에서 치르는 '한국 독서 인증제 시험'이나 각급 학교에서 치렀던 '독서 인증제'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 명칭을 새롭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육청에서도 "일선에서 '인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해서 명칭을 바꾸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교육청이 제안한 독서 교육의 방향이 안타까워서, 도서관 바닥에 앉아 자유롭게(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읽고서 문제를 풀어야 할 구속력도 없고, 누가 읽어보라고 강제한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 우리 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지켜 가고 싶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내가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명칭'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반대하고 있는가? 앞으로도 꾸준히 반대할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가 바라는 책 읽기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3. 왜 책을 읽는가? : 독서의 참맛

답 없는 물음부터 던져놓은 것 같다. 하지만 책읽기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바탕을 이루는 물음일 게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부산 국어 교사 모임 읽기 연구 소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활동은 제한된 목표(학생들과 함께 책 읽기)라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할 수는 없겠다. 대신에 자유롭게, 특별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고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전교조 부산 지부에서 '교육 소위' 활동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모임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발전(?)을 위해 매달 독서 모임도 갖고 있다. 선정 도서는 그냥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다. 그동안 우리가 읽은 책은 『페다고지』(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그린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등이다. 꽤 심각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지만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페다고지』는 교육이 '인간 해방'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은행 저금식 교육'을 비판하고 '문제 제기식 교육'을 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교육 활동 전반을 돌아보고, '나는 무엇을 목표로 아이들 앞에 서는가?', '나의 수업 방법은 정당한가?'하는 등의 물음을 품었다. 결국 이 책은 나를 반성하고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보수주의의 강화 때문에'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가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된 역사적 계기와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위기를 극복할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알게 됐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단편적 지식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 책을 통해 나를 둘러싼 사회 현상들의 밑바탕에 깔린 이념성, 그리고 나의 이념적 지향성 등을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대중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나는 책을 통해 단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도 얻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나'를 성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우리 학교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시원아, 너는 왜 책을 읽는데?"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술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냥 책 속의 주인공이 제 상황과 비슷한 상황인 거 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뻔한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나는 이게 답이라 여긴다. 책은 재미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할 수 있을 때, 참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럼 시원아, 네가 읽은 책 갖고 객관식 문제 만들어서 풀게 하면 책읽기가 재밌겠나?"물었다. 당장 돌아오는 답이 "미쳤어요? 시험을 치는 건 강제잖아요. 제가 좋아서 읽는 책인데, 시험을 친다면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어요."란다.

그렇다. 책을 읽는 목적이 다양할 수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마음 속 움직임이다. 그런데 교육청의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간섭하려 한다. 시스템의 문항을 보면 알겠지만, 단편적인 내용을 물음으로써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고, 상상력을 제한한다.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을 독서 교육을 올바로 이끌 목적으로 만들었겠지만, 애당초 그 방법이 틀렸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한 자기 성찰 활동인 독서를 평가하고 인증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다. 교육청이 아무리 그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다 하더라도 독서의 본질을 왜곡하는 한 계속해서 반대할 일이다.

4. 독서 교육 지원 시스템 목적의 허구성

부산 교육청 문건 가운데 '학교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독서 인증 시스템 개발,보급'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은 시스템의 목적, 추진 방침, 추진 내용, 계획 등을 담고 있는데, 면밀히 따져보자.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시스템을 개발한 목적이 학교 도서관 활성화란다. 활성화를 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도서관 시설을 갖추어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가장 기본은 도서관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제대로 된 도서관은 장서 수도 충분해야 하고, 시설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운영할 전문 사서 교사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부산은 일부 학교가 도서관을 새로이 만들고 있으며(리모델링 예산도 예년에 비해 삭감되었다고 들었다), 언제 제대로 된 도서관을 갖출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학교도 많다. 또한 사서 교사의 확보 문제는 거의 절망에 가깝다. 부산 전체에서 정규 사서 교사는 단 8명뿐이다. 이렇게 독서 기반 시설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독서 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놓치고서 아이들을 책에 가깝게 만들겠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물론 도서관 리모델링이나 전문 사서 교사 배치를 위한 노력과 함께 이 시스템의 활용도 병행하면 좋지 않으냐고 물어올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묻겠다. '도서관 활성화하고 이 시스템 활용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실제로 이렇게 물은 일이 있는데, 내게 돌아온 답은 '도서관 컴퓨터를 활용해서 하다보면 도서관 이용자 수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인증 증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해야 되는 것 아니냐'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 학교를 알아보니 대부분이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하고 있던데? 그렇다면 컴퓨터실 활성화를 위한 시스템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인증 증을 받기 위해서 도서관 책을 빌려가니까 도서관이 활성화된다고 했다. 이거 너무 얄팍하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독서 활동마저 얄팍한 당근으로 아이들을 유혹해야 하다니...

이런 얄팍한 수를 쓰지 않아도 도서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 학교의 도서관이 인증 증이라는 당근을 이용해서 활성화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독서의 근본을 망각한 비교육적인 방법이다. 교육을 하겠다면서 비교육적인 방법을 택하다니 딱한 노릇이다. 독서의 근본에 충실하면서 도서관을 활성화 시킨 학교도 여럿 보았다. 교육청은 그러한 노력을 다하는 교사에게서 배울 일이다.

또한 이 시스템의 목적에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 흥미 유발의 초보적인 기회 제공, 민주 시민으로서의 삶의 질 향상, 실질적이며 효율적인 독서 교육의 내실화도 포함되어 있다. 말들이 너무 거창해서 주눅이 들 지경이다. 이대로라면 이 시스템 하나가 독서 교육을 온전히 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객관식 문항이나 단답형 문항으로 어떻게 아이들의 창의성, 상상력을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획일적인 답만 요구하는 독서 교육은 창의적인 인재의 싹을 자르는 것 아닐까? 그리고 컴퓨터에 친숙한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독서를 연결하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인증 증을 더 받으려는 아이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너무 비교육적인 것 아닌가? 민주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가 자율성이란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이 시스템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독서를 방해한다.

5. 도서 선정의 문제점

시스템에 올라 있는 목록은 교육청 권장 도서와 각급 학교의 권장 도서 목록을 참고해서 '도서 선정 전국 교수 자문단'의 자문을 받아 확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도서 선정에 관한 총체적 기준만 밝혀 놓았지1), 선정, 권장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냥 '교수 자문단'이라는 권위면 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도서관 문화 운동 네트워크’ 공동 대표인 김종성 교수(계명대 문헌정보학과)는 '권장 도서 목록은 독자에게 묘한 권위와 함께 수용된다. 특히 독자가 주체적이고 성숙한 독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권장 도서 목록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에 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한 아이들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제대로 된 권장 도서 목록 정도는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은 인간 의식의 산물이라서 가치 지향적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책이 담고 있는 가치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책을 다른 이에게 추천할 때에도 추천자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책 추천은 가치관을 다른 이에게 소개하고 안내하는 행위이다. 내가 추천한 책이 한 아이의 삶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책을 추천할 때에는 추천의 이유를 반드시 들어야 옳다.

책따세에서 책을 추천할 때, 추천의 이유와 추천자를 밝힌다. 이것은 추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서의 도서 추천과 권장을 보면 책임지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교수라는 권위에 호소하는 듯한 인상이다.

6. 문항 개발의 문제점

권장 도서 목록이 완성되면, 추천된 도서에서 문제를 출제할 교사를 선정한다. 교과 내용과 관련되는 추천 도서가 있기 때문에, 문항 개발 교사를 국어과에만 한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교과에 맞게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항 개발 교사 선정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 학교에 문항 개발팀장이 있으면, 그 학교 교사 가운데 제법 많은 수의 교사가 선정되는 걸 보면 그렇다. 물론 교사 개개인이 전문성을 갖고 있겠지만, 그 전문성에도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교무실 내 컴퓨터에 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문제를 직접 풀어보았다. 다음은 박상률의 『나는 아름답다』의 문항들이다.

<문> 다음 서술을 읽고 유추한 것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세요.

걸핏하면 자기 엄마 눈을 피해 내 방을 찾아온다. 처음엔 참고서를 빌려달라느니, 문학 서적을 빌려달라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내 방문을 두드렸지만 언제부턴가는 그런 핑계 없이도 잘만 드나든다.

① 주인공의 방을 찾는 아이는 엄마를 싫어한다.
② 주인공에게 호감이 있다.
③ 주인공을 좋아하는 아이는 뻔뻔한 아이다.
④ 주인공은 그 아이의 방문을 싫어한다.

문제 출제 지침에는 답이 하나인 것으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답이 여러 개다. 이런 문제를 내어놓고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답만 요구한다.

사실 답이 여러 개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고의 흐름을 막아버려서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서 이 문항을 접하면 문항에 나와 있는 문장에 얽매일 것은 뻔하다.

<문>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세상을 껴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당찮은 문항이다. 이런 사소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 독서 교육 프로그램이라면 정신적이고 온 지각적인 책 읽기는 멈춰야 한다는 말이 된다. 책의 의미를 찾기보다 구절 하나하나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이런 문제 말고도 '다음의 대화는 누구와 나눈 것입니까?'도 있다.

이런 문항 개발에 참여한 한 선생님은 '문제를 만들어 내긴 하지만, 이것으로 아이들의 독서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고 했다.

10문항 가운데 6문항 이상을 맞추게 되면 감상문 쓰는 단계로 넘어간다. 감상문은 초등학생은 250자, 중학생은 400자, 고등학생은 500자 이상 쓰게 되어 있다. 이 감상문까지 통과되어야 인증 증을 받는데, 감상문 평가는 핵심 단어 채점 형식이란다. 문항 개발팀이나 인증 센터에서 그 책의 핵심 단어를 입력해 놓고, 감상문에 그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개수에 따라 시스템 내에서 자동적으로 채점이 되는 모양이다. 결국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단점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아무리 교사의 편의를 위해서 개발된 것이라 해도, 이렇게 무책임한 방식을 우리 교사는 원하지 않는다. 평가의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독서 감상문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발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7. 독서 인증 증 활용의 문제점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아이들은 해당 도서에 대한 인증 증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그 인증 증을 어떻게 처리할까? 교육청 문서에는 인증 급수에 따라 학교 자율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고 했었다. 뭐 담임 상이나 학교장 상, 수행 평가 반영 등으로 말이다. 작년 7월에 이 문제를 교육청 장학사에게 강하게 제기를 했다.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많은데, 그걸 학생들의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교육청에서도 이 문제에 동의했는지, 절대로 평가에 반영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알아보니 이 시스템을 통한 결과물을 국어과 수행 평가에 반영한 학교가 더러 있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서 연수 강사로 나오신 선생님도 이 결과를 수행 평가에 반영했다고 하셨다. 이렇다. 절대로 평가에 반영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는 해놓고, 교육청이 선정한 연수 강사가 근무하는 학교는 수행 평가에 반영을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는 수행 평가에서 빼기로 했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다.

8. 보다 본질적인 문제

솔직히 말해서 앞에서 지적한 것들은 사소한 문제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독서력을 평가하겠다는 데에 있다. 과연 독서력을 평가해서 인증한다는 게 정당한가? 누가 인증을 한다는 말인가?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많은 책을 읽어서 잡다한 지식만 머릿속에 빼곡히 넣은 사람들이 세상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라도 자신의 마음 밭을 갈고 닦는데 소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책을 많이 읽어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머릿속에 기억하길 요구한다. 이 시스템에서의 독서 능력은 많은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인 셈이다. 그렇지만 독서 능력은 그게 아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독서 능력이다.

책 읽기의 목적이 다양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로 모아진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삶을 가꾸고, 그것으로 건강한 사회 구성원일 수 있게 이끄는 것이 독서다. 이것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근데 과연 내면에서 벌어지는 성찰을 평가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을 교육청이 인증하겠다니? 독서 활동에 대한 평가는 읽는 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나의 비판에 대해 교육청에서는 이 시스템으로 독서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흥미 유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인증 증까지 부여하고, 그것으로 성적 평가에 반영한다니 이것은 틀림없는 '평가'다. 또한 흥미 유발을 하더라도 얄팍한 수를 쓰지 말고 교육적인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독서 능력이 이런 식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정말로 아이의 독서 습관 형성을 위한다면, 독서의 참맛이 무엇인지 살펴서 그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다.

9. 마무리

지난 해 7월 설악산에서 'K-CBRT 시범 운영 평가 워크샵'이 있었다. 내가 그 워크샵에 참석을 했는데, 그 사정도 재미난다. 교육청에서는 그 전 해에 우리 학교가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했으니까 당연히 이 시스템을 활용할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담당자인 나를 그 워크샵에 참석시킨 거였다. 하지만 나는 이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참석했다.

워크샵 내내 불안한 마음이었다. 다들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시는 분들 가운데서 어떻게 마이크를 잡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강원도로 올라가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잘못된 독서 교육이 전국의 아이들에게 행해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그게 이 시스템을 반대한 시작이었다. 교육청 장학사와 전화상으로나 직접 대면해서 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장학사님, 이 시스템이 과연 아이들의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물은 일이 있는데, "네, 저도 김 선생님이 지적하는 문제 공감합니다. 하지만 교육청도 이것으로 독서 교육을 완전히 해낼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서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무엇을 도와 달라는 걸까? 오히려 교육청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즐겁게 책 읽고 소통하는 선생님들을 도와 줘야 되는 것 아닐까? 전문 사서 교사 배치, 도서관 시설 개선 등으로 말이다.

부산 교육청은 독서 연수를 하면서 이 시스템의 내용을 연수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길 바란다. 2학기에도 한 차례 더 있을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에는 이 시스템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그냥 은근슬쩍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활용하십시오.'라고 하지 말고, 진짜로 이것이 아이들의 독서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이들의 독서를 돕기 위해서 교육청이나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기대한다.

名不正 言則不順이라고 했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탄치 못한 법'이란 뜻이다. '김은규 선생님, 중학교 후배시네요. 도와 주이소.', '좋은 게 좋은 것 아닙니까?'하는 말은 필요하지 않다. 얼마나 순탄치 못한 말인가? 만약 교육청의 일이 명분이 바로 서는 일이라면 이런 말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부산 교육청은 아이들에게 흥미 유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미명 하에 참된 독서를 왜곡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뭐든 계량화 된 수치로 드러내어야만 실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아이들의 내면적 성숙을 위해 열심히 애쓰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독서 교육 활동을 잘 살펴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린다.

- <함께여는 국어교육> 2005년 여름호.


>부산발 교육혁명에 관한 기사(중앙일보, 어린이동아)와 읽을거리(한겨레 등)입니다.
>중등논술 22기 지난 수업 중에 나온 주제입니다.
>첫번째 기사는 샘플로 보여드리고, 자료정리한 것은 첨부화일로 넣겠습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론 발도로프 교육(?) 보다는 이런 교육 패러다임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ㅠ.ㅠ)
>용인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좋아하는 너굴이 올림
>
>중앙일보    2005.06.13
>부산발 교육 혁명… 우수 교사 릴레이 공개수업. 학교벽 허물어
>
> 부산 반송중 3학년 조철민군은 3일 시교육청 지정 권장도서인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조군은 부산시내 모든 학교가 활용하고 있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 홈페이지(www.k-cbrt.or.kr)에 접속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가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등 '노인과 바다'와 관련된 10개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군은 이 가운데 8문제를 맞혔다. 6개 이상을 맞히면 독후감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라 홈페이지에 독후감을 남겼고, 인증쿠폰을 받았다. 이번 학기 들어 7권의 책을 읽은 조군은 28일까지 한 권을 더 읽고 쿠폰을 받으면 국어 수행평가(100점 중 20점)에서 만점을 받게 된다.
>부산시 교육청(교육감 설동근)이 '재미있는 책읽기'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부산 초.중.고생들의 독서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 초 1인당 연평균 대출 도서수를 조사한 결과 부산 학생들은 전국 평균치의 세 배인 연간 9.1권에 달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3권에 그친 서울학생들의 7배에 해당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최근 "2008학년도 이후 새 대입제도에서 대학들이 이런 방식을 중요한 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시스템을 제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 부산에선 학생을 최우선시하고, 교실수업을 뜯어고치고, 학교의 벽을 허무는 과감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계에선 "타성에 젖어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 않는 한국의 교육을 탈바꿈시킬 교육혁명이 부산에서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교육부총리가 공사석에서 "부산 교육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고 할 정도다.
>기자는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와 지난 3, 4일 변화의 회오리가 거세게 일고 있는 부산 교육현장을 동행취재했다.
>3일 오전 11시20분 부산 항도중 도서관. 국어과 우수교사로 선정된 최지영(29) 교사가 2학년 국어 5단원 '글과 사전'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칠판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사전의 종류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제시됐다. 동일 인물을 '인물사전'과 '국어사전'으로 찾았을 때의 차이가 화면을 통해 설명됐다. 30여 명의 학생 중 한눈을 파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수업 내용은 녹화돼 동영상으로 부산교육연구정보원 홈페이지(busanedu.net)에 올려졌다. 부산의 모든 교사.학생이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달 16일부터 전국 최초로 시작한 '시퀀스(Sequence.연계성)가 있는 공개수업'의 하나다. 벤치마킹을 통한 교실수업 변화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6개 학교의 우수교사가 같은 과목에 대해 3주씩 릴레이로 공개수업을 이어간다. 수업을 지켜본 정진곤 교수는 "공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은 교실수업의 혁신"이라며 "일회성에 끝나지 않는 릴레이 수업공개는 교실수업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 부산시 백병원 내 '병원학교'. 지난 3월 시교육청이 문을 연 백혈병.소아암 환자를 위한 이 학교는 '찾아가는 교육'의 한 사례다. "나는, 나는 누구일까요." 김진주(25)교사가 소방수 그림 조각을 보여주며 묻자 성미(4.가명)와 석민(4.가명)이가 한목소리로 "불, 불, 불"이라고 대답한다. 부모들은 "병원학교가 생긴 뒤 아이가 활달해지고 치료 의욕도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후 4시 부산시교육청이 운영하는 '학부모교육원'. 지난해 3월 개원한 전국 유일의 학부모 대상 교육기관이다. 우수한 학부모들을 훈련시켜 교육현장을 지원토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공교육을 내실화하겠다는 게 설립 목적이다. 지난달 28일 토요휴업일에는 이곳에서 교육받은 학부모 58명이 30개 학교를 방문해 직접 학생들을 상대로 각종 휴일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강은경 장학사는 "일선 학교에서 파견 요청이 이어지고 있어 평상시 재량활동.특별활동 강사로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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