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愛


온다던 너 대신 밤새 감잎 떨어지는 소리
제 안의 것들 비우고 또 비워내는구나
기다림은 또 다른 집착일 뿐
견딜 수 없는 건 신열의 몸뚱이가 아니라
사소한 고통, 너무도 사소한 나의 절망

감이 익어가고, 멀리서 새들이 날아들고
구절초가 안쓰러이 피어있는 아침
아직도 무거운 몸이 부끄러운 나는
너에게 가는 길이 이미 늦어버렸기를.


-------------------------


                새벽길을 걸으며

                                     
불면의 밤을 화내지 않기로 한다
나를 가둔 것이 창밖의 어둠이거나 밝음이 아니었음을
잎 떨군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생각한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안다는 듯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 끄덕이거나 눈물지었던 허세와
바람 한 올에도 흔들리던 나약함.
날것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아무리 곤혹스러워도
비겁해지지 말아야 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놓을 수 없다면
부끄러움의 선연한 통증으로 만나야 했다
무기력의 가슴에 지르는 맞불이어야 했다  
얼굴에 감기는 차고 맵싸한 회초리를 맞고서야
비움과 견딤의 경계,
그 실존의 뿌리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