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을까요..

어쩌다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것인지...아니면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것인지...

해오름에 와서 알게 된 선생님이 계십니다.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얼굴도

한 번도 뵌 적 없습니다. 다만 전화선을 통해 그 분을 느끼며 어느새 마음 속에서

좋아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이 함께 생기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한 번 만나서 밥이나 한 번 먹자고 간절하게 이야기하지만 서로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게 될 사람들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 분과 저는 정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간송 미술관이 있습니다. 그 곳이 코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미술전이 열리면 일주일 내내 그 곳에서 눈치를 보며 아이들과  실컷 그림 구경을 하며 수업을 합니다.

지난  늦은 봄  간송 미술관에서 '김홍도대전'을 열었습니다. 어김없이 일주일 내내 간송 미술관에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간송 미술관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한 마른 듯한 남자 선생님과

몸집이 작고 개량 한복에 모자를 쓰신 여자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그림을 보러 다녔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에 대해 열정적으로, 그리고 전문적 지식까지도 설명해 주시는 남자 선생님을

곁에서 흘끗 흘끗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온화해 보이는 여자 선생님도...

미술관에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아이들과 정리를 할 겸 바로 옆의 성북 초등학교로 갔는데

그 선생님 두 분과 아이들도 그 곳으로 와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왠지 그 선생님께 이야기를 걸고 싶었습니다. 아이들 말로는 인천에서 왔다고 하던데 어디서 오셨는지도..

정말 인천에서 왔다면 그 먼 거리에서 이 곳까지 오신 열정에 감탄의 말씀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춘기 소녀처럼 머뭇거려져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며칠전 저녁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문득 이 선생님이

그 날 간송 미술관에서 흘끗 흘끗 뵈었던 그 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쳤습니다.

"선생님..혹시 지난 봄에 간송미술관에 김홍도 전 보시러 오셨었나요?"
"네. 맞아요."
저는 잠시 말을 잊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이 분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해서 들게 되었을까...

무슨 예감처럼 그 분이 꼭 이 선생님은 아닐까 했던 것인데, 그 분이 먼저 간송 미술관에 왔었다는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꼭 그 분 같았습니다.그런데 맞다고 하셨습니다. 알리바이를 맞춰보니 그 분이 맞았습니다.

며칠 동안 그 만남에 대해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쉬운 만남은 없다는데 이렇게 만나고 싶어 했

던 그 선생님과 저는 이미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지하철을 탔습니다. 아침 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발 한자국 움직일 데 없이 가득 차 있었습니

다. 겨우 한 자리에 몸을 곧추 세우며 내 자리를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이 밀고 들어와 타고 또 들어와 타서

사람들과 사람들은 남극 추운 겨울을 이기는 펭귄들처럼 그렇게 몸을 맞붙이고 있었습니다.낯선 사람과 체온

을 나누며 살갗을 붙이며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스러운 일인데  그 분과의 만남이 머릿속에 떠 올

랐습니다. 아니 떠오른게 아니라 내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 만남을 외면하며 무심히 서 있는 사람

들을 보았습니다.

혹시, 이 사람들과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 운명이었을까 생각하니 그 상황이 싫지 않았습니다.